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잡지 -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진경환 지음 / 소소의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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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온 사람을 신귀新鬼라 하여, 여러가지로 욕보인다. 방 가운데서 서까래만 한 긴 나무를 신귀에게 들게 하는데, 이것을 경홀 警忽이라 한다. 들지 못하면 신귀는 선생 앞에 무릎을 내놓으며 선생이 주먹으로 그를 때리고,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으로 내려간다. 또 신귀에게 물고기 잡는 놀이를 시키는데, 신귀는 연못에 들어가 사모紗帽로 물을 퍼내서 의복이 모두 더러워진자. 또 거미잡는 놀이를 하게도 하는데, 신귀에게 손으로 부엌 벽을 문지르게 하여 두 손이 옻칠을 하듯 검어지면 또 손을 씻게 하는데, 그 물이 아주 더러워져도 마시게 하니 토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p91)


이 책은 조선시대 양만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유득공이 남긴 책 '경도잡지'를 통해 조선시대 양반들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유희는 어떤 걸 추구하였는지 알 수 있다. 조선시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양반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왕이 아닌 그들의 일상적인 삶들, 그들은 양반으로 어떤 삶을 누리고, 양반과 노비의 비교되는 삶도 함께 얻을 수 있다. 3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고, 시대는 달라졌지만 양반들의 삶은 지금 우리의 삶으로  과학 기술에 따라서, 문화 생활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무관과 문신의 삶의 방식, 문신은 나귀를 탈 수 있지만, 무관은 나귀를 탈 수 없었다. 그들의 신분적인 차이나 차별을 엿본다면 , 조선 중기는 문신의 나라였음을 재확인 할 수 있다. 양반들이 나귀를 타는 이유는 그들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나귀는 안전하고, 체통을 지킬 수 있으며, 말을 타는 무신과 자신의 신분을 차별화 하고 분리시키고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의 삶이 때로는 이질적이면서, 때로는 무능력한 존재가 자꾸만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의 차이일 뿐 함께 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방식 때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서울시 종로에는 피맛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귀천의 차이가 엄연히 좀재하였다. 그건 피맛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양반 신분이라고,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면 굽신거려야 했다. 조선의 법도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 당연한 그때의 순리였다. 지금처럼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삶과 너무나 다른 조선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와 지금의 공통점은 출세이다. 우리는 누군가 서울대에 입학하거나, 어떤 유명한 해외 대학교에 입학할 때 그것을 현수막을 이용해 내걸었다. 물론 그것은 대학교 뿐 아니라 사법시험, 회계사 , 행정고시, 외무고시와 같은 시험을 합격해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다. 양반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숙원은 과거 급제이다. 과거 급제를 하면 그 집안의 경사였으며, 한 고을에 축제가 있었다. 그들이 과 공부를 하면서 커닝을 하고, 꼼수를 부렸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이어저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시대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며, 때로는 소소한 사치를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때로는 그 시대에 맞는 양반들의 문화 생활이 있으며, 왕에게 진상품을 올리기 위한 양반들의 행동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관혼상제 뿐 아니라 그들의 세세한 생활양식을 함께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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