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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 생각이 뛰어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일매일 이분들의 생각을 좇아간 사람만 쓸 수 있다. 그러니 스피치 라이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문필가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연설문 초안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채택된 적이 없다. 자신의 연설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08)
노대통령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앗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겸손한 성품 그대로 낮은 자세로 새겨듣는 타입이었다. 특히 친밀한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철저히 듣는 쪽을 택했다. 한 번은 노 대통령이 독회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회의하러 들어가면 사람들 얼굴을 죽 한 번 봅니다. 특히 눈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의 눈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귀찮다는 눈빛을 보냅니다. 그에 반해 어떤 사람의 눈은 빛이 납니다. 대통령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 무언가를 얻어가겠다는 눈빛을 봅니다. 그것이 듣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p216)
이 책은 출간되고 한동안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동안 읽어봐야지, 읽어 봐야지 하면서 1년이 훌쩍 넘겨 버렸다. 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꼽씹어 보고 또 꼽씹어 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전직 대통령이 되었고 고인이 된 두분의 발자취가 이 책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아닌 김대중 , 노무현 두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또렷하게 담겨져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나는 알고 싶었다. 두 사람의 글쓰기 방식이 아닌 두분의 정신을 말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세상을 떠난 그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이다. 두 사람의 말과 글에는 그들의 생의 전부가 나오고 있다. 연설문이란 또렷하게 두 사람의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작가 강원국님. 두 대통령을 보시면서 강 국장이라 불리었고, 강원국 비서관이라고도 불리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원국씨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친밀감을 형성하게 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연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토씨 하나 틀리면 그것이 비난이나 비판이 될 수 있는 자리이기에 대통령의 연설문은 완전해야 하였고, 의미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쏠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 강원국 님의 8년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연설문 초안을 써내려가면서 느꼈을 긴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다보니 수첩 공주가 생각났다. 남이 쓴 것을 그대로 받아서 썻던 그 사람.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국민을 생각하지 않은 대통령, 책임지지 않은 대통령이 되었던 건 ,그가 남겨놓은 연설문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고, 우리가 마주한 그 모습은 자명한 결과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국민에게 더 잘 보일 수 있는지 고민했던 수첩 공주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져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였고 항상 도망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