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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지성의 근본주의 ㅣ 비투비21 1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문성원 옮김 / 이후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어떤 논의과정에서라도,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핵심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거나 공통의 상을 그리지 못한다면, 그 논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가장 잘 마무리되어봐야 ‘공통의 상’을 찾는 데 합의하는 정도로 끝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논의도 같은 이유로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추상적인 자유 개념에 대한 열띤 토론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표현의 자유’ 라든지 ‘언론 탄압’, ‘소비자 주권’ 등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현실에서 아직도 자유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교육을 통해서 핵심적인 개념들의 진정한 의미, 배경, 변화과정, 전망을 비판적이며 역사적으로 조망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탐구’ 과목들을 국영수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입시교육의 영향이 적지 않겠으나, ‘교양 과목’을 학점 보충제 혹은 전공과목의 ‘쉼터’ 쯤으로 여기는 고등교육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기본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들을 누구나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B2B21총서의 ‘자유’는 이러한 목적을 적합하게 수행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일부러 자유라는 개념의 변천사와 역사보다는 그것이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가졌던 의미들을 조망하고, 특히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의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며, 적용되고 또 허용되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여러 비유들 –벤담의 판옵티콘과 베버의 ‘합리성’의 만남, 헉슬리와 오웰이 서로 다른 지적 배경에서 그린 디스토피아의 만남 등-들은 어려운 개념을 좀 더 쉽게 풀어주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이 어디까지나 개념에 대한 성찰을 다룬 만큼, 저자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실천적 지침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옮긴이의 역자후기가 책의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 지 깔끔하게 정리한 부분이 돋보인다(아마 그것은 처음 옮겼을 때의 사회 현실과 관련이 있겠지만 2013년에 읽어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지적한 권력 투쟁의 ‘경제화’로서 소비자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국가에 의한 제도, 시스템, 복지 등에 대해 부정적인 상징을 적용함으로써 이를 비효율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보려고 한 시도에 대한 지적은 제 3 세계에 대부분의 생산적 활동을 맡겨놓은 채 ‘탈산업화’되고 있는 일부 선진국들의 사례에 가장 잘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직도 산업화를 진전시키고 있는 신흥 개발도상국들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은 다른 양상을 가질 것이다. 옮긴이도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둘의 중간 단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이는 과거에 사회를 추동하던 여러 사회적 운동들이 21세기에 주춤해지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같이 고민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좀 더 현실에 와닿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