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바람 소리가 들리니?
박광택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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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때도 소리가 날까?
특히나 아름다운 꽃이 필 때는 어떤 소리가 날까?

쓰개치마 속에 감추어진 아가씨의 수줍은 얼굴처럼 갓 피어나는 꽃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무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꽃들은 숨죽여 피고 있다고 자신의 화려함을 금방 들키지 않으려고.

나의 무음도 나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한 하느님의 자비인걸까? (p31)

저자 박광책씨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자신의 소리를 대신해 주는 청각도우미견 소라와의 첫 만남은 2007년 10월초였다.그리고 2009년 2월 소라와 함께 첫 만남이 이뤄지게 된다. 듣지 못한다는 건 불편하고 답답한 거다. 듣지 못함으로서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사실 그런 걸 잘 느끼지 못한다. 세상은 거의 일반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거기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 듣지 못함으로서 세상의 소리에 대해서 집착하게 되고, 그것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집착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연의 소리를 그냥 지나치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모습과 달리 저자는 자연 그대로는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고 하던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인은 그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또다른 장애를 가진 존재이다. 


청각도우미견 소라는 항상 책을 쓴 박광택씨와 함께 하고 있다. 집에서, 작업실에서 언제든지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동반자였다. 그것은 가족 그 이상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였다. 하지만 저자의 직업은 화가이다. 화가임에도 미술관에 가지 못하고, 박물관에 가지 못한다. 그곳에는 자신의 동반자와 함께 할 수 없는 제약적인 조건들이 있어서다. 그래서 스스로 움직였고, 부산시의 조례를 직접 바꿔 놓았다. 소수자를 위한 배려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였다.


그렇게 가족은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신의 소리를 대신해 주었던 청각도우미견 소라는 '비강악성종양 말기' 판정을 받게 된다. 불현듯 찾아온 병은 두 사람이 헤어짐을 예고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미리 병을 발견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꼈고,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가족이라 생각하였건만 소라의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던 거였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소라는 많은 것을 남겨 놓았고, 저자는 그 흔적들을 치우지 못하였다. 삶에 대한 집착, 소리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저자의 인생과 가슴 한 켠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 책은 소라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 미안함과 죄책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한 권의 책이며, 소라는 세상을 떠났지만, 소라를 잊지 않았다는 저자의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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