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 이한우의 지인지감 知人之鑑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릇 삶을 고르는 법[澤人之法]에는 네 가지거 있다. 첫째는 몸(身)인데 그 얼굴과 몸매가 듬직하고 위풍당당해야 한다.[體貌豊偉].둘째는 말인데 그 말하는 바가 조리가 있고 반듯해야 한다.[言辭辯正],셋째는 글인데 글씨가 해서처럼 또박또박 정확하면서 아름다워야 한다.[楷法週美],넷째는 판단력인데 사안의 이치에 대한 판단력이 우수하고 뛰어나야 한다.(p86)

이 네가지가 다 갖춰지고 나면 일단 잠정적으로 합격시킨 다음 우선적으로 다움과 행실을 살피고 이어 다움이 재능과 균형을 이루는지를 보며 끝으로 재능이 수고로움과 연결되는지를 점검한다. 이 세가지를 통과하면 남겨두고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시킨다.,(p87)

대개 사람이 행하는 바는 다 뜻하지 않게 좋은 것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반드시 그 사람의 의리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인지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본마음이 실제로 의리에 있었다면 그 좋음은 진실함에서 나온 것이니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본마음이 실제로 이익에 있었다면 그 뜻하지 않은 좋음은 진실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어찌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따르는 바가 좋다고 해도 그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바가 아니라면 진실로 아직은 능히 '우러나서 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p120)


그리샤 왕조시대에는 "저 사람은 정승감"이라고 하는 것은 최고의 지도자감이라고 하는 극찬에 가까웠다. 그릇이 커서 남을 품어 줄 줄 알고 한쪽으로 편벽돼 있지 않으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열린 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저 사람은 판서감"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정승감이 안 된다는 욕에 가까운 말이다. 즉 강직하되 융통성이 없고 머리는 뛰어나고 학식은 많은데 겸손하지 못해 자기주장만 강한 사람들에게 하던 말이다. 우리 역사 속의 조광조나 이이는 아무리 보아도 정승감보다는 판서감에 가깝다. 판서감이 정승이 됐을 경우에는 아무래도 제명대로 살기 어려운데 김종서가 어쩌면 여기에 해당하는지 모른다. (p208)


대한민국에서 널리 읽혀지고 있는 책은 논어이다.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 논어를 왜 사람들은 읽는 것인가 물어본다면,논어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유교서이기 때문이다. 논어가 가지고 있는 보편 타당한 이야기들은 바로 인간의 속마음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은 뿌리가 된다. 인간을 이해하면서 ,우리 사회에 정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논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거의 무한하다고 보여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리더는 왜 논어를 읽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해 보았다. 리더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가운데 자신에게 필료한 사람인지 아닌지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것은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속마음을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익을 쫒는 사람인지, 의리를 쫒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을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쓸 때 망설여진다. 공자는 바로 그런 부분을 집어나가고 있다.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인지, 아니면, 나와 동떨어져서 다른 길을 갈 사람인지 알고 있어야 자신을 곧게 내세울 수 있다. 제왕학의 근본에 논어가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또한 책에는 제왕학의 표본이 되는 책 <대학연의>를 펼쳐 볼 수 있는 기회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책에서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바로 판서와 정승의 차이였다. 세종의 황희는 왜 정승이 되었고, 율곡 이이는 왜 판서에 머물러 있는지 저자의 남다른 깊은 통찰력을 들여다 볼 수 있다.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에 따라서 그 사람은 정승으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판서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들여다 보게 된다. 똑똑하지만 겸손하지 못하고,학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융통성이 없다는 것은 판서가 보여주는 특징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판서로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정승으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은 판서이지만 정승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현재 우리 앞에도 놓여지고 있다. 리더가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고, 인재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정승의 자리에 판서가 앉게 된다.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리더로서의 무능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고, 판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정승은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 받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