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확장 - 먹는 경험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 그리고 사람
최연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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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AI(로봇)가 만든 식단에 엄마의 마음도 담길 수 있을까/최연미 《식탁의 확장》 

책 표지에 적힌 “먹는 경험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 그리고 사람”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지는 질문은 더욱 흥미로웠다.

“AI는 우리의 식탁, 관계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취향을 읽는 기술에서 사람을 모으는 브랜드까지, 미래의 식탁에서 발견하는 함께 먹는 경험의 가치”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이 책이 단순히 미래 음식과 푸드테크만을 다루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의 확장》은 AI와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도심 농장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이 우리의 음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책이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우리는 왜 함께 먹으려 하는가.
맛은 어떻게 기억이 되는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에도 식탁에는 사람이 필요할까.



F&B 현장에서 24년을 보낸 저자가 바라본 미래

저자 최연미는 글로벌 F&B와 소비재 분야에서 24년 동안 브랜드의 성장과 확장을 이끌어 온 전문가다. 쉐이크쉑, 팀홀튼, 블루보틀커피, 에그슬럿 등의 국내 론칭과 성장에 참여했고, 여러 식음료 브랜드의 유통과 시장 확대 전략을 총괄했다.

기업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강연과 자문, 집필 활동으로 나누며 리테일 산업과 소비 트렌드, 기술 변화를 연구해 왔다. 《AI 마케팅 인사이트》와 《브랜드 인사이트》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하고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다든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기술을 먼 미래의 신기한 발명품으로 바라보는 시선보다 그것이 실제 식당과 브랜드, 소비자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현장감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않고, 기술 때문에 인간적인 식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비관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기술과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함께 먹는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27개의 이야기

책은 모두 5장, 2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우리는 왜 함께 먹고 싶어 하는가’는 “밥 먹었어?”라는 우리말 인사에서 출발한다. 함께 먹는 행위가 생존과 환대, 신뢰와 공동체를 만들어 온 과정을 살핀다. 미각이 데이터가 되고 AI가 취향이 맞는 낯선 사람들을 식탁에 연결하는 모습, 발효 공동체와 소셜 다이닝, 식사 패턴의 변화를 통해 외로움을 감지하는 기술도 소개한다.

2장 ‘부드러운 개입, 깊어지는 대화’에서는 레스토랑이 손님의 취향과 기억을 어디까지 보관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주문 이력과 생체 정보, 장내 미생물, 감정 데이터를 활용한 초개인화 식단이 등장한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식사, AI가 설계한 코스 대화 식사, 예방의학으로서의 음식도 다룬다.

3장 ‘움직이는 식탁’에서는 식탁의 고정된 주소가 사라진다. 자율주행차 안에서 식사하고, 이동식 주방과 푸드트럭이 달리며, 드론이 섬과 산간 지역에 음식을 배달한다. 클라우드 키친과 모듈 레스토랑은 필요에 따라 분리되고 결합하며, 도심 수직 농장은 식재료 생산지를 소비지 가까이 옮긴다. 식탁은 도시를 넘어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4장 ‘다시 설계되는 맛과 감각’은 맛이 혀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리와 빛, 향과 식기의 무게, 공간의 분위기가 맛을 바꾼다. 사라진 식재료를 복원하고 종자를 보존하며, 요리사의 손동작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기술도 등장한다. 전기 자극으로 짠맛을 전달하고 홀로그램과 원격 식탁을 통해 떨어진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경험도 만든다.

5장 ‘로봇이 요리할수록 모여드는 사람들’에서는 자동화 주방과 3D 푸드 프린터, 조리 로봇과 공유 주방을 보여준다. 사람이 주방에서 줄어들수록 오히려 식탁 위의 대화와 만남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역설적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알고리즘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관계까지 설계할 수는 없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기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과 관계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출발점은 AI와 데이터지만 도착점은 결국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알고리즘은 나의 취향을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내가 배달 앱에서 어떤 메뉴를 여러 번 클릭했는지, 어떤 날 매운 음식을 찾았는지, SNS의 어떤 음식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데이터는 기록한다.

여기에 혈당과 수면 상태, 알레르기, 질환, 장내 미생물 정보까지 결합하면 그날의 몸에 맞는 메뉴도 추천할 수 있다.

AI는 취향을 읽는 데서 더 나아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맛을 설계한다. 도심 농장은 필요한 식재료를 소비지 가까이에서 길러내고, 로봇은 일정한 맛으로 음식을 조리한다. 자율주행 식당과 드론 배달은 식탁의 위치마저 바꾼다.

이러한 기술은 분명 유용하다. 알레르기나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안전한 메뉴를 제공하고, 고립된 노인의 식사 패턴 변화를 알아차리며,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까지 음식을 운반할 수 있다.

기술은 누군가에게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생명과 연결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추천이 곧 좋은 식사인 것은 아니다. 효율적으로 만든 음식이 반드시 오래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성분과 조리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같은 맛이 되는지, 영양이 완벽하면 함께 먹는 즐거움이 없어도 괜찮은지 묻게 된다.

AI가 만든 식단과 영양사의 역할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영양사 자격을 취득한 나에게 이 책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식단을 작성하는 일만 놓고 보면 AI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개인의 나이와 성별, 신체 조건, 활동량은 물론 혈당과 알레르기, 질환, 복용 약물, 장내 미생물과 같은 건강 데이터까지 분석해 맞춤형 식단을 제안할 수 있다.

영양소와 열량을 계산하고 질환에 따라 피해야 할 음식과 필요한 영양소를 구분하는 일은 앞으로 AI가 사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도 있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질환까지 고려한 식단을 작성하는 것은 AI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영양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영양사의 역할이 단순히 열량과 영양소를 계산해 식단을 작성하는 일에만 머문다면 언젠가는 AI와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생활환경과 경제적 상황, 음식 문화와 감정, 가족관계와 기억까지 살피며 실제로 먹을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식사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아무리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식단이라도 먹는 사람이 외면하면 의미가 없다. 질환에 적합하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계속 제공한다면 그 식단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사람은 영양성분표만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기억과 취향, 현재의 감정과 관계 속에서 먹는다.

그래서 영양사는 앞으로 단순히 식단을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식사를 통해 그 삶을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식단과 엄마의 마음

AI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질환을 고려해 최적의 식단을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말하며 밥 한 그릇을 건네는 엄마의 마음까지 식단에 담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가족의 얼굴을 보고 오늘 무엇을 먹여야 할지 생각한다. 유난히 지쳐 보이는 날에는 따뜻한 국을 끓이고, 입맛이 없어 보이면 좋아하는 반찬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담는다.

수치와 질환을 분석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의 표정과 말투, 평소의 습관과 마음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식단이 반드시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밥상은 아니다.

영양소가 몸을 살린다면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차려 준 음식은 때로 마음까지 살린다. 음식에는 열량과 영양성분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돌봄이 들어 있다.

AI는 몸에 필요한 음식을 정확하게 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사람을 어루만지는 식단까지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AI가 외할머니의 어묵국을 만들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약 30년 전 외할머니가 끓여 주셨던 어묵국과 청국장찌개가 자꾸 떠올랐다.

외할머니의 어묵국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음식은 아니었다. 청국장찌개 역시 조리법만 본다면 지금도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가끔 그 맛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나도 만들어 보고 어머니도 끓여 보았지만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바로 그 맛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훗날 AI가 나의 취향과 건강 상태를 모두 분석할 수 있게 되면 내가 좋아할 만한 어묵국을 만들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싱겁거나 짠 정도, 국물의 농도, 어묵의 식감까지 세밀하게 조절할지도 모른다.

외할머니의 요리 영상을 충분히 학습하고 손동작과 불의 세기, 조리 시간을 데이터로 남긴다면 더욱 비슷한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나에게 최적화된 어묵국’이 아니다. 외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바로 그 한 그릇이다.

그 맛에는 음식의 성분만 들어 있지 않다. 외할머니의 목소리와 부엌의 냄새, 식탁에 앉아 있던 가족들, 그때의 계절과 어린 나의 마음이 함께 들어 있다.

외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과 “더 먹어라” 하시던 말까지 한 그릇 안에 겹쳐 있다.

기술은 조리법을 복원할 수 있고 사라져 가는 손기술을 기록할 수 있다. 종자와 식재료를 보존하고 레시피를 재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 속 음식은 레시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과 시간, 장소와 관계가 모두 모여 하나의 맛이 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맞춤 식단이 놓칠 수 있는 것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개인화가 정교해질수록 함께 먹는 행위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가족 구성원마다 장내 미생물과 혈당, 알레르기와 취향에 맞춘 음식이 제공된다면 한 식탁에 앉아도 모두 다른 식사를 하게 된다.

그릇은 나란히 놓여 있지만 음식은 공유되지 않는다. 숟가락이 한 냄비로 향하지 않고 “이것도 한번 먹어 봐”라고 권하는 일도 사라질 수 있다.

효율과 건강만 놓고 보면 각자에게 최적화된 식사가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먹는 이유는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반찬을 건네고 음식을 나누는 동안 서로의 상태를 살핀다. 식탁에서 꺼내지 못했던 말을 꺼내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마음을 전한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식사 사례가 깊게 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슬픔 앞에서는 말이 늦게 나오지만 음식은 말보다 먼저 경계를 낮춘다.

함께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AI가 대화에 어울리는 코스의 순서와 분위기를 설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꺼내고 어떤 침묵을 지켜 줄지는 사람의 몫이다.

기술은 대화가 시작될 무대를 마련할 수 있지만 대화의 내용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식탁이 이동하고 주방에서 사람이 줄어들어도

자율주행차와 이동식 주방, 드론 배달, 모듈 레스토랑을 다룬 부분에서는 미래 도시의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자동차가 이동 수단을 넘어 식사 공간이 되고, 건물에 고정되지 않은 주방이 수요에 따라 이동한다. 로봇은 여러 주방을 동시에 관리하고 도심 농장에서 수확한 식재료는 짧은 경로로 식탁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는 주방과 무인 배달이 늘어나면 식사가 더 고립된 행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은 또 다른 가능성도 보여준다.

로봇이 반복되는 노동을 맡으면 사람은 손님을 바라보고 대화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주방에서의 고된 노동이 줄어든 자리에 관계를 돌보는 일이 남을 수 있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기술로 확보한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에 있다.

로봇이 요리하는 동안 모두가 각자의 화면만 바라본다면 식탁은 더 조용해질 것이다. 반대로 음식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데 쓰던 시간을 서로에게 돌릴 수 있다면 기술은 식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기술로 연결하고 사람으로 완성한다

《식탁의 확장》은 기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하지도 않는다.

기술이 더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사람이 해야 할 선택이 선명해진다고 말한다.

알고리즘은 메뉴를 고를 수 있다.
브랜드는 식탁을 차릴 수 있다.
AI는 건강과 질환을 분석해 식단을 작성할 수 있다.
로봇은 정확한 온도와 시간으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식탁에 앉을 사람을 결정하고 약속을 잡고, 서로 다른 시간을 맞추고, 음식을 나누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지, 상대의 말을 얼마나 오래 들어 줄 것인지,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관계를 이어 갈 것인지는 데이터가 대신 결정할 수 없다.

책을 덮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만드는 미래는 디지털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우리가 진정 원하는 식사의 완성은 여전히 아날로그가 아닐까.

앱으로 만남을 정하고 AI의 추천으로 메뉴를 선택하며 로봇이 음식을 만들어도 마지막에는 사람이 사람을 마주 본다.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같은 음식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서로의 표정을 읽는다. 기술은 연결의 조건을 만들지만 관계는 그 연결 이후부터 시작된다.

내가 외할머니의 어묵국과 청국장찌개를 그리워하는 이유도 결국 음식만을 그리워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음식을 먹던 시간과 그때 함께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되돌려 줄 수 없는 맛이 있다는 사실은 아쉽다. 그러나 어쩌면 그래서 사람의 식탁이 더욱 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음식을 다루는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

이 책은 현재 영양사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AI 시대의 영양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영양학적으로 정확한 식단과 사람이 실제로 먹고 싶은 음식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기술은 주문을 예측하고 재고를 관리하며 손님의 취향에 맞는 메뉴를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손님이 다시 그 식당을 찾게 만드는 것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환대받았던 기억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온기일 수 있다.

푸드테크와 외식산업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 식품과 영양을 공부하는 사람,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음식이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겠다.

《식탁의 확장》은 미래에 무엇을 먹게 될지를 알려 주는 책인 동시에, 우리가 왜 여전히 함께 먹어야 하는지를 되묻는 책이다.

식탁의 영역이 자동차와 하늘, 우주로까지 확장되고 맛과 영양이 데이터로 바뀌더라도 결국 식사의 중심에는 사람이 남는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수록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하나다.

오늘, 누구와 함께 밥을 먹을 것인가.

AI는 식단을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식단을 따뜻한 밥상으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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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나를 넘길 때
함현수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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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이 나를 골랐다고 느껴지는 순간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책을 고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이 나를 골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운명적인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서점의 수많은 책 가운데 유난히 한 권이 눈에 들어오고, 무심코 펼친 페이지의 문장이 그날의 마음을 정확하게 건드린다. 마치 지금의 나를 알고 있었다는 듯 오래 품고 있던 질문에 말을 걸어 온다.

어쩌면 그런 순간이 바로 ‘책장이 나를 넘길 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이 나의 지난 시간과 마음을 한 장씩 펼쳐 보고 있었다.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감정을 꺼내고,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에 질문을 던지며, 미뤄 두었던 행동을 시작하게 했다.

함현수 작가의 『책장이 나를 넘길 때』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담은 책이다. 표지에 적힌 ‘읽음을 넘어 살아 내는 방식으로, 책이 다시 나를 펼쳐 낸 순간들’이라는 문장이 이 책의 의미를 잘 보여 준다.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책에서 만난 문장을 자신의 현실에 어떻게 대입했고, 그 문장이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멈춰 선 자리에서 책을 펼친 사람

함현수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글로벌 외국계 기업에서 상품기획 업무를 해 왔다. 빠르게 돌아가는 조직 안에서 성과와 결과를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2020년 초 코로나19로 세상이 갑자기 멈추면서 작가의 일상에도 예상하지 못한 공백이 찾아왔다. 출근길은 텅 비었고 ‘잠정 중단’과 ‘무기한 연기’라는 말이 일상을 채웠다.

그때 작가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그 질문 앞에서 느낀 막막함을 해소하기 위해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시작한 독서였지만 책 속의 문장들은 점차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책은 지식을 쌓는 도구를 넘어 생각과 감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삶으로 스며들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었다. 『책장이 나를 넘길 때』는 그렇게 책을 통해 내면의 불씨를 발견한 한 사람이 그 불씨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기 위해 쓴 기록이다.



두려움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목차

책은 프롤로그 「멈춤이 일깨운 또 다른 시작」에서 출발한다. 전체 목차는 한 사람이 멈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다시 세우며, 관계와 현실 속으로 돌아오는 과정처럼 구성되어 있다.

1부 「두려움이 극복의 신호가 되어」에는 「멈춤의 순간, 책과 만나다」, 「두려움의 정체를 직면하다」, 「작은 용기가 세상을 흔든다」가 담겨 있다. 두려움을 무조건 없애야 할 감정으로 보지 않고,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알려 주는 신호로 바라본다.

2부 「나로 서는 법」에서는 「혼자가 주는 선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다」, 「행동이 이끄는 변화」, 「흔들려도 지켜야 할 나」, 「넘어짐을 새 출발로 삼다」를 통해 혼자 있는 시간과 타인의 평가, 행동과 실패의 의미를 돌아본다.

3부 「관계 속에서 단단해지다」에는 「함께할 때 완성되는 강함」,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 「관계를 다시 설계하다」가 이어진다. 혼자 견디는 것만이 강함이 아니며,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고 자신의 마음을 책임 있게 표현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한다.

4부 「불확실한 시대를 견디는 힘」은 「혼돈 속에서 중심을 잡다」, 「계속 이어 가는 힘」, 「어둠 속에서 빛을 붙들다」, 「나 자신을 믿는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확실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태도를 다룬다.

5부 「미래를 열어 가는 상상력」에는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 「책이 여는 가능성」, 「습관이 만드는 내일」, 「함께 자라는 공동체」가 담겨 있다. 한 사람의 독서와 작은 행동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마지막 에필로그 「다시 세상을 향해」에 이르면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다시 현실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두려움에서 출발해 자신과 관계를 돌아보고, 불확실한 현실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두려움은 나를 멈추게 하는 감정만은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두려움을 피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준비가 부족하거나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두려움이 생기면 더 많이 준비하려 했고, 확신이 생길 때까지 결정을 미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두려움이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감정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패가 두려운 것은 그만큼 잘해 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타인의 평가가 두려운 것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려고만 하면 정작 그 안에 숨어 있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작가는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그 정체를 구체적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실패했을 때 무엇을 잃게 되는가.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감정에 끌려가기보다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책에서 다룬 ‘혼자 있는 시간’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이나 고립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작가는 흩어진 마음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으로 바라본다.

주변의 요구에 맞춰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놓치기 쉽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움직이는 동안 자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혼자 있는 시간은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이 아니었다. 타인의 목소리를 잠시 내려놓고 내 안의 질문을 듣는 시간이었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지금 무엇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지를 살피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혼자 있을 때마다 반드시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쉬는 동안에도 다음 계획을 세우고, 해결하지 못한 일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혼자 있는 시간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이루는 데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때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마음을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법

살다 보면 선택의 기준이 나에게 있는지 타인에게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면서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를 먼저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리고도 분위기를 흐릴까 봐 삼킨다.

나의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인정받기 위해 고른 선택도 있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감추고, 미움받지 않기 위해 침묵한 순간도 있었다.

작가는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내 삶의 모든 선택을 대신하지 않도록 자신의 기준과 목소리를 다시 선택의 자리에 놓는 일이다.

침묵이 언제나 배려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말하지 않는 배려는 때로 자신을 지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계속 뒤로 미룬다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쌓인다.

필요한 것은 감정을 쏟아 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진심을 상대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책임이다. 정직함과 진정성, 상대에 대한 존중이 함께할 때 말은 관계를 끊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다리가 된다.


남의 갑옷보다 나의 물맷돌을 선택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도 인상 깊었다. 다윗이 골리앗과 같은 방식으로 싸우려고 했다면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윗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자신이 가장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맷돌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의 성공 방식이 나에게도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도구가 나에게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무거운 갑옷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사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일을 배울 때 이미 성공한 사람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더 빠르고, 더 크게, 더 완벽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마다 가진 경험과 조건, 능력과 목표가 다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부족함을 핑계로 기준을 낮추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기 전에 나의 조건과 강점, 경험을 살펴보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행정사로 새로운 길을 시작한 나에게

나는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행정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개인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의 사정과 불안을 마주한다. 서류 한 장 뒤에도 누군가의 절박한 사정과 앞으로의 삶이 놓여 있다. 정답이 바로 보이지 않는 일도 많고, 처음 선택한 방법이 막히면 현실을 다시 살피며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시작되는 지점을 정확히 확인하는 일이라는 내용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현실에 굴복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 된다.

행정사 업무에서도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 학교와 기관, 전문가와 협력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도움이 필요할 때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책임 있는 협력이다.

혼자 견디는 힘도 필요하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누군가의 손을 향해 다가가는 것도 깊은 강함이라는 책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넘어짐을 새 출발로 삼는다는 것

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실패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젊을 때는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 번의 선택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

책은 실패를 존재 전체에 대한 판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패는 내가 무가치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선택한 방법과 준비 상태를 다시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기록이다.

실패했을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시도할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계속 이어 간다는 것도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때로는 지치고 흔들리고 멈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멈춘 뒤에도 다시 자신의 길로 돌아오는 힘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작은 시작

이 책은 마음을 다잡는 데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을 미룰 때 숫자를 세고 곧바로 가장 구체적인 첫 행동을 시작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완벽하게 준비된 뒤 시작하려 하면 시작할 수 있는 날은 계속 뒤로 밀린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실패할 이유와 미뤄야 할 이유도 함께 늘어난다.

전화를 한 통 걸고, 문서의 첫 문장을 쓰고, 필요한 자료 하나를 찾는 일처럼 작고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거대한 결심보다 오늘 반복하는 작은 행동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

“지금, 아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변화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고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때 시작된다.




읽는 사람에서 살아 내는 사람으로

『책장이 나를 넘길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독서를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일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을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기록하고, 현실에서 실천한 뒤 다시 돌아본다. 많은 책을 빠르게 읽는 것보다 한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자신의 생활에서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참고 문헌도 인상 깊었다. 『미움받을 용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다윗과 골리앗』, 『옵션 B』, 『5초의 법칙』,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그릿』,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등 다양한 책이 소개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 마틴 루서 킹, 줄리언 트레저, 브레네 브라운 등의 강연도 함께 담겨 있다. 참고 문헌은 단순한 출처 목록을 넘어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다음 독서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또 하나의 독서 안내서가 된다.

이미 잘 알려진 책과 익숙한 개념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새로운 이론 하나를 강하게 주장하는 데 있지 않다. 여러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작가 자신의 멈춤과 실패, 관계와 행동을 통과시켜 다시 해석했다는 데 있다.

문장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책이 나를 넘기고 난 뒤

『책장이 나를 넘길 때』는 책을 많이 읽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다.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어떻게 삶으로 옮길 것인지를 묻는 책이다.

책을 덮는 순간 독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진짜 독서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 문장이 나의 선택을 바꾸고, 한 번의 선택이 작은 습관을 만들며, 그 습관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새로운 울림을 전할 수 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순간,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던 과정, 두려우면서도 한 걸음씩 내디뎠던 시간을 떠올렸다.

완벽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확신이 있어서 모든 선택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다시 움직였다. 이 책은 그 작은 움직임들이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처음에는 내가 이 책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건네기 위해 이 책이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책장이 나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내가 책장을 넘기는 동안 책도 조용히 나를 넘긴다. 감추고 있던 두려움과 미뤄 둔 질문을 발견하고,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장을 보여 준다.

그다음 장에 무엇을 쓸지는 결국 나의 몫이다.

불확실한 현실 앞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미뤄 온 사람, 좋은 책을 읽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아쉬웠던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책을 읽는 사람에서 책을 살아 내는 사람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싶은 이에게 『책장이 나를 넘길 때』는 조용하지만 따뜻한 시작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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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 - 어쩌면 당연했던 흔들림의 기록
한정환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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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생에도 정확한 레시피가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재료를 넣고 적당한 시간 동안 기다리면 원하는 결과가 완성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성실하게 일하면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레시피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무리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길에서도 흔들린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며, 실패했다고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의미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정환 작가의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앞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누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을 거쳤는지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기록에 가깝다.


사람의 결과보다 그가 걸어온 길을 바라본 한정환 작가

한정환 작가는 CJ푸드빌 외식 상품팀에서 운영과 기획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외식 브랜드 기획과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서울 사는 남자’를 운영하며 여러 식당과 카페를 찾아다니고 있다.

작가는 유명한 가게의 성공 비결이나 매출보다 그 공간을 만든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저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을 품었다.

그 질문을 따라 만난 열두 명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요리와 커피를 만났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주변의 반대를 견디며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마주했고, 자신의 결정이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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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목차와 내용

1부 ‘마음이 향한 곳’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그 마음을 따라 새로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처음부터 분명한 꿈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놓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2부 ‘흔들림 속에서’에서는 실패와 방황,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부 ‘일 너머의 삶’에서는 성공이나 성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건강과 관계, 기다림과 나다움처럼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돌아봐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성공담이 아니라 흔들림에 관한 기록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장님들이다. 그러나 책은 화려한 성공의 결과보다 그들이 겪은 실패와 방황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여러 일을 경험했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뒤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게를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건강을 잃은 뒤에야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특별한 사람들의 성공담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확신에 찬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렵고 불안했지만 일단 시작했고, 실패하면 방법을 바꾸었으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났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는 시간도 삶의 일부이며, 그 과정이 결국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준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은 왜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가

음식에는 레시피가 있다. 정해진 재료와 순서를 따르면 비슷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레시피를 사용해도 만드는 사람과 재료, 온도와 환경에 따라 맛은 달라진다.

인생은 음식보다 훨씬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매일 즐거운 것도 아니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해진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기준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실패하면 방법을 바꾸고, 잘못된 길을 걸었다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 인생은 완성된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든다는 것

책 속 인물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현실적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게를 운영하려면 음식을 잘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용과 직원, 손님과 공간을 관리해야 하며 예상하지 못한 문제도 끊임없이 해결해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일을 시작하게 하지만, 그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책임감과 꾸준함이었다.

자신의 취향만 고집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의 기준에 자신을 완전히 맞춰서도 안 된다. 결국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는 시간

책에서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계절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이른 나이에 자신의 자리를 찾고, 누군가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의 속도와 비교하면 자신의 시간은 늘 늦게 느껴진다.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한 시간도 결국 자신의 일을 감당할 힘을 만드는 과정이 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묵묵히 경험을 쌓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자신의 계절이 찾아온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는 일이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일 수 있다.


혼자보다 함께 오래가는 법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서는 관계의 중요성도 발견할 수 있다. 혼자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할 때 더 큰 힘이 만들어진다.

서로 잘하는 것이 다를 때 그 차이를 경쟁의 이유로 삼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는 태도도 필요하다.

동업이나 협업에서 중요한 것은 능력만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필요하다. 혼자 살아남으려는 욕심보다 함께 살아남으려는 마음이 결국 더 오래가는 힘을 만든다.




죽음의 문턱에서 깨닫는 삶의 기준

이 책에는 건강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의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의 순서가 달라진다. 잘못된 길을 갔다면 다시 돌아오면 되고, 실수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된다. 결국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다시 시작할 기회도 생긴다.

“별일 아니다”라는 마음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삶을 지나치게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일 수 있다.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고, 잠시 멈춘 뒤 다시 가면 된다.

미숙함과 실패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오히려 삶을 오래 지속하게 한다.


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며 깊이 공감한 이야기

나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행정사 사무소를 시작했기에 책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사무소를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떤 방향으로 사무소를 운영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도 많았다.

처음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갖추면 모든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무소를 운영해 보니 지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행정 업무는 의뢰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같은 종류의 업무라도 준비해야 하는 서류와 설명해야 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듣고, 복잡한 절차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책임감 있게 함께해야 한다.

서류 한 장에도 한 사람과 한 가족의 삶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자주 느낀다. 단순히 서류를 접수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과 미래를 돕는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다른 사무소와 비교할 때가 있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내가 선택한 방향이 맞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한 것은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지키며 꾸준히 나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행정사 사무소 운영에도 정답이 적힌 레시피는 없다. 같은 방법이 모든 의뢰인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정답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결국 경험을 쌓고 실수에서 배우면서 나만의 방식과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책 속 인물들의 고민은 내가 사무소를 운영하며 겪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마주하고,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다시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나간다는 점에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사장이 되는 법보다 나를 찾는 법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는 장사나 창업의 기술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니다. 매출을 높이는 방법이나 성공한 가게의 운영 비결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발견하고, 그 일을 지켜내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나면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 내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힘들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기준은 무엇인지 묻게 한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났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잠시 멈췄다고 뒤처진 것도 아니다. 방황과 실패 역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된다.




인생은 살아가며 완성하는 레시피다

이 책은 빠른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려도 괜찮으며 자신의 속도로 다시 걸어가면 된다고 말한다.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삶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며 방향을 고민할 때마다 정답을 빨리 찾고 싶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지금의 고민과 시행착오도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준비가 끝난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하고, 부딪치고, 부족한 것을 배우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돌아보고, 내가 지키고 싶은 기준을 다시 세우면 된다.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는 사실은 불안하다.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자신만의 맛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다.

인생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선택과 실패, 기다림과 관계를 통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불안한 사람, 자신의 일이 맞는지 고민하는 사람,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 개인사업을 운영하며 방향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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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인생을 말한다 - 삶의 결정적 순간마다 길을 알려주는 그리스 신화 30
양승욱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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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오래된 신화에서 나를 돌아보다


양승욱 『신화는 인생을 말한다』/신화는 이정표이자 망치다

‘삶의 결정적 순간마다 길을 알려주는 그리스 신화 30.’

양승욱 작가의 『신화는 인생을 말한다』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문구다. ‘길을 잃은 인간을 위한 신들의 안내서’라는 소개도 궁금했지만, 가장 오래 생각하게 한 말은 “신화는 이정표이자 망치다”였다.

신화가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라는 말은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왜 망치일까.

책을 읽다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화 속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이 흔들린다. 용기가 있다면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궁에 들어간 영웅을 밖으로 이끈 것은 누군가 건네준 실 한 가닥이었다. 남을 돕는 일이라면 조금 더 무리해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인간에게 불을 건넨 신의 이야기를 읽고는 나에게도 쉴 시간을 남겨두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살다 보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그 일을 시작했는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생각을 한 번쯤 다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전에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신화를 오늘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양승욱 작가

양승욱 작가는 신화학자이자 교육자다. 책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동서신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동서양의 신화와 고전을 연구하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을 이어왔다. 지은 책으로는 『처음 읽는 오디세이아』, 『처음 읽는 일리아스』,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등이 있다.

나도 앞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어 아킬레우스와 페넬로페의 이름이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인물을 만나도 마음에 들어오는 장면이 달랐다. 전쟁의 흐름을 따라갈 때는 아킬레우스의 용맹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번에는 그가 단단한 갑옷 아래 감추고 싶었던 약점에 더 마음이 갔다.

각 장의 신화 이야기는 주로 ‘나’라는 1인칭 목소리로 펼쳐진다. 이어지는 **‘인문학적 해설’**에서는 그 인물이 내린 선택을 오늘날의 관계와 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비춰본다. 줄거리와 결말을 아는 이야기라도 당사자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따라가며 읽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여섯 가지 주제로 구성된 목차

책은 여섯 부로 나뉜다. 각 부에 다섯 편씩, 모두 서른 편의 그리스 신화가 담겨 있다.

  • 제1부 정체성과 욕망 — 나라는 심연을 들여다보기

  • 제2부 용기와 도전 — 두려움의 파도를 넘어 길 찾기

  • 제3부 고난과 역경 — 고통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기

  • 제4부 성공과 실패 — 권력과 선택의 무게

  • 제5부 지혜와 깨달음 — 시대의 진실을 투과하는 상처

  • 제6부 삶과 죽음 — 유한함이라는 이름의 거룩한 축복

차례대로 읽다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 힘든 시기를 어떻게 지나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지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한 권을 쭉 읽으면 이렇게 여섯 주제가 연결되는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서른 편의 신화 가운데 내가 고른 열두 인물

널리 알려진 신과 영웅의 이야기는 반가웠고,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몰랐던 인물에게는 새롭게 마음이 갔다. 그 가운데 각 부에서 두 인물씩 골라,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 어떤 생각을 남겼는지 따로 적어보았다.

1. 프시케와 페르세포네 — 확인하고 싶은 마음, 낯선 곳에서 찾은 나

프시케는 남편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언니들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 잠든 에로스에게 등불을 가져간다. 얼굴을 확인하면 불안이 사라질 것 같았지만,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이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지면서 둘 사이의 신뢰도 흔들린다.

작가는 이 등불을 오늘날 메신저의 읽음 표시나 접속 시간을 자꾸 확인하는 행동에 빗댄다. 화면의 작은 표시로는 상대의 마음까지 알 수 없는데도, 답이 늦으면 우리는 그 빈자리를 짐작으로 채우곤 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이 있어서 확인하는지, 내 불안을 잠시 덜고 싶어서 들여다보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페르세포네는 석류알을 먹은 뒤 지상과 지하 세계를 오가게 된다. 계절의 순환을 설명하는 신화로 익숙하지만, 이 책은 석류알을 삼키는 순간을 페르세포네 자신의 목소리로 그린다. 작가의 해석에서 그 장면은 예전과 똑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두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선택이다.

나도 직장을 떠나 내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익숙했던 자리에서는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낯선 시간을 지나고 나서 꼭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곳에 내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테세우스와 이아손 — 돌아올 길을 알려준 실, 항해가 끝난 뒤 남는 것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다. 하지만 그가 미궁 밖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 덕분이었다. 괴물을 쓰러뜨린 장면은 쉽게 기억하면서도, 돌아오는 길을 알려준 가느다란 실은 잊기 쉽다.

일을 할 때도 비슷하다. 마지막에 결과를 낸 사람은 눈에 잘 띄지만, 처음에 막힌 곳을 짚어주거나 방향을 잃었을 때 조언해준 사람의 도움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내가 해냈다고 생각했던 일 가운데에도 누군가 건네준 실을 붙들고 끝낸 일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얻기 위해 서로 다른 재능을 지닌 영웅들을 모아 아르고호를 이끈다.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목적을 이루지만, 돌아온 뒤에는 권력을 위해 그녀를 저버린다. 책은 이아손의 항해에 남극 횡단이라는 목표를 내려놓고 대원들의 무사 귀환을 선택한 섀클턴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는다.

한 사람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고, 한 사람은 처음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좋은 항해였는지 묻는다면 결과만 보고 답하기 어렵다. 일이 끝난 뒤 서로 어떤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지가 성과만큼 중요한 기준으로 다가왔다.

3. 프로메테우스와 레토 — 내 힘을 남겨두는 일, 흔들리는 곳에 발을 딛는 일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건넨 대가로 바위에 묶인다.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고, 밤사이 간이 다시 자라면 다음 날 같은 고통이 시작된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신의 용기는 익숙했지만, 이 책이 그의 이야기에서 회복할 시간을 지키는 일을 끌어낸 것은 뜻밖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한 일이 소중하다는 사실과 내가 쉬어야 한다는 사실은 함께 인정할 수 있다. 할 일이 남아 있으면 휴식부터 미루기 쉽다. 하지만 오래 마음을 쓰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내 힘을 남겨두는 것도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품고도 출산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돈다. 헤라를 두려워한 이들이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레토가 두 아이를 낳은 곳은 바다 위를 떠다니던 섬 델로스였다.

두 자녀의 이름에 가려져 있던 레토가 자기 목소리로 그 시간을 들려주는 점이 좋았다.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자리를 얻지 못했는데, 정작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곳은 흔들리는 섬이었다. 계획했던 길이 막혔을 때 모든 조건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내 발을 딛고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자리를 찾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아킬레우스와 다이달로스 — 갑옷 아래의 약점, 날개를 만든 사람의 책임

아킬레우스 하면 발뒤꿈치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 더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자기 갑옷을 입고 싸우다 죽은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전장에서 그토록 강했던 영웅도 가까운 사람을 잃는 슬픔 앞에서는 무력했다.

발뒤꿈치는 그를 쓰러뜨린 약점으로만 기억되었는데, 이번에는 그에게도 숨기고 싶은 두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이 먼저 보였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면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누군가 자기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 그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완벽해 보이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돌봐야 할 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았다.

다이달로스는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설계하고, 갇힌 곳을 벗어나려고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쓸 날개를 만든 장인이다. 그의 재능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것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살피는 데에는 기술과는 다른 판단이 필요했다.

일을 하다 보면 더 빠르고 편한 방법부터 찾게 된다. 다이달로스의 이야기 앞에서는 질문을 하나 더하고 싶어졌다. 이 방법은 실제로 누구에게 편한가. 내 일이 줄어드는 만큼 누군가의 일이 더 복잡해지지는 않는가. 미궁과 밀랍 날개 이야기가 내가 일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5. 아테나와 케이론 — 갈등에서 배우는 지혜, 아픔 앞에서 귀 기울이는 마음

아테나는 제우스가 극심한 두통을 겪은 끝에 그의 갈라진 머리에서 무장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작가는 이 탄생을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가 부딪친 뒤 새로운 지혜가 생겨나는 장면으로 읽는다.

아테나 하면 냉철한 판단력이 먼저 떠올랐는데, 이번에는 그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소란이 눈에 들어왔다. 의견이 다를 때는 내 말을 더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상대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들어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케이론은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여러 영웅을 가르치고 의술에도 능했지만, 독이 묻은 화살에 맞은 자신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에게도 자기 힘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상처가 있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겪어봤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해결책부터 내놓기보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케이론을 읽으며 내가 모르는 아픔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지혜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6. 페넬로페와 알케스티스 — 내가 지키고 싶은 시간, 기꺼이 내어주고 싶은 시간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 구혼자들의 압박을 받는다. 낮에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밤이면 그날 짠 부분을 풀어내며 시간을 번다. 『오뒷세이아』를 읽을 때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오는 여정을 따라갔는데, 이번에는 그가 돌아올 자리를 지킨 페넬로페의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낮에 짠 것을 밤마다 푸는 일은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 반복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이 정한 때에 남이 원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페넬로페의 베틀을 보며 서둘러 답을 내놓으라는 요구 앞에서 내게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일도 인내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케스티스는 남편 아드메토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나선다. 그 선택을 읽으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얼마를 소중한 사람에게 내어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일이 조금 한가해지면 안부를 묻겠다고 생각한 사람,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삶에 끝이 있다는 사실은 무겁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작다. 미뤄둔 안부 한 줄을 먼저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신화를 읽으며 내가 걸어온 길과 지금 하는 일을 돌아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신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자꾸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생각하며 읽고 있었다.

직장을 떠나 내 일을 시작했던 때도 그랬다. 지나고 나서 보면 내가 결정하고 해낸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씩 되짚어보니 막막할 때 방향을 짚어준 사람도 있었고 혼자서는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실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던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행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데에도 이 책에서 얻은 생각들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여러 사람과 일을 진행하다 보면 기한을 맞추고 결과를 내는 데 마음이 쏠린다. 그럴수록 이아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일을 어떻게 끝냈는지와 함께 그 과정에서 서로의 신뢰를 어떻게 지켰는지도 돌아보고 싶다.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익숙한 절차가 처음 서류를 준비하는 분에게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일일 수 있다. 필요한 서류를 한꺼번에 설명하기보다 지금 먼저 확인할 것과 그다음에 준비할 것을 나눠 짚어주는 편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나에게는 짧은 안내 한마디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한 인물씩, 한 달 동안 읽어도 좋은 책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어도 좋지만, 목차에서 좋아하는 인물을 골라 먼저 읽어도 좋은 책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좋아했던 인물이 있다면 그 장부터 펼치고, 오늘 고민과 닮은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면 차례를 건너뛰어 읽어도 된다. 나처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인물들이 반갑다면 아킬레우스와 페넬로페를 먼저 읽고, 그다음에는 레토나 케이론처럼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인물에게로 옮겨가도 좋겠다.


하루에 한 인물의 이야기씩, 서른 편을 한 달 동안 나누어 읽는 방법도 마음에 든다. 하루 한 장이면 이야기와 해설을 읽고, 마음에 남은 질문 하나를 내 일에 비춰볼 여유가 있다. 인물의 이름과 줄거리만 기억하는 것보다, 그날의 내 상황과 연결해 한 줄이라도 적어두면 나중에 책을 다시 펼쳤을 때 그때의 생각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

이렇게 천천히 읽기에 좋은 이유는 **‘성찰의 거울’, ‘일상의 의식’, ‘영혼의 방화벽’**이라는 구성에 있다. ‘성찰의 거울’은 신화에서 출발한 질문을 내게 돌려준다. ‘일상의 의식’은 그 질문을 행동으로 옮길 방법을 제안한다. ‘영혼의 방화벽’은 내 시간과 마음이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습관에 경계를 세워보게 한다.

테세우스 편을 읽은 날에는 일이 복잡하게 얽혔을 때 오늘 꼭 해야 할 한 가지를 종이에 적어 책상 앞에 둘 수 있다. 프시케 편을 읽은 날에는 상대의 읽음 표시를 다시 확인하고 싶을 때 잠시 멈춰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 편을 읽은 날에는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침실 밖에 두고 쉬는 시간을 지켜봐도 좋겠다.

하루에 한 장을 읽고 그날 해볼 만한 행동을 하나만 고르는 것. 그렇게 한 달을 보내면 서른 편의 신화가 책 속에만 머물지 않고, 내 생활을 돌아보는 서른 번의 기회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

살다가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오래 해온 일을 계속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망설이는 때라면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내가 원하는 것과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큰 고민이 없는 평상시에도 자기계발을 위해 읽어볼 만하다. 특히 나처럼 사무소를 운영하거나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분이라면, 목표를 이루는 데 집중하다 놓치기 쉬운 도움과 신뢰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가 가깝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지만 지금까지 인물의 이름과 줄거리 위주로 읽어온 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예전에는 영웅이 무엇을 해냈는지가 궁금했다면, 이번에는 그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누구의 도움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책을 덮으며 — 나의 서른한 번째 장

책의 끝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31번째 장’의 자리를 남겨둔다. 서른 편의 신화를 읽고 난 뒤에는 각자의 삶에서 그다음 장을 써 내려갈 차례라는 뜻이다.

책을 덮으며 처음 눈에 들어왔던 이정표와 망치를 다시 생각했다.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며 펼친 책이었는데, 읽는 내내 더 자주 들여다본 것은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내 힘으로만 해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누군가 건네준 실이 있었고, 돌아보니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실을 건넬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의 서른한 번째 장에는 내일 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적고 싶다. 막막한 마음으로 찾아온 분에게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을 차분히 알려주는 것. 내가 막막했을 때 누군가 건네준 도움을 기억하며, 나도 그렇게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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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분위기다
권오희 지음 / 온숲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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춣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교육은 분위기다』/아이들은 말보다 공기를 먼저 배운다


분위기가 바뀌면 아이들의 삶이 바뀐다

권오희 작가의 『교육은 분위기다』는 교육의 본질을 지식이나 성적, 교수법이 아닌 ‘분위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다.

우리는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 좋은 학교와 학원, 교재와 프로그램을 찾는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많은 것을 준비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눈에 보이는 교육과정보다 아이가 매일 숨 쉬는 공기와 같은 분위기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가르치는 말만 배우지 않는다. 부모의 표정과 말투, 교사가 실수를 대하는 방식, 친구들과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질문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까지 배운다.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 된 공간에서는 비교와 경쟁을 배우고, 환대와 존중이 흐르는 공간에서는 사람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그래서 책 제목인 ‘교육은 분위기다’라는 문장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교육은 특별한 수업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교회와 공동체에서 날마다 만들어지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길어 올린 권오희 작가의 이야기

권오희 작가는 북한이탈주민 교육자이자 제주 기독교 대안학교 ‘나무와숲학교’의 설립자이며 교장이다. 제주성안교회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20년 넘게 청소년과 청년, 다음 세대를 만나 왔다.

오랫동안 교회와 학교, 청소년 사역과 교육 현장을 오가며 “우리는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경쟁과 성취가 교육의 중심이 된 시대에 아이들이 존재와 배움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교육을 꿈꾸며, 제주에서 나무와숲학교를 세워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질문하고 실패하며 다시 시작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작가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거나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보다 삶을 통해 배우고, 교실의 수업만큼이나 학교의 관계와 문화, 일상의 분위기 속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랜 시간 품어 온 교육에 대한 고민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론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과 실제로 살아가며 발견한 교육의 본질을 기록한 책이기에 내용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목차로 살펴보는 책의 흐름

『교육은 분위기다』는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저자가 왜 교육을 ‘분위기’라는 말로 설명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경험과 교육학적·신학적 관점을 통해 분위기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아이의 배움과 성장을 결정하는 환경임을 보여 준다.

2부에서는 우리 교육을 무겁게 짓누르는 나쁜 분위기를 살펴본다. 배제와 경쟁, 비교와 통제가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설명하고, 그 뿌리에 사람의 가치를 능력과 성과로 판단하는 능력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3부에서는 나쁜 분위기와 반대되는 좋은 교육의 공기를 소개한다. 환대와 관계, 존엄과 신뢰가 함께 흐를 때 아이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발견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4부에서는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어른의 모습을 다룬다. 자기 상처를 마주하고,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며, 따뜻함과 단호함을 함께 지닌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기쁨과 안식을 누릴 줄 아는 태도도 강조한다.

5부에서는 좋은 분위기가 개인의 선한 마음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구조와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만들고, 약한 사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때 환대와 존엄, 신뢰가 오래 이어질 수 있다.

6부에서는 아이가 경험한 분위기가 한 시절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의 삶과 관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좋은 공기 속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분위기를 건네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나쁜 분위기 ― 아이를 배움보다 먼저 분류하는 공기

책에서 말하는 나쁜 분위기는 배제·경쟁·비교·통제라는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에는 사람의 가치를 능력과 성과로 판단하는 능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가 말을 빨리했는지, 한글을 언제 뗐는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가 아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아이는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성적과 속도, 결과로 평가되는 대상이 된다.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와 같은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교육 안에서는 아이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이 ‘부족함’으로 바뀌기 쉽다. 빨리 피지 않는 꽃은 뒤처진 꽃으로 여겨지고, 다른 계절에 열매를 맺는 아이는 실패한 것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어떤 아이는 글로 배우고, 어떤 아이는 손으로 만들며 배운다. 어떤 아이는 질문을 통해 이해하고, 어떤 아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일찍 피는 아이도 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자기 계절을 만나는 아이도 있다.

배제의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배제는 반드시 노골적인 따돌림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의 분위기가 강해지면 친구는 함께 배우는 동료가 아니라 이겨야 하는 상대가 된다. 친구가 앞서가면 내가 뒤처지는 것처럼 불안해지고, 누군가의 성공이 나의 실패처럼 느껴진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점수와 순위를 계산하게 된다.

비교의 분위기는 아이에게 “너는 지금 모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통제의 분위기에서는 아이가 자기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힘을 배우기 어렵다. 

능력주의는 이러한 나쁜 분위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마다 출발점과 성장환경, 타고난 자원과 기회가 다르다. 한 사람의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부모와 가족, 교사와 공동체의 도움, 시대와 환경의 영향이 함께 작용한다.

교육이 아이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 묻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끊임없이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이런 교육은 아이의 호기심과 가능성을 발견해 주기보다 아이를 평가하고 분류하는 교육이 된다. 학교는 함께 성장하는 배움의 공동체가 아니라 선별과 경쟁의 장소가 되고, 친구는 함께 자라는 이웃이 아니라 넘어야 할 경쟁자가 된다.




좋은 분위기 ― 너는 여기 있어도 되고 혼자가 아니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분위기는 환대·관계·존엄·신뢰라는 네 가지 공기가 함께 흐르는 공동체다.

환대는 단순히 친절한 말 몇 마디를 건네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성적과 행동, 능력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의 존재로 반갑게 맞아 주는 태도다.

“이 점수를 받아야 여기 있을 수 있어”가 아니라 “너는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이다.

환대가 없는 공간에서 아이는 계속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잘못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혼나지 않으려고 숨으며,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포장한다. 그러나 환대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는 조금씩 방어를 내려놓는다.

좋은 관계는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관계가 아니다. 아이 곁에서 적절히 돕고, 때가 되면 손을 놓아 주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관계다.

책에서는 이를 건축 현장의 비계와 같은 ‘스캐폴딩’으로 설명한다. 건물을 세우는 동안에는 임시 구조물이 필요하지만, 건물이 완성되면 비계를 거두어 낸다. 부모와 교사의 도움도 마찬가지다.

존엄의 분위기에서는 아이의 가치가 성적이나 능력, 외모와 행동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잘했기 때문에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존중받는다.

존엄을 지켜 주는 교육은 무조건 칭찬하는 교육과는 다르다. 잘못한 행동은 분명하게 알려 주되, 잘못을 아이의 존재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 행동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너는 나쁜 아이야”라고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신뢰는 아이가 언제나 올바른 선택만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어른이 직접 결정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할 기회가 있어야 책임도 배울 수 있다.

환대와 관계, 존엄과 신뢰가 함께 흐를 때 아이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발견한다. 환대받는 아이는 “나는 여기 있어도 된다”고 느끼고, 관계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배운다. 존엄을 인정받으며 “나는 이미 소중한 사람”이라는 안정감을 얻고, 신뢰받는 경험을 통해 “나는 선택할 수 있다”는 힘을 기른다.

좋은 분위기는 완벽한 분위기가 아니다. 실수했을 때 다시 말할 수 있고, 상처를 주었을 때 사과할 수 있으며,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주는 회복 가능한 분위기다.

교육의 목표는 혼자 성공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을 길러 내는 데 있다. 누가 소외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어려운 사람 곁으로 다가가며,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이다.



좋은 분위기는 어른에게서 시작된다

책은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아이만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먼저 어른이 자신의 상처와 불안을 돌아보아야 한다.

어른이 해결하지 못한 상처는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릴 때 비교당했던 경험 때문에 아이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의 선택을 지나치게 통제하기도 한다.

좋은 어른은 완벽한 어른이 아니다. 자기 상처를 인정하고, 잘못했을 때 사과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려는 어른이다. 따뜻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무조건 엄격한 것도 아니다. 따뜻하지만 필요한 경계를 분명하게 세우고, 아이가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좋은 어른은 기쁨과 안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늘 조급하고 불안한 어른 곁에서 아이가 편안하게 숨 쉬기는 어렵다. 어른이 멈추고 쉬며 삶의 기쁨을 누릴 줄 알 때 아이도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떠올린 두 아들의 성장

이 책을 읽으며 어릴 때 두 아들을 키웠던 시간이 많이 떠올랐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던 시간과 그 시절 내가 했던 고민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성향도 달랐고 성장하는 속도도 정반대였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인데도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모두 달랐다.

그때는 두 아이가 왜 이렇게 다른지 몰라 많이 어려웠다. 한 아이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는 전혀 맞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려 할수록 아이도 힘들고 나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거나 강요하기보다 기다려 주는 교육을 선택했다. 아이가 자기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주고 싶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방법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주변의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내가 너무 느슨한 것은 아닌지,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흔들릴 때도 있었다.

부모 역할도 처음이었기에 나 역시 서툴렀다. 아이를 키우면서 실수도 했고, 후회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기다려 준 선택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왕복 다섯 시간의 통학에서 배운 끈기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예술고등학교를 집에서 통학했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데 왕복 다섯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나는 새벽 5시에 아이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었고, 아이는 첫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예술고등학교라 방학도 거의 없었지만, 큰아이는 3년 동안 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매일 그 긴 거리를 오가며 학교생활을 이어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나는 그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아이에게서 끈기와 책임감,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배웠다.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그 시절의 큰아이를 떠올린다.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묵묵히 첫차를 타러 가던 아이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나도 다시 힘을 내게 된다.

교육은 부모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삶을 바라보며 부모도 배우고 변화하는 일이었다.

형을 보며 인정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 둘째

둘째 아이는 그런 형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자랐다. 형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 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다른 사람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했다. 형과 경쟁하기보다 형의 수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큰아이가 말로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으로 동생에게 중요한 것을 보여 준 셈이다.

어쩌면 큰아이가 둘째를 성장시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가 서로 영향을 주며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또 성장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은 분위기다』에서 말하는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가 계획한 수업이 아니어도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스며들고, 그 공기 속에서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완벽한 교육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서로의 노력을 알아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두 아이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킨 것 같다.

성공한 아이보다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누군가 내게 아이들을 성공한 사람으로 키웠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기 삶을 살아가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준이 좋은 학교와 직장,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라면 아직 인생의 결과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성품만큼은 잘 자랐다고 말하고 싶다.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인정하며, 어려움을 만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남보다 앞서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웠지만 나 역시 아이들을 보며 성장했다. 큰아이에게서는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고, 둘째에게서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다.

나도 부모가 처음이었다. 부모라고 해서 모든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흔들리고 실패하면서 조금씩 부모가 되어 갔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도 함께 자랐다.

그래서 좋은 교육은 완성된 어른이 미완성의 아이를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다림도 교육이라는 깨달음

아이를 기다려 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속도를 믿고, 자기 힘으로 일어설 때까지 곁을 지키는 적극적인 사랑이다.

기다리는 동안 부모는 불안을 견뎌야 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싶은 마음, 더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조급함, 내가 대신 결정하면 더 쉬울 것 같은 유혹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정답을 알려 주는 부모가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만들어 주는 부모일 수 있다.

“괜찮아. 다시 해 보자.”

“너는 지금도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줄게.”

이런 메시지가 말뿐 아니라 가정의 분위기로 전해질 때 아이는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기다려 주는 교육은 아이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

기독교적 관점이 담긴 교육 이야기

권오희 작가는 목회자이자 기독교 대안학교의 교장이기 때문에 책 전반에 성경과 하나님 나라, 복음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독자에게는 일부 표현과 성경 인용이 다소 낯설거나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환대와 존엄, 기다림과 신뢰, 약한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 공동체의 가치는 종교를 넘어 모든 부모와 교사에게 필요한 교육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성적과 능력으로 판단하기 전에 한 사람의 존재로 바라보는 일, 실수했다고 관계를 끊지 않는 일, 소외된 아이를 다시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는 일,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도록 기다려 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교육적 가치다.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아이와 교육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 될 것이며, 비기독교인에게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가정·학교의 문화를 점검하게 하는 유익한 책이 될 수 있다.



교육은 아이에게 어떤 공기를 선물할 것인가의 문제

『교육은 분위기다』는 부모와 교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어른인가?”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무리 옳더라도 그 말이 비교와 불안의 분위기에서 전달된다면 아이의 마음에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조금 서툰 말이라도 사랑과 신뢰, 기다림의 분위기 속에서 전해진다면 아이에게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

교육은 아이를 내 기준에 맞게 바꾸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하고, 자기 속도로 성장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질문하고 도전하며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다. 아이가 “나는 여기 있어도 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미 소중하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배움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부모와 교사, 교육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교육에 관한 책이지만 교사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부모와 조부모, 목회자와 청소년 지도자, 아이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모든 어른에게 필요한 책이다.

아이의 성적을 높이는 구체적인 공부법이나 입시전략을 기대한다면 방향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지, 내가 아이에게 어떤 공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를 깊이 돌아보고 싶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아이가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아 조급한 부모,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불안해하는 부모, 교육현장에서 지쳐 있는 교사, 경쟁 중심의 교육에 의문을 느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좋은 교육은 좋은 방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말투, 기다리는 시간과 관계를 지키는 태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좋은 교육이 된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함께 자랐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아이들을 키웠다고만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다르게 보였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했지만, 아이들도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큰아이는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보여 주었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서로 다른 두 아이를 한 가지 기준에 맞추지 않고 기다려 준 시간, 형이 동생에게 삶으로 보여 준 시간, 부모인 내가 아이들을 보며 다시 힘을 얻었던 시간이 모두 우리 가족의 교육이었다.

교육은 특별한 순간에만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 5시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길에서도, 형을 바라보던 동생의 마음에서도,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던 시간 속에서도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어 온 그 공기 속에서 아이들도 자랐고 나도 자랐다.

『교육은 분위기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은 완벽한 계획이나 많은 지식만이 아니라, 언제든 편안하게 숨을 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결국 교육은 아이에게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르쳤는가보다 어떤 공기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자라도록 곁을 내어 주었는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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