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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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 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p47)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불편하게 만들고 용기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 그건 너그러움이 이제는 없다는 감정이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다.

그런 괴로움은 어쩔 수 없이 너그러움 그 자체였던 마망의 모습을 불러들인다. (그녀는 내개 늘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넌 참 좋은 사람이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 어쩌면 나는 지극히 '선한 마음'으로 그러니까 모든 편협함, 질투심, 허영심들을 다 버린 마음으로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여서 승화시키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날이 갈수록 '고결함'을 잃어버리고 '너그러움'을 잃어간다. (p102)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p123)


롤랑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는 1977년 10월 25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기호학자 이면서 사상가이며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기날 이후로 자신의 어머니를 애도하는 일기를 써내려가게 된다. 일기라기 보다는 쪽지에 가까운 글들이 모여지고,  매순간 기록하였고, 기록으로 남기면서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였으며, 삶에 대한 슬픈 관조와 마주하게 된다는 거였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조차 모른채 어머니의 사망 소실을 들었던 롤랑 바르트의 삶 한 켠에 존재하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깊은 슬픔들, 언어가 가지는 한계는 언어 속에 깊숙이 구겨 넣어지게 되고, 어머니를 그리워 하게 된다.


언어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슬픈 감정을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한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냥 언어와 가까이 접근해 나간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슬퍼하지만 슬픔을 세상 속에 표출할 수 없고, 슬픔을 마음 속에 구겨 넣지만, 그 구겨진 마음이 불현듯 돌발적으로 튀어 나오게 된다. 슬픔을 멀리하는 것조차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될 수 있고, 가슴 한 켠에 그 슬픔들을 채워 나가게 되는데, 그럼으로서 사람들은 서로가 보이는 아픔과 마주하게 된다.


슬픔이란 그런 거였다. 죽음 앞에서 솔절없이 무너진다는 것,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거였다.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지만,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였다.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증명하였고,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에서 엿볼 수 있으며, 롤랑 바르트의 가치관 깊숙한 곳에 어머니가 심어 놓은 사랑들이 있었다. <애도일기>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기록하였고, 기록을 통해서 기억하게 된다. 기억함으로서 망각되어 가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일기를 써내려감으로서 자신의 슬픔을 묻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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