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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
곽재구 지음, 최수연 사진 / 해냄 / 2018년 7월
평점 :
내가 지나온 여행길이 누군가의 여행과 교차하게 되면, 그곳에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바닷가라는 공간적인 특색은 육지에서 억눌려 있었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짙은 그림자를 씻어 내리고, 확트린 바닷가가 가져다 주는 청량감과 신비로움과 마주하게 된다.10여년전 다녀온 삼천포는 내에게 하나의 추억이다. 그 곳은 특별한 곳이었고, 두 발로 삼천포를 밤길 따라 삼천포가 주은 자연 길을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지인이 삼천포가 고향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다녀온 곳,사천대교에서 마주한 야경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모뎀이라는 커피가게의 창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이 저물고 하루 동안 이야기의 텃밭을 돌이켜보는 시간은 여행자의 가슴을 부풀게 합니다. 삼천포를 찾아가야지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길을 잃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길을 잃었지?'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p218)
나에게 묵호항은 익숙한 곳이다. 가장 가깝고 차로 넉넉하게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바닷가. 묵호항은 깊은 동해안을 자신의 텃밭으로 삼고 있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고 문어가 많이 잡혔던 묵호항은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었다. 어민들은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때로는 삶의 터전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이제 옛말이 되었고, 적적함만 남아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지만 과거의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활기는 사라지고 없어졌다. 인간의 욕망은 묵호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쌀과 밥을 빼앗아 버렸으며, 그들은 하나 둘 터전을 떠나고 외지로 나가게 된다. 변화를 거부한 사람들만이 여전히 묵호항에 존재하고 있다. 부모님을 따라 회를 먹으러 갔던 묵호항이 아련하게 생각 났다.
예전의 묵호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판잣집이 지어졌고, 아랫도리를 드러낸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물고 뛰어 다녔다. 그리고 붉은 언덕은 오징어 손수레가 흘린 바닷물로 언제나 질퍽였다. 그때가 참다운 묵호였다. (p162)
잔인한 바다, 위험한 바다. 그렇게 그곳은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삼켜 버렸다. 진실을 감추고 있는 그 바닷가에는 빨간 등대가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기억하기 위해서, 추모하기 위해서 스쳐지나가게 된다. 진도의 팽목항이 주목받게 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잘못 때문이었고, 선장은 도망쳤다. 선장이 떠나간 그 자리에는 짝퉁선장이 남아있었으며, 그들은 안타깝게 자신의 생의 끝자락을 바다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팽목마을은 수백년 묵은 팽나무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그림엽서 속 풍경같은 마을이다. 신선이 살 것 같은 고요한 이 마을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마을 곁 도선장이 온통 노란 깃발에 쌓여 펄럭인다. 2014년 4월 16일,동거차도의 해상 국립공원 앞바다에 세월호가 침몰한다. 476명의 승객이 탑승했고 그중 295명이 사망, 9명이 실종된 상태다. (p181)
바닷가 작은 마을은 적적하다. 하지만 그 적적함이 어느 순간 무섬증으로 바뀔 때가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그 무섬증에 맞서기보다는 순응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육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육지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은 바닷가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마저 파괴하고 해치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김, 그로 인해 바닷가의 원형은 점점 더 잊혀지게 되고, 문학 속에 기록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