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컵은 네가 씻어 걷는사람 에세이 2
미지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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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누군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또 왠지글을 쓰게 되면 정말 불안한 삶을 살 것 같았다. 글을 잘 쓰려면 뭐든 끌리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글 쓰는 사람은 그저 글만 열심히 쓰면 되는 것이었다. 때때로 들려오는 소문과 편견에 지레 겁을 먹고 나는 어떤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p136)


어떤 상황이든 사람마다 각자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의견을 입 밖으로 내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처음 내 의견을 함부러 말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부모님이나 선생님과의 관계에서였다. 나는 의도 없이 그냥 얘기한 것인데 '말대답' 혹은 '버르장머리 없음'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괜찮은데요' '좋네요' 같은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 (p158)


사람과의 마남은 상처를 동반하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말이다. 주요한 것은 나는 그 상처를 어느정도 받아낼 수 있느냐이며, 그 상처의 깊이가 나의 폐부를 찌를 때 나 스스로 내가 설정해 놓은 범위 밖으로 그 사람을 밀어내 버린다. 돌이켜 보면 우리느 그렇게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며, 그 안에서 서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하지만 항상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게 견디면서 살아오는게 당연한 것처럼 지내왔다. 이 책을 쓴 저자 미지님도 그런 거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용기 내지 못하였고, 상처를 받는 그 순간 그것이 상처인 줄 모른채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은 내 앞에 다가온 상처를 그냥 두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삶이란 그런 거였고, 인생이란 그런 거였다. 하지만 내 인생은 특별한 인생인 줄 착각하고 살아간다. 나만 상처 받은 것처럼 느끼고, 남들이 받는 상처들은 그냥 외면하기 일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바로 저자가 마주하는 상처의 깊이였다.


미지님은 말 그대로 쑥맥이었다. 남자 형제들과 함께 지내오면서, 학교는 여중,여고, 여대를 나왔다. 그리고 남들처럼 결혼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유군은 바로 저자가 말하는 남편을 지칭한다. 그렇게 자신보다 한살 어린 남편과 결혼하고, 태명 '어흥이'라 불리는 아이와 함께 오붓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돌연 어느 순간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게 된다. 뇌성마비 오빠에 대한 트라우마들, 부모님의 딸에 대한 단속들, 그것은 미지님의 가치관 속에 내재되었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삶과 죽음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의 인생들이 이 책이 고스란히, 때로는 날 것 그대로 전달되고 있으며, 저자의 성격 뿐 아니라 생각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날줄과 씨줄로 엮여진 저자의 삶에 대한 스토리들을 따라가 본다면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저자 미지님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견디지 못하였기에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위로하게 되었고, 아픔을 견디면서 살아가갔다. 그것이 바로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전달되고 있다. 인간의 희노애락이란 바로 이 책 한권을 두고 이야기 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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