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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ㅣ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역사 교과서만 본다면 우리의 역사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교과서가 가지는 특징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국가 정체성과 연결되며, 그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역사는 잘 다루지 않거나 짤막한 한부분만 언급할 뿐이다. 같은 시대에 살았으면서 우리가 윤동주를 바라보는 시선과 문익환 목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17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였던 윤동주는 광복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채 1945년 세상을 떠났고,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상징이자 표상이 되어 버렸다. 철저히 국가의 논리와 이해관계에 따라서 윤동주 시인을 신격화 해 버렸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문익환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1989년 방북 이후 문익환 목사가 사망하고 난 뒤 배우 문성근에 대한 국민의 시선들, 국가는 그들에게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면서, 현대사에서 문익환 목사의 업적을 축소해 버렸다. 역사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같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그 의미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문익환 목사의 삶은 바로 우리의 근현대사와 일치하고 있다. 1918년에 태어나 만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삶의 궤적 속에서 20대~30대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대한민국 조국과 마주하게 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3.1 운동을 맞이 하였으며, 조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맞물려 일본인들의 조선인들에 가하는 고통을 그대로 느껴야 했다. 혼란스러운 한반도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는 북간도 만주 용정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이동하게 되었다. 친일과 친러, 친청파가 공존하는 한반도 땅에 머물러 잇을 순 없었다. 문익환 목사의 삶과 정체성, 신념은 바로 그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에게서 시작되었으며, 문재린 목사의 남다른 교육관이 눈에 들어왔다. 윤동주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어린 문익환은 학업을 멈추고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했던 윤동주의 죽음과 송몽규의 죽음으로 문익환의 삶은 바뀌게 된다.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해 왔던 그들의 삶은 그렇게 분단된 아픈 조국의 현실과 닮아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윤동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국의 현실 속에서 문익환 목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다. 남한에 단독정부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조국의 현실은 공산당과 대치하는 불안정한 삶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렸다. 문익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만주 땅에서 벗어나 서울의 삶의 터전을 옮겨가게 된다. 책에는 바로 이런 과정들이 드러나 있으며, 문씨 일가라고 통용해서 부르는 그 밑에는 문익환 목사를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 계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약한 몸으로 태어났던 묺익환은 춥고 열악한 만주 용정에서 살아남았으며, 책에는 그의 고조부-증조부-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섬김의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1989년 방북을 선택한 문익환의 삶은 그 당시 생의 새로운 전환점이었으며, 대한민국 기독교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여기서 문익환 목사가 보여준 삶은 바로 그의 네 남매에게 이어지게 되었으며, 배우 문성근은 네 남매중 막내였다. 형들과 누나들이 아버지의 삶과 교육관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근저에서 채워 나갔다면, 배우 문성근은 바로 형들과 누나들이 채워 나갔던 삶의 방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게 된다. 어쩌면노무현 지지자이면서 , 문재인을 지지하는 문성근의 삶의 바닥에는 문재린 목사-문익환 녹사-배우 문성근으로 이어지는 바로 우리 근현대사의 한 흐름이 아닌가 싶다.또한 배우 문성근은 목사가 아닌 배우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었다. 원칙에 따라 살아가지만, 그 원칙이 세사의 흐름과 동떨어질 때 느끼는 이질감에 대해서 문성근 스스로 자신의 삶의 굴레를 단절시키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되물림 되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아니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