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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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이 지났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고 시간은 멈춰 버린 듯 흘러왔으며, 세월호 유가족은 그렇게 속절없이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냉대와 아픔을 견디면서, 오로지 잊지 말아달라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견디고 또 견뎠다. 이 책은 우연히 알게 된 책이며, 저자는 2014년 한국일보에 올린 글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갔다. 2014년에 쓰여진 글이라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며, 자꾸만 자꾸만 그 때가 생각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으나 슬픈 발자국 소리는 들린다. 그것은 아이의 짧은 생명이 남긴 작은 파장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는 울림이다. 연못의 오리들은 이 파장이 자기들을 스쳐갈 때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그 정지의 시간은 아이가 거기 있다면 오리들을 바라볼 시간이다. (p97)


무슨 말이 이 무서운 망각에서 우리를 지켜줄까.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단원고의 한 학부모가 이런 말을 써서 팽목항에 내걸었다. 이 짧은 말의 밑바닥에 깔려 있을 절망감의 무한함까지 시간의 홍진 속에 가려지고 말 것이 두렵다. (p102)


질문에 답이 없다. 함께 울자고 말할 수도 없고 편히 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가슴에 묻자니 하늘이 공허하다. 이 언어의 무능함과 마음의 무능함이 대낮에 두 눈을 뜨고 그 수많은 생명들을 잃어버린 한 나라의 무능함과 같다.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이렇게 쓰는 만사(輓詞)가 참으로 무능하다. (p112)


물 건너지 말라는 아이들의 협박은 물을 건너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한탄일 수 있으며, 한탄하는 사람들의 실패담은 또 하나의 삶이 가능하다는 강력한 증거일 수 있다. (p121)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들은 인천에서 배 떠나던 그 시간을 "영원의 시간"에서 지우고 싶어 잠을 자도 잠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몸서리치는 기억을 누가 지울 수 있겠는가. 예술의 희생보다 세상의 희생이 먼저 있다. (p131)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이후 이 나라 사람들은 나라의 하늘이 무너진 것을 염려해야 했다. 몇 백 명의 사람들과 거의 같은 수의 죽음을 태우고 배가 떠날 때, 나라는 이미 예정된 것과도 같은 그 참사를 짐작도 못했거나 방조했고, 물에 빠진 사람들이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벌일 때 나라는 손을 놓고 헛손질을 했다. (p150)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앞에 놓여진 건 잊혀져야 하는 사람과 잊혀지지 않은 사람이다. 세월호 사건은 그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와 삶에 대한 의미를 흔들어 놓았다. 그건 나라가 분열되지 않았음에도 분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가 이기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건, 바로 내 앞에 놓여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어떤 한 시점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가 바로 그런 경우이며, 갈등과 분열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한나라의 지도자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고, 지도자라면 나를 책임져 줄 거라는 기본적인 인식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애국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무얼 위해 애국을 하는 것이며, 애국을 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무엇일까 사유하게 되었다. 사유한다는 건 우리에게 유익할 수 있지만 , 그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분명 나라가 위태로워질 때 나라를 버릴 수 있다는 생각과 가치관이 국민들 마음 속에 심어 놓고 말았다.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 폭식투쟁을 해왔던 극우보수 단체와 그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방관했던 지도자와 그 주변 인물들,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은 불편한 존재였고, 지워지고 싶어했던 건이 아닐런지, 세월호 유가족은 분명 알고 있었다., 세월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할 거라는 걸, 하지만 그들은 그걸 감내하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세월호 사건 이전에 자신에 해 왔던 차가운 냉대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고, 또 느끼게 된다. 자식을 내려놓고 눈물을 삼키고, 스스로 삭발을 하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걸 내려놓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보여주었다. 한 아이의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한아이의 엄마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들은 걸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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