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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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을 위한 선물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도발적인 제목이다. ‘무신론자라는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들에는신이 있는 것 같니?’라는 질문에 단순히어어? 음 글쎄 잘 모르겠어.“없는 것 같아라고 대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개념에 어마어마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경멸과 불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널 위해 준비했어.’라며 내민 선물이종교라면, 그들은 그것을 대단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제목을무신론자들도 누려봄직한 종교의 몇 가지 유용한 측면들과 그 활용법등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굳이무신론자를위한종교라고 지은 데는 사실 정말로 위의 의도가 있었던 듯하다. 모욕하기 위해서라는 뜻이 아니라, 선물을 주고 싶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가 대성당들의 시대에서 벗어나며 겪은 모종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그 공허한 자리를 위로할 선물을 건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는 알랭 드 보통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의 핵심 내용, 즉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정말로 (저자의 의도대로) 그 선물에서 (격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메시지의 내용

 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또한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분명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주장은 책 전체에서 끊임없이, 분명하게 되풀이된다. , 어떤 신의 존재를 믿는 일 없이, 특정 종교의 교리와 제도를 인정하고 따르는 일 없이도 종교가 오랜 세월 발견하고 쌓아 온 보물들을 얼마든지 현대인들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발견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보물들이란 인간에 대한 통찰과 (사회 제도 등으로 실현되는 데 성공한) 그 통찰의 활용법이다. 저자는 공동체, 친절, 비관주의 등에서부터 교육, 제도에 이르기까지 10가지 주제에서 종교가 활용해왔던, 그러나 지금의 세속 사회에서는 놓치고 있는 몇 가지 측면들을 재발굴하고, 그것을 이 사회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고자 하고 있다.

2. 메시지의 전달 방법

이 책은 세속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적용되더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는 종교 생활의 여러 측면들을 검토하려고 한다. 이 책은 종교에서 보다 독단적인 측면을 제거함으로써, 골치 아픈 이 행성에서의 우리의 유한한 생애 동안에 가뜩이나 회의적인 현대인이 마주쳐야 하는 재난과 슬픔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측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으며 마치 한 권의 종교서, 종교 경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면 이상한 일일까?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작가가 세속 사회를 위해 쓴 책이 일면 성경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인상을 받게 되었을까?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아야 하는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인간 존재와 사회에 대한 진단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지향점을 제시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따른 이 책의 서술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인상을 받게 된 까닭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세속 사회에서 인간 존재는 소외되어 있으며 외롭고 불안하고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런데 세속 사회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그런데 인간은 이렇게 참혹한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련하고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개선이 필요하며 (책에서 제시된)이런 방법을 통해 실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 존재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린 뒤, 기존 상태에서는 극복 불가능하다고 겁을 주고는, 돌연 인간은 보호받아야 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와 같으므로 이러저러한 방법을 통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서술 방식은 기독교 교리 등에서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효과가 증명된) 고전적인 구도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인 충동을 이겨내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다급한 필요성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는 종교가 성취한 엄청난 일들, 즉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 구조의 형성 방법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음을 제시한다. 

3. 평가

위에서는 저자가 다소 극단적으로(?) 인간 존재와 사회를 정의한 것처럼 이야기하였지만, 사실 알랭 드 보통은 상당히 절묘하게 인간과 사회를 파악하고, 이를 언어화하였다. 때론 과감하게, 때론 섬세하게 포착해 낸 세계의 특성들은 이 책의 설득력을 높여 준다. 인간의 잘 잊어버리는 특성, 나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감탄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하찮음을 통감하는 존재임 등을 두루 살피고 재조명한 것은 상당히 탁월한 성취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 알랭 드 보통이 선물을 건네는 대상이 다소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저자가 파악한인간 존재가 실제의 인간 전체를 잘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무신론자들을 위한, 충분히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의 대상은세속 사회의 인간을 칭하는무신론자들조차도 충분히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 우선, 저자가 상정한 인간은 상당한 정도로 합리적이고, 공동체의 유지나 자애로움 등의 일반적 윤리 가치에 동의하는, 그리고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꽤 포용력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이보다 훨씬 덜 참을성이 있거나,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저자는종교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초월하는 어떤 상징이며, 또한 우리의 하찮음에 대한 인식을 이용한 교육이다.”라고 분명 말하면서도, 정작 그 초월적인 어떤 것, 일상적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인간의종교적인 특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직접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하찮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발견한 자신의 부족함을 어떤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무언가와 비교하여 극단적으로 인식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내면의 종교성을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표면적으로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두 번째와 연결된다. 즉, ‘종교를 총체적으로 정당하게 규정하기보단, ‘종교라는 것을 무신론자의 영역으로안전하게가져가기 위해 종교 개념을 해체하여 (기능에만 집중하는 등) 유용한 것들만 취사선택하여 바라본 것이다. 이런 편리한 방식은 종교의 핵심 존재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 여러 학자들이종교를 정의할 때 놓치지 않았던 지점인, 초월적인 것, 성스러움에 대한 지향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무신론자를 포함한) 인간이 종교적인 지향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이들은 알랭 드 보통이 마련한 선물이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4. 마무리

이를 종합하여 보면, 알랭 드 보통은 세속 사회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인간 존재를 구출하기 위해종교가 과거에 이미 발견했던 훌륭한 가치와 제도들을 재조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훌륭한 방법들, 즉 예술과 과학에 의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애써 마련한 이선물은 안타깝게도모두를위한 것이라기보다는어떤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사라진 빈 자리를 새로운 것들로 완전히 채워 넣으려는 저자의 시도는 종교가 인간에게 주는 대체불가능한 위안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일부의 성공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귀중한 것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종교와 세속 사회 간의 화해를 시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시도는 그 자체로 배울 점이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할 만하다.     



임의의라는 낱말이 가진 보편성의 의미와 비교할 수 있는, 특수한 무엇을 가리키는 의미에서의어떤을 사용하였다.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박중서 옮김, 청미래, 2011, 12.

같은 책, 20.

같은 책, 25.

같은 책, 214.

같은 책, 245.

같은 책, 13.

같은 책, 215.

유요한, <<종교, 상징, 인간>>, 21세기북스, 2014, 36~40.

같은 책, 55~57.

합리적, 지성적이고, 종교를 믿지는 않으나 종교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스러운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이 없는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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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 로마 제국 이후 잊혀졌던 아리스토텔레스 천년 후 이슬람 세계에서 재발견되어 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뒤흔들다
리처드 루빈스타인 지음, 유원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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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전환, 갈등과 화해의 실마리

 

 

1.


어떤 것을 고전이라 말할 때, 반드시 고려되는 조건은 그것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꾸준히 재평가/재활용되고 있는지여부이다. 가치 있는 생각들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기도 하고, 맹렬히 비판 받기도 하며, 누군가에 의해 변형되고 이용될 풍부한 가능성 또한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제 시대의 평가에 더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때로는 극단적인) 재평가에, 재평가에, 재평가를 받으며 시대의 전환을 이끈 인물은 흔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의 저자인 리처드 루빈스타인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침(浮沈)이 서양 고대와, 중세와, 근대에서 어떻게, , 누구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며 현대에 존재하는 사상적인 갈등에 상호 이해와 타협의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저자가 소개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상과 쇠퇴의 반복, 시대의 전환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이 책의 구성이 이런 서사를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지 살펴보고, 역사적인 내용으로부터 저자가 도출해 낸 결론과 발견들이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2.


잘 알려지지 않은 서구 문명의 영웅들 중 하나인 톨레도의 라이문도는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보물들을 라틴 세계에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인 동시에 발전된 아랍과 유대 사상에 문을 열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중략톨레도에 번역의 중심지를 만드는 것과 기독교인이든 유대인이든 무슬림이든 라틴계든 그리스계든 또는 슬라브계든 관계없이 가장 훌륭한 학자들이 그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모집한 것이 그의 발상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더구나 이 일은 검열을 거치지 않고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1]

 

1장 첫머리에서부터, 유대인, 가톨릭 수사, 무슬림, 그리스인 학자들이 서로 어울려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 같은 비기독교적인 저술들을 포함해서학문적 논의를 나누고 협업하는 모습이 등장한다.[2] 이 모습을 너무나 흐뭇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 리처드 루빈스타인의 최종 지향점이 여기에 닿아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학문과 이성을 배척하고 탄압하는 종교가 지배하던 세상,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뿌리 깊은 편견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격렬한 종교 전쟁과 박해, 갈등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비이성과 주술, 현혹이 판치는 세상, 절대 다수의 무지와 맹목, 그것을 이용하는 승냥이 같은 권력자들,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불관용으로 서로를 할퀴는 사나운 비참의 시대가 중세의 전부라는 지나치게 가혹한 진단을 내리도록 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성을 중시하고, 진지한 학문적 탐구가 이루어지며, 차별 없는 협력을 이루어 낸 12세기의 스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글을 시작함으로써 중세를 단지 위와 같이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근대와 현대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먼저 일깨워 준다. 이렇게 시작한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편견 없이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편견에 맞서 싸우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중세를 마냥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만 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 또한 이를 잊지 않는다. 이 책은아리스토텔레스적인것들이 어떻게 정당하게 수용되고, 때로는 취사선택되고, 비판당하고, 잊혀지며 거부당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지성 세계에 등장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3. 첫 번째 전환-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적 세계의 만남, 지성의 이동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당시는 그리스 문명이 절정을 지나 내리막을 타던 시절이었지만, 그의 스승 플라톤과 사뭇 다른 견해를 설파하던 그의 철학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 발견, 사상적 정리들은 호의적인 방식으로 고려되고, 받아들여졌으며, 대를 이어 전파되었다. 비록 아테네에서는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는 인간의 탁월성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행복한 생애를 보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점점 기독교적 사상이 서유럽을 지배하면서 그 위상을 잃어가게 되었다. 계속되는 폭력과 빈곤, 무질서로 가득한 세계에서 안락함과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난해한 철학보다는 확신을 주는 신앙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했다.[3] 비록 보이티우스와 같이 이중언어성이 존재하는 시대의 끝자락을 살았던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잊지 않기작업을 해내기는 했지만, 모든 저술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에는 실패했고, 수도원의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지 못하거나 나오지 못하게 된 저술들이 부지기수였다. 기독교의 큰 교부 중 한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했지만,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새로운 방향의 기독교적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호의적인 토양을 잃은 이성주의적인 철학적 전통은 종국에는 철학의 여신이 살해당했다는 말과 함께 동서로마의 분열과 몰락을 거치며완전히 기독교적인 사회[4]로 변한 세계에서 거의 잊혀지게 된다.         

 

서방 기독교인들이 기도에 몰두하고, 동방 기독교인들이 의례적인 논쟁에 빠져 있는 동안, 비잔티움에서 발생하지 않았던 문화적 자각이 이슬람에서는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5]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키릴로스는 이단과 이교도들을 과격한 방식으로 처단하고, 체제는 단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하며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독립적인 사상가들은 페르시아 국경을 건너 점점 동방으로 향했다. 결국 그리스 철학과, 선택 받지 못한 다양한 학파의 글들은 이렇게 기독교 세계에서 사라지고, 7세기의 아랍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논문들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풍부한 사상적 토양을 넘겨받은 이슬람은 고대의 유산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존하고, 자신만의 사상을 꽃피울 수 있게 되었다.[6]

 

4. 두 번째 전환 - 다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


그 역설은 바로 다음과 같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이슬람 영토에서 격리되었던 반면에, 1200년 이전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고 또한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에는 이단으로 처벌될 수도 있었던 기독교 학자들이 유럽의 발전된 철학 사상의 핵심적인 학자들이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7]

 

그러나 이슬람과 유대 문명권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도피처는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셈족 유일신 신앙과 화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명백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이렇게 소위 위험한내용은 두 가지 방법으로 다루어질 수 있었다. 하나는 무시하고 격리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연구하고, 계속해서 교육하고, 비판이건 변형이건 수용이건 끈질기게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다. 놀랍게도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 것은 과거에 스스로 아리스토텔레스와의 단절을 선언했던 로마 가톨릭 교회, 즉 기독교였다. 이슬람은 종교가 단순히 조직체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지식인 집단과 종교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지식이 위험한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것을 자신들의 사회에서 쉽게 도려내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라틴 세계를 지배하던 강대한 조직체였으며, 그 안에서 사상의 생산과 평가, 교육이 함께 이루어졌다. 어떤 생각이 새롭게 그들의 세계로 흘러 들어오게 되면, 가장 지배적인 것 그 자체가 그 생각을 품고 소화해내도록 설계되어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세계에서 이슬람 문명권에서 보존되어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다시 번역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하게 되었을 때, 이를 둘러싼 논쟁의 불씨는 금방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5. 세 번째 전환 수용하느냐 배척하느냐, 충돌의 중심지-학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에서, 저자는 항상 사람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물 흐르듯이 이끌어 나간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대상이 바뀔 때 생각의 초점도 함께 이동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여 읽는 이를 사건에 압도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람을 따라 자연스럽게 사건과 논쟁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준다. 이에 더하여, 단지 사람의 공적과 사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삶과 보다 내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함께 풀어놓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사람을 보다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해 두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이교도들과 통제할 수 있는 개혁주의자들을 그처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경계선은 당시 유럽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대학교의 학생들을 매료시켰던 새로운 학문에 의해 제기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되질 못했다. 대학교의 교육 과정이 어떤 식으로 통제되어야 하는가? 충직한 지식인 집단과 의심스러운 지식 집단을 어떤 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8]

 

위에서 지적했듯이, 기독교 문화에서 지성적 논의의 중심지는 종교의 중심지와 일치했다. ‘성당 학교들은 진리 탐구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들을 설파하는 장소인 동시에 새롭고 진취적인 학문적 해석이 싹을 틔우는 토양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길, 즉 신앙의 길과 진리 추구의 길은 같이 가는 듯 하다가도 끊임없이 삐걱거리며 갈등을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어느 쪽이 옳은가? 한 쪽은 다른 한 쪽을 통제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가? 그 시대의 존경받는 학자들은 이 둘을 화해시키거나, 우열을 밝혀주거나, 한쪽을 무시하거나, 어떻게든 방향을 제시해 주고자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이 라틴어로 번역되고 널리 읽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믿어라, 신의 뜻이니라.’ 하는 설명에 만족하지 않았다. 믿음에는 이유가 요구되었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리들을 설명할 수 있느냐는 신앙에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아벨라르두스와 베르나르두스가 나름의 방식으로 습관적인 신앙과 형식화된 종교적 의식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고자 노력한 것[9]은 이러한 요구에 응답한 것이었으며, 이 논쟁은 점점 더 거세게 교회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파리 대학교나 볼로냐 대학, 옥스퍼드 같은 유명 대학교들에서 인문 대학은 빠르고 활발하게 성장해 나갔다. 인문학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충격을 가장 선두에서 느끼면서, 거의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였다.[10]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내부에 이단적인 내용들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런 변화는 정통 종교 교리를 공부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불안 요소로 간주되었다. 결국 주교들의 공의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이나 주석서가 읽히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런 배척과 금지는 사실상 효과가 없었으며, 교사-학생들과 수도사 간의 갈등, 기존 사상과 질서를 탈피하려는 노력-반항을 더욱 거세게 했을 뿐이다. 또한 진보적인 세속 교사나 학생들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신학자들이 존경받기 시작했다. 이제 새로운 조류를 거부하거나 수용하거나, 어떤 입장을 취하건 간에 아리스토텔레스를 고려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세가 무르익어가면서, 긴 시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고대의 지성은 이렇게 금지-거부라는 하향기와 수용-지향이라는 상향기를 격렬하게 왔다갔다하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6. 네 번째 전환 아리스토텔레스적 기독교에서 신앙과 이성의 분리로


즉 일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결론들을 검토하고 비판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유럽 전역의 학자들은 곧 이것을 근대적접근 방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략신학과 과학의 영역을 분리시키려는 근대주의적 성향 중략중세 사회의 위기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고방식이 탄생하고 있었다.”[11]

 

14세기가 되자, 서유럽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물론 여전히 기독교인들이었지만, 또한 그들은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이었다.[12] 기독교에 의해 수정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미 기독교 세계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이 사용되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앙의 영역뿐만 아니라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 등의 분야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조류는 인격적인 신앙과 비인격적인 과학의 영역을 점점 따로 보게 하였다. 보이티우스 이후의 오랜 시간 동안 신학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기위해 무척이나 노력[13]했으나, 결국 신앙과 이성이 결별을 선언하는 시기가 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중세의 신학에 이토록 힘겹게 섞여 들어간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 때문에 다시 맹렬하게 비판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스탈린주의와 소련을 연결시키는 역사를 재서술하는 것, 즉 당시의 정권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나 사건을 제거하는 것과 좀더 유사한 어떤 것이었다. 근대 초기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기독교를 비판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시키려고까지 했다.”[14]

 

 갈릴레오 같은 사람들은 그나마 건전한 스콜라 철학과 퇴폐적인 교조주의를 구분하며 다소 아리스토텔레스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베이컨이나 루터, 홉스 등의 근대 사상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의 무식꾼에, 한심한 거짓말쟁이 수준으로 격하게 몰아붙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는 근대 서구 문명이 조금도 이방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전적으로 자기 창조적인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서구의 문화적 배타주의 때문이며,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혁명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이 서구 문명이 이슬람 문명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감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15] 위에서 살펴본, 중세가 암흑시대였다는 편견은 이처럼 철저하게 중세와 단절을 선언했던 근대적 사고의 산물인 것이다.      

 

7.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하여,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긴 역사와 갈등을 풀어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은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하나는 그토록 싸우고, 부정하고, 대립하는 여러 문화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문화가 결국 한 뿌리(아리스토텔레스)에서 나온 한 집안 아이들이라는 것에서 화해의 실마리를 찾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가 이토록 부정적으로 평가 절하되는 것은 단지 다른 문화를 배척하는 서구의 배타적 태도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반성이다. 리처드 루빈스타인은 이 두 가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긴 이야기를 효과적인 방법으로 실감나게 잘 풀어놓았고, 독자로 하여금 낯선 중세 사상가들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사상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만으로 화해와 통합을 기대한것이라면 갈등의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갈등은 다름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주로 다름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 맞다. 하지만 한 시대를 지배했던 뿌리 깊은 종교 갈등이 아예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아니라 (한 집안 형제들이 싸운다면 더 격렬하게 싸우고 원수가 되는 것처럼) 일정 부분 같은 것을 공유하는, 아니 오히려 상당히 유사한데 아주 조금 해석과 형식을 달리하는 종교 간에 더 극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그 이유를 분석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 그들이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구 중세-근대 문명에 이슬람과 유대의 기여가 있었음을 재조명하는 탈 기독교 중심주의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으면서, 내용 자체는 지나치게 기독교 중심적으로 서술한 점이 아쉽다. 이 책에서 아랍 문명권에 대한 설명은 단지 기독교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만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근대 서구 세계에서 기독교 문명이 아랍 문명의 을 보았다는 것을 감추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폭로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아랍 문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독교 세계에서 배척당했을 때,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맡아 기르고 있던 탁아소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8.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몫은 세 가지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에서는 어떻게 소화되고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추동력은 현대에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근대의 아리스토텔레스 부정(否定)의 그늘 아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또 재평가하며 지금 사회로 다시 이끌어 오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인가? 라는 질문들에 답하며 근대의 평가를 현대의 사상으로 주체적으로 넘겨받아 오는 것. 여전히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갈등과 불화와 대립, 반목으로 인한 비참을 극복하고 화해하여 평화로운 동반 상승을 이루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역사적 편견과 차별을 청산하는 것.  



[1] 리처드 루빈스타인, 유원기 옮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민음사, 2004, 36.

[2] 같은 책, 29~30.

[3] 같은 책, 104.

[4] 같은 책, 107.

[5] 같은 책, 118.

[6] 같은 책, 108~118.

[7] 같은 책, 129.

[8] 같은 책, 225.

[9] 같은 책, 182.

[10] 같은 책, 228.

[11] 같은 책, 341.

[12] 같은 책, 338.

[13] 같은 책, 352.

[14] 같은 책, 387.

[15] 같은 책,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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