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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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계절이 돌고 돌아오듯이 위가 아래가 되고 아래가 다시 위가 되면서 바퀴가 돈다. 그러나 바퀴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국을 남긴다. 순환적이면서도 직선적이다. 수레바퀴는 그렇게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쭉쭉 나아갔다. 우리는 언젠가 지나간 ‘한스 기벤라트’라는 바퀴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길을 시작했다. 아니다, 단지 흔적의 뒤를 밟아 가는 것이 아니다. 책장을 새로 펼치는 순간 한스의 바퀴, 아니면 한스를 깔아뭉갤 바퀴는 다시, 아니 처음인 것처럼, 사실 처음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가엾은 한스! 처음에 우리는 탄식한다. 바퀴는 진창에 처박혀 쓰러져 버렸다. 결국 그렇게… 


 말라 비틀어져버린, 거의 타 버린 새싹이 떠올랐다. 처음 초록색 줄기와 잎을 삐죽이 내밀었을 때, 싹은 여리긴 했지만 전도유망해 보였다. 우리 모두는 금방 자라 튼실한 가지를 이루고, 열매를 맺을 꿈이 싹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처럼 굴었다. 빛과 물을 아끼지 않았다. 몇 마디 상냥한 말-훈수-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싹은 조금 자라 파르르 떨더니, 건강한 잎을 펼치지 못했다. 단지 조금 늦는 것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기형적으로 조그마한 잎을 단 채, 줄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푸른색이었다. 거의 줄기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완전히 죽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몰랐다고, 우리는 변명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 작은 잎마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새싹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담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의 뿌리는 지상에 내어 놓은 그 가냘픈 줄기의 반만큼도 되지 못했다. 그에게 그 흙은 독이었다. 숨쉬지 못하고, 뻗어 나가지도 못하고- 슬쩍 들어올리니 그냥 툭 하고 바로 쓰러져 버린 싹을 보며 우리는 탄식했다. 결국 이렇게… 


 우리는 한스의 세상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한스 기벤라트의 세상 중에서 전적으로 사악한 것이 있었던가. 오로지 악의로 똘똘 뭉친 혐오, 이유 없는 증오, 타인의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가 있었던가. 헤세의 세상은 이만하면 꽤 따뜻한 것이 아닌가. 빗나가고, 어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는데!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꾼다. 때로는 사랑이 증오보다 사람을 더 망쳐버리는 법이다. 이런 세상에서 완전히 비틀려 버린 영혼을 눈앞에 두고 그래도 넌 우리보단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이며, 지독한 자기 비하인가. 그만두자.

 

 소설의 결말을 보고 우리는 슬퍼한다. 순수하고 재능 있던 소년의 죽음이 비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 것. 우리가 한스이지 않은가? 그리고 하일너이기도 하고, 기벤라트 씨이기도 하고, 목사이기도, 플라이크 아저씨이기도 하다. 희생자와 가해자, 구도자와 방관자가 모두 우리 안에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각각의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다른 곳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동정과 연민은 방향을 잃는다. 어디로 나와서 어디로 들어갈 수 있는 거지? 한스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이 묘하게 뒤섞이면서 갈팡질팡한다. 수레바퀴 뒤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우리는 수레바퀴 위에 올라 타 있었고 바퀴살이 되었고 아래에 깔리기도 하고 바퀴를 넘어지게 하는 돌멩이가 되기도 했다. 이를 어쩐다.


 처음에 우리는 ‘나’와 ‘그들’을 분리해서 바라보았다. 그들이 어떻게 삶을 춤추는지 그저 지켜만 볼 생각이었다. 외부자로서 마음껏 평가하고, 재단하고, 비유하고, 멋대로 상념하고자 했다. 그리곤 조금 궁금해져서 그들 뒤를 살금살금 따라갔다. 그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을 조심스럽게 연결해 보았다. 섞으려고 보니 애초에 그 세계는 둘이 아니었다. 구분이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하나뿐임을 깨닫는다.  


 이런!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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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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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이야기?

 


 

 

 

딸깍 딸깍. 몇 번이고 썼다가, 지웠다가 한 글이 다시 죽죽 지워진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잠시 방임하였다가, 망설이며 다시 손을 뻗는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반쯤 지워진 활자들을 다시 한 번 뒤져 본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반짝이는 햇살과, 한가로움과,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슬금슬금 꺼내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구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몇 번 뒤적여 본 것이 전부이면서, 작가를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던 것 같다. 내 이야기, 그래, 내 이야기를 하려고도 했었다. 문학-, --자격?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들, 자기고백.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나를 내보이기 싫다는 마음에- 아니, 사실은 그렇게 흐트러진 마음을 그대로 긍정하고 싶은 마음에- 나를 정리하는 것을 포기한다. 남은 것은 없다. 남을 것을 없애 버린다.

 

 그럼 도대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훌륭한 요약, 멋들어진 작품 해석은 누군가 더 재능 있는 이가 기꺼이 해 줄 것이라고, 위안 삼는다. 무언가 감동적인 이야기, 재치있고, 어쩌면 약간의 교훈까지 있는, 삶이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좋다. 그렇다면, 나는 다만, 그런 사이에서 조용히 숨쉬고 있을 이야기나 하면 그만이다.  

 

 그래, ‘토니오 크뢰거라는 사람을 만났다. 처절하고 비극적인 전쟁, 인간의 어리석음과 비참을 읽고, 작품의 크기만큼 커다란 불행을 겪었을 작가에게 연민을 느낀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파시즘의 해변, 기만하는 언어의 공연장에서 빠져나온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딱히 그를 만날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니었고, 나도 우연히 그의 자리를 방문하게 되었을 뿐이다. 첫만남은 이렇게 시시했다.

 

 그와 보낸 시간 모두가 시시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생각들, 가슴을 찌르는 장면들, 나는 토니오였다가, 잉에였다가, 리자베타였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곤 했다. 예술과 시민성과 문학과 위치와 절망과 지향과 예민함과 사랑-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넘실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미루어 놓기로 하자.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 주기를 기다리자. 그래서 나는 시시한 이야기나 하려고 한다. 나조차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꿈을 잡아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아이는, 잡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너무 행복한 꿈이어서, 깨어났다는 것에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아름다운 꿈들이란 이내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던 아이는 꿈을 의식의 세계에 꽁꽁 동여매어 붙잡아 두고 싶었다. ‘잊어버리지 않으면그것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이는 꿈을 말하려고 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꿈의 분위기는 사라져 갔다. 아이는 글을 쓰려고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꿈은 도형처럼 변해갔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꿈은 색을 잃어갔다. 너덜너덜해지고 괴물 같이 변해버린 무엇에서 희미한 꿈의 조각이나마 찾으려고 애쓰던 아이는 결국 자신이 꿈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버렸다. 가만히, 가만히 놔두었으면 다시 찾아올 수도 있었는데- 아이는 섧게 울었다. 더 이상 그것을 다시 만나는 기대 속에서 잠들 수 없다는 것이 서러웠다.

 

 저쪽 세계의 것을 이쪽 세계로 억지로 끌어 오면, 그것은 훼손되고 만다. 그리고 결국 가치도 의미도 힘도 잃게 된다. 글이나 말, 그러니까 <언어>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너무나- 잘 연결하는 것이어서 약하고 서투른 것들이 쉽게 부서지도록 했다. 아이는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슴 속에만 담아두곤 했다.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은 언뜻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떠올라 아이를 기쁘게 했다. 빨리 버리고 싶은, 두렵고 슬픈 것들은 하나하나 꾹꾹 눌러 적어 두었다. 그러면 커다란 그림자는 사라지고 단지 조그만 활자와 이해만 남을 뿐이었다.    

 

 토니오 크뢰거라는, 검은 눈의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술가는 폭발적인 감상을 <처리하여> 버려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냉혈한이라고 한다. 언어가 가진 마법은 마치 사람으로 하여금 텅 빈 가슴을 가지게 하고, 언어를 다루는 사람은 마치 기계장치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의심한다. 글쎄, 진심일까? 언어를 가지고 노는, 그리고 그것에 엄---게 큰 의미를 부여하여 애지중지하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 사실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학은 저주라는 둥, 예민함으로부터 온갖 괴로움이 나오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론적으로 스스로를 긍정하고 밝은 것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도 확인하고, 그리고 그것을 기쁘게 글로 남기면서- 그는 혼자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투정부리듯 한 이야기로부터 나온 어느 아이의 꿈 이야기 따위는 무척 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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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 이후에, 누군가는 시시하지 않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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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환상문학전집 23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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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말, 으레 하는 인사말인데도 차마 건넬 수가 없네요.

 

......라고 해요.

 

메데이아. 처음에는 어머니께, 그 다음에는 동생에게 이야기를 했었지요. 모두가 시선의 방향을 당신에게 고정시키고, 단지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당신 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었지요. 하지만 결국, 당신이 스스로 몇 번이나 말했듯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셨군요. 마지막에 가까워서는 결국 당신도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하게 되셨습니다그려.

, 가엾은 여인이여


괜찮아요. 괴롭다고, 비참하게 버려지고, 갈기갈기 찢겨서 너덜거리는 마음을 안고 울어도 좋아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부어도 괜찮아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어도 괜찮아요. 당신이 나쁜가요?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나쁘다고 해도 괜찮아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뒤집히고, 거짓이 진실을 삼켜 버리고,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가장 텅 비어 있는 세상인걸요.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순교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을 욕 할 수는 없는걸요. 이리 와 보세요. 당신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고 누구도 감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필요하다면 기대서 울어도 돼요


미안해요. 많이 부족하죠. 가장 좋은 사람이란 건 참 슬픈 일인 것 같아요. 당신이 가장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당신에게서 가장 적절한 위안과 기쁨을 찾을 수 있었죠. 그럼 당신은 어떻게 되나요? 당신은 어디에 가서 좋음을 구하나요? 아아. 당신은 좋은 사람이어서 형편없는 지푸라기에서도 가장 밝은 빛을 내도록 할 수 있었지만, 당신 내면의 불씨가 꺼져 버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누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나요.


고마워요. 당신의 직관, 자유로움, 당당함, 인간과 자연과 신들을 아우르는 애정은 참으로 사랑스러웠어요. 가장 적절한 순간에 꼭 맞는 말과 행동을 당신은 할 수 있었지요. 글라우케 공주를 보듬어주고,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려고 애썼지요. 거짓말과 가식으로 겹겹이 포장한 사람에게 똑똑하게 말했지요. 그들에게 곧장 다가섰어요. 당신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지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당신을 미워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봐 주어서 고마워요. 아무리 가난한 마음이라도, 그것을 내보이는 것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보아 주는 사람이 있음을 축복해야 하는데.


있잖아요, 세상은 당신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희생당하고 왜곡된 현명한 여인이라고 말해요.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평가라고,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해요. 그런데요, 아직 우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먼지를 걷어 내고, 주름지고 접힌 것들을 탁탁 펴서 깨끗하게 다시 말릴 수 있는-세상이-된 걸까요? 당신과 같은 여인의 모습으로부터, 부조리를 파악하고, 충분히 반성하는-것이 가능하기나 한 세상일까요? 아아, 사건의 전말은 이렇게 된 것이었더랍니다. 여러분 모두 알겠죠?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 당연하죠. 옛날 사람들은 차암!


아니에요. 이렇게 되지 않겠죠. 메데이아, 여기는 아직도 똑같아요. 당신은 참 많은 질문을 했지요. 그렇지요? 당신이 사람들에게 던지곤 했던 질문들을, 여기 사람들은 여전히 불편하게 생각해요. 아니,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전적으로 맞다고도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지만 않으면괜찮다고 생각해요. 여긴 코린토스와도, 코르키스와도 달라요.


사실은요, 사람이 죽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죄를 부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고도 했어요. 여긴 다르지만, 여기에도 있어요. 이피노에? 마이도스? 페레스? 욕심 때문에 희생당한 어린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어요. 문제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사람들, 화풀이, 침묵하는 사람들. 여기에도 있어요. 맞아요. 여기에도, 여전히,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커다란 비극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하고 있어요. 이 말이 위안이 될 지 모르겠네요.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마음이 닫혀서 걸핏하면 증오를 쏟아내거나,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마음을 갖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보려고 해요. 뭘 보아도 무덤덤한 건조한 마음을 걷어내고, 마냥 반짝반짝한 세상만 보아 온 어린아이의 마음도 넘어서, 함께 보고, 놀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세계로 손 내밀 줄 알게 되는 것. 아주 작지만, 어려운 일이잖아요. 누군가는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이게 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손 잡고,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갈 것이라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약속할게요.


메데이아. 결국 당신은 또 좋은 사람 역할이 되었네요. 고작 이런 이야기 뿐이라 미안해요. 우는 사람 곁에서 함께 우는 사람이 되어 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울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나 봐요. 어쩌면 그것마저- 저를 향한 위로였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아픈 사람에게 가서 나도 아프다고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힘껏 안아주고 나서 함께 손 잡고 일어서는 것, 같이 해 줘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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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프란츠 카프카 중단편집 Mr. Know 세계문학 43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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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렷한 불안과 은밀한 위로 

-어느 너의 이야기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 너는 입술을 달싹인다. 어디선가 보았던 문장이다. 그래, 올리버 색스의 <편두통>이라는 책이었지. 카프카의 문장은 너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삶은 네 통제 아래에 있지 않다고, 너는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너무나 분명하게 웅웅 울어댄다.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은, 혹은 자신이 괴로운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은 너를 고통스럽게, 슬프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가오는 이기적인 위로가 있다. 세상에 괴로운 사람이 너 하나뿐은 아니야. 사람의 괴로움, 외로움, 그를 처절하게 녹여 쓴 글을 읽고 느끼는 위로. 세상 일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저 무력한 것, 그러나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라는 것에서 너는 은밀한 위안을 찾는다. 다른 사람에게서 괴로움을 읽고 위로를 받다니, 너는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날, 너는 책을 펼친다. 이미 몸이, 좀, 아프다. 수면 부족에, 몸살 감기에, 몸의 어딘가는 고장이 나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지끈지끈 아려 오는 머리를 붙잡고 <성>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외로움이 있다. 멀고 먼 낯선 동네에 도착한 이방인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다. 피로와 어쩔 수 없는 경계심. 누군가 친절한 말을 건네준다면 훨씬 기분이 나아지련만. 그러나 아무도 이방인은 환영하지 않는다. 들여다 보는-기분 나쁜 관심과 불편한 눈초리, 퉁명스러운 전화통화 속에서 너는 길을 잃는다. 영문을 모른다. 초대 받아서 온 사람이 응당 기대할 만한 따뜻한 환영—환영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조심스러운 관심, 올바른 절차, 천천히-분명하게 섞여 들어가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희게 눈을 치뜨고 바라보는 사람들과 이상한 마을과 이상한 성과 흰 눈들은 너를 거부한다. 막막함 속에서 넌, 이게 뭐지, 막연한 피로에 휩싸인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잃지 않는다. 기대만큼은 되지 않지만 뭐라도 되는 것 같으니까. 처음이니까, 초반이니까, 아직 낯설 수도 있지. 그렇지? 그러나 밀려오는 짙은 피로감… 아주 조금 읽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K의 운명은, 그래, 법 앞의 시골 남자와 같이 될 것이라고, 그는 영원히 영문도 모른 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영원히 이방인으로 죽을 것 같다는, 절망에 휩싸인다. 아픈 날 읽기에는 좋은 책이 아니다. 몇 마디 달콤한 말로 너를 달래 주는 그런 책은 아니야. 나약한 너는 책을 덮는다. 푸른 잠이 너를 덮는다.


 다른 날, 너는 국도 위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우리로 바뀐다. 마구 달리고, 소리치고, 뛰어오른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돌아가지만 너는 돌아가지 않는다. “바보가 어떻게 피곤해지겠어!” 너는 마꼰도의 불면과 기억상실을 생각한다. 쾅. 너는 다른 밤거리로 나간다. 너는 밝고 환한 집에서,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변하는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한다. 쾅. 너는 짓눌리고 있다. 너는 “자신이 사라져 없어질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자신을 무거운 덩어리라 여기고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려고 한다. 절망과 무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슨 결심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지? 쾅. 너는 다른 거리로 나간다. 이미 날은 저물었다. 어찌하여 아침은 오지 않는지! 긴긴 밤들과 저녁만 되풀이된다. 네 뒤에 한 남자가 따라온다. 너는 불안하다. 아무도 없는 거리보다 낯선 이와 함께하는 거리가 더욱 두려운 것은 너의 성품이 예민해서만은 아니다. 너는 정말로 불안한 말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너의 예민함은 오히려 <관찰>하고 있는 시선을 어렴풋이 느낀다. 쾅. 또 밤이다. 너는 포기의 이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슨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혹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너는 불안해진다.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너는 온갖 상상을 하지만 행여나 나약한 네 살덩이가 다칠까, 긁힐까 두려워하며 관계맺기를 피한다. 쾅. 사실 너는 불안한 것이다. 사람을 이토록 섬세하게 묘사하고 읽어내는 너는 사실 잘 서 있지 못한다. 쾅. 너는 이미 지쳤다. 그러나 세상과 멀리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너무 궁금하고, 어쩔 수 없이 지독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세상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쾅. 있음과 없음. 인디언은 모든 것을 비워내는 사람인가, 그러면 그를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없는 것을 버릴 수 있을까. 쾅. “그러나 보라. 그것마저 겉으로 보기에 그럴 뿐이다.”. 쾅. 


 너는 밀레나 B.를 위한 관찰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으슬한 느낌에 오소소 돋아난 것들을 털어 버린다. 뒤로 갈수록 점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너는 네가 알 수 없는 것들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아무리 알고 싶어도, 손을 뻗어 보아도 세상은 안개처럼 뿌옇다. 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 괜한 희망은 고문일 뿐이다. - 너는 언제 어디서, 영문도 모른 채 당한다-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견뎌낸다. ‘뚜렷한 불안과 은밀한 위로’. 너는 이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파악할 수 없는 세상은 너를 불안하게 하고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너를 절망하게 한다. 카프카는 너에게 불투명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너는 그의 문장에서 사무치는 사랑을 찾는다. 바닥 없는 세상에서 자신마저 흐릿한데, “그녀가 어떻게 자신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으며 잿빛 세상의 사람을 그토록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에서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을 찾는다. 얼마나 닳고 닳도록 보았으면. 그렇게 꾹꾹 눌러 써서? 너는 그 처절한 사랑이, 세상을 향한 너의 이끌림과 닿아 있어- 위로를 받는다. 너는 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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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의 내용은 본문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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