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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ㅣ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3
예브게니 그리시코베츠 지음, 이보석.서유경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8년 4월
평점 :
열차의 경적이 울렸다. 흥미롭게도 역사의 중요한 장면에는 경적 말고도 여러 가지 소리가 교차되다. 그런데 유독 열차의 경적 만은 사람들이 알아듣고 그 의미를 이해한다. 연인들이 작별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창가에 서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썻고, 어떤 이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서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연인들이 서로 멀어졌다. 마지막 칸 쪽에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작은 관악 합주단은 폐에 공기를 더 물어넣은 듯 평소보다 우렁찬 소리로 가장 경쾌하게 (그래서 더더욱 우울하게 들리는) 행진곡을 연주했다. (p149)
러시아 문학은 어렵고 낯설다. 특히 소설에서 수많응 인물들이 엉키면 소설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채 끝날 때가 있다. 이 소설의 작가 예브게니 그리시코베츠라는 이름에서 알다시피 러시아인의 이름 자체에 대한 낯설음이 우리에겐 현존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다섯 글자를 넘지 않으며, 이름도 길지 않아 소설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으며, 러시아 문학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사샤와 막스는 10년 넘은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기혼이지만, 서로 거리감 없이 친하게 지내며, 막스가 개발한 헤밍웨이 게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게임의 영감이나 이념은 사샤를 통해 만들어진 게임이다. 헤밍웨이를 따라한다는 모티브를 차용한 헤밍웨이 게임은 하얀 셔츠를 입고 여성과 만남을 가진다는 그런 남자들만의 독특한 게임이다. 여기서 막스는 3주동안 턱수염을 기르는데, 그것이 이 소설의 전체 스토리가 되었다. 알료샤의 여지친구 카테리나(카챠)와의 만남 이후 사샤는 그녀만 바라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데, 4번의 만남 과정에서 남자들만의 독특한 허세와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소설 곳곳에는 러시아 특유의 사회상이 보여지고 잇다.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러시아인들이 관심가지게 되는 테러 문제들, 그들의 삶 속에서 테러는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건축가인 사샤와 막스와 만남에선 그런 것들이 감춰져 있으며, 러시아 특유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또한 사샤가 이혼후 모스크바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데, 때로는 미행당하고, 그녀에게 잘보이기 위한 모습들, 사샤와 막스가 알고 있는 사샤의 전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막스의 감춰진 결혼 스토리가 잠시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은 어쩌면 유치하고, 때로는 허세 가득한 남자들의 모습, 어른이지만 어린이 같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남자들이나 러시아 남자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미소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