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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유안진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제목 :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지은이 : 유안진
펴낸 곳 : 가톨릭출판사

너 올해 몇 살이니?
15살예요
엄마는 몇이신데?
15살요
인마, 네가 너 엄마하고 쌍둥이냐?
엄마는 저를 낳고 엄마가 되셨거든요
아빠두요, 제 덕분에 아빠가 될 수 있었다구 맨날 그러세요.
-<자식의 은혜>
유안진 시인의 시 한 조각도 읽지 않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 한 편만 읽고.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작품을 썼는지 모른 채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써도 될까? 오래 망설이다가 서평을 쓰기로 한 마지막 날에 용기를 모았다. 왜? 써야만 하니까.
한 달 동안 아주 조금씩 읽었다. 옛말이 섞이고 말맛이 깃든 글. 푸를 때 따다가 오래 두어 붉게 익은 달디 단 감 같다. 조심히 한 줄 한 줄 벗겨 읽는다. 때로 낮은 문학적 소양에 떫기도 했고, 때로 어른 아이인 내가 읽기에도 달아서 몇 번을 다시 들춰 읽다 접어 두었다.
표준어로 어휘 수가 줄어서 ‘우리 문자 우리말 우리글이 단순하고 쪼그라져 버려 안타깝다.’ 말하며 사투리 애정을 드러내는 작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구리 동전 10원짜리에 그려진 ‘다보탑’ 이야기에서는 ‘낮아지고 깊어져야 더 잘 사는 삶이 아닐까?’ 성찰하게 한다. 이목구비의 구시대는 가고, 눈코입귀의 신시대가 되었나? 이야기에서는 듣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자신의 은혜로 부모님 은혜까지>에서 시인은 첫 애 은혜를 낳고 엄마로 태어날 수 있었다며 엄마 됨의 기쁜 충격을 이야기한다. 나도 그랬다. 의사는 막 태어난 아이를 보라며 내 가슴 위에 아이를 올려 주었다. 그때의 기쁜 충격!!! 나도 흥분과 감동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모든 생명에서 존엄을 느끼고 경건해졌다는 작가는 모든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서 부모로 태어나 자식과 함께 성장해 간다고 말한다. 낳기도 어려운 일인데 손과 발이 되어 돌보고 함께 성장까지 해야 하니 놓치는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됨은 매 순간 ‘기쁜 충격’이 아닐까.
‘사람, 삶의 줄임 말이자 최고의 희망‘이라는 글에서 예전에 종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사람 목소리도 듣기 싫다는 구씨와 미정이의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시대의 고민이 통하여 공감대를 형성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 사람에게 넌덜머리가 나면 사람이 얼마나 혐오스럽던가마는, 그래도 사람 세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에, 삶의 문제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 141p
구씨와 미정이도 사람이 아니던가? 함께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던가.
주님의 음성! 예수님의 목소리!를 애타게 찾으며 묵상하다가 읽자마자 울음이 터졌다는 요한복음서 14장 첫 구절. 무엇이 시인을 울게 했을까? 하느님의 현존을 성경 안에서 만나 가슴이 벅찼을까? 겸손이 피부 같았던 시인이 신께 엎드려 울고 싶었던 날이었을까?
41년생 시인은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다.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요즘 같은 세상에선 꿈에서나 꾸어 볼 ‘지란지교’의 우정을 여전히 이야기하고 계실까? 심리학자가 꿈이던 내가 끝내 심리학을 전공하지 못하고, 가장 어려운 것이 ‘시’라던 내가. 시인이자 심리학을 전공한 유안진 작가의 시 같은 산문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를 읽었다. 시인은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조용히 위로해 주는 거 같다. 글이 어땠냐고 깊지만 맑게 물어봐 줄 것만 같다. 시란 거짓말로 참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간다.‘를 ’간다 나는.‘ 하면 시에요. ’나는 내가 낳는 것이에요.‘ ’창세기를 읽어보세요.‘ 라고 웃으며 말해주실 거 같다.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 가톨릭 출판사 클래식 리더스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사람! 사람에게 넌덜머리가 나면 사람이 얼마나 혐오스럽던가마는, 그래도 사람 세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에, 삶의 문제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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