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나지윤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알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변화를 깨달을 때도 있습니다. 훗날이 돼서야 "그랬구나" 하고 깨닫게 되지요. 당신은 그런 경험이 있나요? 자신이 변했음을 느끼고 '앎'을 깨닫는다는 일. 우리 인생은 종종 '앎'보다 '삶'이 앞석돈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쉽사리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알기보다 매순간 매순간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까닭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신뢰합니다.

예전에는 혼자가 돼서 슬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슬픈 것은 혼자가 돼서가 아니라 떠난 아내가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기 때문이라고요. 아무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저 돌연 때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말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p105)


삶과 앎, 이 두가지는 우리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이 우리 삶은 거로 다른 가치와 의미가 상반되어서 내 앞에 놓여지게 된다. 돌이켜 보자면 우리는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누군가의 죽음, 그 죽음이 자신이 삶을 온전히 누리고 사아간다 하더라도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내 주변에 많은 슬픔이 스처지나감에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삶이 나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돌아보자면 그런 거다. 슬픔이란 우리앞에 놓여지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싶다. 불편하고 벗어나려고 하면 할 수록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돌아보자면 겸손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슬픔이 우리 앞에 놓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해진다. 슬픔이 내 앞에 도래한다 하더라도 우리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위로를 얻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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