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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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고시원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살아간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동선을 짜고 소리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다. 그래도 가끔 주방에서나, 화장실에서나, 길고 좁은 복도에서나 , 바람을 쐬러 올라간 옥상에서 누군가와 예기치 않게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서로 유령이라도 본 듯 '헉' 하고 놀라고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렇다. 고문고시원의 잔류민들은 모두 유령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한 평짜리삶을 이어가는 존재. 나도 고문 고시원에서 유령이 되었다. (p24)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자본주의적인 모습이 압축된 공간이 고시원이 아닌가 싶다. 고시원은 독서실과 같은 구조처럼 보이지만 뭔가 다르다. 한 건물에 목적과 용도에 맞게 나뉘어진 닭장 같은 구조의 방들이 나열되고 있으며, 그들은 그 공간에서 삶과 죽음을 만나고, 한편으로는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간다.고시원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 곳을 나오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곳을 채워 나가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공간을 선택하고 채워 나가지 않으면 고시원의 존재 이유는 사라지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해외엔 보이지 않는 기이한 형태의 고시원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그들은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들은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이웃이면서 이웃이 아닌 듯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을 소설가의 눈으로 소설의 형태로 기록해 나간다. 각자의 목적에 따라서 살아가는 고시원과 그 안에서 돌고 있는 괴담을 연결시키고 있다.


4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다.그 고시원은 고문 고시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문 고시원이 아니라 공문 고시원이다. 이름이 적혀 있는 간판에서 밑바침이 떨어져 나가면서 공문 고시원은 고문 고시원이 되었다. 불행을 먹고 성장하는 4층짜리 건물은 두 번의 이유없는 화재로 성인 나이트 클럽에서 고시원의 형태로 바뀌게 되엇고 주인도 바뀌게 된다. 이곳이 불행의 공간이며, 예기치 못한 스산함이 나타는 곳이지만, 그들은 이곳이외에 선택할 곳이 없었다. 20개의 방으로 이뤄진 커다란 하나의 층 속에 8명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서로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익명속에 숨어 살순 없었다. 고시원 안에 이상한 사건 사고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 가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는 그 불행의 전초전이었으며, 310호에 살아가는 그 누군가가 이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면서 그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서, 주인공은 스스로 탐정을 자쳐하게 되었다.


고시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고시원에서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그들은 고시원이라는 공간안에서 그 불행의 씨엇을 털어내야만 한다. 8명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권씨 성을 가진 이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구천에 떠돌아 다니면서 고시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 중에서 두가지 속성, 파괴적인 속성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의심하게 되었으며, 행동하게 만들어 버렸다.


303호, 304호, 310호,311호, 313호, 316호, 317호,319호, 그들에겐 이름보다는 번호가 익숙하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 속 비겁함이 숫자 속에 숨어들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그들의 정체성이 사라진 채 숫자로 기록된 그들에게 숫자 밖으로 튀어 나오게 만들었다. 숫자 뒤에서 숨어 있기엔 자신의 생존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전이 사라진 상태에서 숫자 뒤에 숨어 있는 건 또다른 비겁한 모습인 것이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 나가기 시작하였다. 성별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 모르던 이들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자신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이 무관하다는 걸 보여줘야만 한다. 하나 둘 죽음과 무관한 사람들은 빠져 나가게 되고, 그 죽음의 범인이 압축된 가운데, 실체 없는 죽음에 대한 범인이 누군지 찾아가는 재미가 이 소설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범인이 잡힌다 하여도 사건에 대한 진실을 온전하게 찾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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