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프루츠 에디션) - 허밍버드 × 티피티포
조유미 지음, 화가율 그림 / 허밍버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이별은 숨바꼭질 같은 것이다. 한쪽이 꼭꼭 숨으면 다른 한쪽이 술래가 되어 숨은 아이를 찾는다. 숨는 사람은 이별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고 찾는 사람은 이별에 미련이 남은 사람일 것이다. 술래는 이별이 끝날 때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릴 때 혹시 맞은편에 그 사람이 서 있지는 않을까. 지하철을 탈 때 그 사람이 자주 타던 노선이면 혹시 그 사람도 이 지하철을 타고 있지는 않을까. 함께 가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혹시 그 사람도 이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오지는 않을까. 흔히 일상 속에서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매일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과 닮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장이 뛴다. 쿵.쾅.쿵.쾅.

'걸음을 재촉해서 얼굴을 확인해 볼까?
아니야, 그러다 정말 그 사람이면 어쩌라고.
그래도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데....'

이미 머릿속에서는 슬픈 음악이 깔린 드라마 한 편이 제작되고 있는 상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술래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숨는 사람은 숨기만 하면 되지만 술래는 온갖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왜 이렇게 꼭꼭 숨었는지 원망스럽다가도 숨다가 혹시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빨리 그 사람을 찾고 싶다가도 영영 못 찾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다 허공을 헤집고 다니는 내가 그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별은 시간이 지나야 끝나는 게 아니다. 술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는 순간, 비로소 끝나는 것이다. 그때가 마음속에 있던 미련이 사라지고 더 이상 숨바꼭질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애초에 숨은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나 혼자 숨기고, 나 혼자 찾고 있었다는 것을. 허무하고 기나긴 숨바꼭질이었다는 것을.

이 숨바꼭질에서 승자는
술래가 못 찾도록 멀리 도망간 사람도 아니고,
꽁꼼 숨은 이를 빨리 찾는 사람도 아니었다.

빨리 잊는 사람이 승자였다..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숨은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다 잊어 버리고 사는 사람이 이별의 승자였다. (P120)


한 권의 책이 훅 들어왔다. 한 문장이 훅 들어왔으며, 나는 세페이지를 연달아 빼껴 써 버렸다. 잊지 않아야 하는 문장,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은 문장이었다. 더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이별의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 읽는 자의 의무와 책임 같은 것이 순간 내 앞에 찾아왔다. 셒페이지를 빼끼는 동안 내 앞에 놓여진 이별은 어떤 형태였는지 잠시 들여다 보았다. 슬픔이라는 건 그런 거다. 같은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우리는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슬퍼하고 아파하고,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간다.더 슬픈 건 내가 간직하고 있는 슬픔의 씨앗을 간직해야 한다는 거였으며, 더더욱 슬픈 건 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고, 괜찮은 척 살아가야 한다는 거였다. 괜히 누군가에게 드러내서 위로를 얻기는 커녕 궁상맞다고 듣는 소리 듣기에 딱 좋은 거였다. 나 뿐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자자의 생각과 감정, 삶에 대한 경험의 스펙트럼 속에서 나는 책 속에서 자간과 행간 사이에서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삶이라는 건 어쩌면 견디는 것이고, 참아나가는 거였다. 살아가야 한다는 그 당면한 책임감과 울분이 각자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 속에 숨어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어설픈 위로를 전한다고 펼쳐든 책들보다 이 책이 나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가상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저자 조유미씨가 나와 동료가 되는 느낌, 동지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전히 아이와 같은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미성숙한 나는 겉모습은 어른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아픔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모순이었고, 그 모순을 스스로 깨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저자도 나와 같은 걸까,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듣고 싶어졌다. 삶에 대한 정의, 우리에게 주어진 당면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그런 것들은 나이가 들어간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나 스스로 단절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나 스스로 깨닫게 될 때 누군가는 그걸 위로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며, 정말 슬픈 거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생을 막감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한 권의 책이었다. 훅 들어왔던 글이었고 문장이었고,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우지 못하고 슬픔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나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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