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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들이 얼마나 후퇴했는지는 대중조직들에 상태뿐만 아니라 사상집단들이나, 그 집단들로부터도, 관여했던, 이론적 연구들에 결과를 봐도 가늠할 수 있겠다. 파리에서 출간된 <크 페르, 무엇을 할건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스스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좌파, 지배계급들에 지식인들이나, 지식인들에 모든 악습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고립된 노동자들에 경험주의에서조차도 한 치도 벗어나지도 못한다.
과학적인 기초마저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강령도, 전통마저도 없는, 여느 집단들이나 마찬가지로, 이 시시한 잡지들 마저도 그저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에 편승하려고만 했었다. POUM이야말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승리로 이르는 첩경을 제시한 정당이라고만 생각한거다. 그러나 <크 페르>도 이렇게나 스페인 혁명에서나 연관만을 맺는 결과는 처음부터는 커녕 완전하게도 기대마저도 어긋난듯하다. 그래서 이 잡지로는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했었다. 이건 완전하게도 당연한 결과다. 새로운지배계급들에 보수성이나 무산계급혁명들에 대한 필요성 사이에서도 모순들은 극단으로도 치달았기 때문이다. POUM정책들을 그저 옹호하고, 해명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적·이론적 영역에서도 크게 되보한다는 건 지극하게도 당연하다.
<크페르> 자체로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징후를 잘 보여준다. 스페인혁명으로는 패배원인들에 대한 이 잡지들에 평가를 천천히 곱씹어 보는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로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더욱이나 이러한 평가로는 사이비 마르크스주의 좌파 진영들에도 널리 펴진 근본적 특징들을 매우 생생하게만 보여준다. 카사노바 동지마저도 쓴 소책자 <배반당한 스페인>에 대한 <크 페르>에 서평들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한 번 시작해보자.
"왜 혁명마저도 분쇄됐는가." 카사노바 저자는 다음으로 같이 답변한다. "공산당은 잘못된 정책들을 펼쳤고, 불행하게도 혁명적인 대중들은 이를 그저 따르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대체 왜 혁명적 대중들은 옛 지도자들을 버리고 공산당에 깃발 아래로 결집했던가. "왜냐하면 진정한 혁명정당들 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순수한 동어반복들일 뿐이다. 대중들에 잘못된 정책들이나 미숙한 정당들로는 사회세력들에 특정한 상태들, 노동계급들에 미숙, 농민들에 대한 독립성 부족으로 나타내고, 이런 상태로는 사실들을 바탕으로도 설명돼야만 한다. 특히나 카사노바 같은 사람들은 그런 설명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지도 않는다면, 사회세력들에 상태는 악의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들에 행동결과로 되는데, 그런 행동들은 유일하게 혁명들을 구할 수 있는 '진지한 개인들'에 대한 노력들마저도 부합하지도 않는다. 카사노바는 처음에 마르크스주의에 길을 더듬더듬 찾다가 결국 두 번째로 길로 들어선다. 여기서 우리는 순수한 악마학에 영역으로도 안내된다. 패배에 대한 책임마저도 있는 범죄자로는 대마왕 스탈린도 있었고, 여러 아나키스트들이나, 여러 작은 악마들마저도, 스탈린을 부추길 수 있었고, 혁명가들에 신으로는 유감스럽게도, 1917년에 러시아와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레닌이나 트로츠키를 보내주지도 않았다는거다.
따라서 결론으로는 다음으로 같다. "이건 교회는 화석화한 정설들로부터도 사실에 강요하려 할 때는 빚어지는 결과다." 이런 이론적 오만함들을 더욱이나 돋보이게 하는 건, 보수적인 속물들에 진부함들, 천박함들, 오류들을 그토록 짧은 문장들로부터도, 그토록 많이 보여 줄 수도 있었다는 사실들에 있었다. 위에 인용문 저자로는 여러 스페인 혁명들은 왜 패배했는지를 결코 설명하지조차도 않았다. 단지 '사회세력들에 상태'와도 같은 모호하고, 심오한 설명들만 그저 필요하다고 지적할 뿐이었다. 그 저자로는 설명들을 회피한다는 건 우연조차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볼셰비키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론적 겁쟁이들이다. 그들에게는 확고한 독자적인 견해들마저도 전혀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들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에 파산들을 드러내지도 않으려고 사실들을 왜곡하고, 다른 사람들에 견해를 기웃거린다. 그들은 마치 시간마저도 없어서, 자신들에 지혜를 충분하게도 보여주지도 못하는 어린 양에 대한 넌지시 암시나, 어중간한 생각들만 내비칠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는 지혜라고 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 그들에 오만함에는 지적허풍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저자들에 암시와 어중간한 생각들을 하나씩 분석해보자. 그는 대중들에 잘못된 정책들을 '사회세력들에 특정한 상태들', 곧 노동계급들에 미숙이나 농민들에 독립성 부족들ㄹ로 보여주는 걸로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보바도 더 명백한 동어반복들 마저도 찾기란 힘들거다. '대중들에 잘못된 정책들'은 대중들에 '미숙들'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들에 대한 '미숙'이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잘못된 정책들에도 빠지기 쉬운 경향이다. 잘못된 정책들에 내용이란 무엇인지도, 누가 그 정책들을 주도했는지, 대중인지, 지도부인지,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줄곧 침묵해왔었다. 동어반복으로부터도 그는 대중들에게 그저 책임들을 전가한다. 모든 배신자와 이탈자,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에 대한 이런 고전적 속임수로는 특히나 스페인 무산계급들로부터도 혐오감마저도 불러일으킨다.
1936년, 7월에도 이전 시기는 거론조차도 하지 않겠다. 스페인 노동자들은, 민중전선들에 대한 비호를 받으면서도 음모를 꾸미고, 온 장교들에 공격들을 격퇴했었다. 대중들은 성급히도 시민군들을 조직했고, 장차 무산계급들에 요새로 될 노동자위원회들을 건설했었다. 반면에, 무산계급들에 대한 지도적 조직들은 지배계급들에게도 노동자위원회들을 파괴하고 사유재산들에 대한 노동자들에 공격들을 무위로도 돌리고 노동자 시민군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줬었다. 더욱이나, POUM으로는 정부에 참여해서도 이런 반혁명적인 활동들에 책임마저도 떠맡기까지 햇었다. 이 경우에도 무산계급들에 '미숙'으로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명한 사실로는 이것뿐이다. 곧, 대중들은 올바른 정치적인 노선들 마저도 선택했는데도 사회주의자, 스탈린주의자, 아나키스트, POUM이나 지배계급들에 연립정부를 분쇄할 수는 없었다는거였다. <크 페르> 저자에 이런 궤변으로는 무슨 절대적인 성숙한 개념들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곧, 올바른 지도부는 필요조차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에 지도부를 거슬러서는 승리할 수도 있는 대중들에 완벽한 상태로만 가정한다. 그러나 그런 성숙으로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겠다.
우리에 현혁자들은 다음들로 같이 반문한다. 그렇게 올바른 혁명적인 본능들이나, 뛰어난 투쟁능력들 마저도 보여준 노동자들은 왜 배신적이던 지도부들에 굴종했던가. 우리들에 대답으로는 이렇다. 굴종에 낌새들조차도 없었다. 노동자들에 행진방향으로는 언제나 지도부에 방향으로도 어느정도 엇나갔다. 그리고 매우 결정적인 순간들에는 방향으로도 서로 정반대마저 됐었다. 그러면 지도부는 무력적으로도 노동자들을 굴복하고자한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도왔다는 말도 된다. 1937년 5월 카탈루냐에 노동자들은 지도부도 없이도, 아니 지도부를 거슬러서 봉기했었다.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은 손쉽게 혁명가들로부터 위장한 가련하고, 한심한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에 신문에서도 다음으로 같은 말들을 수백 번도 더 되풀이했었다. 곧, 전국노동자연맹으로는 5월에 권력들을 장악해서는 자신들에 독재정권들을 세우기를 원했다면 별 어려움 없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거라고 말한다. 이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에 말들은 완전하게 진실이었다. POUM지도부는 사실상, CNT에 꽁무니나 따라다니면서 CNT에 정책들을 다른 문구로 포장만해줬을 뿐이다. 지배계급들로부터도 '미숙한' 무산계급들에 대한 5월봉기를 분쇄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 덕분이었다. 스페인 대중들은 지도부를 따르기만 했다는 공허한 말들을 반복해서는 계급이나, 당, 대중들이나 지도부 사이에서도 상호관계들에 대해서는 무엇조차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로는, 대중들로 언제나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고, 분투했지만, 투쟁들에 불길 속에서도 혁명들에 요구에 부응하는 새 지도부를 건설할 수는 없었다는거다. 우리는 살펴보는 대단하게도 역동적인 과정들에서는 혁명들에 여러 단계들은 급변하고, 지도부로부터 여러 분파들은 계급들에 대한 적진으로 재빨리도 도주한다. 그러나 우리들에 현학자들은 다음으로 같이 순전하게 정적인 논의를 하고 있었다. 노동계급 전체는 왜 잘못된 지도부를 따랐는가. 진화론적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오래된 경구마저도 있었다. 모든 나라들에서 국민들은 자신들에 수준들에만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거다. 그러나 역사를 보자면, 똑같은 국민들은 비교적 짧은 시기들 동안에도, 사뭇 다른 정부들을 가질 수 있었고,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으로부터도 역사를 보라. 더욱이나 이러한 정부들은 수립되는 순서로는, 진화론적 자유주의자들에 생각으로는 달리, 전제정부들에서도, 자유주의 정부로 나아가는 동일한 방향으로는 절대로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비밀로는, 국민들은 적대적인 계급들로 구성돼있었고, 계급들 자체마저도 서로 다른 지도부를 따르는 서로 달른 계층들, 부분적으로는 서로 적대적인 계층들로만 이뤄졌다는 사실들이다. 더군다나 모든 나라들에서도 국민들은 다른 나라 국민들도 역시나 계급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영향들을 직간접적으로도 받는다. 정부는 체계적으로도 성장하는 '국민'들에 '성숙'들을 나타내는 건 아닌지라, 상이한 계급들 간에 투쟁들이나, 동일한 계급들 내에서도, 상이한 계층 간에 기층적인 투쟁들에 산물들이고, 마지막으로는 동맹·갈등·전쟁 등으로부터 같은 외부적인 힘들도 작용한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정부는 한번만 수립되면, 그 정부를 만들어낸 세력관계들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따는 점도 덧붙여야만 한다. 바로 이런 역사적 모순들로부터도 말미암아서, 혁명·쿠데타·반혁명 등도 일어난다. 한 계급들에 지도부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도 이와 똑같은 변증법적인 태도도 역시나, 마찬가지로도 필요해진다. 우리에 현학자들은 그저 자유주의자들을 모방해서는 모든 계급들은 자신들에 수준에만 맞는 지도부를 따른다는 경구를 암묵적으로도 그저 받아들인다. 사실상, 지도부는 한 계급들로부터도 단순한 '반영'들도 아니고, 스스로 자처한다고 해서도 될 수 있는거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상이한 계급들에 투쟁과정들이나, 특정계급들 내에서도 상이한 계층들 사이에서도 마찰과정들에서 형성된다. 지도부는 일단 형성되면, 항상 자기계급들을 넘어서기는 마련이고, 그래서도 다른 계급들에 대한 압력이나 영향들로부터도 받게 된다. 무산계급들로는 지도부에서도 이미 내부적으로도 완전하게도 변질됐는데도, 중대한 사건들로부터 그런 변질들을 아직은 드러나지도 않았을 때 그 지도부를 오랫동안 '용인'할 수 있었다. 지도부와 계급들 사이에서 모순들로부터 첨예하게 드러나려면, 거대한 역사적 충격들마저도 필요해진다. 매우 강력한 역사적인 충격들로는 전쟁이나 혁명들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흔히들 노동계급들에게는 느닷없이도 전쟁이나 혁명들에도 휘말린다는거다. 그러나 옛 지도부들에서도 내부부패마저 드러난 경우로도, 게급들은 당장에는 새 지도부를 급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특히나 기존에 지도적 정당들은 붕괴한 상황들로부터도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혁명적인 간부들을 이전 시기에서도 물려받지도 않았다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계급들이나 지도부들에서도 상호관계들에 대한 현학적인 해석마저도 아닌, 마르크스주의적인 해석들, 곧 변증법적인 해석들로는, <크 페르>저자들에 대한 형식주의적인 궤변들을 완전하게도 논파한다. <크페르> 저자로는 무산계급들에 성숙들을 순전하게도 정적인걸로만 여긴다. 그러나 혁명기에는 한 계급들에 의식들로는 혁명들에 진로를 직접 결정하는 매우 역동적인 과정들이다. 1917년 1월에, 심지어 차르체제들로부터도 전복된 뒤인 3월에조차도, 러시아 무산계급들에게는 8-9개월 뒤 권력들을 잡을만큼도 충분하게 '성숙'할지를 묻는 질문들에 과연 대답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도 노동계급들은 정치적·사회적으로도 매우 이질적이기만 했었다. 전쟁들을 수행하는 동안에서도 노동계끕들에 30-40%는 흔히 반동적인 새로운지배계급들에 출신들로도 교체됐었는데, 이들은 후진적인 농민들, 여성들, 청년들이었었다. 1917년 3월에도 볼셰비키당들을 지지한 노동계급들은 하찮은 소수들에 불과했고, 더구나 당내에는 의견 충도를도 있었다. 노동자들에 압도다수로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곧 보수적인 사회애국주의자들들 지지했었다. 군대와 농촌에서는 상황마저도 더 불리해졌다. 여기에 다음에 사실도 덧붙여야만 한다. 러시아는 문화수준들로부터도 대체로도 낮았고, 농민들이나 병사들은 물론 광범위한 무산계급들에 대중들도 정치경험들마저도 부족했었다. 특히나 지방에서는 그랬었다. 볼셰비키들에 '유동자산'들은 무엇이었는가. 오로지 레닌만이 혁명초기부터 분명하고 일관된 혁명개념들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당에 간부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로도, 상당하게,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에서는 선진노동자들에게만 권위는 있었고, 레닌에게는 당간부들에게만 커다란 권위만 주어졌었다. 레닌에 정치적인 개념들로는 혁명에 대한 실제전개과정들로부터도 잘 맞아떨어졌었고, 새로운 사건들도 일어날 때마다, 더욱 강화됐었다. 이러한 '자산'들은 혁명적인 상황들, 곧 격렬한 계급투쟁들에 상황들에서도, 기적들을 만들어냈었다. 당에서도 레닌으로부터 제시했던 개념들에도 맞게도, 곧 혁명들에 대한 실제과정들에 맞게도 재빠르게 정책들을 조정했다. 덕분에 수많은 선진노동자들에게는 확고한 지지를 받았다. 혁명에 대한 발전과정들에도 바탕을 둔 덕분에 당은 몇 달 만에 다수노동자들에게도 당에 구호는 올바르다는 걸 확신하게 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로 조직된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이번에는 병사와 농민들을 끌어당길 수도 있었다. 역동적·변증법적인 과정들로 어찌해서 무산계급들에 성숙 또는 미숙이라는 공식으로도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1917년 2월이나 3월에도 러시아 무산계급들에 대한 성숙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요인들도 바로 레닌이었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는 노동계급들에 혁명적인 전통들에 화신이었다. 레닌에 구호로는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비록 처음에는 수마저 적더라도, 간부들은 존재해야만 했었다. 또한, 지도부들에 대한 ㄱ간부들에 신뢰, 곧 과거에 모든 경험들을 바탕으로도 한 신뢰들마저도 있어야만 했었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생동하는 혁명들을 무시하고, '세력관계'라는 추상으롼 대체하는거다. 왜냐하면 혁명에 대한 발전과정들에서는 무산계급들로부터 의식마저도 바뀌고, 후진부위는 서진부위로도, 이끌리고, 계급들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증대함에 따라 세력관계로는 끊임없이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핵심동력은 다름아닌 당이다. 당에 메커니즘에서 핵심동력들도 지도부이듯이 말이다. 혁명기에 지도부에 대한 구실들이나 책임들은 막중하다. 10월 혁명들에 대한 승리로는 무산계급들에 대한 '성숙'들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다. 그러나 이 성숙은 상대적이다. 몇 년 뒤 바로 그 무산계급들롭부터는 자신들에 대열에서도 성장한 관료들은 혁명을 교살하도록 허용했었다. 승리는 무산계급들로부터도 '성숙'한 결과로 얻게되는 다 익은 열매는 그저 아니기 때문이다. 승리는 전략적인 과제들이다. 대중들을 동원하려면, 혁명적 위기라는 유리한 상황들을 이용할 필요도 있다. 특정 수준들에 '성숙'들을 출발점으로도 삼아서, 대중들로부터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해야만 하고, 또한 적들에게는 결코, 전능하지도 않고, 오히려 모순들로 사분오열해 있고,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공황상태에만 빠져있었다는 걸 대중들에게도 이해하게해야 하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당에서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면 무산계급혁명에서 승리는 말조차도 꺼내지 못했을거다. 소비에트는 반혁명으로 오래 전에 파괴됐을거고, 따라서 전 세계에 비열한 현학자들은 러시아에서 오직 몽상가들만이 너무 소수인데다, 너무 미숙한 무산계급독재를 꿈꿨다는 내용들에 책들이나 글들만 써댔을거다.
마찬가지로 농민들에 대한 '독립성부족'들도 운운하는 주장들도 심지어는 추상적·현학적이고 잘못됐었다. 우리에 현학자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농민들은 독립적인 혁명적인 강령들이나, 독립적인 혁명적 주도권들을 가진 경우를 도대체 언제 어디서 봤던가. 농민들은 혁명에서도 매우 중대한 구실들을 할 수 있지만 단지 보조적 구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많은 경우에도, 스페인 농민들은 대담하게 행동하고, 용감하게도 싸웠었다. 그러나 농민 저체를 봉기하게하고자 하려면, 무산계급들은 지배계급들에 맞선 결정적인 봉기들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줘서, 농민들에게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들을 줘야만 했었다. 그러나 무산계급들에 혁명적인 주도권 자체로는 번번이 무산계급 자신들에 조직들에 의해서도 마비됐었다. 무산계급들에 '미숙', 농민들에 대한 '독립성 부족'들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궁극적인 요인들도 아니고, 근본적인 요인들도 아니다. 따라서 계급의식에 근저에는 계급에 대한 존재, 자체들로, 계급에 대한 인원수들, 경제생활에서 계급들로부터 할 수 있는 구실들로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급에 근저에는 곧 생산력 발전 수준들에 조응하는 특정한 생산체제들도 놓여 있게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페인무산계급들에 대한 패배는 그저 낮은 기술수준들 때문이라고 말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에 저자는 역사과정들에서도 변증법들을 기계적 결정론으로만 대체한다. 그래서 좋든, 나쁘든, 개인들이 하는 구실들을 저속하게도 비웃는다. 역사는 곧 계급투쟁들에 과정들이다. 그러나 계급으로는 자신들에 중요성들을 저절로, 그리고 동시에 깨닫지도 못한다. 투쟁과정들에서는 계급들은 다양한 조직들도 만들어내는데, 조직들은 중요하고, 독립적인 구실들도 하지만, 과정에서는 변형마저도 겪을 수밖에는 없게된다. 또, 역사에는 개인들도 하는 구실들에 토대마저도 되기도 한다. 물론 히틀러에 독재정권들을 만들어 낸 중요한 객관적인 원인들도 있었지만, 그저 '결정론'들로 사로잡힌 우둔한 현학자들만이 오늘날 히틀러에 엄청난 역사적인 구실들을 무시할거다. 1917년 4월 3일 레닌은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한 덕분에, 볼셰비키당은 제때로 바뀔 수 있었고, 혁명들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었다.
우리들에 현학자들은 레닌도 1917년 초에 외국에서 죽었더라도, 10월혁명은 '그대로' 일어났을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도 않다. 레닌에게는 역사적 과정들로부터도, 생동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무산계급들에 매우 능동적인 부문들에 대한 경험들이나 통찰력들에도 화신이었다. 무산계급들에 전위를 움직이고, 그들에게는 노동계급들이나 농민대중들에게도 규합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레닌으로부터 혁명무대에도 제때 등장하는 건 꼭 필요했다. 역사에 전환점이라는 결정적인 순간들에 정치적 지도부는 전쟁에 대한 결정적인 순간들에도 총사령부나 하는 구실만큼이나 결정적인 요인들이다. 역사는 자동적 과정들도 아니기 때문에, 역사는 그저 자동적인 과정들이라면, 지도자는 도대체 왜 필요하겠는가. 당강령, 이론적 투쟁들로부터도 또 왜 필요하겠는가.
앞서 봤듯이, <크페르>에 저자는 "그러나 도대체 왜 혁명적인 대중들은 옛 지도자들을 버리고, 공산당에 깃발 아래로 결집했는가." 하고 묻는다. 그러나 질문들은 잘못 제기됐다. 혁명적인 대중들에 옛 지도자들을 모두 버렸다는 건 사실마저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에 특정조직들로부터도 연계돼 있던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조직들에 연연하면서, 지켜보고, 확인했다. 대체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일깨워서 의식적인 삶을 살게 해 준 당으로부터도 쉽게 떠나지도 못한다. 더구나 민중전선 내에 존재하는 상호보호라는 분위기는 노동자들을 안심하게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동의했으니, 모든 일들은 잘 풀릴거다.' 새롭고 경험 없는 대중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코민테른들로부터 의지했다. 왜냐하면 코민테른은 유일하게 무산계급혁명들에 성공한 정당들이었고, 틀림없이도, 스페인에 무기를 제공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코민테른으로는 민중전선 사상들을 매우 열렬하게도 옹호했다. 경험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민중전선 내에서도 코민테른으로는 혁명에 대한 지배계급들에 대한 성격들을 매우 열렬하게도 옹호했다. 새로운지배계급들로부터도, 부분적으로는 중간지배계급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들은 "공산당이라는 깃발 아래로 결집했다."
<크페르> 저자로는 무산계급들에게 신발 많은 신발가게들에서 새 구두를 고르는 문제인 양 사태를 묘사한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이렇게 단순한 일조차도 매번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새 지도부를 선택하는 일로는 훨씬 더 제한만 많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대중들에게는 오직 점진적으롼, 그리고 여러 단계를 거친 자신들에 경험들에 근거해서만, 새로운 지도부는 옛 지도부보다도 더 확고하고, 더 믿을만하고, 더 충실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확실하게, 사태는 급변하는 혁명기에는 허약한 당도 혁명에 대한 진로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확고한, 간부들, 미사여구에 도취하지도 않고, 박해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보유하고 있다면, 강력한 당으로 금세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당으로는 혁명 이전에도 준비돼 있어야만 한다. 간부들을 훈려하게하고자 하려면, 상당한 시간마저도 필요해지는데, 혁명에서는 이런 시간들 마저도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POUM으로는 스페인에서 매우 왼쪽에 있는 정당들이었고, 혁명 전에는 아나키즘을 굳게 신뢰하지도 않는, 혁명적인 노동잗르을 포함하고만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당으로부터도 스페인혁명들에 대한 전개과정들로부터도 치명적인 구실들만 해왔기 때문이다. POUM으로는 대중정당으로는 성장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대중정당들로 될면 먼저 기성정당들을 무너뜨려야만 했는데, 이건 비타협적인 투쟁들로만, 그리고 기성정당들에 지배계급적인 성격들을 가차없이 폭로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POUM으로는 기성정당들을 비판하면서도,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로는, 오히려 그들에게 종속됐다. POUM으로는 '민중' 선거연합들에도 참가했었고, 노동자위원회를 해산한 바로 그러한 정부들에도 들어갔고, 이러한 연립정부를 재건하는 투쟁에도 참여했고, 아나키스트 지도부에도 거듭거듭 굴복해왔고, 이와 관련해서는 잘못된 노동조합정책들마저도 실행해왔고, 1937년 5월 봉기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비혁명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결정론에 대한 관점으로는, POUM에 정책들은 그저 우연마저도 아니었다고, 인정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나름대로 원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OUM에 중간주의를 낳는 여러 원인들이나, 스페인이나, 카탈루냐무산계급들에 상황들을 반영한 건 결코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 인과관계는 서로 비스듬하게 접근하다가도, 어느 순간들로는, 적대적으로만 충돌했을 뿐이었다. POUM마저 중간주의 정당으로 전락한 이유를 정치적·심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과거에 국제적인 경험들, 소련에 영향들, 수 많은 패배들에 대한 영향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POUM에 대한 중간주의 성격마저도 바뀌는 거도 아니고, 중간주의 정당들은 언제나 혁명에 걸림돌 구실들을 해왔고, 자기발등만을 찍고 혁명들에 패배를 수도 있다는 사실들마저도 바뀌는 거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카탈루냐 대중들에게는 POUM보다도 훨씬 더 혁명적이었고, POUM에 평당원들도 지도부들보다도 훨씬 더 혁명적이었다는 사실마저도 그리 쉽게 바뀌는거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마저 그러한데도, 잘못된 정책들로부터 대중들에 '미숙함'을 탓으로만 돌리는 건 정치적 파산자들이나 흔히 의존하는 순전한 허풍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왜곡으로는 다음으로 같다. 스페인 대중들에 패배에 대한 책임들은 대중들에 대한 혁명적인 운동들을 마비하게하거나, 심지어는 분쇄한 이러한 정당들만이 아니라, 노동대중들에게도 있다는거다. POUM옹호론자들도 지도부들에 책임들을 한사코 부정하면서도, 자신들에 책임마저도 회피하려고 한다. 이런 무기력한 철학들로는 패배를 보편적인 발전과정들에 필수적인 연결고리로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패배를 자초한 강령, 당, 개인들로부터도 구체적인 요인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하고, 제기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숙명론이나 굴종에 철학들로는 혁명적인 행동들에 이론들인 마르크스주의와도 정반대된다.
내전으로는 정치적인 과제들로부터 군사적인 수단들로도 해결되는 과정들이다. 전쟁에 대한 결과로는 '계급세력들에 상태'에 따라서 결정된다면, 전쟁, 자체로는 필요하지도 않을거다. 전쟁으로는 자체에 따른 조직들, 자체에 따른 정책들, 자체에 따른 방식들, 자체에 따른 지도부들도 있고, 이런 건 대체로도, 전쟁들에 운명으로부터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당연하게도 '계급세력들에상태들'마저도 다른 모든 정치적인 요인들에 토대로 된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물에 토대로부터 벽, 창문, 문, 지붕들에 중요성들을 감소하게하지는 않듯이, '계급세력들에상태'로는 당, 전략, 지도부에 대한 중요성들 마저도 없애지는 않는다. 우리들에 현학자들은 구체적인 걸 그저 추상적인 걸로만 해소하게하면서도, 정말로 중간에서만 멈춰버렸었다.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심오한' 해법으로는 생산력발전들로부터도 불충분해서는 스페인무산계급들로는 그저 패배했다고만 말하는 거겠지만, 이런 말들은 바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 현학자들은 당이나 지도부에 대한 중요성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다보니 대체로는 혁명적인 승리로부터도 할 수 없다고 부인한다. 왜냐하면 더 유리한 상황들을 기대할 근거들마저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들에 대한 발전들은 늘 중단됐었고, 무산계급들에 대한 수로는 크게 증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실업자만 더 늘어나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이건 무산계급들에 투쟁력을 증대하게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게하고, 그들에 대한 계급의식에서도 부정적인 효과만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들에서도, 농민들은 더 높은 혁명적인 의식들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조차도 없다. 따라서 <크페르> 저자에 분서에서 나오는 결론으로는, 혁명적인 전망들에서도 벗어난 완벽한 비관주의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 공정하게 말해보자면, 이 저자는 자신에게 한 말마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반증하기 때문이다.
사실, <크페르> 저자는 대중들에 의식들로부터도, 제기하는 요구들마저도 완전하게 환상일 뿐이다. 스페인농민들이나 노동자들에게는 혁명적인 상황들에서도, 자신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줬었다. 우리는 바로 이들 계급들에 대한 수백만, 수천만 명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페르>는 이처럼 시시한 학파들이나, 교파들, 가운데서 하나일 뿐이다. 그들로는 투쟁에 경로와 반동들에 시작에도 겁을 먹기만 했었고, 대중운동들은 물론 혁명적인 사상들이나 실제발전과정들에서도 멀리 떨어진 채로, 처구석에서 하찮은 잡지들이나, 이론적인 습작들을 그저 재출간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무산계급들로는 제국주의자, 스페인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스탈린주의자와 좌파인 POUM으로 구성된 연립정부들로부터 희생됐다. 그들은 스페인무산계급들도 정말로 실현하기 시작했던 사회주의혁명들마저도 완전하게 마비하게만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들을 제거한다는 건 그리 쉽지도 않다. 무자비한 탄압, 선진부위학살, 지도부처형, 등에 방법들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는 아직까지도 고안되지도 않았다. 물론 POUM으로는 이런 걸 원하지조차도 않았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공화국정부들에도 참여해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충실한 반대팔로 집권당 진영으로 들어가고자만 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해할 수 없는 내전에 문제로 정작 닥쳤을 때는 평화적인 동지관계를 그저 유지하고자만 했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POUM으로는 자신들에 모순된 정책들로부터 희생되고 말았다. 집권당 진영에서도 매우 일관된 정책들을 추구한 건, 정작 스탈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지배계급들에 공화주의 반혁명들을 위해 싸우는 전위들이었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그들 자신들에게도 '민주주의' 기치 아래에서도 무산계급들에 혁명들마저도 교살할 수 있음을 스페인이나 전 세계 지배계급들에게도 입증해서는 파시즘에 대한 중요성들을 제거하려고만 해왔었다. 이건 그들 정책들에서도 요점들이었었다. 오늘날 스페인 민중전선들이나 파산자들로는 게페우GPU를 비난하고, 책임들마저도 전가한다. 확신컨대, 우리는 GPU에 범죄들에도 관용마저도 베풀 수는 없겠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들로부터 같은 사실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따라서 노동자들에게도 이렇게도 말해야만 한다. GPU는 민중전선들에 헌신하는 매우 단호한 파견대 구실만을 했을 뿐이었다고 말이다. 여기에 GPU에 대한 강점도 있었고, 스탈린에 역사적 구실들마저도 있어왔었다. 단지 무지한 속물들만이 대마왕에 대한 어리석은 농담들을 지껄이면서 이 사실들을 무시할 수 있을 뿐인지라.
이 신사양반들로는, 혁명들에 대한 사회적인 성격들이라는 문제를 놓고 고민조차도 하지 않는다. 소련에 충실했던 부하들은 영국이나 프랑스를 위해서도, 스페인혁명들로부터도, 그저 지배계급들에 혁명이라고만 선언해왔었다. 이런 속임수를 바탕으로도 민중전선들은 배신적인 정책들만을 수립하게 됐다. 민중전선들에 정책으로는 스페인혁명들로부터 정말로 지배계급들에 혁명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완전하게 잘못된 정책들이었을거다. 그러나 스페인혁명들은 처음부터 1917년 러시아혁명때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무산게급적인 성격만을 드러냈었다. 오늘날 POUM 지도부들 내에서도 신사양반들은, 안드레우닌에 정책들로부터도 너무 '좌파적'이었다고, 진정한 올바른 정책들은 민중전선들 내에서도 좌파로 남아있는거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불행으로는 닌은 레닌으로부터 10월 혁명에 대한 권위를 한 몸에 누리면서도, 민중전선들로부터도, 결별하기로 결단들을 내리지는 못했다. 중요한 문제들에서도 경솔한 태도만을 취해놓고는, 스스로 체면만을 구기는 빅토르세르주는 닌이나, 오슬로나, 코요아칸들에 명령들을 따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고만 썼었다. 진지한 사람이었더라도, 과연 혁명에 대한 계급적 내용이라는 문제를 그저 하찮은 잡담거리로만 다룰 수나 있었을까.
<크페르>에 현학자들로는 이런 물음들에도 결코 답하지도 못한다. 그들로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다음으로 같은 사실들이다. 곧, '미숙한' 무산계급들로부터는 자신들에 권력기관들을 세우고, 기업들을 접수하고, 생산들을 규제하려고만 했으나, POUM으로는 지배계급아나키스트들로부터도, 분열하지는 않으려고, 갖은 애를 무진장 써왔기만 했었고, 이 아나키스트들은 정작 지배계급사회주의자들이나, 스탈린주의자와는 말할거도 없었고, 심지어는 지배계급공화주의자들로부터도, 동맹들을 맺었고, 무산계급들에 혁명들을 공격하고, 교살했다는거다. 이런 '하찮은' 이야기로는 '화석화한 정설'들에 대표자들에게만 그저 중요할 뿐이었다. 오히려 <크페르>에 현학자들로는 혁명적인 계급전략들에 대한 모든 문제와도 무관하게도 그저 무산계급들에 성숙정도와 세력관계를 측정하는 특별한 도구들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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