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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행복한 하루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항재 옮김 / 에디터 / 2012년 2월
평점 :
1년 365일간 하루 1단락의 좋은 이야기가 1~3개 정도 쓰여진 책으로, 매일 같이 톨스토이가 정리해 준 대로 좋은글을 한 두 페이씩 읽으며 행복해진다.
이 책은 이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염두에 둔 톨스토이가 1903년 1월경부터 시작하였고, 1910년 11월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조금씩, 처음에는 일력에 쓰인 좋은 글을 정리하다가 나중에는 자체적으로 마음먹고 다듬어냈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소크라테스, 석가, 노자, 공자에 이어, 파스칼, 칸트, 쇼펜하우어, 존 러스킨 등 동서양을 고대 근현대를 망라한 초호화 사상가 등의 명문을 만날 수 있다.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나 부활 등 엄청난 장편의 이야기꾼인 톨스토이가 말년에는 대반전으로 이렇게 격언이나 엑기스에 가까운 좋은 글들을 정성껏 추려낸 것이니만큼 참으로 당대 회자된 거의 모든 훌륭한 글이 담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최상의 죽음이 있을 수 있을까? 최상의 죽음에 이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최상의 죽음으로 너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만약 네가 네 것이 아닌 것을 지키려 한다면, 너는 반드시 네 것을 잃을 것이다.” -에픽테토스-
물론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글은 두 페이지가 넘는 글이다. 그의 글마저도 여러 명문 사이에서 보니 노자의 사상처럼 동양철학적이기도 하고, 성서에서 나오는 확정적 죽음의 묵시마저 느껴진다. 명언은 다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단번에 몇 페이지를 두고 존 러스킨의 강한 어조가 드러난다.
“본질적으로 온 세상의 죄는 유다의 죄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리스도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팔아버린다.” - 존 러스킨-
우리들을 끝없이 개화해내고 지식이 빈곤한 시대에서 넘쳐나다 못해 질식하기 직전인 포화상태의 현대문명과 온통 상업화로 찌들어, 내다 버리다 문명마저 포기하며 대번영의 상징들을 극증오하는 모순 속에서, 우리 모두가 러스킨의 유다가 된 것은 자명한 것 같다는 생각과 동조하며 페이지를 넘겨가게 된다.
이때 나타난 부처의 가르침.
“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워하지 않고 살고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오, 탐욕스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탐욕에서 벗어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탐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탐욕에서 벗어나 살고 있도다! 오, 아무것도 내 것이라 하지 않으면서 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성스러움으로 가득 찬 우리는 영명한 신들과 비슷하도다!” -부처의 가르침-
이때 다시 죽음과 영원한 천지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 마태복음 10장 39절 -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하늘과 땅이 영원한 이유는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구원을 얻는다. 그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그는 자신이 해야하는 모든 일을 한다.” - 노자 -
자기 자신만을 구하지 않기를, 아무것도 것이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임을 동서양 모든 철학이 꼭 집어 말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뭘 쌓고 이고 지고 살고 있는 우리는 갈 길이 아주 멀다. 아주 오래 살 것 같다. 괴롭게?
다시 에픽테토스,
“신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고, 신이 원치 않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네 마음 속에 그려진 신의 법을 깊이 이해하라.” - 에픽테토스 -
달을 보며 굳은 믿음으로 새하얀 마음을 달래며 정한수 떠놓고 빌던 우리네 조상들처럼, 우리 마음속의 천지신명은 ‘천지순명’일 듯 싶다. 따라간다는 것은 깊은 이해로 함께한다는 것이다. 나의 길로 인정하며 진정한 삶을 물으며 살아보자!
#에티터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톨스토의와행복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