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아서 가야 한다
정명섭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1월
평점 :
함께 일하게 된 세사람은 날이 밝으면 밭에 나가서 일하고 해가 떨어지면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강은태가 양반이라는 체통을 버리고 두 사람의 일을 열심히 도와주면서 잘 섞였다. 하지만 고된 일과 주인의 매질, 그리고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차츰 커져갔다. '우린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하루종일 배추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황천도가 중얼거렸다. (p77)
선조 33년 2월 한양에 두 사람이 태어났다. 하나는 황음치의 아들 황천도였고, 강철견의 아들 강은태였다. 한명은 노비였고, 뼈대높은 한명은 양반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태어난 해와 같은 것처럼 공교롭게도 같은 운명과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된다. 노비 자식인 황천도와 양반 자손 강은태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 팔도를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습해 나가는 가운데, 광해군 11년 1619년 만주로 나가서 전장을 누비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신분 차이와 무관하게 후금 병사의 포로가 되어서 잡히게 되었다.
살아남아야했고, 생존하는게 급선무였다. 조선의 도원수 표하군에 속했던 강은태는 살아남기 위해서 양반 체면을 벗어 던지게 된다. 노비로서 황천도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추운 허허벌판에서 포로로서 생존해야 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 나가게 된다. 죽음과 삶은 그렇게 한순간에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법이었으며, 포로 강은태를 살리기 위해서 양반 집안에서 돈을 모아서 강은태 앞으로 보내려 하는 구명운동을 벌이게 되는데, 혼자서 살아야 겠다는 악착각은 마음은 황천도에게 살인 욕구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강은태가 죽었고, 황천도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 나가게 된다. 먼저 노비였던 신분을 감춰 나갔고, 양반 행세를 하게 된다. 철저히 강은태처럼 살아가는 황천도의 삶은 만주 땅에서 고국 조선땅에 살아돌아가게 되었다. 조선에서 강은태로 살아돌아오게 되었고, 살아돌아온 사실에 대해서 아내는 의심하게 된다. 죽었다 생각했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 것,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을 못 알아보는 아내의 모습이 교차되고 있으며, 소설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 소설은 숙명, 그리고 삶과 생존이다. 똑같은 운명을 간직하고 태어나면서 , 둘 사이는 그렇게 엇갈리는 운명을 간직하게 된다. 숙명적인 이유로 , 만주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강은태는 그로 인해서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노비 황천도의 삶은 포로에서 벗어나 조선 땅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감추게 된다. 이처럼 운명이란 예기치 않게 흘러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운멸릐 소용돌이를 마주하게 되고, 겹쳐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