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매혹 사이 -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이문정 지음 / 동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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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분리된 예술을 강조했던 추상 미술도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전문화, 분업화, 세분화가 필요해진 시대적 상황에 영향 받은 것이다. 이런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실재하는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보인다. 우리가 무시하거나 잊고 싶어하는 불편한 현실에 주목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거나 문재의 해결책을 고민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평범한 삶이 아름답지 않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미술이 독립적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든가, 미술은 미술만을 위한 또 하나의 순수한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힘을 잃게 되었다. (p64)


언제부터 한국에서 혐오라는 단어가 부각되고 잇다. 혐오스럽다, 혐오스럽지 않다. 이 두가지 기준은 대중매체를 움직이고, 생산자와 소비자,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가거나 소비자의 기호를 창출한다. 그 과정에서 야생적인 것들, 혐오스러운 것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은폐되고 있다. 미디어 속에서 혐오스러운 모습들은 모자이크 되거나 간접적인 모습으로 실체를, 진실을 가리려 한다. 동물의 사체, 피가 미디어 속에 들어가면 모자이크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잇다. 여기서 모자이크에는 사람도 포함되고 있으며, 유명 연예인이 혐오스러운 범죄를 저지르면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이런 과정은 미디어에서 예술로 옮겨가고 있으며, 미디어 안에서 괴기 스럽고 혐오감 느끼는 것들이 점점 더 사라지게 되고,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 이상적인 미를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부각되고 찬양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가 소비하고 생산하는 그런 예술이 아닌, 실험적이면서 때로는 도발적인 예술들을 보여주고 있다. 매혹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예술 작품들, 그 안에 보여지는 작품들은 어느새 내 눈에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삶의 끝자락에는 분명 죽음이 존재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감춰 버리려 하고, 불편함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람의 몸 중 하나가 사라진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회피하려는 것 그 안에 내 안의 감춰진 불안과 공포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있는 생명체와 그 생명체를 부패시키는 매개체를 같이 등장시킴으로서, 그것이 점점 더 부패하는 과정들이 예술작품으로 나온다면 느낌이 어떨까 생각해 보자면 오싹하고 소름끼칠 때가 있다. 괴물에 대해 형상화하고, 반인반수의 그림을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균형과 조화로움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해 이질적이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또다른 이유이다.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추구하고 소비하는 것들 중에는 심리적인 안정도 포함된다. 죽음, 괴물, 폭력, 피, 배설물, 섹스, 괴물에 대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심리적 안정을 저해하고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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