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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김수진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슬픔을 잊으려 애쓰는 대신, 시를 읽는 시간/김수진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와 「희망」을 읽으며 다시 바라보게 된 삶
요즘처럼 시를 많이 읽어본 것은 고등학교 국어 시험을 준비하던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때는 시를 읽으면 먼저 주제와 표현법을 찾았다. 시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화자의 정서는 어떠한지, 시험에서는 어떤 문제가 나올지 생각하며 읽었다. 시를 느끼기보다 정답을 알아내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으면 잠시 멈추고, 그 문장에 내 생각과 경험을 겹쳐본다. 한 번에 뜻이 잡히지 않아도 다시 읽어보고, 어떤 날은 시 한 편에서 오래 머물기도 한다.
최근 시집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도 시가 얼마나 멋진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동안 조금 멀리 두었던 시를 이제는 내 마음으로 읽어볼 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만난 책은 김수진 시인의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다.
제목부터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슬픔을 빨리 잊으라고 말하지 않는 제목이 또 다른 위로처럼 다가왔다.
제목에서 먼저 받은 위로
슬픈 일이 생기면 우리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아져야 하고, 같은 기억 때문에 자꾸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일은 생각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어떤 풍경이나 말 한마디 때문에 다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도 있다.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은 그런 마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게 이 제목은 슬픔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읽혔다.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억지로 지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제목에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어떤 시들이 이 제목 아래에 모여 있을지 궁금했고, 읽는 동안에도 자주 표지의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과 일상을 시로 담아내는 김수진 시인
김수진 시인은 《문학고을》 시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수상 이력이 소개되어 있다. 책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문학고을 강원지부 끌림동인 회원이자 강원문인협회와 원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경대학교에서 미용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전문학교 학과장과 여러 대학의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미용학 분야의 대학부 교재 편찬 이력도 함께 담겨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력을 보며 한 사람이 살아오며 만난 사람과 경험이 어떻게 시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하고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시간 속에도 글의 재료가 쌓여 있을 것이다.
시집에는 빈 의자와 신발, 와이퍼, 가로등처럼 가까운 사물들이 등장한다. 꽃과 나무, 비와 바람도 시가 된다. 익숙한 것들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섯 부분으로 만나는 사랑과 슬픔, 일상의 온기
이 시집은 머리말 「페이지를 열며」를 시작으로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사랑이라 말하리
2부 화사하게 꿈꾸며
3부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4부 온기를 전하며
5부 내가 사랑한 것들
1부에는 「빈 의자」, 「아비」, 「세월」, 「달빛 사랑」 등 사람과 관계, 시간에 관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 그리움과 빈자리도 함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2부에서는 「눈 속 장미」, 「파랑새」, 「들꽃」, 「바다」 등 자연과 풍경을 만난다. 눈앞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게 되는 시들이다.
3부에는 「답장 없는 편지」, 「아픈 신발」, 「빈소 사진」, 「겨울나무」 등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머무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이 부분에서는 슬픔과 기억을 여러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4부 ‘온기를 전하며’에는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나무」와 「희망」이 나란히 담겨 있다. 「일정표」, 「출근 기차」, 「석유난로」처럼 생활과 가까운 제목들도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5부에서는 「돌멩이」, 「앨범 속 당신에게」, 「연어의 꿈」, 「가로등」, 「별 헤는 밤」 등 시인이 바라보고 마음을 두었던 대상들이 이어진다. 뒤에는 찬조시 「섬」과 소개글 「동전 뒷면의 가치」가 실려 있다.
사랑과 슬픔, 온기와 기억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목차를 따라 읽으며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이 감정들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

가장 마음에 남은 시, 「소나무」
이번 시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 가운데 하나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다. 사계절 푸른 모습을 떠올리거나, 오래 서 있는 나무의 단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시를 읽으니 그 익숙한 모습에 다른 생각이 더해졌다.
시에는 껍질이 벗겨진 자리와 떨어지는 솔방울, 하늘을 향한 모습이 등장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에도 시간이 지나간 흔적과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 곧게 자란 나무와 굽은 나무의 쓰임을 묻는 대목에서 마음이 멈췄다.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쓸모를 먼저 생각하곤 한다.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존재가 살아온 시간을 쓰임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굽은 나무에도 그 모습으로 살아온 이유와 시간이 있을 것이다. 바람을 맞고 자리를 지키며 자라온 모습을 곧고 굽었다는 기준만으로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 그 사람이 지나온 과정을 다 알 수는 없다. 기대한 모습과 조금 다르더라도 그 안에는 견디고 살아온 시간이 있을 것이다.
「소나무」를 읽고 나니 앞으로 소나무를 볼 때 줄기의 모양과 껍질의 결을 조금 더 살펴보게 될 것 같다. 푸르다는 인상만으로 지나쳤던 나무를 시가 다시 보게 해주었다.

오늘을 살아내는 힘, 「희망」
「소나무」와 함께 오래 마음에 남은 시는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나 좋아질 미래를 먼저 떠올린다. 아직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닿고 싶은 모습이다.
이 시에서 내게 가까이 다가온 것은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단단하게 굳은 마음과 차가운 시간을 지나면서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과 연결된다.
내일의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약속하는 듯한 위로보다, 지금의 하루를 견디는 사람 곁에 놓이는 말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이 많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는 앞으로의 시간을 한꺼번에 생각하게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다 보면 오늘 할 수 있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가 건네는 오늘이라는 시간은 조금 작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오늘의 생활을 이어가는 것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희망」은 내게 그렇게 읽혔다. 대단한 확신이 없어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다음을 향한 마음을 찾아보게 했다.
「소나무」가 살아가는 존재를 바라보게 했다면, 「희망」은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두 작품이 함께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이후 다시 가까워진 시
요즘 시를 읽다 보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는 시를 잘 이해한다는 것이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일과 가까웠다. 중요한 시어와 표현에 표시하고, 해설을 읽고, 의미를 외우기도 했다.
물론 그 시간을 통해 알게 된 시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읽는 시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정해진 해설을 찾기 전에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같은 시를 읽어도 어떤 사람은 나무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가족이나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나이와 경험이 있기에 마음에 닿는 문장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지나쳤을 표현에서 멈추고, 짧은 시 한 편에 내 생활의 장면을 겹쳐보게 된다. 그 차이가 반갑다.
요즘 시집을 자주 만나는 일이 우연이면서도 어떤 권유처럼 느껴진다. 시가 얼마나 멋진지, 짧은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지 다시 느껴보라는 뜻인 것 같다.
시를 읽으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시를 자주 읽으며 생긴 좋은 변화 가운데 하나는 사물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무는 나무이고 의자는 의자라고 생각하며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시를 읽고 나면 그 대상에 사람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시간이 느껴지기도 한다.
빈 의자에서는 누군가가 앉아 있던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 신은 신발을 보면 그 신발과 함께 걸었을 길이 떠오른다. 나무의 거친 껍질에서는 오랜 계절을 견딘 흔적을 보게 된다.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이 시집의 「빨래집게」나 「가로등」 같은 제목들도 그런 관심으로 보게 된다. 평소에는 기능만 생각했던 물건이 시 안에서는 마음을 담는 대상이 된다.
시인은 어떤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떠올렸을까. 나는 같은 대상을 보면 무엇이 생각날까.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이 좋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주변을 살필 시간이 줄어든다.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시를 읽는 시간이 그런 습관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것 같다.
슬픔을 빨리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책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슬픔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생각해보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감정이 옅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기억은 덜 아프게 남기도 하고, 어떤 그리움은 생활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람마다 마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다르다. 겉으로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마음속 일까지 다 정리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고 쉽게 말할 때가 있다. 충분히 듣기도 전에 마음의 결론을 서두르는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은 그 서두름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내게는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시간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위로로 다가왔다.
특정한 기억을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제목을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끌렸고,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읽고 쓰며 내 시선을 남겨보기
요즘 서평을 쓰면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과 내 감상을 쓰는 일이 함께 이루어진다.
처음 읽을 때는 막연히 좋았던 시도 왜 좋았는지 적어보면 내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된다. 「소나무」에서는 존재의 가치와 지나온 시간을 생각했고, 「희망」에서는 오늘을 살아내는 마음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쓰다 보면 내가 책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도 보인다.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내 생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앞으로는 시를 읽으며 떠오른 작은 장면도 함께 적어보고 싶다. 길에서 본 나무의 모습이나 저녁 하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 물건처럼 가까운 것들을 기록해두면 좋겠다.
처음부터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렵겠지만, 무엇을 보았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적는 일은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을 읽는 경험이 책을 덮은 뒤의 생활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슬픔과 희망을 함께 두고 읽는 시집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는 제목에서 먼저 위로를 받고, 시를 읽으며 가까운 사물과 내 삶을 돌아보게 된 책이다.
가장 마음에 남은 「소나무」와 「희망」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생각하게 했다. 나무를 바라보다 사람을 떠올리고, 오늘의 숨을 생각하다 내일을 향한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슬픔을 다루는 제목이지만 시집에는 사랑과 자연, 생활의 온기도 함께 담겨 있다. 우리 삶 안에서 그 감정들이 나란히 존재하듯 시들도 여러 결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 일상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마음을 서둘러 정리하라는 말보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문장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닿을 것 같다.
고등학교 국어 시험 이후 이렇게 시를 자주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이 좋다. 시험의 답을 찾던 때와 달리 내 마음에 남는 이유를 찾으며 읽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시집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다음에 소나무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늦추고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조금 지친 날에는 「희망」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시가 내 생활에 들어와 사물을 다시 보게 하고, 마음을 살피게 한다.
요즘 시를 자주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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