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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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 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p105)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고 1때 대학 앞에 현수막이 걸렸다. 서울대 입학생 땡땡땡. 그것이 우리들의 자랑이고, 가치라 생각했다. 공부을 열심히 해야 하는 명분은 거기에 있었다. 커다란 현수막에 내 이름이 걸리는 것, 그것이 학교의 자랑이고, 집안의 자랑이고, 개인의 자랑이다. 그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공부할 수 밖에 없는지,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히 서열구조에 우리는 입시 지옥 속에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고, 그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오답이라 생각한 적 없다는 건, 나 스스로 미지근한 물 위에서 계란이 삶겨지는 그 순간에도, 그것이 뜨거운 줄 모른채 방치되고 말았다. 학교가, 미디어가, 세상이,대한민국이 규정해 놓은 틀과 관습, 그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각각의 요소들은 하나의 퍼즐이 되어서 견고한 틀을 만들어 갔으며, 우리는 그 틀에 갇혀 벗어나지 못했다.


김예슬은 그런 틀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질문하고 , 자문자답했다. 왜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공부했고,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교에 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그 거부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삶 속에서 공부를 잘하는 이들은 그 기득권을 내려 놓는 걸 거부한다. 아니 거부하는 순간 화살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거다. 김예슬은 고려대학생이며, 고려대학생으로서 가지고 있는 권리들을 거부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엣거 벗어나려 한다. 인문학이 아닌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김예슬의 생각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함과 그 안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책에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 김예슬이라는 학생이 보여주는 용기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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