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론 세이브
이진서 지음 / 피톤치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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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곤봉 탄생 신화에 여러 설들이 있었지만, 지리산에서 번개 맞아 부러진 박달나무 가지를 꺽어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마귀가 휘두르는 마곤봉으로 엉덩이를 한대만 맞아도 누구나 대퇴부 뻣속까지 강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p14)

불을 꺼야 하응 소방수가 방화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재민의 올 시즌 여섯 번째 블론세이브(BS)  그걸 바라보던 남자도 그 순간 '에이X팔'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TV 전원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p81)

다음 날 출근해 보니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았다. 검은색 화면에 커서만 깜박거릴 뿐, 윈도우 화면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내일이 월간 미팅 보고일이다. 등판이 만 하루 밖에 안 남았는데 BS는 무방비 상태였다. 아직 자료도 다 만들지 못했고, 게다가 컴퓨터도 먹통이었다. 그간 작성해 놓은 파일이 지워졌을 수도 있었다. (p101)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그녀의 머리가 내 오른쪽 어깨로 향했다. 난 가만히 내 어깨를 그녀에게 빌려줬다. 이내 그녀는 내 오른쪽 어깨에 자신의 고개를 묻은 채, 쌔근쌔근 잠을 자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난 그녀를 깨웠다. 눈을 뜨긴 했지만, 그녀는 혼자 몸을 가누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주은이를 부축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p132)

대한민국 사회에는 386 세대가 있다. 30대에 80년대에 대학을 나왔고, 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386 세대라 부른다. 그들을 때로는 우리는 중년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여전히 현역에 있어야 하고 경제적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놓여진 시장은 그들을 쓰려고 하지 않고 구조조정 시켜 버린다. 바로 이 소설은 그들의 삶을 녹여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8편의 단편 소설에 기록되어 있으며, 소설가 이진서님은 야구와 중년의 삶을 엮어내고 있다.그리고 저자는 중년의 삶 속에서 블론세이브를 찾아내고 있다.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낼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추억이었다. 여덟편의 소설 이야기를 온전히 느낄 수 없지만 나에게는 익숙하였다. 1980년대 프로야구 태동기였고, 사람들은 야구에 열광하게 된다. 그 무렵 우리가 사는 곳 어딘가에서는 야간자율 학습을 하였고, 친구들의 이름에 별명을 붙였다. 그들은 서로 최루탄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의리를 지켜 나가고 있었다. 죽음이 가져다 주는 경험들, 부조리한 세상에 항거해 왔던 중년들의 삶은 우리의 경제 성장의 주축이 되었고, 이제는 뒤로 물러나야 했다. 소설은 바로 그들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들의 감춰진 고독과 슬픔의 흔적들이 여덞편의 소설 속에 그려져 있었고, 그 하나 하나 펼쳐 보는 느낌은 가을에 은행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 마냥 쓸쓸함만 감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실체였고,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소설은 바로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부모님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 속에 애잔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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