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의 겉과 속 - 모든 문화에는 심리적 상흔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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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방대한 분야에 대해 자신의 독단적인 생각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참고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에서는 그의 내공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책에 실린 몇몇 글들은 우리가 대충 이런 식 아닌가?’라고 논쟁을 종식시키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는 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글들이 이러한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저자가 전공 분야에 대해 쓴 다른 책들을 읽어보았기에 그 저작들과 비교가 된다(물론 이 책의 예상 독자는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겠으나, 예상 독자가 다름을 고려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내용 측면에서는 큰 불만은 없다. 책에 대한 불만은 이런 책을 양질의 종이를 사용하여 무거운 양장본으로 만들고, 적지 않은 가격표를 붙여서 독자들에게 내 놓은 점에서 더 크게 제기하고 싶다. 솔직히 이름에서부터 무게가 느껴지는 인문, 철학, 사회과학 고전처럼 책상 앞에서 노트 필기를 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다. 차라리 두 권으로, 좀 더 가볍고 저렴하게 만들어서 휴대성을 높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저자가 전달하는 말의 깊이가 낱장의 질이나 양장본의 무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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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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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뉴욕대학교에서 선정한 “20세기 미국의 100대 저널리즘 저작목록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 목록을 보여준 분은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였는데, 상위권에 올라간 보도나 단행본들을 소개하던 중 7위를 차지한 이 책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존 리드는 좌파 언론인이고, 러시아 혁명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지만, 그 뛰어난 현장감 때문에 상위권에 올라왔는데,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라는 식의 설명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이에 동감하면서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 계절학기 때 러시아 혁명사에 대해 몇 주간 배우면서 수업의 연장선상에서라도 꼭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책은 예전에 구매했지만 7월 말의 바쁜 일정 때문에 열어보지 못했고, 바쁜 7월이 끝나고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 리드와 함께 혁명의 현장에 점점 깊숙이 들어가면서,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흥분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중립성, 객관성의 입장에서 러시아 혁명 중 보고 들은 것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볼셰비즘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는 별도로, 러시아 혁명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사건이었음을, 또 볼셰비키의 등장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현상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가들이 기록을 뒤져서 파리코뮌의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밝혀내려 하는 것처럼, 191710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정신이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

투쟁의 과정에서 내 감정은 중립적이지 않아다. 그러나 이 중요한 날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나는 꼼꼼한 취재기자의 눈으로 사건들을 보려 했고, 또한 진실만을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p. 14 서문 중)

 

 

때문에 존 리드는 혁명의 현장에서 미국에서 온 사회주의자 동지였지만, 기자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했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전반적으로 볼셰비키에게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반혁명세력에 대한 그의 서술은 분명히 적대적이라고 판단할만한 문장도 많다. 그럼에도, 그는 볼셰비키들의 지도자들은 물론 멘셰비키 좌, 우파, 사회혁명당 좌, 우파, 카데츠, 시 두마(의회)의 의원들, 노동자, 농민, 군인들을 폭넓게 취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시 정부의 수장이었던 케렌스키의 인터뷰도 최대한 많이 남기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혁명의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정말 열심히 주요 사건들의 현장 속에 있기 위해 움직였다. 책에 나온 그의 동선은 박진감이 넘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시시각각 변화했으며 덕분에 그의 르포는 더욱 생생해졌다.

 

존 리드가 이 르포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러시아 혁명의 현장그 자체였겠으나, 오늘날 이 책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그가 보여준 보통사람들이 혁명에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존 리드의 저작이 아니어도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볼셰비키 지도부의 입장이나, 볼셰비키에 반대하였던 여러 정치 세력들의 입장은 물론 존 리드의 저작을 통해 보다 명확한 진실이 드러난 부분도 적지 않겠으나- 다른 문헌들이나 그들이 직접 작성하는 문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건들은 태생적으로 그들의 주관을 강하게 담고 있고, 때로는 고의적으로 왜곡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혁명에 참여하였던 노동자, 농민, 군인들의 이야기는 이런 공식 문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진짜 뜻은 말 그대로 말보다 행동으로전해졌을 것이고, 그 행동들은 기록을 중시하는 역사학자들에게 제대로 포착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의 생생한 증언은 그들의 행동과 생각이 어떠했는지 전 세계 독자들이 생생하게, 날 것 그대로에 가깝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도움을 토대로 독자들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편견, 왜곡, 선입견 등을 버리고 이 과정에 대한 평가를 재고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순기능이 바람직하게 실현되는 사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생하게 전해주는 저자의 메시지를 오해 없이 받아들인다면, 혁명은 몇 명의 위대한 계획만으로 절대 성취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내전 이전의 러시아 혁명은 그 엄청난 규모와 급진적인 움직임에 비해 사상자가 적게 나온 것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혁명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희생은 평가절하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이야말로 볼셰비키 지도부가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지하던 유일한 힘이었으며, 아마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러시아 혁명이 내전을 견디어내며 1920년대를 보게 된 유일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존 리드의 짧은 생애 때문에 보지 못한 소련의 이후 과정에서 공산당의 지도부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때로는 그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던 순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 혁명의 시기만큼은, 존 리드에 따르면, 볼셰비키가 가장 대중의 뜻과 의지를 잘 간파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혁명의 성공은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독자로서 저자에 대해 한 가지 더 고마웠던 것은 그가 인용하거나 언급한 거의 모든 문건들의 원문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생소한 당시 러시아의 정치 세력이나 제도, 지역에 대한 설명이 후주와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큰 어려움 없이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충분한 수준으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책의 두께가 100쪽 이상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 만큼의 몫을 하는 부분이었다.

 

이 르포에 감탄하다보니 아쉬움도 남기 마련이다. 존 리드가 이후의 일들을 서술하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러시아 혁명의 이후 전개과정에 대한 이 정도의 생생한 서술은 없다는 것, 나아가서 신경제정책과 레닌의 죽음을 거쳐 스탈린 체제로 넘어간 이후의 소련에 대한 아래서부터 위까지 조망할 수 있는이해가 없이 서로 오해, 왜곡, 포장하기만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점이다(최근에 계속해서 알려지지 않은 문건들이 나오면서 역사학계에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20세기 세계사의 큰 틀을 형성한 반 쪽에 대해서 좀 더 사실에 근거하고, 때문에 후대가 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겠지만, 그런 시도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가 가진 선입견의 벽은(여러 가지 관점의 선입견이 존재할 수 있다) 너무나도 단단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드라마 각시탈을 보면 자신이 저널리스트임을 무기로 사회 고위층들을 위협하며 위세를 부리는 일제 강점기의 기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굳이 여러 번 언급하지 않으면서 미국인 동지로서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분주히 움직였던 존 리드와 같은 저널리스트들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현실에는 두 부류의 저널리스트가 모두 존재한다. 후자가 좀 더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면, 존 리드의 이 저작은 그 길이 무엇을, 어떻게 행함을 의미하는 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지만 가치 있는 것인지 꼼꼼한 취재기자의 눈으로 진실하게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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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 지성의 근본주의 비투비21 6
로버트 니스벳 지음, 강정인 옮김 / 이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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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나 신념이 그 사람이 처한 물적 조건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인성이나 인격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의 정치적 색깔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은 싸잡아서 옹호하기혹은 싸잡아서 비판하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수구꼴통이라는 단어나 종북좌빨이라는 단어나 모두 그 기원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서 나온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단어들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원색적인 욕으로, 때로는 육두문자를 섞은 욕보다 더 아픈 욕으로 다가온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누구나 정치적인 욕을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지만(필자도 예외는 아님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정작 더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 단어들의 뜻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해당 단어들을 사용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진보보수는 점점 이해되지 않고 남용되고 있으며 자유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보수주의를 정확히 구분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한 구분이 서구적인 것이며, 한국 맥락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이 세 사상이 갈라지게 된 핵심인 산업화, 근대화, 자본주의화의 영향을 듬뿍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상에 대한 개념적 이해/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로버트 니스벳의 보수주의는 최소한 보수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기준을 가지고 해당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가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밝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보수주의를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오해를 풀고 좀 더 정확한 역사적 맥락과 상을 그리기 위해 집필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수주의를 객관화·상대화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보수주의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들도록 우리가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수많은 정치인과 학자들 버크, 토크빌부터 디즈레일리나 처칠까지-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개론서라도 각 사상의 거두들을 다루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주목할 것은 각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개별적 업적이라기보다는 보수주의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 그 사상의 본질적인 통찰과 명제들, 그리고 그 지적인 논지들이다.

 

책의 2장인 보수주의의 교리부분에 가장 많은 분량이 할당되어 있는데, 역사와 전통, 편견과 이성, 재산과 생명, 자유와 평등 등 핵심적인 개념에 대해 보수주의가 취하는 입장이 무엇이며, 어떤 맥락에서 그러한 입장이 형성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충분히 자세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포괄적으로 다루다보니 개별 내용을 심도 있게 파고들 수 없었던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논의의 포괄성 자체는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문제 삼을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교리부분을 읽다 보면 보수주의가 앞에서도 언급한 계몽주의 이후의 본격적 근대화, 산업혁명(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본격적 도래 상황에 대해 날선 비판을 전개하였고, 그 중 일부 비판은 사회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보수주의의 귀결이나 전망에서도 다시 반복되는 부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와 사회주의(혹은 저자의 표현대로 급진주의)가 공유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음을 상기하게 해 준다. 이 지점은 맑스와 엥겔스도 공산주의 선언3장에서 보수적 사회주의 혹은 반동적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하며 지적했던 부분이다. 초기에는 맑스주의자보다 보수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더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는 저자의 주장이 그들의 가장 중심적인 저작에서도 이미 확인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점은 보수주의의 귀결과 전망 부분에서 저자가 그의 보수주의와 레이건 이후의 신자유주의를 분리시켜서 사고하려고(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를 분리시키도록) 시도한 부분이다. 레이건 이후의 미국 정치와 사회 정책들의 흐름은 분명 신보수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고 신보수주의자들의 경제 정책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라는 도식화된 설명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보수주의에 대한 오해 풀기에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둘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개론서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 국가들의 부조리가 사회주의의 근간은 아님을 지적하는 부분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자의 서술이 완전히 정확할 수는 없을 것이나, 이 정도라면 기준을 가지고 보수주의를 이해하고, 현재 한국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 혹은 세력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이름표에 충실한지, 저자의 전망대로 한국에서도 급진주의와 보수주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큰 틀을 잡고 싶어 하는 독자에게는 충분히 훌륭한 개론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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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지성의 근본주의 비투비21 1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문성원 옮김 / 이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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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논의과정에서라도,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핵심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거나 공통의 상을 그리지 못한다면, 그 논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가장 잘 마무리되어봐야 공통의 상을 찾는 데 합의하는 정도로 끝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논의도 같은 이유로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추상적인 자유 개념에 대한 열띤 토론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표현의 자유라든지 언론 탄압’, ‘소비자 주권등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현실에서 아직도 자유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교육을 통해서 핵심적인 개념들의 진정한 의미, 배경, 변화과정, 전망을 비판적이며 역사적으로 조망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탐구과목들을 국영수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입시교육의 영향이 적지 않겠으나, ‘교양 과목을 학점 보충제 혹은 전공과목의 쉼터쯤으로 여기는 고등교육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기본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들을 누구나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B2B21총서의 자유는 이러한 목적을 적합하게 수행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일부러 자유라는 개념의 변천사와 역사보다는 그것이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가졌던 의미들을 조망하고, 특히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의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며, 적용되고 또 허용되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여러 비유들 벤담의 판옵티콘과 베버의 합리성의 만남, 헉슬리와 오웰이 서로 다른 지적 배경에서 그린 디스토피아의 만남 등-들은 어려운 개념을 좀 더 쉽게 풀어주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이 어디까지나 개념에 대한 성찰을 다룬 만큼, 저자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실천적 지침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옮긴이의 역자후기가 책의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 지 깔끔하게 정리한 부분이 돋보인다(아마 그것은 처음 옮겼을 때의 사회 현실과 관련이 있겠지만 2013년에 읽어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지적한 권력 투쟁의 경제화로서 소비자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국가에 의한 제도, 시스템, 복지 등에 대해 부정적인 상징을 적용함으로써 이를 비효율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보려고 한 시도에 대한 지적은 제 3 세계에 대부분의 생산적 활동을 맡겨놓은 채 탈산업화되고 있는 일부 선진국들의 사례에 가장 잘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직도 산업화를 진전시키고 있는 신흥 개발도상국들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은 다른 양상을 가질 것이다. 옮긴이도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둘의 중간 단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이는 과거에 사회를 추동하던 여러 사회적 운동들이 21세기에 주춤해지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같이 고민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좀 더 현실에 와닿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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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jarati의 계량경제학 - 5th Edition
Damodar N. Gujarati 외 지음, 박완규 외 옮김 / 지필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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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책입니다. 특히 학부 수준에서 계량경제학을 배울 때 빠지는 내용 없이 잘 정리되어 있는이 정도의 책은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 책보다 더 간략하거나 원리 중심으로 설명된 책들도 있지만, 수업 교재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습니다. 그 만큼 책의 내용은 포괄적입니다.

 

책의 번역은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중요한 핵심 공식에서 오류가 있습니다. 찾아보니 영문판에서부터 그대로 발생한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오역으로 인한 오류도 몇 군데 보입니다. 다음 개정 때에는 좀 더 세심한 번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matrix 활용이 주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부록에 행렬로 SImple,  Multiple regression과 GLS를 도출하는 방법이 들어가 있지만, 교수님들 수업 스타일에 따라 행렬 표기를 주로 하는 경우에는 다른 책을 참고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어느 정도 공부한 입장에서는 행렬표기에 한 번 익숙해지면 이 방식이 훨씬 편하다는 생각은 드네요. 아마 이 책이 나열하는 방식으로 표기하기를 주된 설명법으로 선택한 이유는 입문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통계와 선형대수 부록은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일반적인 대학교 통계학 기초 과목과 선형대수학 과목 수준에 해당하는 배경지식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큰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해당 분야 기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만큼 잘 정리되어 있고 필요한 내용도 잘 들어가 있습니다.

 

연습문제의 경우에는 양은 충분한 것 같고 문제 자체의 난이도나 수준은 적절하게 배치된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부족한 점이 없지 않으나, 계량경제학을 처움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는 권할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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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2013-08-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 교수가 만든 계량경제학보단 조금 좋죠...하지만 이책도 너무 쓸때없는게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