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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
김영민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평점 :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 ❙ 김영민 ❙ 김영사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등의 칼럼으로 유명한 문장가이자 서울대 교수인 김영민의 첫 소설집이다.
(서평) 울면서 달리기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는 정교한 문장과 유머를 도구 삼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전방위적으로 해체한다.
뇌수가 녹아내리도록 아부하는 전문가와 독재자의 대립부터, 사라진 혁명가 장길산을 추적하는 전단, 내향인들의 은밀한 반달리즘, 노벨문학상에 국운을 건 K국. 산속으로 들어간 동어 스님, 삼천포로 향하는 사람, 머리 감겨 줄 사람을 구하는 이, 오래된 책을 처음 읽어준 필멸자, 파일의 사랑, 벌거벗고 질주하는 사람들까지 책 속에 등장하는 열두 편의 이야기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은은하게 미쳐 있는' 인물들이 차고 넘친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뜻밖에 깊은 사유가 남는다.
이 책에서 거듭 변주되는 ‘핥는다’라는 표현은 세상과 타인을 향한 인간의 생존 방식이자 관계 맺기를 상징함으로 읽힌다. 권력자의 전두엽을 살살 핥아대는 아부의 테크닉과 기성의 권위를 핥아 안전을 도모하는 모습에서 권력과 욕망 앞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하찮고도 절박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애인이나 개가 상대를 핥는 일상의 애착을 묘사하기도 한다.
여기서 '핥음'이란 인간이 타인이나 세상을 향해 뻗치는 욕망과 비굴함, 그리고 애정이 엉킨 가장 본능적인 접촉 행위다. 작가는 특유의 해학으로 “인간은 거창한 명분이나 대의가 아니라, 서로의 결함을 핥고 비비며 안락함이나 인정을 구하는 지극히 사적인 존재다.”라는 사실을 비틀어 보여준다.
읽다 보면, 잊기 힘든 명문장과 기발한 상황이 쉼 없이 쏟아진다.
“속세를 떠나 종교에 귀의했으나 이곳에도 사리사욕이 만발하더라. 사리를 많이 남기려고 하는 것, 그것이 사리사욕이다. 사리가 몇 개 나왔는지 판단하는 게 사리 판단이다.”
“아주 소중한 것을 자청해서 잃어버린 적이 있나요?”
"외향인이 죽창으로 상대를 쑤실 때, 내향인은 이쑤시개로 상대를 쑤신다."
"울지 않는 사람이 강한 게 아니라 울면서도 일하는 사람이 강한 거예요.“
❝아부는 궁극의 겉절이다.❞에서는 기발한 비유에 웃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출마 의사를 밝히는 순간 그는 이미 자격이 없다. 왜냐고? 나댔기 때문이다.❞에서 내향인 이야기는 오늘날 나댐이 미덕이 된 세상에 일침을 날린다. 예송 논쟁을 두고 ❝지랄들 하지 마라.❞라고 정리하는 장면에서는 학창 시절 한국사를 읽으며 속으로 했던 말을 누군가 대신해 준 것 같아 통쾌하다. "속세를 떠나 종교에 귀의했으나 사리사욕이 만발하더라"라며 동어반복을 내뱉는 스님의 독설과 삼천포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승․전․결 ‘대인관계와 능률과 섹스로’ 귀결되는 기사의 황당한 만담은 언어유희의 절정에 이른다.
한편으로, 혁명을 꿈꾸다 언론 고시를 준비하고 강남 입시학원의 일타 강사로 승승장구하며 학생들에게 기이한 심리적 안식처를 제공하는 혁명가 장길산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몰입하게 한다. 이처럼 책 속에 배치된 문장 폭탄들은 읽는 이의 감각을 깨운다.
작가는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으로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사랑이란 완성된 매끄러움이 아니라 "상대에게 오염되고 부서지는 일"임을 짚어낸다. 오타를 교정하는 파일의 목소리를 빌려 "사랑은 결함을 포함한다"라고 나지막이 고백하듯, 이 소설집은 결함투성이인 우리 일상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인생의 단맛을 보여준다고 하여 단맛을 쫓았지만, 오히려 세상이 쓰기 때문에 더 간절해지는 맛이 아닐까. 이 책은 인생이라는 지옥 같은 낙하 과정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맛을 얘기한다.
어린 자식의 머리를 감겨주고 이웃과 솜털 같은 잔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일상, 사랑하는 사람과 부대끼는 시간.
폭풍우를 몰아내듯, 번뇌를 씻겨주듯, 갈증 난 두피에 오아시스를 끼얹듯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처럼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은 단 10분 정도와 ❝가능한 한 다정하게 말해주십시오.❞라는 친절한 말 한마디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는 미친 세상에서, 은은하게 미친 사람들에게 피눈물이 나더라도 삶의 뒤통수를 직시하며 울면서도 일해 나가자. “너도 그래? 나도 그래.” 그러니 “정신 승리 만세!”를 외치며 오늘을 살아내자는 용기를 건넨다.
<발췌>
“그래도 저 사바세계보다는 이곳이 낫겠지요.”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그러지 않더냐 도망쳐 도달한 곳에 천국은 없다고. 속세를 떠나 종교에 귀의했으나 이곳에도 사리사욕이 만발하더라. 사리를 많이 남기려고 정진하는 것, 그것이 사리사욕이다. 사리가 몇 개 나왔는지 판단하는 게 사리판단이다. 요로결석 환자나 이석증 환자가 사리가 나왔다고 우겨대는 게 이곳 현실이다.” 136~137p
어느 의상실에서 베옷을 맞출 거냐를 두고 예송 논쟁이 벌어지자, 선생의 수제자이자 후계자인 그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지랄들 하지 마라.” 199p
그리고 그에게 고백했다. (...) 사랑한다고, 오랫동안 사랑했고 더 오랫동안 사랑할 거라고. 단물이 다 빠져도 당신을 퉤 내뱉지 않겠다고, 입속의 금니처럼 간직하겠다고. 227p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책 보내주신 김영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