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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의 하늘
권화빈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8년 11월
평점 :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떤 장르에 상관없이 편독하지 않는 독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소설, 시,에세이, 역사, 인문,과학, 사회, 여성, 임신,출산, 육아, 가정, 그림책 등등등, 온라인에서 내가 읽는 독서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내가 쓴 글만 보면서 오해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반응들은 내가 쓴 글에 댓글을 통해서 전해져 오게 됩니다. 작년 여름 때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영주 지역 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물론 독서모임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하였고, 도서관에 가도 지역 문학 코너에 눈길을 둔 적이 거의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치에 발을 걸쳐 놓으면서, 지역 문학에 관심 가지게 되었고, 독서운동가 권화빈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점의 산 역사 영주시 스쿨 서점 2층에서 뵙게 되었던 권화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 그 안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과 눈빛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가지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논어의 자로 편에 등장하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입니다. 이 문장을 텍스트로 접해 왔던 저에게는 권화빈 선생님의 깊은 경험과 연결되어서, 그 안에 감춰진 삶의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의 깊이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겠다고 다집합니다. 내 앞에 놓여진 세상을 관찰하면서 , 그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나와 뜻이 맞지 않더라도, 그들과 다투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저는 지금까지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제주도 -4.3에 부쳐'입니다.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 아픔과 슬픔이 온전히 느껴지는 역사는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으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역사를 묻어버리는 게 아니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모든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은 지속할 수 있습니다. 4.3 사건은 세월호 참사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촛불 정신과도 연결됩니다.세월호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은 4.3 사건에 대해서 잊지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음으로서 그들의 고통을 잊지 않게 되고,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넘겨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흙 한 줌 돌 하나 바람 한 점 함부로 건드리지 말거라'에는 시에 내포된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티끌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역사이니 , 그 역사를 함부러 다루지 말라는 강한 의지와 단호함입니다. 그 단호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하나의 큰 줄기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니 내가 삶을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삶이 나를 끌고 다닌다.' 시 <주객전도>에 나오는 첫 머리입니다. 주도적으로 살라고 귀가 딱지가 되도록 들어왔던 우리의 삶, 그러나 우리는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끌러가는 삶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는 삶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면서,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눈치 보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아집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런 삶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매사 조심하게 되는 삶, 그러나 잠시 방심하는 그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 발이 남의 발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약속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영주시 하망동 성당 뒷골목' 시 끝순네 입니다. 제 취미는 마라톤입니다. 10년 전 서천에서 운동이 끝나거나, 대회가 끝나고 영주에 오게되면, 동호회 회원 분들이 자주 언급해왔던 곳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도 끝순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곳이지만, 저와 무관하였던 추억의 장소, 작년 하망동 성당에 있었던 강연이 끝난 뒤 찾아간 곳은 바로 영주 사람들의 삶이 층층히 쌓여져 있는 영주의 피맛골 '끝순네'였습니다. 우리는 '끝순네'라는 단어 세글자만 이야기 해도 서로 통하게 되고, 스토리는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외지에 살아도 서로가 이 단어를 내밷는 그순간 두 사람은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10년 넘게 만난 것처럼 서로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추억이란 바로 그런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라면을 끓이듯 삶을 끓이자 스프는 너무 일찍 넣지 말고 좀 기다렸다 물이 끓은 후 넣을 것' 시 <라면을 끓이듯>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야 입니다. 점점 빨라지는 삶을 살아가면서,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니, 놓치고 가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라면을 끓이듯 삶을 끓이면서 살아가는 것,세상을 관조하면서, 때로는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KTX 기차를 타면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어릴 적 추억이 비둘기호를 타면, 더 느리게 갈 수 있지만,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간이역 하나 하나 정차해 가면서,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고 내리는 그 순간을 바라보게 사람들의 표정을 볼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여유조차 사라져 가고 있으며, 그 안타까움이 절실히 묻어나는 한편의 시였습니다.
권화빈님의 시는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로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언어이며, 보편적인 언어로 채워지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우리 삶의 지혜를 얻게 되면, 시인의 삶과 경험의 프리즘에 시 한 편 한 편에 오롯히 채워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느낄 수 있으며, 더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살아온 삶과 지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눈으로 익히고, 귀로 익히는 것은 그 수명이 짧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몸으로 익히는 시, 몸으로 느껴지는 시, 그것은 독서 운동가 권화빈 선생님이 추구하는 시의 특징이며, 한권의 시집 <오후 세 시의 하늘>은 권화빈 선생님의 삶 그 자체이며, 삶에 대한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