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시간 - 소설가 김별아, 시간의 길을 거슬러 걷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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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벌어졌던 친할머니의 환갑잔치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큰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온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커다란 잔칫상에 높다랗게 쌓였던 유밀과와 형형색색의 과자는 얼마나 탐스럽고 유혹적이었던지! 자손들이 차례로 절을 하고 출장 사진사 앞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덕담하고 축하했다. 그 세대야말로 가난과 식민과 전쟁의 불행을 뚫고 살아남은 것 자체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때로부터 고작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p27)


나에게 익숙한 것일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친숙하다. 소설가 김별아의 문장 속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1990년대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이었고,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였다. 그 때 당시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환갑잔치를 같이 지냈다. 또한 일가 친척들이 다 모여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여전히 나의 기억 속 잔상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환갑잔치는 어떤지 떠올려 보면 무언가 아쉬움만 남아있다. 과거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때의 환갑잔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친척은 바쁘다는 이유로 모이지 않는다. 또한 슬프게도 내 기억 속 30년전 함께 했단 사람들 중에서 이제 내 곁에 있는 분들도 존재하지 않으며,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소설가 김별아씨는 서울 곳곳의 과거의 우리의 모습을 되집어가고 있었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으로 채색되고 이젠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흐릿하기만 하다. 20년전 서초구에 있었던 슬픈 그림자 삼품 백화점에 대한 기억조차 이제 우리들은 알지 못한다. 하물며, 500년전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남겨놓은 유산들, 역사들이 응축되어 있는 서울 곳곳의 역사적인 흔적들은 죽어있는 유물이 되었으며, 그 흔적들은 박물관 컴컴한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지금은 그곳에 역사가 있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표석만 남아있을 뿐이다. 저자는 그 표석들 하나 하나 찾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 힘의 논리에 따라 권력을 쥐고 있는 왕들의 역사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허구와 진실. 우리는 역사를 마주할 때 이 두가지 갈림길에 반드시 놓여지게 되고, 심판을 받게 되었다. 특히 나에게 익숙한 역사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들이 책에 기록되고 있으며, 단종과 수양대군의 역사가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단종복위 운동을 벌였던 금성대군,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한적한 곳에 유배되었던 단종은 그렇게 역사의 안타까운 한페이지로 기록되어 있다. 단종의 역사에 대해 관심 가졌던 이유는 단종복위 실패로 인해 순흥부가 사라졌으며, 숙종 9년이 되어서 비로서 순흥부가 복원되어서이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관점도 달라지게 된다. 특히 명성왕후에 대한 역사적 한계는 분명 존재하게 된다. 권력의 중심에서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시선과 권력의 밖에서 바라보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는 명성활수 시해에 대해 잔인하고,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하지만, 그 시대를 반추하면 명성황후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는 그것 드러내지 않는다. 그걸 드러내는 순간 모든 역사들을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황현이 남긴 매천야록과 남양주의 홍릉 터 표석을 찾아가보는 게 어떨까 싶다.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기행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아쉬울 다름이다. 시간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처음 우리가 봤던 그 순간의 느낌이나 감정들을 지워버리고 삭제하고 왜곡한다. 그건 우리의 역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고 하였던가. 우리의 과거의 역사 중 가장 온전하게 기록된 역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기록들 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 , 더더욱 아쉬울 뿐이며, 때로는 처음 있었던 것이 보존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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