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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시
문현기 지음 / 미디어샘 / 2018년 12월
평점 :
모기
물고 물리는 세상에
물려서 가려우면
그나마 다행이지 (p18)
파리
수습이 안 되는 세상에
빌어서 해결되면
그나마 다행이지(p19)
할 말 1
술만 들어가면 할 말이 그렇게나 많던 선배들은
오래 걸어온 길에서 할 말을 다 잊었는지
인생이라는 재판에서 함구라도 지시받았는지
말없이 술잔만 기울인다.
그들의 흥분을 불러 일으켰던 독한 소주가
이제는 그들을 잘 타이르고 달래는
순한 소주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할말이 없나요. 우리 할 말 참 많았는데
할 말만 삼키고들 있네요
애는 잘 커요, 재수 씨는 잘 지내니.
서로에게
서로가 아닌 사람들의 소식만 줄기차게 묻고
생의 궤도가 크게 이탈하지 않았음을 체크하고
서로의 맞은편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갈 길 간다.(p37)
하루살이
집에 오는 길에
눈앞에 하루살이가 아픈
아무리 벌레라지만 어떻게
하루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을까
제 이름의 뜻을 알면 얼마나 마음 아플지
깊은 밤 퇴근길에 하루살이 환승하다. (p38)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직자인의 애환이 시 곳곳에 묻어나 있잇었다. 출판사에 일하면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매일 야근에, 일에 치이면서 살아가는 우리네의 그런 보편적인 삶,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면서, 젊은 청춘의 객기는 그렇게 삶의 궤도 속에서 아스라지고 비겁해지게 된다. 살아가고, 살아지는 삶의 애환들이 곳곳에 묻어나 있으며, 때로는 직장 상사에게 치여가면서, 스스로를 낮춰가야 하는 파리와 같은 인생을 직장인들은 살아가면서, 나만 그렇게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것에 자조섞인 위로를 스스로에게 안겨주게 된다. 삶이란 그런 거다. 직장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들은 가족을 위해서, 때로는 회사를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얻어 갈려 했던 청춘의 시간은 점점 더 잊혀지고, 정처없이 떠도는 도시의 나그네가 되어버렸다.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직장인들은 그 아픔을 술 한잔에 기울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현실을 잊으려 하게 된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픔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찾아가게 되고,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삶은 보편적인 회사원으로서 소중한 가족마저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런 직장인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가 파리가 되고, 모기가 되고, 하루살이가 되어서, 회사원에서 하나의 피붙이처럼 살아가게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