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사람은 모두 누군가에게 복수하길 원해요.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없다면 신에게 복수하려고 하죠. 하지만 아프리카 마토보의 쿠 족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명을 구하는 것 밖에 없다고 믿어요. 누군가가 살해되면 그들은 일 년 동안 애도한 다음에'물에 빠진 자에 대한 재판'이라는 마지막 의식을 치러요. 강가에서 밤새 잔치를 벌이지요. 새벽녘에 살인재워요. 그리고 그를 강으로 끌고 가서 물에 빠뜨려요. 그는 묶여 있어서 헤엄칠 수 없어요. 이때 유가족은 선택을 해야 해요. 그가 빠져 죽게 놔두던지. 아니며 강으로 헤엄쳐 들어가 그를 구해주든지. 만일 살인자가 익사하게 둔다면 정의는 실현되겠지만 유가족은 여생을 슬픔으로 보낼거라고 쿠 족은 믿어요. 하지만 살인자의 생명을 구해준다면, 삶이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면 바로 그 행위가 그들의 슬픔을 거둬가요. (p338)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고통이 내 곁에 찾아온다는 걸 말한다. 사랑과 고통도 내 앞에 누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곁에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정적인 생각 속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 화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놓여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하려 든다. 특히 예고되어 있지 않은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나에게 일어날 경우 , 내 주변에 일어난 경우, 우리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고, 때로는 움추러든다.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 앞에 놓여진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종교에 의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나약한 본성은,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의미와 충돌할 때가 반드시 찾아올 수 있다.어른들이 내 앞에 놓여진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도망치거나 단절하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명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슬픔, 불안, 걱정,근심, 절망, 고통이라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왜 그런 고통을 겪는지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명상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잇다. 안전함과 신뢰,믿음, 평화를 얻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명상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삶을 해결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면서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 욕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실시간으로 내 앞에 놓여지는 정보들은 나에게 유용한 가치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개념을 덧 쒸우고, 나 스스로를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용서보다 복수가 우리의 정서와 가까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문제의 행동을 할 때 그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맞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명예롭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영아의 죽음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와 잔인한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진다면 , 그것에 대해서 가해자에게 응징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하지만 그 가해자의 가족들의 슬픔을 우리는 헤아리지 않는다. 아프리카 마토보의 쿠 족은 우리에게 한가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라는 가치가 때로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무의미할 수 있고, 사람들의 마음 언저리에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 슬픔과 절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용서를 실현할 수 있었다. 복수보다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용서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칭 그들보다 문명화된 삶을 살아간다고 언급하는 우리들은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