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사는 외계인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9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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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짜 외계인 이야기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중간고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초율,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눕는다.

 

초율아, 이리 들어와. 넌 이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때가 된 거야.”

수족관으로 들어와, 얼른! 더 지체하면 위험해질 수 있어.”

 

파란별, 지금 네가 나한테 말하는 거야?”

 

초율은 키우던 금붕어 파란별의 말에 따라 수족관 안으로 순간 이동한다. 물고기로 지내면서 안정을 찾은 초율은 성적과 상관없이 자신의 흥미를 위해 시간을 보낸다.

 

서강은 초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초율이 거절해도 강압적으로 교제를 강요한다. 초율이 끝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도리어 초율을 위협한다. 서강은 초율을 압박하려고 쌍둥이 형제 선율에게 맞았다며 학폭으로 신고하게 되는데~

 

다음 주에 학폭 위원회 열린다. 잘 준비하고 있지? 넌 끝장이야! 학교에서 아웃!”

그 다음은 초율이다! 알고 있지? 내가 그년도 끝장낼 거야! 학교에서 아웃!”

그 다음은 너희 엄마다! 알고 있지? 내가 너희 엄마도 끝장낼 거야! 이 사회에서 아웃!”

 



지구에 불시착한 아이들의 시간

이상권, 우리 집에 사는 외계인들

 

사춘기는 세상이 낯설어지는 시기가 아니라, 내가 낯설어지는 시간이다. 몸은 갑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어제까지 믿어 왔던 기준은 더 이상 나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이상권의 우리 집에 사는 외계인들은 이 흔들림을 감정의 비유로 돌리지 않는다. 작가는 청소년기의 정체성 혼란을 진짜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밀어붙이며, 우리가 느끼는 이질감이 얼마나 현실적인 감각인지를 드러낸다.

 

 

전교 1등 정초율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안정적이지 않다. 몸은 자주 무너지고, 성적은 더 이상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한다. 초율이 수족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다. 금붕어 파란별은 초율의 외로움을 대신 말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초율이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게 만드는 통로다. 물고기의 몸으로 머무는 동안 초율은 성적에서 벗어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의대를 목표로 하던 아이가 물리를 배우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변화는, 이 질문의 결과다.

 

 

쌍둥이 선율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흔들린다. 한때 영재였다는 말은 지금의 그에게 상처가 된다. 성적도, 키도, 관심도 멈춘 자리에서 선율은 자기 몸을 다시 믿고 싶어 한다. 그가 클라이밍을 선택하는 이유는 잘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떨어질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그곳은 선율에게 다시 숨을 돌려주는 공간이 된다.

 

 

이 아이들 앞에 서강이 등장한다. 서강은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다. 그는 타인의 시간을 빼앗아 자신을 유지하는 존재다. 좋아한다는 말로 다가오지만, 그 말에는 상대의 선택이 없다. 거절은 곧 도전이 되고, 분노는 위협으로 바뀐다. 학폭이라는 제도는 아이의 삶을 다루는 장이 아니라, 힘과 돈을 가진 어른들의 싸움터로 변한다. 서강이 시간을 먹고 산다는 설정은, 현실에서 타인의 마음과 삶을 닳게 하며 버티는 얼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위협에 맞서는 초율의 힘은 특별하지 않다. 외계의 능력도, 영웅의 자질도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다. 엄마 정우 씨와 나눈 일상, 선율과 쌓아 온 기억, 함께 견뎌 온 시간의 무게가 초율을 지탱한다. 파란별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선택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소설은 성장이라는 말이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는 일에서 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 집에 사는 외계인들이 말하는 외계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이유, 잘하던 것을 잃고 새로운 것을 얻는 이유는 망가짐이 아니라 변화이기 때문이다. 선율의 몸 안에서 다른 가능성이 깨어나듯, 정체성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 학교라는 좁은 틀 안에서 스스로를 문제로 규정해 온 청소년들에게, 이 이야기는 말한다. 너는 틀린 존재가 아니라, 아직 다른 별의 시간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은 거창한 해답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이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거울 속의 내가 모두 각자의 별에서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우리 집에 사는 외계인들은 그 받아들임이 곧 살아간다는 일임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 준다.

 





인물 속으로~

75p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날 싫어하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어. 내가 왜? 내가 뭐가 부족한데? 아니, 나를 싫어하다니 감히…….”(서강의 말)

 



약탈하는 빛, 서강 타인의 시간을 삼키는 얼굴

우리 집에 사는 외계인들에서 가장 서늘한 긴장을 만드는 인물은 서강이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라기보다, 타인의 시간을 빼앗아 자신의 삶을 연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설정은 서강을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유지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얼굴로 읽게 만든다.

 

서강이 초율에게 보이는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거절을 견디지 못하는 자의 분노이며, 자신의 완전함에 균열을 낸 존재를 제거하려는 충동에 가깝다. 그는 초율의 감정과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하고, 거부당하자 학폭과 제도의 틈을 무기로 삼아 가족의 일상까지 압박한다. 서강의 폭력은 육체보다 시간과 삶을 겨눈다.

 

이 소설에서 서강은 타인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는 존재다. 그에게 타인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소모되는 자원일 뿐이다. 이상권은 이 인물을 통해, 오늘의 사회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시간을 빼앗고도 아무 일 없다는 얼굴을 유지하는지를 드러낸다. 서강의 서늘함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그것은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도서를 제공 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날 싫어하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어. 내가 왜? 내가 뭐가 부족한데? 아니, 나를 싫어하다니 감히……." - P72

"엄마, 지금 학폭 위원회는 학생들을 위한 게 아니에요. 그건 돈 있고 권력 있는 어른들 싸움이에요. 누가 잘못했냐,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무조건 돈이 더 많고,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고요! 그쪽은 유명한 변호사들이 붙을 텐데, 그럼 절대 못 이겨요. 그게 학폭 위원회의 현실이에요." - P111

오늘 하루를 버텨 온 온몸의 뼈가 축 늘어진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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