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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 지성의 근본주의 ㅣ 비투비21 6
로버트 니스벳 지음, 강정인 옮김 / 이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필자는 한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나 신념이 그 사람이 처한 물적 조건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인성이나 인격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의 정치적 색깔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은 ‘싸잡아서 옹호하기’ 혹은 ‘싸잡아서 비판하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수구꼴통’이라는 단어나 ‘종북좌빨’이라는 단어나 모두 그 기원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서 나온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단어들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원색적인 욕으로, 때로는 ‘육두문자’를 섞은 욕보다 더 아픈 욕으로 다가온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누구나 ‘정치적인 욕’을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지만(필자도 예외는 아님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정작 더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 단어들의 뜻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해당 단어들을 사용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진보’와 ‘보수’는 점점 이해되지 않고 남용되고 있으며 ‘자유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보수주의’를 정확히 구분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한 구분이 서구적인 것이며, 한국 맥락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이 세 사상이 갈라지게 된 핵심인 산업화, 근대화, 자본주의화의 영향을 듬뿍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상에 대한 개념적 이해/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로버트 니스벳의 『보수주의』는 최소한 보수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기준을 가지고 해당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가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밝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보수주의를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오해’를 풀고 좀 더 정확한 역사적 맥락과 상을 그리기 위해 집필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수주의를 객관화·상대화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보수주의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들도록 우리가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수많은 정치인과 학자들 –버크, 토크빌부터 디즈레일리나 처칠까지-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개론서라도 각 사상의 거두들을 다루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주목할 것은 각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개별적 업적이라기보다는 “보수주의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 그 사상의 본질적인 통찰과 명제들, 그리고 그 지적인 논지”들이다.
책의 2장인 ‘보수주의의 교리’ 부분에 가장 많은 분량이 할당되어 있는데, 역사와 전통, 편견과 이성, 재산과 생명, 자유와 평등 등 핵심적인 개념에 대해 보수주의가 취하는 입장이 무엇이며, 어떤 맥락에서 그러한 입장이 형성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충분히 자세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포괄적으로 다루다보니 개별 내용을 심도 있게 파고들 수 없었던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논의의 포괄성 자체는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문제 삼을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교리’ 부분을 읽다 보면 보수주의가 앞에서도 언급한 계몽주의 이후의 본격적 근대화, 산업혁명(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본격적 도래 상황에 대해 날선 비판을 전개하였고, 그 중 일부 비판은 사회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보수주의의 귀결이나 전망에서도 다시 반복되는 부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와 사회주의(혹은 저자의 표현대로 급진주의)가 공유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음을 상기하게 해 준다. 이 지점은 맑스와 엥겔스도 『공산주의 선언』의 3장에서 ‘보수적 사회주의 혹은 반동적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하며 지적했던 부분이다. 초기에는 맑스주의자보다 보수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더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는 저자의 주장이 그들의 가장 중심적인 저작에서도 이미 확인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점은 보수주의의 귀결과 전망 부분에서 저자가 그의 ‘보수주의’와 레이건 이후의 신자유주의를 분리시켜서 사고하려고(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를 분리시키도록) 시도한 부분이다. 레이건 이후의 미국 정치와 사회 정책들의 흐름은 분명 신보수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고 ‘신보수주의자들의 경제 정책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라는 도식화된 설명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보수주의에 대한 오해 풀기’에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둘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개론서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 국가들의 부조리가 사회주의의 근간은 아님을 지적하는 부분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자의 서술이 완전히 정확할 수는 없을 것이나, 이 정도라면 기준을 가지고 보수주의를 이해하고, 현재 한국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 혹은 세력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이름표에 충실한지, 저자의 전망대로 한국에서도 급진주의와 보수주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큰 틀을 잡고 싶어 하는 독자에게는 충분히 훌륭한 개론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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