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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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도 여러 종류이자.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저절로 치유되지만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끝내 그대로 남아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상처도 있다. 페이스북이 무신경하게 들이민 가오리의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상처가 다시 심상치 않은 통증을 불러일으켰다. 가오리는 내게 추억의 방 속에 가둬둘 수만은 없는 존재였다. (p78) 


가오리에게 보낸 친구 신청이 승인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쥔 손에 땀이 배어났다. 카페 주인이 턴테이블에 바늘을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지포의 금속음이 들렸고, 카운터 구석에 앉아 있던 슈트 차림의 호리호리한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p222)


아날로그적 정서가 묻어나는 한편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와 그 느낌이 소설 곳곳에 배여나고 있으며, 20대 청춘이 40대 중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인연과 사랑이 교차되는 , 그 안에 한 여자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남자의 외롭고 슬픈 자화상이 그려지고 있다. 


가오리. 예쁘진 않지만 한 남자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전문직업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광고를 배워서 에클레이 공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가오리와의 만남이 주인공의 삶은 바뀌게 된다. 20세기 끝자락에서 사랑을 한다는 건, 두 사람에겐 사랑이 전부였다. 싸구려 러브 호텔에서 서로의 그리움을 탐닉하면서 욕망을 채워나가는 그런 사이, 서로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가운데, 남자는 가오리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소설 곳곳에 남자의 허세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의 처음이었고, 끝이었다. 가오리는 연인으로서 자신에게 상처이자 때로는 중독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런 존재였다.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실현되느냐 안 되느냐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던 그 가운데, 남자는 가오리와의 사랑이 더 중요하였으며, 세상의 종말이 점점 더 가까워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현실은 바뀌지 않는 가운데, 세상은 여전히 돈이 먼저였고, 돈은 꿈을 실현하는 도구였다. 그건 주인공도 마찬가지였고, 그의 20년 절친 세키구치도, 스트립쇼에서 일하는 나오미 누나도, 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순간 그 꿈을 포기하였고,잠시 자신이 가지고 있언 것을 내려 놓게 된다. 때로는 비참한 운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주인공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의 자화상은 쓸쓸하지만 않았다. 사랑이라는 실체가 여전히 숨쉬고 있었고, 가진 것 없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보듬어 줄 수 있었기에 그들은 주어진 삶에 대해서 견딜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건 그 순간 뿐이었고, 가오리와 헤어지는 순감 많은 것들이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아날로그 정서에서 디지털 정서로 넘어오면서 준비되지 않은 그 순간에 서로의 운명은 다시 교차되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가오리를 그리워 하고 있으며, 가오리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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