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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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뉴욕대학교에서 선정한 “20세기 미국의 100대 저널리즘 저작목록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 목록을 보여준 분은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였는데, 상위권에 올라간 보도나 단행본들을 소개하던 중 7위를 차지한 이 책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존 리드는 좌파 언론인이고, 러시아 혁명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지만, 그 뛰어난 현장감 때문에 상위권에 올라왔는데,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라는 식의 설명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이에 동감하면서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 계절학기 때 러시아 혁명사에 대해 몇 주간 배우면서 수업의 연장선상에서라도 꼭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책은 예전에 구매했지만 7월 말의 바쁜 일정 때문에 열어보지 못했고, 바쁜 7월이 끝나고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 리드와 함께 혁명의 현장에 점점 깊숙이 들어가면서,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흥분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중립성, 객관성의 입장에서 러시아 혁명 중 보고 들은 것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볼셰비즘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는 별도로, 러시아 혁명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사건이었음을, 또 볼셰비키의 등장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현상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가들이 기록을 뒤져서 파리코뮌의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밝혀내려 하는 것처럼, 191710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정신이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

투쟁의 과정에서 내 감정은 중립적이지 않아다. 그러나 이 중요한 날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나는 꼼꼼한 취재기자의 눈으로 사건들을 보려 했고, 또한 진실만을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p. 14 서문 중)

 

 

때문에 존 리드는 혁명의 현장에서 미국에서 온 사회주의자 동지였지만, 기자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했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전반적으로 볼셰비키에게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반혁명세력에 대한 그의 서술은 분명히 적대적이라고 판단할만한 문장도 많다. 그럼에도, 그는 볼셰비키들의 지도자들은 물론 멘셰비키 좌, 우파, 사회혁명당 좌, 우파, 카데츠, 시 두마(의회)의 의원들, 노동자, 농민, 군인들을 폭넓게 취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시 정부의 수장이었던 케렌스키의 인터뷰도 최대한 많이 남기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혁명의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정말 열심히 주요 사건들의 현장 속에 있기 위해 움직였다. 책에 나온 그의 동선은 박진감이 넘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시시각각 변화했으며 덕분에 그의 르포는 더욱 생생해졌다.

 

존 리드가 이 르포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러시아 혁명의 현장그 자체였겠으나, 오늘날 이 책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그가 보여준 보통사람들이 혁명에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존 리드의 저작이 아니어도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볼셰비키 지도부의 입장이나, 볼셰비키에 반대하였던 여러 정치 세력들의 입장은 물론 존 리드의 저작을 통해 보다 명확한 진실이 드러난 부분도 적지 않겠으나- 다른 문헌들이나 그들이 직접 작성하는 문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건들은 태생적으로 그들의 주관을 강하게 담고 있고, 때로는 고의적으로 왜곡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혁명에 참여하였던 노동자, 농민, 군인들의 이야기는 이런 공식 문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진짜 뜻은 말 그대로 말보다 행동으로전해졌을 것이고, 그 행동들은 기록을 중시하는 역사학자들에게 제대로 포착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의 생생한 증언은 그들의 행동과 생각이 어떠했는지 전 세계 독자들이 생생하게, 날 것 그대로에 가깝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도움을 토대로 독자들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편견, 왜곡, 선입견 등을 버리고 이 과정에 대한 평가를 재고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순기능이 바람직하게 실현되는 사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생하게 전해주는 저자의 메시지를 오해 없이 받아들인다면, 혁명은 몇 명의 위대한 계획만으로 절대 성취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내전 이전의 러시아 혁명은 그 엄청난 규모와 급진적인 움직임에 비해 사상자가 적게 나온 것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혁명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희생은 평가절하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이야말로 볼셰비키 지도부가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지하던 유일한 힘이었으며, 아마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러시아 혁명이 내전을 견디어내며 1920년대를 보게 된 유일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존 리드의 짧은 생애 때문에 보지 못한 소련의 이후 과정에서 공산당의 지도부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때로는 그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던 순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 혁명의 시기만큼은, 존 리드에 따르면, 볼셰비키가 가장 대중의 뜻과 의지를 잘 간파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혁명의 성공은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독자로서 저자에 대해 한 가지 더 고마웠던 것은 그가 인용하거나 언급한 거의 모든 문건들의 원문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생소한 당시 러시아의 정치 세력이나 제도, 지역에 대한 설명이 후주와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큰 어려움 없이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충분한 수준으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책의 두께가 100쪽 이상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 만큼의 몫을 하는 부분이었다.

 

이 르포에 감탄하다보니 아쉬움도 남기 마련이다. 존 리드가 이후의 일들을 서술하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러시아 혁명의 이후 전개과정에 대한 이 정도의 생생한 서술은 없다는 것, 나아가서 신경제정책과 레닌의 죽음을 거쳐 스탈린 체제로 넘어간 이후의 소련에 대한 아래서부터 위까지 조망할 수 있는이해가 없이 서로 오해, 왜곡, 포장하기만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점이다(최근에 계속해서 알려지지 않은 문건들이 나오면서 역사학계에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20세기 세계사의 큰 틀을 형성한 반 쪽에 대해서 좀 더 사실에 근거하고, 때문에 후대가 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겠지만, 그런 시도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가 가진 선입견의 벽은(여러 가지 관점의 선입견이 존재할 수 있다) 너무나도 단단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드라마 각시탈을 보면 자신이 저널리스트임을 무기로 사회 고위층들을 위협하며 위세를 부리는 일제 강점기의 기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굳이 여러 번 언급하지 않으면서 미국인 동지로서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분주히 움직였던 존 리드와 같은 저널리스트들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현실에는 두 부류의 저널리스트가 모두 존재한다. 후자가 좀 더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면, 존 리드의 이 저작은 그 길이 무엇을, 어떻게 행함을 의미하는 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지만 가치 있는 것인지 꼼꼼한 취재기자의 눈으로 진실하게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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