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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전쟁 - 말을 상대로 한 보이지 않는 전쟁, 말과 앎 사이의 무한한 가짜 회로를 파헤친다
이희재 지음 / 궁리 / 2017년 12월
평점 :
영어 populism 은 한국어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보통 옮기고 영한사전에 나오는 대로 '대중추수주의'나 '인기영합주의'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말로 씁니다. 한국의 보수언론에서 하도 부정적으로 쓰니까 이제는 한국의 진보언론에서도 좋지 않은 뜻으로 씁니다. 포퓰리즘은 주홍글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populism 은 People's Party 를 만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기들끼리 이르던 말이었습니다. 자기 비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p41)
애치슨이 한국을 방어선에서 뺀 것은 이승만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승만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지기 1주일 전에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부 고문 앨런 덜레스를 만난 자리에서도 북진 통일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p83)
독일은 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을까요.독일의 잇따른 평화제의를 폴란드가 거부해서였습니다. 폴란드는 1차세계대전 덕분에 독립했을 뿐 아니라 독일인이 많이 살던 땅까지 얻었습니다. 폴란드 안에는 150만 명의 독일인이 살았습니다.(p170)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깡패국가로 낙인찍인 이유는 미국에게 깡패로 낙인찍혀서입니다. 북한이 미국에게 깡패로 찍힌 이유는 미국이 깡패임을 대놓고 얘기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허물을 지적할 뿐 미국한테 북한처럼 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을 움직이는 금벌은 손쉬운 돈벌이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는 무조건 깡패로 몰아가고 그 나라가 자위력이 없을 때는 쳐들어가 그 나라를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p241)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데도 달러 가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달러가 석유거래의 결제통화로 쓰여서 그렇습니다. 석유가 없으면 경제가 마비되니 한국처럼 수출에 목숨을 거는 나라들은 달러를 비축해 놓아야 합니다.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있어야 하니까요.(p281)
미국을 움직이는 금벌은 사우디에게 미국 달러로만 기름을 팔게 만들었습니다. 사우디의 절대왕정제를 보장하는 대가로 달러를 마음껏 찍어내도 달러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오일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세계를 인위적으로 만들면서 소련과 무한군비경쟁을 벌였고 결국 소련 공산주의는 못 견디고 무너졌습니다. (p298)
내가 너의 비밀을 안다는 사실 자체를 비밀로 두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사실 정상적인 나라의 안보를 맡은 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행동수칙인지도 모릅니다. 영국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력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고 독일의 침략을 막아낸 영국 본토 항공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영국이 대독 항전에서 이긴 결정적 이유는 영국이 개전 초반부터 '에니그마'라는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는데 있었습니다. (p377)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일본이 한국, 중국, 러시아 같은 주변 나라들과 반목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미국에 매달리니까요. 그래야 동아시아에서 전쟁체제가 유지되고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고 미군기지 주둔에 대한 반감이 줄어드니까요.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기에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지만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내려가는 상황에서는 일본도 두려움이 커진다는 사실을 헤아려야 합니다.(p481)
낚었다. 이 책은 번역책이 아니다. 번역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사회책이면서, 역사 책이며, 더 나아가 경제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을 둘러싼 근현대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나타나는 수많은 역사적 질문들에 대해서 독특한 관점에서 답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역사를 공부하면서 마주했던 '왜?'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이 이 책이 기술되어 있으며,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혜안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35개의 단어가 나오고 있다. 저자는 번역은 언어지만, 앎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뜻을 명확하게 알고자 한다면 거기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이 요구된다. 책에 나오는 35개 단어들은 한국, 일본, 독일, 유럽연합,미국, 이스라엘, 금융재벌, 테러,홀로코스트로 요약되고 있으며, 학창시절 한국사, 세계사를 깊이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지식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감수하고 읽어야 한다.
미국은 어쩌면 한국에 우방이면서 적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이다.항상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의 근원에는 미국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중단 시킬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미국이 한국의 우방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밉보이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익히 잘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 뒤에 있는 금융재벌의 막강한 힘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미국 정부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으며, 그동안 세계 정치에 숨어있는 비밀들이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