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8899 땅콩집 이야기
강성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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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 따라 열심히 공부했고요.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어 효도하고 싶었습니다. 진실하고, 착하게,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수라는 목표를 이룬 후에는 제자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기 위해, 위대한 학자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했습니다. 낭비하거나 사치하지 않았고요. 호의호식하지도, 오락이나 잡기에 몰두한 적도 없습니다. 그 흔한 골프장 한번 가본 일 없고요. 생일잔치 한 번 열지 않았습니다. 주식투자나 부동산투기해본 적 없고, 뇌물 한 번 받아먹은 적 없습니다. 제가 군대를 안 갔습니까? 세금이나 공과금을 떼먹었습니까? 다운계약서를 작성했습니까? 나주 땅을 제 앞으로 해 달라 조른 적 없고 여태껏 팔리지도 않고 있으니, 부동산 투기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왜 제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p359) 


이 소설은 <땅콩집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베이비부머로 태어난 소설 속 주인공은 원망하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심영진 선생님,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했던가, 이태민이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스승 심영진의 공이 크다.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태민은 자신 앞에 놓여진 인생이 점점 더 꼬이게 된다. 아버지 이신만씨 장남으로 태어나 평민당 소속 정치인으로서 살아온 아버지의 삶, 그 삶 속에는 1990년대에 살았던 이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정인 정서가 남아있었고, 원칙보다 요행이 통했던 그 시대상을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1999년 신창원이 잡히던 그 시대까지 그려내고 있으며,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20대 초반 아이들이 느낄 수 없는 정서가 고스란히 소설 속에 드러나 있으며,그 땐 그랬었지 하면서, 그 때를 상기시킬 수 있었다. 


베스트 셀러였고, 대학교수로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태민은 그러나 자신 앞에 남겨진 것은 빚 뿐이었다. 고금리가 통했던 그 시대에, 군부 독재 정권과 민주 정권이 교차되고 있었으며, 3김과 현대그룹 총수였던 정주영은 정치를 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었다. 스스로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서 통일국민당을 만들어서 이주일 , 최불암과 같은 연예인들을 포섭했던 정주영의 삶의 스펙트럼이 잠시 등장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다. 또한 영호남 지역 갈등이 심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서 1990년 YS 주도의 지역갈등이 재점화 되었던 시기가 1992년 대통령 선거였다.그때 당시  YS와 DJ의 대통령 경쟁은 YS의 승리가 되었으며, YS는 금융 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실시로 최고의 지지율을 얻었지만, 그 당시 있었던 여러 사건으로 인해 YS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서해 페리호, 성수대교 붕괴,삼풍백화점 붕괴와 IMF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된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흔적들이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내 기억속의 주요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게 된다. 특히 삼풍백화점에서 살아남았던 세사람 최명석, 유지환, 박승현이 소설 속에 소개되고 있었다.


그러했다. 그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소설에 잘 나타나고 있다. 전남 서해안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이태민의 삶은 남들과 별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 노력했고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교수가 되었다.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열심히 하면 희망이 보이고,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거다. 하지만 현실 속의 구조적인 모순이 많은 걸 바꿔 놓았다. 지존파 사건과 초원 복집 사건이 소설 속에 그려지고 있으며,속칭 빨갱이 대통령이라 불리었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이제 신출내기 국회의원이 되었던 노무현의 정치인생이 잠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장남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왜 우리는 장남이 가지는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던 걸까. 우리 사회에 자살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태민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스승 그리고 자신의 삶은 무엇인지, 소설을 통해 잠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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