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브레인 - 몰입을 빼앗긴 시대, 똑똑한 뇌 사용법
안데르스 한센 지음, 김아영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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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습니다. 정신차려보니 새벽 두 시 입니다. 내일은 일곱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다섯시간도 채 못자게 생겼습니다. 제 때 일어날수는 있을까요? 아침부터 하루종일 피로를 달고 살 판입니다. 잠을 적게 잔 날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던데, 힘들고 비효율적인 하루를 보내게 생겼습니다. 화려한 후회가 나를 감쌉니다. 시간이 멈추길 기도하지만 울고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시작은 유튜브였습니다. 영상 하나만 돌려보고 폰을 내려놓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댓글을 읽고, 추천영상을 타고, 타고, 또 타고 다니다 보니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인스타로, 다시 유튜브로 넘나들며 헤엄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저만의 이야기도 아니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우리의 부족한 자제력 때문일까요? 그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뇌'입니다. 우리의 뇌는, 원래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책 <인스타 브레인>은 디지털 기기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물론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 곳곳으로 파고들었겠죠. 유용한 기능을 활용하여 업무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지인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사회적 관계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장점 이면에 보이지 않는 단점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집중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죠. 저자는 이처럼 우리의 감정, 수면시간, 집중력 등에 초점을 맞추며 디지털기기가 우리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살펴봅니다. 디지털기기와 스마트폰이 주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다들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절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그러나 그 부정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전문가가 알려주는 대응전략을 배워본다면, 이전보다 조금은 수월하게 디지털기기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요? 긍정적 효과는 유지하면서 부정적 영향은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스마트폰에 번번히 휘둘리며, 스마트폰을 다룰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라는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p.76 도파민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파민은 바로 우리의 엔진이다.

p. 77 도파민은 눈앞에 있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게 만들지만, 그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엔도르핀이기 때문이다.

첫 문단에서 던졌던 의문으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중요한 일을 미루고, 다음 날의 컨디션을 희생하면서까지 들여다볼 가치가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마트폰에 휘둘리며 스스로에게 행복이 아닌 고통을 건네는 것일까요? 핵심은 바로 '도파민'입니다. 도파민은 우리의 '동기'와 관련된 뇌의 전달물질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반응하고 집중해야 할지 선택하게 만들죠. 그렇다면 도파민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에 집중하도록 만들까요? 이는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긴 인류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도파민 시스템은 작동해 왔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테니까요. 그래서 뇌의 도파민 시스템은 무엇에 반응할까요? 먼저 '새로운 것'을 사랑합니다. 불확실한 자연에 대처해야 하는 고대 인류의 입장에서, 주변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생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죠. 한편 '예측 불허'를 사랑하기도 합니다. 이는 쥐와 원숭이, 인간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보상이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게임을 진행할 때 도파민 수치가 더 높게 측정되었던 것이죠. 게임을 해본 분이라면 확률형 아이템 상자가 열리기 직전의 두근거림에 공감하실 겁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뇌의 도파민은, 우리로 하여금 새롭고 불규칙적인 것을 쫓도록 만듭니다. 새롭고 불규칙적인 자극을 주는 물건, 떠오르는 것이 있으시죠?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 좋은 패턴을 놓칠리가 없습니다. 소비자의 주의를 빼앗고 흥미를 유발하며, 중독성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죠. 우리가 스마트폰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뇌'와 '도파민'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니 더는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적절한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잠깐, 스마트폰을 너무 매도하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적당히 잘 활용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장점은 극대화하고 유용함은 활용해야겠지요.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은 뇌의 회로를 변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주의집중력을 떨어트리고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소중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스마트폰 사용에 경각심을 가질 이유는 분명해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마트폰의 현명한 활용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자는 몇 가지 전략적 기술들을 제시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운동'이었습니다.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약간의 신체활동만으로도 아이들의 집중력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산만하던 태도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정보처리 속도도 빨라졌고요. 많은 시간과 활동을 투자했을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6분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운동 비디오를 따라하며 복잡한 동작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특히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에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와 불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니,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운동은 훌륭한 스마트폰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책에 적혀있는 스마트폰의 부정적 영향과 운동의 긍정적 영향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자극에 상당히 취약한 기질을 갖고 있기에, 스마트폰에 쉽사리 현혹되며 시간을 낭비하고 뒤늦게 자책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산소운동을 시작하며 우울과 불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이나, 스스로의 일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를 기대하는 성인 여러분들께 유익한 독서가 될 것입니다.

'주의력'에 중점을 두어 스마트폰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단계적 인지전략을 제시한 <스마트폰을 이기는 아이>도 개인적으로 참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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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민병덕 지음 / 노마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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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썩 그렇게 인기있는 과목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마치 영어단어의 뜻을 암기하듯, 연도와 사건을 매칭하거나 '4대사화의 순서', '불교를 수용한 왕'같은 개념들을 무작정 암기하려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수림왕은 왠지 소림사왕이 떠올라서 불교를 수용했다고 막무가내로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의미가 와닿지 않으니 감정의 동요도 없었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당연히 재미도 없었죠. 그랬던 제가 역사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역사'를 '이야기'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고궁이나 박물관답사 등 역사탐방을 다니기시작하면서. 그들이 '책 속의 허상'이 아닌 나와 다를바 없는 인간으로서, 각자의 삶을 살아갔던 존재였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개념'이 아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 재미있어졌죠. '역사'를 '이야기'로 인식하게 된 것은 저에게 있어 사소해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관점의 변화였습니다.

'역사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앞으로 되풀이될 시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앞으로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선명해진다.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역사문화사전>은 역사 속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백성들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요? 우리 조상들의 데이트와 결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울'의 뜻은 뭘까요? 옛날의 신분증인 호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과거시험에도 문제집이 있어쓸까요? 컨닝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왕의 묘호로서 '조'와 '종'은 어떻게 다른걸까요? 이처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사 속 조상님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조상님들의 삶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한 번쯤 궁금증을 가져봤을만한, 목차속의 질문을 확인하는 순간 새로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질문들이 담겨있습니다. 삶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질문들이기에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목 그대로 알아두면 어디 가서 '썰'을 풀며 분위기를 환기시킬만한 지식들이 담겨있습니다. 읽는 자체로도 재미있었고, 나중에 활용할만한 지식들이라는 점에서 유용한 독서였습니다.

25 고구려와 백제 지배층의 언어가 한 뿌리라는 사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추측할 수 있다.

25 백제 하층민의 언어와 신라의 언어가 같았다는 것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로 알려진 <서동요>를 보면 알 수 있다.

목차를 펴자마자 가장 눈길을 끌었던 챕터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 고구려, 백제, 신라" 파트였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황산벌'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고구려는 이북, 백제는 전라도, 신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코미디영화였는데요, 실제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의 지배층간 언어가 통했음을 두 역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거를 명확히 짚어준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삼국사기부터 살펴보면 고구려 장수왕 때 백제에서 고구려로 투항한 장수들이 즉시 '대모달'이라는 벼슬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모달은 무관으로서 최고 사령관에 해당하는 직책인데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병사들을 지휘할수가 없을것이라는 근거로부터 언어가 통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경우 그 유명한 '도림'의 사례가 나옵니다. 고구려의 첩자인 도림이 백제로 잠입하여 개로왕과 바둑으로 친분을 맺은 뒤 방심하게 만들어 결국 백제를 패배로 이끄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언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기에 도림과 개로왕이 자연스럽게 언어가 통했음을 유추할 수 있죠. 이 외에도 백제 사람인 무왕이 신라의 노래인 향가로 <서동요>를 지어 퍼뜨렸다는 점에서 백제와 신라의 언어가 통했음도 짚어볼 수 있죠. 이처럼 현존하는 역사사료의 조각들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227 신문고를 칠 수 있는 경우는 자손이 조상을, 아내가 남편을, 아우가 형을, 노비가 주인을 위하는 일과 지극히 원통한 일, 살인사건에 한정되었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이 신문고를 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나 두드릴 수 없었던 신문고" 챕터도 흥미로웠습니다. 흔히 '신문고'라고 하면 힘없는 백성이 탐관오리의 횡포에 맞서 억울함을 풀기위해 북을 두드리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신문고는 아무때나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신문고는 한양에만 설치되어 있었고, 꼭 필요한 사전절차를 먼저 수행한 뒤에야, 담당관리에게 신청절차를 거진 뒤에야 북을 두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내용면에서도 중앙 관청의 하급관리가 상관을 고발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제약이 많았습니다. 이에 일반 백성보다는 양반들이 이용하는 횟수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제가 상상했던 속시원한 신문고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격쟁'이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왕이 행차할 때 꽹과리나 징 등의 악기를 쳐서 임금이나 관리의 시선을 끌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정조의 경우 왕릉 행차를 66번이나 단행했고, 해결해준 격쟁이 123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성군 정조의 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백성들의 간절함과 기민함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께, 특히 역사 속 삶의 '이야기'에 관심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목차를 살펴보시고 흥미로운 질문과 키워드들이 눈에 띈다면 구매를 결정하셔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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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기억 - 한국의 자본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이태호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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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2,000원 선까지 밀려나며 삼만전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던 삼성전자의 주가는 오늘 장중 50,000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다른 종목에 비하면 오히려 덜 오른 편입니다. 1400선까지 밀려났던 종합주가지수는 2020년 4월 23일 기준 1900선을 돌파핬습니다. 주요기업의 시장가치를 반영하는 종합주가지수가 상승했다면 기뻐할 일이 맞겠지만 불안과 걱정의 목소리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상 '개미'가 시장에서 승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과연 1개월 뒤 우리 증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의 추세대로 2000선을 돌파해 있을까요? 아니면 지루한 횡보장을 오가고 있을까요? 일각의 우려대로 폭락을 맞이해있을까요? 미래를 예측하려 할 때 우리가 반드시 참조해야 할 근거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과거의 기록입니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어떻게 움직여왔는지를 보여주는, '시장의 기억'입니다.

책 <시장의 기억>은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자본시장의 태동부터 최근의 비트코인광풍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본시장에 일어났던 주요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쌀 선물시장, 1950년대의 국채파동, 1978년의 건설주파동, 여의도 증권가시대의 개막, IMF구제금융, 5대그룹 빅딜 프로젝트, 대우그룹 워크아웃, 2003년의 신용카드 사태, 2004년의 적립식 펀드 열풍, 2006년의 부동산 광풍,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의 저축은행 사태, 2013년의 동양그룹 법정관리 신청 등 경제영역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던 주요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감동적인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따분한 전문 용어가 흥미를 떨어뜨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천차만별의 프리즘이 정작 의미 있는 흐름과 맥을 흩뜨리는 탓이다. 두뇌는 이야기 구성을 갖추지 못한 사건을 오래 저장하지 못한다. 딱딱한 분석 위주의 보고서나 경제 서적이 쉽게 잊히는 이유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적힌 저자의 견해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구절이었습니다. 수치와 도표, 그래프로 이루어진 경제서적은 낯설고 어렵습니다. 어느정도 경제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가공된 자료들이 친숙하고 유용하겠지만 일반 대중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도 없고 어렵기만 하죠.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맥락'입니다. '이야기' 입니다. 숫자의 이면에 감춰진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수치와 그래프도 익숙해지고 흥미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이 책, 재밌습니다. 저자는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부에서 근무하는 기자인데요, 그런 저자의 필력이 십분 발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딱딱한 '역사'가 아닌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저자의 문장력에 감탄했습니다. 경제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유익했고, 그것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좋았습니다. 재미와 의미를 다 갖춘 독서였습니다.

203 "'빅딜'을 포함한 대기업 구조조정이 조만간 발표될 겁니다."
 외환위기의 원흉으로 대기업그룹의 '과잉, 중복 투자'논란이 도마에 올랐던 1998년 6월 10일.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 조찬 강연에서 폭탄 발언을 한다. 굴지의 대기업그룹이 빅딜에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가장 눈길을 끌었던 파트는 IMF사태로 일컬어지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다룬 파트였습니다.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원인도 알고 경과도 알고 결과도 알죠. 하지만 사람과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는 정보를 읽을때와 달리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습니다. 흐름과 맥락이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정보가 이야기의 구성을 갖추자 머릿속에서 또렷한 기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빅딜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단지 주력업종에 집중하기 위해서 기업들이 사업체를 재배치한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A기업과 B기업이 사업체를 교환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말입니다, 평화로운 중고나라에서 핸드폰 하나를 거래하는데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인데, 굴지의 반도체생산업체를 교환하는 일이 순탄할리 없을겁니다. 바로 지금의 SK하이닉스가 있기 전,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 사례입니다. 당시 컨설팅회사 아서디리틀의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현대전자가 통합주체로 결정되자 LG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설득하다 지친 금융감독위원회는 4일 뒤 금융권에 'LG반도체 금융 제재를 결의하라'는 팩스를 뿌렸다고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정부의 강압이죠. 이후 LG는 빅딜을 받아들이지만 이번에는 가격 협상이 문제였습니다. 거래는 하되, LG반도체를 얼마를 받고 넘길 것인가가 관건이 된 것이죠. 협상이 길어지자 다시 금융감독위원장이 나섭니다. "각자 최종 제시한 가격을 산술평균하자." 황당하고 뜬금없지요? 그런데 이것이 실현됩니다. LG는 애초 기대했던 돈보다 4조원 가까이를 받지 못했고 구 회장은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대부분 발참했다고 합니다. 반도체시자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의 SK하이닉스만 보자면 '성공한 빅딜'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오늘이 있기까지의 역사속 흐름을 살펴보니 다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단편적으로 '결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참여 주체들 각자의 입장에 맞물려 흘러가는 시장의 역사를 따라가다보니,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볼때와 유사한 감정변화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학개미는 승리할까요? 다음달의 종합주가지수는 어떤 모습일까요?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런역사를 꿰뚫어보고 미래를 예측한 현자는 다른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기도 합니다. 저도 이번의 배움을 바탕으로 투자방향을 결정해보려 합니다.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를 만나봄으로써 교훈과 배움을 얻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굳이 배우려하지 않더라도, 이야기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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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공 찰떡이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심화(1.2.3급) 30일 개념 기본서 - 특별부록: 그림으로 읽는 한국사 연표, 전문가의 한 방 정리, 빈출 키워드&선택지
시나공 한국사 연구회 지음 / 길벗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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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입니다. 2012년부터 2급이상 합격자에게 5급공무원 공채시험에서 응시자격을 부여하기로 하였고, 2013년부터는 3급이상 합격자에게 교원임용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기업 및 민간기업의 채용이나 승진시험에 반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2021년부터는 국가, 지방 공무원 7급 공채시험에서 한국사 과목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취업, 합격, 승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필수적인 관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시나공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찰떡이해(심화 1,2,3급)>은 한능검 심화 등급을 대비하기 위한 기본서입니다. 한능검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심화'라는 단어에서 당황하실 것 같습니다. 고급이 아니라고 심화라고? 맞습니다. 한능검이 2020년 5월 시험부터 등급 간 위계성 확보 및 난이도 차별화를 위해 기존 3종에서 심화, 기본의 2종으로 급수 체계가 개편됩니다. '심화'의 경우 1~3등급으로 나눠지며 5지선다형 객관식 50문제가 출제됩니다. 1급의 경우 기존 70%이상에서 80%이상으로 높아졌습니다.

<시나공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찰떡이해(심화 1,2,3급)> 초심자를 위한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기본서입니다. 한국사의 분량은 실로 방대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부해야할지 막연해지죠. 하지만 모든 시험의 답은 한 곳을 가르킵니다. 바로 '기출'이죠.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범위를 좁혀나가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철저하게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공부범위를 좁혀서 컴팩트하게 시험대비를 가이드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장점은 크게 세가지 입니다.
 
첫째, 풍부한 그래픽 자료입니다..
이 책은 크기게 제법 큰 편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수험생의 친구 제트스트림 0.5와 비교해보시면 짐작이 가실 겁니다. 넓은 지면을 바탕으로 다양한 그래픽 자료를 선명한 화질로 담았습니다. 한능검에는 그림을 이용한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 편입니다. 시대별 특징에 알맞는 유물을 고르는 문제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선명하고 풍부한 시각자료는 수험대비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둘째, '학습코치'와 '압축개념50'입니다. 이 책은 주요 50개의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을 개념을 설명합니다. 압축개념과 연결된 '학습코치'도 제시하죠. 고대의 생활과 관련된 압축개념1에서 "시대별로 주요 유물의 명칭을 이미지와 함께 익혀두세요"라는 학습코치를 제시하는 형식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염두에 두고 공부할지에 대한 방향이 명확히 잡힌 상태에서 공부하니 한결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난 뒤 학습코치를 떠올리며 배운 내용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은 복습의 기회였습니다.

셋째, 선택과 집중입니다. 압축개념에 따라 진행되는 본문은 철저하게 키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노란 바탕색, 빨간 글씨색으로 주요 문장과 키워드를 강조하죠. 또한 별책으로 제공되는 '빈출키워드 선택지'를 통해서 핵심키워드를 떠올려보며 복습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출과 핵심키워드를 중심으로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은 제한된 시간동안 최고의 점수를 획득해야 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유용한 전략이 될 것 같습니다.

압축개념50개의 목차로 이루어져있고, 각 개념마다 4개의 기출문제가 제공됩니다. 각 챕터별로 봤을때는 문제수가 적은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니 200문제라면 객관식 수험대비를 위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선지를 판별하며 넓혀나갈 수 있는 지식도 많으니까요. 이 책을 기본서로 삼아 전반적인 수험을 대비하고, 기출문제를 출력하여 풀어보면서 실전대비 감각을 늘려가는 것도 유용한 수험전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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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송현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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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평론가의 코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영화를 해석하는 재미는, 영화를 보는 재미와 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나의 좁은 시야에 포착된 요소들만을 즐기는 것을 넘어, 넓은 시야와 깊은 지식을 갖춘 평론가가 짚어주는 상징들을 더불어 살펴보고 곱씹어볼 때 영화가 주는 재미와 울림은 배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어떤가요?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발견하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호기심'을 품어보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일상에서 포착되는 관찰대상에 호기심을 품어보는 것, 바로 '과학자'의 태도죠. 마치 어린아이가 "왜?"라고 묻듯, 호기심이라는 렌즈로 바라본 세상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사뭇 흥미로울 것입니다.

책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을 색다르게 관찰할 수 있는 '유체역학'이라는 렌즈를 선물합니다. 유체역학, 말만 들어도 생소하고 난해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교통의 흐름은 어떤가요? 생선의 맛을 유지하며 해동시키는 것은 어떤가요? 고기를 적당히 굽는것은요? 지금 순간에도 우리의 혈관속을 흐르고 있는 혈액의 흐름은 어떤가요? 고흐의 그림 속 신비롭게 움직이는 공기의 모습은 어떤가요? 유체역학은 액체와 기체의 흐름에 관한 학문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우리의 모든 일상과 맞닿아있죠. 그렇다면 이 유체역학을 이해함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우선 우리가 즐겨보는 겨울왕국 같은 영화 속 CG에도 유체역학이 적용됩니다. 영화, 교통, 의학, 예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죠. 그러니 유체역학은 참으로 유용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발견과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렌즈'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저에게는 충분히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종 수식이었습니다. 책에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점성을 가진 유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량의 변화를 기술하는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 푸아죄유의 법칙(관 안을 흐르는 점성 유체의 유량에 관한 법칙), 애트우드 수(두 유체의 밀도 차이를 밀도의 합으로 나눈 수), 등 각종 수식이 등장합니다. 물론 문과 출신에다 유체역학에 전혀 문외한인 저로서는 이러한 수식과 변수들의 구체적인 의미와 상관관계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혈관속을 흐르는 혈액의 속도처럼, 사소한 일상의 모습들이 수치와 공식으로 포착되고, 이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놀라웠습니다. 과학의 대단함과 과학자들을 향한 고마움을 떠올려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생소한 학문으로 익숙한 현상을 들여다봅니다. 사소한 일상을 새롭게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게되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소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은 건너뛰며 읽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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