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우는 며칠 동안 먹지 못했다. 사냥도 뜻 대로 안 되고 산과 들을 뛰어다녀도 흙 속의 구더기나 벌레, 달팽이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배를 채울 수가 없다. 게다가 전에 몹시 모욕을 준 이장그랭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여우는 몸이 마르고 힘이 빠진 채 숲 입구에서 멍하니 쉬고 잇었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섰다 앉았다, 하품하다 짖어대다가 다시 숲에 들어가 여기저기 찾아봤으나 먹이는 눈에 띄지 않고 숲 저쪽 무르익은 보리밭 너머에 있는 수도원이 눈에 띄었다. 거기는 속세를 떠난 견고한 울타리처럼 신앙심 굳은 수도승의 수도원으로, 둘레에는 도랑을 파놓고 담을 높이 쌓은 석조로 된 튼튼한 곡식 창고가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여우가 좋아하는 모든 물건이 있는 곳이다. 수도승은 굶는 일은 못 견딘다. (p85)


프랑스 우화이다. 책 속에는 여우와 늑대, 개가 등장하고 있으며, 주인공 여우 르나르는 영리하고, 교활하며,체세술이 좋다. 반면 여우와 함께 지내는 늑대 이장그랭은 열심히 살아가지만 똑똑하지 못하고, 여우의 꾀에 놀아나게 된다. 책에는 여우와 늑대 뿐만 아니라 개도 등장하고 있으며, 약방의 감초마냥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보는 한권의 책이다. 르나르와 이장그랭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일반적이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드러나 있다. 특히 우화나 전래동화를 보면 권선징악적인 서술 구도를 자아내고 있는데, 이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우 르나르가 보여주는 보편적인 삶을 들여다 보면, 남을 등처먹는 사기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이 해놓은 것을 빼앗아가고,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것은 숨겨 놓고 있다. 정말 곤란한 상황이 찾아왔을 때 능청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우 르나르의 모습을 우리 삶에 대입해 보자면,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이익에 밝고,손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모습들, 때로는 죽은 채 하는 여우 르나르의 모습은,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면서, 때로는 그런 모습에 우리는 거부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우 르나르에게도 고민이 있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여우 르나르에게도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또한 모든 것이 권선징악처럼 서술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진화해온 여우에게 주어진 삶, 강한 자들 틈바구니에서 약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그럼엑도 살아남기 위해서 나쁜 짓을 일삼는 그런 르나르의 모습을 보자면, 내 안에도 르나르가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죽은 척하면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익을 갈취하는 여우 르나르의 그런 모습을 어느정도 동정은 가면서도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