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대화 -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큰아버지의 오래된 앨범에는 한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그 사진은 월남전쟁에 참여한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월남전쟁은 1960년에서 1975년까지 베트남 영토에서 일어난 전쟁이며, 그 당시 베트콩 토벌을 목적으로 남한은 미국의 입장에 서서 전쟁에 인력을 제공했다. 그 시점이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이며, 우리는 가난한 나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다른 자구책이었다. 32만명의 한국인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미화해 왔으며, 경제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 왔으며, 남을 공격하거나 침범하고, 전쟁에 동참해 그들을 죽이는 그런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으며, 민간인 학살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 왔다. 또한 전쟁 이후 고엽제 피해 사실만 부각시켰으며, 베트남 전쟁으로 희생된 한국인들은 현충원에 안장해 왔던 거다. 큰아버지도 그런 굴레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였고, 경제 발전의 주춧돌을 세웠다는 자부심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자면 그것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한이 동참한 것이며, 우리는 300만의 베트남인들이 죽은 사실을 축소하거나 감춰왔다.


이 책을 읽어보자면 베트남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분리되었던 베트남의 현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의 공산주의 팽창을 염려하였고, 그 타겟으로 베트남을 선택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미국에 비해 군사적으로, 인적 자원에서 절대적 열세였던 베트남인들은 국지전과 게릴라전을 이용해 미군과 대적해 왔으며, 미군의 입장으로 보자면 북베트남은 적군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며, 미국의 무차별적인 고엽제 살포가 가져오는 수많은 부작용의 폐혜를 읽을 수 있다. 본토가 아닌 베트남 영토에서 전쟁을 치뤄야 했던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채 물러 나야 했다. 책에는 바로 그런 현실을 짚어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인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우리가 묵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그동안 평화를 강조하고, 평화의 상징이 된 비둘기를 부각시켜왔던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인 모습이다. 일본이 전쟁을 부인하고,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그런 모습에 대해서 분개하는 우리의 입장을 베트남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또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책에는 바로 양국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대화가 이뤄졌다면 300만의 베트남인의 죽음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미국의 시나리오가 오판으로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거다. 냉전 시대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의 시선들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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