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의사는 고독한 예술가다
김응수 지음, 최대식 그림 / 행복우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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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그해따라 추웠고, 눈이 많이 왔고, 독감마저 돌았다. 허파가 나쁜 사람들에게 폐렴이 생겼고, 덩달아 늑막에 물이 찼다. 바야흐로 흉부외과의 계절이어서 나는 하루 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간혹 화가의 금빛 채색이 생각났고, 내가 찜했던 작품을 다른 사람이 가져갔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다. 어느날 부고를 듣고 깜짝 놀랐다. 돌아가신 분은 화가가 아니라 나에게 남편이 죽으면 그림값이 오를 것이라고 그림을 구입하라고 권유했던 부인이다. 부인은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 기침해 병원을 찾았다가 늑막에 퍼진 말기 폐암을 진단받고 석 달 정도 살다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p202)


삶과 죽음의 테두리에 놓여진 우리는 다양한 삶과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아 바라보는 죽음은 내 가까운 이웃과 가족에 한정된다. 의사의 삶은 어떨까, 돈이 안되고, 의사로서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는 외과의사, 그중에서 우리 몸의 장기와 함께 하는 흉부외과에서 일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내가 생각했던 의사의 삶의 범주에 벗어나 있었고,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저자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의사로서 자신의 이야기와 환자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소개하고 있다. 죽을 뻔 했던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흉부외과가 되었던 또다른 이유였다. 저자는 다양한 환자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고통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들여다 보고있다. 의사의 삶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로봇 기술이 있고, 인공지능이 발달한 미래에 의사는 점차 사라질거라 말하지만, 저자는 결코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만 환자를 살려줄 수 있고, 때로는 그들의 죽음과 함께 할 수도 있게 된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의연하게 생각하지만, 내 앞에 놓여진 질병에 대해 인간이 보여주는 자화상은 무기력하다. 그건 인간으로서 의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간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술과 가까이 하고, 폐와 장기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담배를 가까이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하고, 환자와함께 하면서 다양한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렇게 우리의 삶 자체가 요지경 속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의사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짧은 이유는 바로 그들이 안고 있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외과 의사가 적다 하더라도, 돈이 안 되는 흉부외과 임에도 그들이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매순간 전쟁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전국 각지의 응급의료센터에서 모여드는 외과의사 병동, 중환자 실에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자신의 생명을 의사에게 내맡기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살릴 수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고,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게 된다. 환자들이 수술을 망설이는 이유, 자신이 죽을 운명에 처해지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살아가며서,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자의 삶에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이다.그래서 저자는 흉부외과 의사를 고독한 예술가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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