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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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니었어. 나 너랑 만나면서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부상 때문에 운동 관둔 것도 괜찮았어. 그만큼 운동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니 싫었지. 지긋지긋했어. 근데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했던 거야. 그거라도 잡고 살아야 했으니까 그랬던 거야. 운동 계속 못해도, 대학 못 가도 아무렇지 않았어. 이경이 네가 날 좋아하는데. 내가 널 사랑하는데, 보고 싶을 때 언제고 널 볼 수 있는데 내가 뭘 더 바라. 참 힘들게 사는구나. 누가 그렇게 말하면 속으로 비웃었지. 나 사실 힘들지 않은데. 바보들. 그러면서."(p55)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p121)


사람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p179)


독특한 소설이었다. 작가로서 ,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는 이 소설 속에는 작가 최은영 님의 이야기 안에 나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었다. 소설은 여성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무해한 사람들과 유해한 사람들의 모습을 감성적이면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지금 30~40대라면 느낄 수 있는 학창시절에 마주했던 수많은 상황들이 나 스스로 무해한 사람들을 주변에 끌어모으려 했으며, 무해한 사람이란 신뢰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은 각자 남다른 색채를 그려내고 있다. 색은 다르지만, 상처라는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를 담아낸다. 첫번째 이야기 <그 여름>에서는 학교 운동 선수였던 이수이와 친구이자 사랑하는 대상이었던 이경이 마주하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운동선수라는 이유만으로 이유없이 불쾌해야 했고, 선수라는 이유로 세상의 부당함이 속절없이 있어야 했던 수이에게 있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자 대상은 같은 또래였던 김이경이다. 수이는 운동선수였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 못하였다.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꿈은 접었지만, 그럼으로서 수이는 스스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


네번째 이야기 <모래로 지은 집>은 모바일이 아닌 PC 통신을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기 전의 그런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다. 싸이월드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냈으며, MSN,네이트온을 사용하였고, 프리첼을 썻던 지금의 30대 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그려진다. 소설에서 공무, 나비, 모래, 서로 다른 닉네임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닉네임이 자신의 익명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닉네임에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2000 년이 되기 직전 Y2K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세명의 청춘들은 그 나름대로의 불안과 걱정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추구하고 있었다. 소설 속 그림들이 나에게 익숙한 색채들로 채워져 잇었으며,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음을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속에서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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