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이가 사라졌다 - 자폐 아들과 함께한 시간의 기록
송주한 지음 / 한울림스페셜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아이는 심한 정신지체입니다."
"언어장애가 아니고 정신지체라고요?"
"네, 단순한 언어장애가 아니에요."
k연구소 선생님은 우근이를 검사한 뒤 '정신지체'(당시는 '발달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이었습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체와 언어 기능이 발달 단계보다 많이 느리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럴리가요?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나 봐요.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가르치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공부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없는 아이입니다. 희망을 버리세요."
그럼 이 아이는 어떡하나요? 엄마 아빠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요?"
"그때는 두 형이 먹여 살려야죠."
전문가는 냉정했습니다. 아내는 세상이 다 무너진 듯 말을 잃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직도 마시지도 않고 몸을 쥐어짜듯 끊임없이 눈물만 쏟아냈습니다.(p58)


남의 일이었다. 우근이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들은 그들의 입장과 관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하나의 시선이다. 하지만 우근이의 아빠와 엄마는 냉정해질 수 없었다. 말귀는 알아듣지만 말을 하지 못했던 우근이는 자칭 전문가라 부르는 사람에게서 자폐 소견을 듣게 된다. 그 순간 우근이의 엄마는 무너져 내렸으며, 내 앞에 놓여진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인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늦어버린 현실 속에서 앞으로 우근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나 불안과 걱정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게 된다.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범위를 넘어서 버린 우근이를 마주한 우근이의 부모의 입장에서 우근이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서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없었다. 우근이 엄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의 수기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싹쓸이 하듯이 주워 담았던 그 후기들은, 우근이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육아 방법으로 채워져 있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두 형들이 없어도, 큰 도움 없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근이 엄마 아빠의 당면한 현실이었고 , 숙제였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걱정과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기가 아이가 되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 점점 더 몸이 커져가는 우근이, 하지만 우근이의 당황스러운 행동들은 우근이 부모께서 생각했던 것을 넘어서게 된다. 기본적인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도덕적 기준에서 우근이는 한참 벗어나 있었고, 부모님은 항상 우근이 문제로 불려 다니게 된다. 항상 죄송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우근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 설명해야 했다. 우근이가 머물러 있었던 장소와 위치들, 우근이는 돌출행동을 하였고, 사라지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우근이의 소식이 끊어졌고, 우근이를 믿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어가는 일상 속에서 점점 더 지쳐가게 되는 우근이 엄마 아빠의 모습은 안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믿어야 했다. 우근이는 내 아이였으니까. 아직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하나의 말알이 되어서, 세상을 바꿔 나가길 바라는 우근이 부모님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심장과 가슴으로 전해저 오게 된다., 두 아들은 막내로 태어난 우근이로 인해서 그 몫을 나눠 가지게 되었고, 우근이의 바로 위 형은 때로는 상처 입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한편으로 우근이를 믿음으로서 우근이에게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게 된다. 우근이가 절대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이 되고 있었다. 물건을 결제하고, 물건을 스스로 살 수 있었고, 보호자의 눈 밖에 벗어나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지하철을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 때로는 낯선 곳에서 우근이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근이를 믿음으로서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 책을 복지의 관점에서 읽어 나갔다. 복지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우리 사회엔 있다. 하지만 우근이와 우근이 부모에게 복지는 생명줄이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우근이와 같은 장애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 복지의 기준을 시설이나 돈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근이와 같은 장애 아이를 둔 부모님은 좌절하게 되고, 절망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가 바꿔 나아가야 하는 참된 복지의 방향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는 한 권의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