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패리시 부인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고 싶었던 여자/리브 콘스탄틴 『마지막 패리시 부인』/박지선 옮김 


질투로 시작된 치밀하고 위험한 우정

누구나 한 번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좋은 집과 안정된 생활, 행복해 보이는 가족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모두 가진 듯한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패리시 부인』의 주인공 앰버 패터슨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대신, 이미 그 삶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해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야기는 한 여성의 질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질투는 곧 욕망이 되고, 욕망은 치밀한 계획으로 변한다. 앰버는 우연을 가장해 대프니 패리시에게 접근하고, 오랜 시간 준비한 말과 행동으로 그녀의 신뢰를 얻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된 우정이었다.


달콤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표지

책의 보라색 표지에는 디저트 잔에 담긴 두 개의 체리가 놓여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 체리는 화려하고 달콤해 보이지만, 잔을 휘감고 있는 은색 스푼은 두 체리를 묶거나 가두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개의 체리는 앰버와 대프니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 다른 색을 지닌 두 여성이 한 남자와 하나의 자리를 사이에 두고 얽혀드는 모습이 표지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안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숨어 있다. 이 표지는 화려한 상류층의 삶과 그 이면에 감춰진 질투, 욕망, 거짓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자매가 함께 쓰는 이름, 리브 콘스탄틴

리브 콘스탄틴은 한 명의 작가가 아니다.

린 콘스탄틴과 발레리 콘스탄틴 자매가 함께 사용하는 필명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영상 통화와 이메일로 의견을 나누며 작품을 완성했다.

자매가 하나의 필명으로 소설을 쓴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두 여성의 시점이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두 작가가 각 인물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어 만들었을 것 같은 상상도 해보게 된다.

작가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와 권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동시에 화려한 외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민낯을 치밀한 심리 묘사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긴장감 있는 전개와 대중성을 인정받아 여러 나라에 판권이 계약될 만큼 주목받았다. 한 번 펼치면 결말이 궁금해 계속 읽게 되는 이유를 책을 읽는 동안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 부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앰버」에서는 앰버가 대프니에게 접근해 계획적으로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독자는 앰버의 시선을 통해 대프니와 패리시 가족의 화려한 생활을 바라보게 된다.

2부 「대프니」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대프니에게로 옮겨간다. 1부에서 앰버의 시선으로 보았던 사건을 대프니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을 재검토하게 된다.

3부에서는 두 사람의 욕망과 선택, 감춰두었던 계획이 한곳에서 충돌하며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1부와 2부는 같은 사람과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모습과 하나의 사건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앞부분만 읽고 인물의 선악이나 상황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확신을 갖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나타나 그 판단을 흔든다.



완벽한 삶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대프니

대프니 패리시는 앰버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여성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우아한 태도,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 지위, 멋진 남편과 풍요로운 가정까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삶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앰버에게 대프니는 친구가 되기 전에 질투의 대상이었다. 대프니가 가진 집과 옷, 인간관계, 남편과 일상은 앰버가 갖고 싶었던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앰버는 대프니와 비슷한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대프니가 가진 것을 하나씩 빼앗고, 마침내 그녀의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과 그 사람의 삶을 빼앗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앰버의 질투가 무서운 이유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프니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하고, 무엇에 마음을 여는지 알아낸다. 대프니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그녀가 자신을 믿도록 말과 행동을 조절한다.

앰버에게 대프니는 진심을 나누고 싶은 친구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에 가까웠다.


우연으로 가장한 계획적인 우정

앰버와 대프니의 만남은 겉으로 보면 우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앰버에게 우연은 없었다.

그녀는 대프니가 마음을 열 만한 공통점을 만들고, 관심사를 공유하며, 가장 다정하고 믿음직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대프니가 외롭거나 지친 순간에는 위로를 건네고, 도움이 필요한 때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친절과 공감도 나쁜 의도를 감추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픈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속마음을 내보이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관심사와 고민, 약한 부분까지 미리 파악한 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다면 그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앰버는 대프니의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꾸며낸다. 그녀가 보여주는 친절은 진심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따뜻함보다 불안함이 커진다. 대프니가 앰버를 믿고 자신의 일상 안으로 받아들일 때마다 앰버의 계획도 한 단계씩 완성되어 간다.


질투는 결국 자신의 삶을 잃게 한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감정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보며 나도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앰버의 질투는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기보다 대프니가 가진 것을 차지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질투가 깊어질수록 앰버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대프니의 옷과 집, 인간관계와 남편을 바라보며 그녀가 되고 싶어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남과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일부만 본다. 잘 정돈된 집과 행복해 보이는 사진, 성공한 모습과 웃는 얼굴은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보이는 모습만으로 상대의 삶 전체를 판단하며 부러워한다.

앰버 역시 대프니의 화려한 외면만 바라본다. 자신이 보지 못한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은 멀리서 볼 때 가장 완벽해 보이는 법이다.


시점이 바뀌면서 무너지는 믿음

『마지막 패리시 부인』의 진짜 재미는 2부에서 시작되는 시점의 변화에 있다.

1부에서 독자는 앰버의 눈으로 대프니와 패리시 가족을 바라본다. 앰버의 행동이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2부에서 대프니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동안 보았던 장면의 의미가 달라진다.

완벽하고 행복하게만 보였던 가정에도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하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삶이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같은 인물의 말과 행동도 대프니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앞부분에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고, 그때는 알지 못했던 의미가 하나씩 연결된다.

이런 구성이 좋았다.

작가는 독자가 한쪽 시선만 보고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한 뒤 다른 시선을 보여주며 그 판단을 뒤집는다. 그 과정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계획을 세우고 누가 그 계획에 이용되고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한다.

독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추리소설만큼 재미있는 심리소설

나는 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사건 속에 숨겨진 단서를 찾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측하며,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즐긴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전형적인 살인사건이나 범인 찾기를 중심으로 하는 추리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읽는 재미만큼은 흥미로운 추리소설에 뒤지지 않는 심리소설이었다.

이 책에서 독자가 추리하게 되는 것은 범인이 아니라 사람의 진짜 마음이다.

앰버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대프니가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누가 누구를 이용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짐작하게 된다.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속에서 단서를 찾고 앞서 읽었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는 점도 추리소설과 닮았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지금까지의 판단을 수정해야 하고,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진다.

무엇보다 사람의 질투와 욕망, 두려움과 생존본능이 사건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심리소설의 매력이 잘 살아 있다.

칼이나 총보다 말과 시선, 친절로 가장한 접근과 계산된 행동이 더 긴장감을 만든다. 겉으로 평온한 대화 속에서도 누가 어떤 의도를 숨기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건의 범인을 찾는 대신 인물들의 진짜 속마음과 숨은 계획을 추리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완벽해 보이는 결혼생활의 이면

앰버가 갖고 싶어 했던 것은 단순히 돈이나 좋은 집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패리시 부인’이라는 자리를 원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화려한 집에서 살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타이틀과 겉모습만으로 그 안의 삶까지 알 수는 없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배우자와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집과 값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이 책은 결혼생활과 부부관계가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완벽한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집 안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늘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 고통을 견디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인 『마지막 패리시 부인』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누가 패리시 부인이 될 것인가보다, 그 자리가 정말 부러워할 만한 자리인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치밀한 심리전

이 소설은 잔혹한 사건이나 빠른 추격만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작품이 아니다.

인물들이 서로의 마음을 읽고, 거짓말을 숨기며, 상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려는 심리전이 중심에 있다.

앰버는 대프니의 약한 부분을 이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관계를 움직인다. 대프니 역시 앰버가 보지 못한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두 여성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따라가다 보면 누가 누구를 이용하고 있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앞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작가가 초반부터 심어놓은 작은 단서들이 뒤늦게 의미를 드러낸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궁금증뿐 아니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라는 의심이 책을 계속 읽게 했다.


반전을 알고 읽기보다 직접 느껴보기를

이 책의 구체적인 결말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의 가장 큰 재미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신이 내린 판단이 흔들리는 경험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앰버의 계획이 어디까지 성공할지를 궁금해하게 된다. 이후 대프니의 시점이 시작되면 앞부분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의 계획 가운데 무엇이 먼저 시작되었고, 누가 누구보다 한발 앞서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반전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읽더라도 충분하다. 어떤 반전인지 미리 알지 않은 채 앰버와 대프니의 감정을 차례로 따라가면 이 소설의 재미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기 전에

책을 덮은 뒤에도 질투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라 밖으로 드러난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좋은 집과 경제적인 여유, 다정해 보이는 배우자와 화려한 일상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그 안에 어떤 관계와 감정이 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느라 자신의 삶을 놓치기보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살피고, 내가 원하는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앰버는 대프니의 자리를 차지하면 자신도 대프니처럼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인의 인생을 훔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느끼는 행복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는 순간에는 그 사람이 가진 것만 보인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일과 그 안에 숨겨진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점에서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단순한 반전소설을 넘어 비교와 질투, 욕망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심리소설이었다.



한 번 펼치면 마지막까지 읽게 되는 소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계획적인 우정에서 시작해 화려한 결혼생활의 이면과 두 여성의 치밀한 심리전으로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삶을 빼앗으려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시점이 바뀔수록 훨씬 복잡한 비밀과 감정이 드러난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어 비교적 두꺼운 분량에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각 부분이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책장을 덮기 어려웠다.

심리소설이지만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단서를 찾고, 인물의 의도를 의심하고, 뒤에 숨은 진실을 예상하는 재미가 있다.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추리소설과 반전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사람의 마음이 사건보다 더 복잡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삶의 이면과 인간의 질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을 찾는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삶에도 감춰진 이야기는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탐내는 순간,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심리소설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는 책 제목을 다시 바라보며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패리시부인 #리브콘스탄틴 #박지선옮김 #심리소설 #심리스릴러 #추리소설만큼재미있는책 #스릴러소설 #추리소설추천 #반전소설 #여성심리스릴러 #질투와욕망 #계획적인우정 #심리전 #소설추천 #책추천 #서평 #독서기록 #도서리뷰 #책블로그 #나의책장 #그래언니독서노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정상희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명작은 또 다른 명작에서 태어난다/『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


129장의 명작으로 추적한 창작의 비밀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강렬한 붉은색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다니, 조금은 도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훔침’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가 아니다. 앞선 예술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더해 새로운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창작의 과정을 의미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는 129점의 명작을 비교하며 예술가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완성된 작품만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이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새로운 예술로 탄생했는지를 추적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미술의 역사가 서로 단절된 개별 작품의 모음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이어진 예술가들의 긴 대화처럼 느껴진다.



예술가들의 숨은 연결을 찾아가는 책

저자 데브라 N. 맨커프는 미술사를 연구하고 다양한 예술 관련 책을 집필해온 작가다.

이 책에서는 어려운 미술 이론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실제 작품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예술가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들려준다.

같은 주제와 비슷한 구도를 사용한 그림을 비교하고, 한 예술가가 앞선 시대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에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예술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모아놓은 화집이라기보다 그림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미술 안내서에 가깝다.

그동안 명화를 보면서 ‘아름답다’, ‘유명한 작품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이 책을 통해 그림 속에 숨겨진 관계와 창작의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다.



여섯 가지 주제로 살펴보는 창작의 비밀

책은 예술가들이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어떻게 배우고 변화시켰는지를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영감의 기원’**이다.

예술가들이 고대의 신화와 종교, 자연과 문학, 역사적인 사건에서 어떻게 영감을 얻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의 소재가 시대를 건너 반복해서 등장하고, 작가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도 인물의 표정과 자세, 색채와 구도에 따라 작품이 전하는 감정은 달라진다. 예술가는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자신이 살던 시대와 개인적인 경험을 작품 안에 담아낸다.

두 번째는 **‘배움의 여정’**이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처음부터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스승의 작업실에서 기술을 배우고, 선배 예술가의 작품을 따라 그리며 그림의 기본을 익혔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배우는 과정은 부끄러운 모방이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을 찾아가는 출발점이었다. 반복해서 보고 따라 그리는 동안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선택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갔다.

세 번째는 **‘아이디어의 순환’**이다.

예술가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과 전시, 책과 판화, 수집품과 교류를 통해 다른 지역과 다른 시대의 예술가에게 전달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세계의 작품을 즉시 볼 수 없었지만 예술가들은 여행 중에 본 풍경과 작품,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물건과 그림을 통해 새로운 표현을 발견했다.

한 지역에서 시작된 미술의 아이디어가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하면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네 번째는 **‘영향의 흔적’**이다.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받은 영향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화가는 인물의 자세를 빌리고, 어떤 화가는 빛과 색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 다른 화가는 앞선 작품의 구도를 가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공통점이 발견된다. 인물의 시선과 손의 위치, 배경에 놓인 사물과 빛의 방향까지 비교하다 보면 하나의 그림 안에 또 다른 작품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연결의 순간’**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이 하나의 이미지나 생각으로 연결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작품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고, 한 사람이 던진 예술적 질문을 훗날 다른 사람이 이어받기도 한다.

명작은 어느 날 갑자기 홀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가 남긴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변형의 기술’**이다.

익숙한 작품과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꾸는 예술가들의 창작법을 소개한다. 원작의 구도를 유지하면서 인물을 바꾸기도 하고, 그림의 일부를 과장하거나 삭제하여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창작은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012년 로마에서 만난 미켈란젤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2012년의 유럽 여행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직원들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파리를 배낭여행으로 다녀왔다. 낯선 도시의 길을 걸으며 책과 사진으로만 보았던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 중 하나는 로마 여행 중 마주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였다.

고개를 들어 거대한 천장화를 바라보던 순간의 압도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화면에서는 알 수 없었던 공간의 크기와 수많은 인물의 움직임,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힘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책에서는 미켈란젤로가 고전 예술의 아름다움과 인체 표현을 어떻게 배우고 자신의 작품 안에서 발전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이 내용을 읽고 나니 당시 바라보았던 「천지창조」가 새롭게 느껴졌다. 완성된 명작만 보았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창작의 배경과 예술가가 걸어온 배움의 과정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책 속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2012년의 나를 다시 그 공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작품 앞에서 느꼈던 경이로움은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만난 반 고흐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보았던 반 고흐의 작품도 잊을 수 없다.

책이나 사진에서 여러 번 보았던 그림이었지만 실제 작품에는 인쇄물로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힘이 있었다. 강렬한 색채와 거친 듯 이어지는 붓의 움직임, 그림 앞에 섰을 때 전해지는 감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책에는 반 고흐가 밀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색과 붓질로 새롭게 탄생시킨 그림들도 소개된다.

같은 장면을 바탕으로 했지만 밀레의 작품과 반 고흐의 작품은 서로 다른 감정을 전한다. 반 고흐는 앞선 작품을 그대로 따라 그리지 않았다. 자신이 받은 감동을 자기만의 색과 감정으로 다시 표현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위대한 예술가의 훔침’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책 속 반 고흐의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오르세미술관을 걸었던 기억도 다시 살아났다. 작품을 직접 보았던 경험과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당시의 감동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모나리자는 몇 번이나 새롭게 태어났을까

책에서 특히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 부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새롭게 해석한 여러 작품의 이야기였다.

「모나리자」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보았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신비로운 미소와 인물의 자세, 두 손의 위치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바로 그 익숙함 때문에 다른 예술가들은 「모나리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꾸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오마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모든 작품이 존경의 의미만을 담은 것은 아니어서 패러디이자 차용이며, 때로는 원작의 권위에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얼굴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은 작품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던 위대한 명화가 뒤샹의 손을 거쳐 전혀 다른 의미의 작품으로 변했다.

처음 보면 유명한 그림에 장난을 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의 탄생 배경과 뒤샹이 예술에 던졌던 질문을 알고 나면 단순한 장난으로만 볼 수 없다.

무엇이 예술인지, 원본과 복제의 차이는 무엇인지, 이미 유명해진 이미지를 다른 예술가가 가져와도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책에는 원작과 변형된 작품들이 함께 실려 있어 서로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원래의 「모나리자」와 다른 예술가들의 해석을 나란히 보고 있으니 한 작품이 시대를 거치며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화가들이 왜 「모나리자」를 다시 선택했는지, 어떤 생각으로 익숙한 얼굴을 변형했는지, 그 작품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읽는 과정도 무척 흥미로웠다.

하나의 명화를 중심으로 수많은 오마주와 패러디가 탄생하고, 그 작품들이 다시 새로운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과정은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졌다.

원작을 알고 변형된 작품을 보면 재미가 더욱 커진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그 변화가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 생각하게 된다.

「모나리자」의 여러 버전과 그 탄생 비화를 읽는 동안 미술사를 조금은 색다른 방법으로 여행한 기분이었다.


둘째 아이와 다시 보고 싶은 명화들

2012년 여행 당시에도 거장들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좋아했던 둘째 아이가 생각났다.

언젠가 둘째 아이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 미켈란젤로와 반 고흐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느낀 감동을 아이와 나누고, 같은 작품을 보며 서로 무엇을 느끼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책에 실린 명화들을 둘째 아이와 함께 펼쳐보면서 작품의 색과 구도, 인물의 표정과 배경을 천천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특히 「모나리자」의 여러 가지 변형을 함께 보며 어떤 작품이 가장 재미있는지, 왜 예술가들이 같은 그림을 서로 다르게 바꾸었는지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내가 발견하는 것과 아이가 발견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감상을 나누다 보면 한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관을 함께 여행하지 못하더라도 한 권의 책을 펼쳐놓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언젠가 둘째 아이와 다시 로마와 파리를 방문한다면 이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예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129장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즐거움

이 책은 글만 읽는 미술사 책이 아니다. 풍부하게 수록된 작품 사진을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며 먼저 그림을 감상하고,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본 뒤 설명을 읽으면 좋다.

인물의 자세와 시선, 손의 위치, 빛의 방향, 색의 사용, 배경에 놓인 사물까지 살펴보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연결이 발견된다.

한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면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이 새롭게 보인다. 예술가가 왜 그 소재를 선택했는지, 어떤 작품의 영향을 받았는지,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꾸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그림뿐만 아니라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삶, 다른 작품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서양미술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대와 작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미술관에서 본 작품이 있다면 자신의 기억과 책의 설명을 연결해 읽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나에게는 미켈란젤로와 반 고흐의 작품이 그랬다. 책 속 한 장의 사진이 2012년의 로마와 파리를 다시 떠올리게 했고, 그때 느꼈던 감동을 조금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창작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창작하려 할 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들도 앞선 작품을 보고 배우는 과정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작품의 색과 구도, 표현 방법을 배웠지만 그 위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쌓으며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그것을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키느냐일 것이다.

나 역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책과 여행, 일상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창작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고, 서로 연결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시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는 명작 뒤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명작을 찾아가는 책이다.

예술가들이 받은 영향을 단순한 모방이라고 평가하지 않고, 작품이 시대를 건너 어떻게 이어지고 변형되는지를 보여준다.

한 작품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이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떤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 어떤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2012년 로마와 파리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세월이 흘러도 위대한 작품이 주는 울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감상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함께 그림이 탄생한 배경, 작가의 삶과 고민, 다른 예술가에게 받은 영향까지 자세히 들을 수 있는 명화집이다.

아이와 함께 명화를 감상하고 싶은 부모에게도 좋은 책이다. 작품을 나란히 보며 무엇이 비슷하고 다른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이야기한다면 미술을 공부가 아닌 즐거운 대화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언젠가 둘째 아이와 함께 로마와 파리의 미술관을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때는 작품의 아름다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배움과 연결, 오마주와 변형의 흔적까지 하나씩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위대한예술가는무엇을훔쳤을까 #데브라N맨커프 #미술책추천 #명화집 #서양미술사 #명화감상 #모나리자 #모나리자오마주 #마르셀뒤샹 #예술가의영감 #창작의비밀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반고흐 #오르세미술관 #로마여행 #파리여행 #유럽배낭여행 #아이와명화보기 #그림좋아하는아이 #독서기록 #책리뷰 #서평 #나의책장 #그래언니독서노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
이병철 지음 / 좋은땅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늘한 가을에 만난 뜨거운 시, 마음속의 강을 건너다/이병철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 


어린 날의 놀이에서 오늘의 삶까지 이어지는 시인의 시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이다. 계절이 바뀌면 옷차림도 달라지지만, 책을 읽는 마음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고, 평소에는 지나쳤을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이병철 시인의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다.

제목부터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강을 건넌다고 하면 물과 다리, 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강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나온 기억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내 마음속에 있을 수도 있겠다.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넘지 못하는 두려움이나 미루어둔 선택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강을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시집에는 바이크를 타고 마주한 풍경과 여행, 고향과 기억,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사회와 일상을 향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은 시인의 뜨거운 열정이었다. 바깥에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지만, 세상을 보고 느끼고 문장으로 옮기는 마음은 여전히 뜨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낭만바이크’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누비는 이병철 시인

책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이병철 시인은 ‘낭만바이크’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상을 누비며 자신만의 해방감을 즐긴다고 한다.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책에서는 횡성 춘당초등학교 교장으로 소개되어 있다. 교육의 길을 걸으면서도 대학 시절 시와 소설을 쓰던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일을 해오면서도 마음속에 글쓰기의 불꽃을 남겨두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지켜내는 일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인은 바이크뿐 아니라 클래식 기타와 테니스도 즐긴다고 한다. 서로 다른 활동 속에서 얻은 경험과 삶의 리듬이 시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작가 소개를 읽고 목차를 다시 보니 바이크와 이동, 수련과 여행에 관한 제목들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몸으로 움직이며 만난 풍경을 안으로 가져와 생각하고, 다시 문장으로 풀어내는 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 부분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기억, 성찰과 현실

이 시집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제1부 철마의 심장을 깨우다

  • 제2부 건너야 할 강은 물 위에 있지 않고 — 기억과 고향

  • 제3부 밤의 뼈마디를 긁어 내며 — 수련과 성찰

  • 제4부 비릿한 현재를 일깨우는 광장 — 사회와 일상

제1부에는 바이크와 여행, 이동 중에 만나는 풍경을 담은 시들이 실려 있다. 「더위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 인제 바이크 라이딩」, 「바이크」 연작, 「하늘이 가까운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다」 등의 제목에서 움직임과 현장감이 느껴진다.

제2부에서는 기억과 고향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겨울, 남해 여행 — 선돌 위에서 바라본 마을」, 「요양병원 다녀오는 길」, 「아이들과 사진 찍기 놀이하다」 등 장소와 사람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제3부에는 「수련」 연작과 「빈약한 생의 점검 — 건강검진을 한 후」, 「낭비하는 인생을 위한 변명」, 「가슴이 뜨겁거나 얼굴이 벌게질 때」 등이 담겨 있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와 삶의 태도와 몸, 시간을 살피는 부분이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사회와 일상의 여러 장면을 만난다. 음식과 집안일처럼 가까운 소재부터 역사와 전쟁, 광장과 현실에 관한 이야기까지 폭이 넓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모두 꼭꼭 숨으세요!」도 이 부분에 실려 있다.

목차를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관심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 떠나는 일과 자신을 돌아보는 일, 일상을 살아가는 일과 사회를 바라보는 일이 한 권 안에서 이어진다.


가장 마음에 남은 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모두 꼭꼭 숨으세요!」다.

제목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의 놀이가 떠올랐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익숙한 말과 함께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놀던 옛 추억도 되살아났다.

술래를 피해 몸을 숨기고, 친구의 움직임을 살피고, 들키지 않으려고 숨죽이던 시간. 놀이에 정신이 팔려 다른 것은 잊고 뛰어다니던 어린 날의 마음이 생각났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놀이의 이름이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함께 따라오는 장면들이 있다. 시의 제목 하나가 한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을 불러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반가운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봄의 변화와 외출길에서 시작한 시선이 평온한 일상 뒤에 스며드는 불안으로 옮겨간다. 이어 전쟁이 벌어지는 먼 나라와 그곳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놀이 속에서 숨는 일과 실제 위험을 피해 숨어야 하는 일이 같은 말 안에서 겹쳐지는 순간, 제목의 느낌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읽었던 문장이 뒤로 갈수록 무겁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즐겁게 외치던 놀이의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추억을 불러온 시가 현재를 돌아보게 할 때

이 시가 특히 기억에 남은 이유는 내 마음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반가웠다. 어릴 때 듣고 외쳤던 말이라 친숙했고, 친구들과 놀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내가 누리는 평온한 생활의 바깥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책을 읽고, 오늘의 일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숨겨야 할 수도 있다.

시를 읽으며 그 서로 다른 하루를 떠올렸다. 먼 곳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현실이 누군가의 아들과 딸, 가족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면서도 현재를 외면하지 못하게 했다. 익숙한 놀이의 말을 통해 이렇게 다른 감정과 생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시가 멋지다고 느끼는 순간은 이런 때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다시 보게 하고, 그 말이 놓인 자리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을 만들어낸다.




바이크를 타는 몸과 시를 쓰는 마음

시집의 앞부분에는 바이크와 관련된 작품들이 여러 편 등장한다.

바이크를 타는 일에는 속도와 바람, 길의 감각이 함께할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뿐 아니라 이동하는 동안 몸으로 받아들이는 풍경도 중요할 것 같다.

작가 소개와 시의 제목들을 함께 읽으며 시인이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생각해보았다. 직접 움직이고 부딪치며 얻은 감각을 오래 간직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행지에서 바라본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는다. 같은 길을 지나도 누군가는 산과 강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나 자신의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시인은 그 풍경을 문장으로 남긴다. 지나간 장소가 글 속에서 다시 펼쳐지고, 독자는 자신이 가보지 않은 곳에서도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보면 이동하는 시간도 글쓰기와 이어질 수 있겠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뿐 아니라 밖으로 나가 보고 듣는 시간이 문장의 바탕이 될 것이다.


차가운 가을바람 속에서도 뜨거운 열정

이 시집을 읽으며 시인의 열정이 뜨겁다고 느꼈다.

교육 현장에서 일하면서 바이크를 타고, 기타를 연주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지만, 그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작품으로 남기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구나 하루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생각하고 문장으로 옮기는 데에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을 기억하고, 어떤 말로 담을지 고민하고, 다시 읽으며 고치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집 한 권에는 그런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일을 하고 책을 읽으며 서평을 쓰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글을 미루고 싶을 때도 있지만, 쓰기 시작하면 읽을 때는 몰랐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시인의 활동과 글을 보며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가는 마음을 생각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자신에게 질문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태도가 작품에도 힘을 주는 것 같다.

날씨는 서늘해졌지만, 책 안에서는 계속 움직이려는 마음과 세상을 향한 관심이 느껴졌다. 그 열정이 읽는 내게도 전해졌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선

제3부 ‘수련과 성찰’이라는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며 바깥세상을 만나던 사람이 다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다. 건강검진과 일상의 감각, 반복되는 수련이 시의 소재가 된다.

살다 보면 나 자신을 점검할 일이 생긴다. 몸의 상태를 확인할 때도 있고, 지금의 생활을 계속 이어가도 괜찮을지 생각할 때도 있다. 무엇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 묻게 되는 순간도 있다.

시집의 이런 흐름을 보며 바깥으로 나가는 시간과 안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모두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경험을 많이 하는 것만큼 그 경험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 생각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면 직접 움직이며 새로운 장면을 만나볼 필요도 있겠다.

이 책에서는 그 두 방향이 함께 느껴졌다. 길 위에서 얻은 풍경과 혼자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서로 이어져 있다.


일상의 작은 일도 시가 된다

목차에는 음식이나 생활과 가까운 제목들이 많다.

닭갈비와 붕어빵, 곤드레밥이 등장하고, 설거지와 도시락, 샴푸 같은 익숙한 대상도 시의 제목이 된다. 시를 쓰기 위해 꼭 특별한 장소나 거창한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에도 관찰할 것이 있고, 그때그때 달라지는 마음이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해도 어느 날은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 여러 시집을 읽으며 사물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 책에서는 생활의 장면뿐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머무는 시간도 조금 더 살펴보고 싶어졌다.

어디에 갔는지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보다 그 일이 내 마음에 어떻게 남았는지 적어보면 좋겠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듯, 지금의 작은 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오늘을 불러오는 문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건너야 할 강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고 다시 제목을 바라본다.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문장이 읽고 난 뒤에는 조금 가까워졌다. 내게는 바깥의 길을 따라 움직이다가 결국 마음속의 문제와 마주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지나간 기억을 받아들이는 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 익숙한 생활을 조금 바꾸는 일에도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잠시 멈추는 일 역시 쉽지만은 않다.

내가 건너야 할 강이 무엇인지 당장 한 가지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제목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생각해보게 한다.

앞으로 무엇을 더 이루고 싶은지와 함께 지금 무엇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시집을 읽으며 생긴 질문을 일상에서도 조금 더 이어가고 싶다.


추억과 열정이 함께 남은 시집

이병철의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는 여행과 기억,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사회를 향한 시선이 함께 담긴 시집이다.

가장 마음에 남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모두 꼭꼭 숨으세요!」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추억을 되살렸다. 그러면서도 그 익숙한 놀이의 말을 통해 오늘의 불안과 다른 사람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시집을 읽는 동안 웃으며 떠올린 기억도 있었고, 잠시 멈추어 생각하게 된 현실도 있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품는 여러 관심이 작품 속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과 일상의 경험이 시로 이어지는 과정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와 사회를 향한 질문이 담긴 작품을 함께 읽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맞을 것 같다.

가을바람은 차가워지고 있지만 시인의 열정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내게도 작은 자극이 되었다.

나 역시 오늘 마음이 움직인 장면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적어보고 싶다. 오래된 추억이 떠올랐다면 그 기억을, 어떤 문장에 멈추었다면 그 이유를 남기고 싶다.

그렇게 읽고 쓰는 시간이 쌓이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강의 모습도 조금씩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덮고도 제목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읽어본다. 내가 건너야 할 강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면서.



#건너야할강이물위에있지않다 #이병철 #이병철시집 #낭만바이크 #시집추천 #한국시집 #현대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가을독서 #어린시절추억 #시읽는시간 #서평 #도서리뷰 #독서기록 #책블로그 #나의책장 #그래언니독서노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김수진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슬픔을 잊으려 애쓰는 대신, 시를 읽는 시간/김수진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와 「희망」을 읽으며 다시 바라보게 된 삶

요즘처럼 시를 많이 읽어본 것은 고등학교 국어 시험을 준비하던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때는 시를 읽으면 먼저 주제와 표현법을 찾았다. 시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화자의 정서는 어떠한지, 시험에서는 어떤 문제가 나올지 생각하며 읽었다. 시를 느끼기보다 정답을 알아내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으면 잠시 멈추고, 그 문장에 내 생각과 경험을 겹쳐본다. 한 번에 뜻이 잡히지 않아도 다시 읽어보고, 어떤 날은 시 한 편에서 오래 머물기도 한다.

최근 시집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도 시가 얼마나 멋진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동안 조금 멀리 두었던 시를 이제는 내 마음으로 읽어볼 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만난 책은 김수진 시인의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다.

제목부터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슬픔을 빨리 잊으라고 말하지 않는 제목이 또 다른 위로처럼 다가왔다.


제목에서 먼저 받은 위로

슬픈 일이 생기면 우리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아져야 하고, 같은 기억 때문에 자꾸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일은 생각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어떤 풍경이나 말 한마디 때문에 다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도 있다.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은 그런 마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게 이 제목은 슬픔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읽혔다.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억지로 지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제목에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어떤 시들이 이 제목 아래에 모여 있을지 궁금했고, 읽는 동안에도 자주 표지의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과 일상을 시로 담아내는 김수진 시인

김수진 시인은 《문학고을》 시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수상 이력이 소개되어 있다. 책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문학고을 강원지부 끌림동인 회원이자 강원문인협회와 원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경대학교에서 미용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전문학교 학과장과 여러 대학의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미용학 분야의 대학부 교재 편찬 이력도 함께 담겨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력을 보며 한 사람이 살아오며 만난 사람과 경험이 어떻게 시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하고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시간 속에도 글의 재료가 쌓여 있을 것이다.

시집에는 빈 의자와 신발, 와이퍼, 가로등처럼 가까운 사물들이 등장한다. 꽃과 나무, 비와 바람도 시가 된다. 익숙한 것들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섯 부분으로 만나는 사랑과 슬픔, 일상의 온기

이 시집은 머리말 「페이지를 열며」를 시작으로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1부 사랑이라 말하리

  • 2부 화사하게 꿈꾸며

  • 3부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 4부 온기를 전하며

  • 5부 내가 사랑한 것들

1부에는 「빈 의자」, 「아비」, 「세월」, 「달빛 사랑」 등 사람과 관계, 시간에 관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 그리움과 빈자리도 함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2부에서는 「눈 속 장미」, 「파랑새」, 「들꽃」, 「바다」 등 자연과 풍경을 만난다. 눈앞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게 되는 시들이다.

3부에는 「답장 없는 편지」, 「아픈 신발」, 「빈소 사진」, 「겨울나무」 등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머무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이 부분에서는 슬픔과 기억을 여러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4부 ‘온기를 전하며’에는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나무」와 「희망」이 나란히 담겨 있다. 「일정표」, 「출근 기차」, 「석유난로」처럼 생활과 가까운 제목들도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5부에서는 「돌멩이」, 「앨범 속 당신에게」, 「연어의 꿈」, 「가로등」, 「별 헤는 밤」 등 시인이 바라보고 마음을 두었던 대상들이 이어진다. 뒤에는 찬조시 「섬」과 소개글 「동전 뒷면의 가치」가 실려 있다.

사랑과 슬픔, 온기와 기억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목차를 따라 읽으며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이 감정들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




가장 마음에 남은 시, 「소나무」

이번 시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 가운데 하나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다. 사계절 푸른 모습을 떠올리거나, 오래 서 있는 나무의 단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시를 읽으니 그 익숙한 모습에 다른 생각이 더해졌다.

시에는 껍질이 벗겨진 자리와 떨어지는 솔방울, 하늘을 향한 모습이 등장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에도 시간이 지나간 흔적과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 곧게 자란 나무와 굽은 나무의 쓰임을 묻는 대목에서 마음이 멈췄다.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쓸모를 먼저 생각하곤 한다.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존재가 살아온 시간을 쓰임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굽은 나무에도 그 모습으로 살아온 이유와 시간이 있을 것이다. 바람을 맞고 자리를 지키며 자라온 모습을 곧고 굽었다는 기준만으로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 그 사람이 지나온 과정을 다 알 수는 없다. 기대한 모습과 조금 다르더라도 그 안에는 견디고 살아온 시간이 있을 것이다.

「소나무」를 읽고 나니 앞으로 소나무를 볼 때 줄기의 모양과 껍질의 결을 조금 더 살펴보게 될 것 같다. 푸르다는 인상만으로 지나쳤던 나무를 시가 다시 보게 해주었다.





오늘을 살아내는 힘, 「희망」

「소나무」와 함께 오래 마음에 남은 시는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나 좋아질 미래를 먼저 떠올린다. 아직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닿고 싶은 모습이다.

이 시에서 내게 가까이 다가온 것은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단단하게 굳은 마음과 차가운 시간을 지나면서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과 연결된다.

내일의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약속하는 듯한 위로보다, 지금의 하루를 견디는 사람 곁에 놓이는 말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이 많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는 앞으로의 시간을 한꺼번에 생각하게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다 보면 오늘 할 수 있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가 건네는 오늘이라는 시간은 조금 작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오늘의 생활을 이어가는 것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희망」은 내게 그렇게 읽혔다. 대단한 확신이 없어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다음을 향한 마음을 찾아보게 했다.

「소나무」가 살아가는 존재를 바라보게 했다면, 「희망」은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두 작품이 함께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이후 다시 가까워진 시

요즘 시를 읽다 보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는 시를 잘 이해한다는 것이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일과 가까웠다. 중요한 시어와 표현에 표시하고, 해설을 읽고, 의미를 외우기도 했다.

물론 그 시간을 통해 알게 된 시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읽는 시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정해진 해설을 찾기 전에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같은 시를 읽어도 어떤 사람은 나무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가족이나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나이와 경험이 있기에 마음에 닿는 문장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지나쳤을 표현에서 멈추고, 짧은 시 한 편에 내 생활의 장면을 겹쳐보게 된다. 그 차이가 반갑다.

요즘 시집을 자주 만나는 일이 우연이면서도 어떤 권유처럼 느껴진다. 시가 얼마나 멋진지, 짧은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지 다시 느껴보라는 뜻인 것 같다.


시를 읽으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시를 자주 읽으며 생긴 좋은 변화 가운데 하나는 사물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무는 나무이고 의자는 의자라고 생각하며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시를 읽고 나면 그 대상에 사람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시간이 느껴지기도 한다.

빈 의자에서는 누군가가 앉아 있던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 신은 신발을 보면 그 신발과 함께 걸었을 길이 떠오른다. 나무의 거친 껍질에서는 오랜 계절을 견딘 흔적을 보게 된다.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이 시집의 「빨래집게」나 「가로등」 같은 제목들도 그런 관심으로 보게 된다. 평소에는 기능만 생각했던 물건이 시 안에서는 마음을 담는 대상이 된다.

시인은 어떤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떠올렸을까. 나는 같은 대상을 보면 무엇이 생각날까.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이 좋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주변을 살필 시간이 줄어든다.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시를 읽는 시간이 그런 습관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것 같다.


슬픔을 빨리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책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슬픔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생각해보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감정이 옅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기억은 덜 아프게 남기도 하고, 어떤 그리움은 생활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람마다 마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다르다. 겉으로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마음속 일까지 다 정리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고 쉽게 말할 때가 있다. 충분히 듣기도 전에 마음의 결론을 서두르는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은 그 서두름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내게는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시간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위로로 다가왔다.

특정한 기억을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제목을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끌렸고,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읽고 쓰며 내 시선을 남겨보기

요즘 서평을 쓰면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과 내 감상을 쓰는 일이 함께 이루어진다.

처음 읽을 때는 막연히 좋았던 시도 왜 좋았는지 적어보면 내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된다. 「소나무」에서는 존재의 가치와 지나온 시간을 생각했고, 「희망」에서는 오늘을 살아내는 마음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쓰다 보면 내가 책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도 보인다.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내 생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앞으로는 시를 읽으며 떠오른 작은 장면도 함께 적어보고 싶다. 길에서 본 나무의 모습이나 저녁 하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 물건처럼 가까운 것들을 기록해두면 좋겠다.

처음부터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렵겠지만, 무엇을 보았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적는 일은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을 읽는 경험이 책을 덮은 뒤의 생활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슬픔과 희망을 함께 두고 읽는 시집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는 제목에서 먼저 위로를 받고, 시를 읽으며 가까운 사물과 내 삶을 돌아보게 된 책이다.

가장 마음에 남은 「소나무」와 「희망」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생각하게 했다. 나무를 바라보다 사람을 떠올리고, 오늘의 숨을 생각하다 내일을 향한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슬픔을 다루는 제목이지만 시집에는 사랑과 자연, 생활의 온기도 함께 담겨 있다. 우리 삶 안에서 그 감정들이 나란히 존재하듯 시들도 여러 결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 일상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마음을 서둘러 정리하라는 말보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문장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닿을 것 같다.

고등학교 국어 시험 이후 이렇게 시를 자주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이 좋다. 시험의 답을 찾던 때와 달리 내 마음에 남는 이유를 찾으며 읽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시집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다음에 소나무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늦추고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조금 지친 날에는 「희망」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시가 내 생활에 들어와 사물을 다시 보게 하고, 마음을 살피게 한다.

요즘 시를 자주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은잊는것이아니다 #김수진 #김수진시집 #부크크 #시집추천 #한국시집 #현대시 #소나무 #희망 #위로가되는책 #시읽는시간 #서평 #도서리뷰 #독서기록 #책블로그 #나의책장 #그래언니독서노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꽃이 되었습니다
김선규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를 읽으며 삶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꿈을 떠올리다/김선규 『꽃이 되었습니다』 


삶의 통찰과 지혜, 아버지의 시와 딸의 그림이 만나는 시간

김선규 시인의 시집으로 두 번째 서평을 쓴다.

한 작가의 책을 다시 읽는 일에는 처음과는 다른 반가움이 있다. 이미 한 번 만난 목소리를 떠올리면서도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된다.

『꽃이 되었습니다』는 삶의 통찰과 지혜가 담긴 시들로 가득한 시집이었다.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시작해 사람의 마음과 관계, 지나온 세월과 우리가 사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어떤 시에서는 웃음이 났고, 어떤 시에서는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쉽게 읽히는 말로 쓰였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틀리다가 다르다 뒤에 숨어」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였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또 하나 좋았던 것은 따님 김민지 작가의 그림이었다. 아버지의 시와 딸의 그림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예전에 내가 꿈꾸었던 ‘아이들과 함께 책 만들기’도 떠올랐다.

시를 읽으며 삶을 돌아보다가,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나의 꿈까지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김선규 시인과 그림을 그린 김민지 작가

김선규 시인은 《문학고을》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책의 작가 소개에는 문학고을 신인문학상과 최우수 작가상, 무궁화나라꽃축제 대상, 청목문학상 작가대상 등의 수상 이력이 담겨 있다.

문학고을 강원지부 끌림동인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강원문인협회와 원주문인협회 회원으로도 소개되어 있다. 시집으로 『면도칼에 베였다』와 『꽃이 되었습니다』가 있다.

그림을 맡은 김민지 작가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미술교육 서양화 과정을 이수했다. 책에는 여러 전시 참여 이력도 함께 소개되어 있다.

작가 소개를 읽고 시와 그림을 다시 바라보니 한 권의 책 안에 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문장으로 담아낸 생각과 감정을 딸이 색과 선으로 함께 펼쳐놓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들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다섯 부분으로 펼쳐지는 삶과 사랑

이 시집은 머리말 「여는 글」을 시작으로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1부 꼴에 남자라고

  • 2부 내가 사는 곳

  • 3부 이제 돌아갈 때다

  • 4부 꽃이 되었습니다

  • 5부 내게도 사랑은

1부에는 「좌우명의 자기 고백」, 「말」, 「허무」 등 자신과 사람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들이 실려 있다. 익살스러운 표현과 솔직한 고백을 통해 인간의 허술함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시선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 넓어진다. 「애국가」, 「지하철 공모 시」 등을 통해 익숙한 풍경 속에서 놓치고 있던 현실과 기억을 생각하게 한다.

3부에는 세월과 삶을 돌아보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늙어도 마음만은」, 「이제 돌아갈 때다」와 함께 특히 인상 깊었던 「틀리다가 다르다 뒤에 숨어」도 이 부분에 담겨 있다.

4부에서는 꽃과 봄, 사랑과 슬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함께 놓인다. 제목과 같은 「꽃이 되었습니다」를 비롯해 「안부를 묻는다는 건」, 「광주 옛 도청 앞에서」 등의 작품을 만난다.

마지막 5부에는 사랑과 그리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시들이 이어진다. 뒤에는 소개 글 「거목 아래에서 한 걸음 쉬어가며」가 실려 있다.

목차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이 살아오며 마주했을 여러 마음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사회로 향하고, 다시 세월과 사랑을 돌아보는 흐름이 느껴진다.




“아…” 하는 탄성이 나왔던 「틀리다가 다르다 뒤에 숨어」

이번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은 「틀리다가 다르다 뒤에 숨어」였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배운다. 나와 다른 의견을 무조건 틀렸다고 판단하지 않는 태도는 중요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시는 그 익숙한 생각 앞에서 한 번 더 멈추게 한다.

서로의 취향과 관점이 다른 것과, 잘못된 행위의 책임을 흐리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전쟁과 식민 지배, 역사 속 인물들의 선택을 불러오며 ‘다름’이라는 말이 어디까지 쓰일 수 있는지 묻는다.

이 대목에서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좋은 뜻으로 익숙하게 사용하던 말도 상황에 따라 잘못을 가리는 표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을 존중한다는 태도가 모든 판단을 멈추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열린 마음으로 듣는 일과 분명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일은 함께 필요하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시가 오래 남은 이유는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말을 다시 살펴보게 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문장을 반복하는 동안 그 말의 뜻과 쓰임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짧은 시 한 편이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게는 이 작품이 이번 시집의 통찰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웃음 속에 담긴 지혜, 「좌우명의 자기 고백」

「좌우명의 자기 고백」은 무게 있는 제목으로 시작하지만 친숙한 일상 장면을 보여준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용기 있게 결정하겠다는 원칙을 가진 사람이 정작 음식점에서는 메뉴를 고르지 못한다. 결국 주변 사람의 주문을 따라가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비슷하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고,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면서도 사소한 순간에 흔들린다. 원칙은 분명한데 행동은 그 원칙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다.

나 역시 일을 하면서 신중함과 결단력 사이에서 고민한다. 더 확인해야 할 때가 있고, 어느 정도 준비되었다면 실행해야 할 때도 있다. 그 시점을 구분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시는 그런 허술함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근사하게 설명하려던 말이 일상의 작은 선택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이 솔직하다.

그래서 웃으면서도 나를 돌아보게 된다. 좋은 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보다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지혜는 대단한 결론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작은 장면을 알아보고 자기 모습을 인정하는 데서도 배울 수 있다.


익숙한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다

「지하철 공모 시」도 쉽게 지나갈 수 없는 작품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시는 바쁜 이동 중에 잠깐 쉬어가는 글이 될 수 있다. 짧은 문장을 읽으며 위로받거나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는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의 시간을 떠올린다.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김 군과 그의 가방에 남아 있던 컵라면이 등장하면서 지하철이라는 장소가 다르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잠시 시를 읽으며 지나가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곳에서 시간에 쫓기며 일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사람마다 하루의 모습은 다르다.

시인은 그 현실 앞에서 자신이 준비한 서정시를 내놓지 못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그 머뭇거림이 오래 남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표현할지 고르는 일이면서, 무엇을 외면하지 않을지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눈과 함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살피는 눈도 필요할 것이다.

서평을 쓰며 책 속 문장을 내 삶과 연결하려고 하는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 작품이었다.


술병 하나에서 발견한 변화, 「꽃이 되었습니다」

표제작 「꽃이 되었습니다」는 가까운 사물에서 시작한다.

마신 술을 담았던 병을 씻고 꽃을 꽂자 그 병은 다른 쓰임을 갖게 된다. 한숨과 함께 놓여 있던 사물이 꽃을 담는 자리가 되는 변화가 담겨 있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을 찾아낸다는 점이 좋았다.

사물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하루도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을 담는지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삶을 바꾸는 일을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꼈다. 가까운 곳을 정리하고, 작은 꽃 하나를 놓고,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시집의 제목을 다시 보니 처음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과 꽃을 담게 된 사물의 변화가 함께 떠올랐다.



시와 그림이 함께 머무는 책

이번 시집에서 특별하게 느껴진 또 하나는 시와 그림의 어울림이었다.

아버지의 시와 따님이 그린 그림이 너무 잘 어울렸다. 문장을 읽고 그림을 바라보면 시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글을 읽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같은 시에서도 어떤 사람은 풍경을 보고, 어떤 사람은 색을 떠올리며,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시와 그림이 함께 놓인 책은 두 가지 표현을 나란히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시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그림 앞에서 잠시 쉬고, 다시 문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무엇보다 가족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을 함께 만들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아버지가 쓴 시와 딸이 그린 그림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책이 되었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책을 만든 두 사람에게는 작품과 함께 그 과정의 시간도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그림을 고르고 어떻게 배치할지 이야기했을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예전에 꿈꾸었던 ‘아이들과 책 만들기’

그 시와 그림을 바라보다가 예전에 내가 꿈꾸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었다.

각자의 생각과 표현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남기는 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펼쳐보면 그때 어떤 마음으로 함께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김선규 시인의 글과 따님의 그림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그 꿈이 다시 생각났다.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마음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같은 가족이라도 바라보는 세상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래서 함께 만든 책에는 혼자서는 담기 어려운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글로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을까. 아이들은 그 기억을 어떻게 바라볼까. 같은 시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몰랐던 생각을 들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를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과정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시작하지 못할 것 같다. 짧은 글 한 편과 사진, 그림처럼 각자가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부터 모아보아도 좋겠다.

지금 당장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잊고 있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웠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만나다가 내 안에 남아 있던 바람까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삶의 통찰은 가까운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느낀 것은 삶의 통찰이 꼭 어려운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메뉴를 고르지 못하는 모습, 지나가며 주고받는 말,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는 물건, 꽃을 꽂아둔 병처럼 가까운 것들에서 생각이 시작된다.

그런 장면을 알아보는 눈이 시를 만들고,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겹쳐 읽는다. 같은 시도 살아온 시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나이와 경험이 있기에 더 마음에 닿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말과 행동의 간격을 돌아보는 마음, 사람을 판단할 때의 기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가까이 느껴졌다.

시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도 있고, 한 번 더 읽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 과정이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한 편을 읽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지만, 읽고 난 뒤 생각하는 시간은 길어질 수 있다. 시가 가진 힘을 다시 느꼈다.


두 번째 만남이 남겨준 것

김선규 시집으로 두 번째 서평을 쓰면서 이번에는 삶을 바라보는 통찰과 지혜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틀리다가 다르다 뒤에 숨어」에서는 익숙한 말의 쓰임을 돌아보았고, 「좌우명의 자기 고백」에서는 나의 허술함을 웃으며 인정하게 되었다. 「지하철 공모 시」에서는 내가 지나치는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리고 시와 그림의 어울림은 예전에 품었던 꿈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시집 한 권이 생각을 깊게 하면서도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일상의 언어로 삶을 돌아보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따뜻한 감상과 함께 사회를 바라보는 질문이 담긴 시를 읽고 싶은 사람,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잘 맞을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니 나도 가까운 장면을 조금 더 잘 기록하고 싶어졌다. 마음에 남은 말과 오늘 느낀 생각, 시간이 지나도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적어두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만들게 된다면 그런 기록들이 첫 페이지의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꽃이 되었습니다』는 내게 삶을 돌아보게 한 시집이면서, 오래 품고 있던 작은 꿈을 다시 꺼내게 한 책으로 남을 것 같다.



#꽃이되었습니다 #김선규 #김선규시집 #김민지 #부크크 #시집추천 #한국시집 #현대시 #삶의통찰 #삶의지혜 #틀리다가다르다뒤에숨어 #시와그림 #아이들과책만들기 #서평 #도서리뷰 #독서기록 #나의책장 #그래언니독서노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