안개사냥
박문구 지음 / 경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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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경규 형의 죽음이지만 문제는 사람들이지. 지금 그 집에는 차남 경표와 부천 여자, 칠십 된 부모, 이렇게 넷이 살고 있잖아. 누나 둘은 멀리 시집갔고,알다시피 이 마을에서는 방귀께나 뀐다는 집이고, 소형 어선이지만, 지금까지 형이 잘 운영해 와서 수입도 좋았고 또 재 너머 논밭이 얼마야. 대략 사오천 평은 실할 걸,아마, 더구나 방이 많잖아. 부모가 쓸 아래층 방 두 칸에 대문 들어가면서 붙인 방이 각자 한 칸씩 차지해도 네 칸이 그냥 남는거야. 제철에 해수욕객만 받아도 하루 사십은 너끈하거든. 여기 있는 상미집도 성호, 너 집도 여름 한 철이면 일년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잖아. 그 집은 농토까지 널렸으니, 하여간 팔자 좋은 집 두고 경규 형은 너무 억울하게 죽어버렸지. 너무 좋은 형이었는데, 마을 인심도 경규 형을 좋아했고, 자, 지나간 얘기는 접고.(p134)


이 소설은 다섯 편의 단편소설 <비>,<구덕포 가는 길>,<겨울 바다는 우리 곁에>,<안개 사냥>,<적군>으로 이뤄져 있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의 특징은 저자가 태어나고 자랑 강원도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 강원도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건 그동안 강원도는 못 먹고,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소설을 읽게 되면,오래된 추억의 드라마 <젊은이의 양식>을 느끼게 된다. 강원도에서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지만,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의 삶 자체가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명징적인 가치관을 내포하면서, 소설의 방향은 우리 삶의 내밀한 배고픔을 끄집어 내고 있다.


그들은 산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들을 찬찬히 읽어가면 막걸리가 등장하고 있으며, 죽음들이 특별한 소재꺼리로 사용하고 있다. 죽음이 엄습하는 그 순간 막딱뜨리게 되는 주변 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 과정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심리적 변화가 행동을 변화로 바뀌게 된다. 중고등학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사범대학교 영어학과를 졸업하지만, 안정적인 출세길이 보장되었던 소설 속 주인공조차 죽음 속에서 빗겨나지 않고 있으며, 거대한 바닷가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그 바닷가가 생명줄의 끈이면서, 그것이 자신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물줄기였다. 한사람이 죽어감으로서 살아난 이들은 아픔을 온전히 간직한 채 살아가야만 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숙명이며, 그 숙명적인 순간들이 <안개 사냥>으로 압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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