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사기꾼 - 모세 예수 마호메트
스피노자의 정신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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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17세기의 비밀출판물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뚜렷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타인의 신앙을 존중하며 저 또한 언제든지 기성 신앙을 믿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적 호기심'을 이유로 읽게 되었으나 글의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인용될 수 있으니, 불편함을 느낄 것 같은 분들께서는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줄평]
17세기 말 익명으로 출간된, 3대 종교를 향한 독한 비판.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17세기말 익명의 사상가는 종교를 어떤식으로 바라봤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2.3대 종교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무엇일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3.3대 종교를 비판한 어느 사상가는 그 대안으로 무엇을 제시했을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4.당대의 종교에 대한 비판은 지금의 시각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달랐을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5.당대의 사람들은 어떤 방식과 구조로 비판의 글을 작성했을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서평]
특정한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우주'의 존재와, '나'의 존재와, '우주와 나를 인식하고 있는 나의 의식'의 존재, 그 모든 존재를 향한 경이로움, 이것이 나의 종교라면 종교다. 특정한 종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종교를 굳이 싫어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을 향하여 혐오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특정 '종교인'들, 그리고 타인의 신실함을 악용하여 자신의 영리를 취하는 '악덕종교인'들을 싫어할 뿐이다.

이 책의 독서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호기심'때문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익명이다. 17세기의 비밀출판물로서 3대종교를 향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여왕은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으나 끝내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그 저자는 누구일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요즘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지, 그들이 제시하는 기성종교의 대안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시대상을 비판했고, 논리와 근거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담백하고 직관적인 전개는 글을 막힘없이 읽게 만들었다.  종교를 악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를 향한 비판적 시각들을 짚어봄으로써 우리에게 종교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대중의 무지를 바라는 이들
26 그들에겐 대중이 무지하다는 사실이 워낙 중요한 터라, 누군가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 누군가는 어떻게든 진실을 위장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사이비 학자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근거 중 하나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중들에게 종교를 주입한다는 견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5공화국의 3S정책을 떠올렸다. 3S자체가 나쁜것은 아니다. 그것에 휘둘려 정치권력을 틀어쥐고 대중을 입맛대로 움직이려는 권력집단의 의도가 나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자극을 얻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자유와 행복의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결국 힘 없는 대중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순수하고 신실한 마음을 악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악덕종교인들이 나쁜 것이다. 지금의 시대라고 해서 대중의 무지를 바라는 이들이 없을까? 피할 수 없는 것이 악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똑바로 뜬 채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각성'이 아닐까?

완벽함의 역설
43 '신의 목적'이니 '궁극의 원인'이니 하는 교의야말로 지금까지 신에게 부여된 완벽의 경지를 일거에 박탈하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하다. 이를 증명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만약 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어떤 목적을 두고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신이 현재로서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으로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없던 시기가 있고, 언제든 그 이유가 생기면 그때 비로소 행동에 들어간다는 얘긴데, 이는 곧 신을 매우 빈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처사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신이 어떤 행위를 했다는 것은, 원하는 바가 있었다는 듯이고, 결핍이 있었다는 의미인데, 완벽한 신에게 어떻게 결핍의 순간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재치있는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열등감에 관한 생각도 해보았다. 이따금씩 나는 나 자신이 무능하고 무력하다는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유능하지 못한,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만약 내가 완벽하며 만족으로 충만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충만한데 어떠한 동기가 발생할까? 그렇다면 움직일 이유가 있을까? 마치 하나의 돌덩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그것에 생가기 느껴지는가? 나는 그러한 삶을 원하는가? 물론 지나치게 멀리 나간 이야기다. 하지만 훗날 열등감에 허우적대고 있을 나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생각이라는 내적 움직임'을, '행동이라는 외적 움직임'을 가능케하는 의욕은, '결핍'으로부터 올 수 있어. 그 '결핍'은 너를 움직이게 만들지. 그것은 곧 생기의 원동력이야. 그러니 그만 주저앉아있고, 다가온 움직임의 기회를 기쁘게 누려보는 것은 어때?

무지와 이기심
184 요컨대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인간을 더 많이 염두에 두신다는 발상, 이런 모든 변별적인 사고는 오로지 협소한 정신력이 만들어낸 순전한 상상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무지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냈고, 이기심이 그것을 부추길 따름이다.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었다. 무지와 이기심이 특정 종교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무지와 이기심이 숱한 후회를 낳는 어리석음 의씨앗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어떤 사안에 관해서 모를 때는 지나치게 용감해지거나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지나친 용감함은 더욱 지나치게 되거나, 방금까지 존재했던 조심스러움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면에 '이기심'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말로 '탐욕'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니 무지를 벗어나 앎을 획득하는 배움이, 탐욕을 알아차리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알아차림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용]
17 (옮긴이 서문) 오늘의 종교적 관점으로 볼 때, 분명 이 책에는 기발하되 불경스러운 착상이 있는 만큼 단순하기에 과도하게 나아갈 수 있었을 논의들도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와 같은 논의와 착상들이 끊임없이 출몰해왔기에 오늘날 같은 종교의 단단한 자리매김이 가능한 것이며, 정교하게 발달된 작금의 모든 종교적 교리 역시 따지고 보면 그처럼 까탈스러운 도전들에 일일이 응전하는 가운데 하나하나 갖춰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끔찍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좋은 공부자료가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39 대중의 공포심을 중시하는 정치가들일수록 인간과 신의 계율, 즉 자기들 신분의 근간을 이루는 법이 훼손되었을 때 특별히 무서운 보복을 가하는 신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옹립했다. 끔찍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함으로써, 자기들이 다스리는 대중을 맹목적으로 굴종하게끔 만든 것이다.

40 세상 모든 인간은 사물의 근본 이치에 대해 완전히 무지상태에서 태어나며,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한테 해가 되는 것은 피하고 이롭고 편한 것은 추구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성향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49 만약에 우주가, 신의 본성이 어떤 필연적 연속을 이루며 흘러가는 현상이라면, 그 안에서 목격되는 온갖 결함과 불완전한 것들은 다 무엇인가? ... 이제는 각각의 본질과 정수에 적합한 것 이상의 완벽성을 사물들에 기대해서는 안 되거니와, 단지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유익하다거나 쓸모없다거나, 혹은 감각에 즐겁다거나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이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어떤 존재의 본질과 정수를 파악한다 해도 우린 결코 그것의 완벽성을 판단할 수 없다.

167 어차피 인간을 의무에 붙잡아두는 방법이란 단 두 가지뿐, 범죄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고대의 입법자들이 제정한 준엄한 형벌이 하나요, 신들의 분노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심이 나머지 하나다.

168 이것이야말로 약간의 탄력만 받게 되면 민중의 태도를 단번에 극단적인 지경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었다. 즉 조심스럽던 태도가 갑자기 열정으로 변하고, 그저 약간 성난 성태가 졸지에 확고한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면서, 모든 논리적인 행동이 뒤죽박죽 휩쓸리는 가운데, 자신이 섬기는 신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재산도 목숨도 조개처럼 버릴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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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읽는 수학 - 수학으로 삶을 활기 있게
크리스티안 헤세 지음, 고은주 옮김 / 북카라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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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수학을 만나보는 신기한 경험. 낯설기만 했던 수학에 한 걸음 다가서는 기회.

[서평]
수학이라는 언어
생각은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포착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동서양의 언어 특성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로 이어진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동양은 동사가 발달한 반면 서양은 명사가 발달하였는데, 이러한 언어 차이가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일반적 행위패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따금씩 무언가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경우 검색엔진을 돌리는데, 정보량이 아쉬운 경우 크롬을 켜고 구글 영문검색을 시작한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다. 우클릭 후 번역기능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따금 맥락이 읽히지 않는 아쉬운 번역이 나타날 때면 참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내가 영어를 잘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텐데.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텐데.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텐데.

그런데 수학은 어떨까? 수학이라는 언어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은, 나아가 능통해진다는 사실은 나의 사고체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어떤 이해를 줄까? 어떤 발견을 줄까? 어떤 재미를 줄까? 얼마 전 이러한 생각을 문득 하게 된 이후로, 나는 기회가 닿는대로 수학을 향해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수학이라는 언어의 체화를 통해 나의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독서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일상의 수학을 발견하고, 수학에 대한 낯설음을 줄이며, 수학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삶에 뗄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195 오늘날 우리는 언어적 능력 하나만으로는 보통의 일상을 살아나갈 수 없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동안 말보다 숫자가 많이 생겨났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수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이 필요하다. 숫자, 데이터, 통계를 잘 다루고, 확률을 계산해 기회와 위기를 평가하는 능력, 적은 정보로 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더 많은 사람이 더 열심히 길러야 한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가우스가 괴테보다 중요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란이 되는 문제의 진상을 밝혀내는 능력이다. 그래서 목적어를 문법에 맞게 잘 쓰는 능력보다는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본문 구성
 이 책은 총 7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상 생활에서부터 스포츠, 문학, 빠른 연산법, 통계를 활용한 탈세자 찾기, 도시의 택시 숫자 추정하기, 군중의 수를 세는 법,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암호 해독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블로그에 올리던 내용을 다듬어 출판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담백하고 간결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챕터의 양이 그리 많지 않기에, 제목 그대로 카페에서 여유가 남는대로 읽어나가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쉽지만은 않았는데, 그런만큼 곱씹어 이해하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숫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로서는 전체 내용의 70%가량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언젠가 다시 찾아 읽으며 100%의 내용을 소화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몬티홀 문제
이 책은 '몬티홀 문제'라는 유명한 수학문제를 담고 있다. 이 문제를 처음 들어본 것은 3~4년 전 쯤으로 기억한다. 그 때 이 문제와 해설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우와, 굉장하다. 그런데 무슨 소리지?' 그렇게 이해를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카페에서 읽는 수학'을 읽으며 그 '몬티홀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독서의 의미는 충분히 즐거웠던 것 같다. 그 내용을 나의 언어로 풀이해 본다.

'몬티홀 문제'는 다음과 같다. 퀴즈 쇼 출연자인 당신은 3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뒤에 숨은 선물을 가질 수 있다. 문 뒤에는 고급 자동차 1대, 염소 2마리가 3개의 문에 랜덤하게 나눠져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당신이 하나의 문을 고르면, 사회자가 남은 2개의 문 중 염소가 숨어있는 문을 골라서 연다. 이 때 당신에게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원한다면 남아있는 다른 1개의 문으로 갈아탈 수 있다. 그렇다면 문을 바꾸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바꾸든 말든 차이가 없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선택을 바꾸는 것이 좋다. 자동차를 얻을 확률은 선택을 바꿈으로써 (1/3)에서 (2/3)으로 상승한다. 이 문제가 유명한 것은 일반적인 '직관'과 수리적 계산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자동차의 확률은 (1/3)이었는데 선택을 바꿈으로써 확률이 달라진다니 나도 처음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짚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처음 고른 문 뒤에는 염소A 또는 염소B 또는 자동차가 숨어있었을 것이다. 만약 염소A를 골랐을 경우 사회자가 염소B의 문을 열었을 것이고 남은 하나의 문 뒤에는 자동차가 있으니, 선택을 바꾸는 것이 좋다. / 염소B를 골랐을 경우 사회자가 염소A의 문을 열었을 것이고 남은 하나의 문 뒤에는 자동차가 있으니, 선택을 바꾸는 것이 좋다. / 자동차를 골랐을 경우 사회자가 염소A 또는 B의 문을 열 것이고 남은 하나의 문 뒤에도 염소가 있으니, 선택을 바꾸면 안된다. / 즉 선택을 바꾸는 것이 (2/3)의 확률로 자동차를 선사하는 것이다. 

안정적 결혼 생활과 수학
133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예측하는 방정식은 흥미롭게도 수학자들이 간질 발작, 주식시장 붕괴, 지진 같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의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재난이론 방정식과 비슷했다. ...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1번 부정적인 대화를 했다면 5번 이상은 긍정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 부부 관계를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 4가지를 밝혀냈다. 즉, 상대방을 탓하는 것,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발언, 자기 자신을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 상대방과의 정서적 단절이었다. ... 반대로 안정적인 부부 관계를 보장하는 것은 서로 간의 존경, 상호 신뢰, 함께 웃는 것, 다정다감함이었다. ... 행복한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는 각자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서 상대방의 감정을 반추했다. .... 싸움이 일어났을 때 싸움을 끝낼 수 있게 해주는 나의 묘책은, 앞에서 설명한 5:1의 비율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결혼 생활의 지속가능성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분석의 결과가 말하는 항목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보편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  그럼으로써 불행을 회피하고 행복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수학이 가지는 유용함이라면, 삶의 가장 값진 경험 중 하나인 사랑에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사실 위에서 언급한 관계를 파괴하는 요인과 관계를 보장하는 요인들은 엄청나게 획기적인 항목은 아니다. 모두 흔하게 주변에서 권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이론적 기반을 고려함으로써 그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저자의 경우 1번의 부정적 대화에 5번의 긍정적 대화가 필요함을 가슴에 새겨뒀다고 한다. 나 역시 미래를 위해 잘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용]
19 매일 우리는 매우 많은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오만 것을 생각한다. 매초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하루 중 꺠어 있는 동안을 약 15시간으로 잡으면 60X60X15가지, 즉 약 5만 가지 사건이 하루에 일어난다. 넉넉히 잡아서, 한 달에 100만 가지 이상의 개별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중 대부분은 주의를 끌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만 어떤 일은 우연히 동시에 발생해서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곤 한다.

77 이런 전력에 따르면 정말 불합리하게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보다 오히려 가장 약한 자가 생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우리는 강자의 월등한 능력도 많은 상황에서 현저한 약점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강점이 약점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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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삶
최준영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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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거리의 인문학자가 담백하게 적어내린 인문단상 모음집

[서평]
제목 '동사의 삶'은 저자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다. 학위도 소속대학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강의하고 있기에 스스로 동사라고 말한다. 동시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뛰어다니는 삶을 살고 있기에 동사라고 말한다. 그런 저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삶을 마주하며 어떤 사유의 꽃을 피워냈을까? 이 책 '동사의 삶'은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실천인문학센터 교수이자 인문학자인 최준영 교수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배우다', '살다', '쓰다', '느끼다'라는 4개의 주제 아래 다양한 일상의 생각들을 풀어낸다. '인문단상'이라는 해설에 걸맞게 짧고 담백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만보고 달리기 마련인 요즘의 사람들에게,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삶의 의미에 대한 호기심에 잠겨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7 모쪼록 이 짧은 글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울림이기를 바라요. 단번에 읽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이따금 삶이 공허하고, 마음이 허전할 때 아무 쪽이나 펼쳐서 천천히 읽는, 그런 책이기를 바라요.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목차 구성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배우다', '살다', '쓰다', '느끼다' 모두 흔한 일상의 구성요소다. 그렇기에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소중함을 놓치며 살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으로써, 그 소중함을 잊지않고 기억하려 애쓴다. 누군가의 삶의 4가지 단면과 만나봄으로써, 그 경계에서 피어난 사유의 조각들을 느껴봄으로써, 소중한 내 삶의 단면들 역시 더욱 풍성하게 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44 독서 역시 욕망의 한 형태지요. 고상한 척 지적 욕망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니에요. 기실 감성적 욕망의 환기이자 순환이죠. 독서는 부득불 모종의 감정을 일깨우고 소비해요. 그렇게 순환하는 감정들이 삶의 다양성을 구성하게 되는 걸 테고요.
 나은 삶이란 지고의 가치를 추숭하는 것이리가보다 각기의 욕망을 무리 없이 순환시키는 것이라 생각해요. 독서는 비교적 건전하고 효율적인 욕망의 순환고리인 거죠.  덜 소모적이며 조금 더 생산적인 것이기도 하고요. 독서는 여타의 욕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욕망인 거죠.
 바우만의 말마따나,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지 않아요. 그러니 만족은 욕망의 불행이죠. 욕망은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할 뿐이에요.

굉장히 인상적인 구절이어서 인용구가 길어졌다. 흔히 독서는 '놀이'보다는 '일'로 여겨진다. 이러한 태도는 어차피 해야할 독서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는 한다. 그러나 세상에 동인이 없는 일은 없다. 독서 역시 나름의 욕망이 이끌어낸 행위였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면화하는 과정을 지나쳤을 뿐이다. 결과를 욕망하든 과정을 욕망하든, '지금의 독서를 통해 내가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훨씬 능동적이고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욕망의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독서를 선택한 본인의 의지를 재확인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도 더해질테니 말이다. 앞으로의 독서는 더욱 능동성과 자발성을 갖고 즐겁게 읽어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62 헤밍웨이가 빙산이론을 얘기했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동일시'를 얘기하네요. 수많은 사람이 대를 이어 <데미안>에 심취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공감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 <테스>의 운명을 자신의 삶이라 상상하며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까닭, 에릭시걸의 <러브스토리>를 놓고 유치한 눈물을 흘리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프로이트는 그것을 '동일시'라고 설명하지요. 사람은 동일시의 경험을 위해 소설을 읽고 연극(영화)을 보러 간다는게 프로이트의 믿음이었어요.

62 동일시는 작가에게 집필의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 노벨문학상 수상자 솔 벨로우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자살했을 터"라고 하여, 글쓰기가 작가의 감정적인 정화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증언하지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 대리만족을 넘어 동일시에 이르게 하는 글은 역시 삶의 현장에서 길어낸 체험에 바탕한 글이어야 해요.

흔히들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은 '비문학'이라고 말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기계발서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분명 비문학은 유용하다.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기술들은 삶을 개선하고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준다. 실제로 나 역시 일상의 관리에 필요한 많은 유용한 기술들을 실용서를 통해 획득했고 알차게 활용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문학이 갖는 가치는 그만큼 회자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내밀한 곳에 단단하게 응어리진 생각과 감정의 돌무더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것, 그럼으로써 해방과 기쁨에 이를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상상세계 속의 누군가를 향해 뛰어들며 '동일시'됨으로서 내면의 자신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야겠다고, 또 언젠가는 그런 진실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

187 "언어를 죽이는 것은 바로 언어의 무의식적 사용이다." <공부하는 삶>에 나오는 폴 발레리의 말이에요. 좋은 문체는 쓸모없는 것을 모조리 배제하죠. 문체는 풍요 속의 긴축이에요. 문체는 필요한 대목에서는 소비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능숙하게 배열해 절약하며, 도 어떤 대목에서는 진리의 영광을 위해 자원을 아낌없이 쓰는 거죠. 문체의 역할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죠. 그럴 때 문체 자체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거든요.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운 것이란 모든 과잉을 제거한 것"이라고 말했고, 들라크루아는 미켈란젤로가 "배경은 크게, 볼의 선은 단순하게, 코는 대강 그렸다"고 지적했지요.

글쓰기에 관한 글들도 유용하고 유익했다. 흔하게 쓰여지는 비문들의 설명은 나의 습관들 또한 포함하고 있었고, 자기글을 교정하는 법 또한 자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위에서 인용한 '문체'에 관한 구절이었다. 이따금 글을 적어내리며 '과잉'에 이르게 될 때가 있다. 글의 서두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후반부에 갈수록 힘이 떨어지며 맥없이 마무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완급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문제점은 인식했어도 이에 대한 개선방향은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 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뚜렷한 방향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풍요 속의 긴축을 기본으로, 진리의 영광을 향하여 힘을 모아나갈 수 있는 쓰기의 노련함을 갖춰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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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한 번은, 피아노 연주하기 내 생애 한 번은 1
제임스 로즈 (James Rhodes) 지음, 김지혜 옮김 / 인간희극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한줄평]
피아노 입문자를 위한 멋진면서도 가능한 목표, 바흐의 프렐류드 1번 C장조 연주하기.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피아노에 입문하고 싶지만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난감함에 시작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분들께
2.독학을 위한 실용적인 피아노 교본을 찾고있는 분들께
3.'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의욕과 추진력이 생기는 피아노 입문자분들께

[서평]
얼마 전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했다. 어린시절 기본적인 것들을 배운적이 있고, 기타도 기본코드까지 쳤었기에 피아노를 갖자마자 신나게 갖고 놀기 시작했다. 체르니와 악보집을 구입했고 짬을 내어 놀이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할 줄 아는 쉬운 곡들의 수준에서 머물렀고 할 수 있는것만 하려다보니 쉽게 실력이 늘지 않았다. 학원을 다닐만한 시간 여유는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독학으로 배우기에는 의욕과 추진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 책 '내 생애 한 번은 피아노 연주하기'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완독하고, 바흐의 프렐류드 No.1을 어설프게나마 칠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이 책이 독학 피아노 입문자들에게 유용한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친절하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전반부의 피아노 기초와 후반부의 프렐류드 연주 부분이다. 전반부에서 기본이론을 배우고 후반부에서 단계적으로 바흐의 곡을 연주해나가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초심자에게 걸맞는 적절한 난이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반부에서는 악보 읽는법가 손가락 연주법을 그림과 함께하는 직관적인 설명으로, 필요한 내용만을 담백하게 전달한다. 후반부는 프렐류드를 적절한 마디로 끊어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악보를 읽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건반과 손가락의 그래픽이 편리한 가이드가 되었다. 구성이 복잡해지는 부분에서는 신경써야 할 요소를 짚어주기도 한다.

둘째, 목표의식이 생긴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바흐의 곡을 칠 수 있게 된다는 것, 분명히 매력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곡 또한 처음 들었을 때 아름다운 선율을 담고 있다고 느껴졌기에, 잘 치고 싶다는 의욕과 동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나태해지기 쉬운 독학의 과정에서, 뚜렷한 목표는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유용한 동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재미가 있다. 저자는 음악에 대한 본인만의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다. 피아노를 말하며 명상과 연관짓기도 하고, 프렐류드의 한 부분을 해석하며 '대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단순히 악보를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넘어, 저자의 음악관과 독창적 해석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다.

어설프지만 프렐류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게 됐을 때 나는 충만한 뿌듯함을 느꼈다. 저자의 표현대로 음악과 함께 숨쉬는 단계까지 이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앞으로 당분간은 하루의 잠시나마 프렐류드와 함께하는 충만한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인용]
10 창조적인 활동은 우리의 외면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영혼을 위한 평화로운 명상법이라고 할 수 있죠.

11 오직 자신에 집중하고 몰입한 상태로 시간이 가는 것도 잊은 채, 우리의 잠재력을 활용해 각자의 내면에 있는 창조성을 끄집어 낼 수 있게 될 겁니다. 명상의 역할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나요?

11음악 연주는 뇌 신경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뇌 활동을 효과적으로 증진시키며, 이 효과는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합니다.

37 장엄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간결하고 말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입니다.

40 처음 몇 바디에서는 악보에서 음표를 정확히 읽어내고 건반을 제대로 찾아 누르는 일련의 과정을 완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좌절하지는 마세요. 일단 감을 잡고 나면, 뒤로 갈수록 훨씬 쉬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71 바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악기를 연주하기는 쉽다. 제대로 된 타이밍에 정확하게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악기가 알아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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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 2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 2
이문구 외 지음, 김인호 외 엮음 / 서교출판사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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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한 문학 읽기. 그 단계적 성장을 돕는 3단계 가이드.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문학읽기를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요구하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께
2.문학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발견을 이뤄낼 수 있을까' 배우고자 하는 분들께
3.이상, 루쉰, 이승우, 채만식 등 유명 작가들의 단편 소설들을 만나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분들께
4.유명 단편들을 만나봄으로써 문학의 독서를 늘려가기를 기대하는 성인 여러분께

[서평]
'싱글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나는 혼자서 잘 노는 편이었다.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도 잘 먹는다. 그래서 그 날도 별다른 이유 없이 혼자서 연극을 보러 갔다. 공연장이 집에서 멀었고, 갑작스럽게 가게 되었기 때문에 누구를 불러내기도 애매했다. 당시의 내가 꽤나 무기력한 기간을 보내고 있던 탓도 크다. 그렇게 혼자 보러간 공연을 마치고 나는 전에 없던 흥분을 느끼게 되었다. 떠오른 생각의 조각들을 누군가에게 풀어내고 싶었지만 옆에 아무도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갖고 다니던 노트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연결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을 검열없이 풀어내고 종국에 그것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과정은 전에 없던 고양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비문학만을 찾으며 '정리된 지식'만을 채워넣으며 살던 나에게 문학이 주는 울림의 힘을, 나아가 예술이 전하는 의미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게 된 짜릿한 경험이었다.

지식은 유용하다. 그러나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인간에게 다른 차원의 의미를 제공한다. 내적 동요를 통한 성찰과 성숙의 기회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혀오며 인정받은, 전문가들로부터 엄선된 '필독소설'이라면 더욱 그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책 '고교생을 위한 필독 소설선2'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을까?”라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현직 대학교수와 국어과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엄선하여 소설을 추리고 질문들을 담아냈다고 한다. 이 책이 포함된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은 '문제적 개인', '타락한 사회', '자연과 문명', '자유와 예술'이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이 책의 경우 '문제적 개인'라는 큰 주제, 그 중에서도 '내면의 성찰', '풍속과 세태'라는 소주제를 다룬다. 

문학은 의미를 제공한다. 문제는 '어디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이다. 같은 문학을 읽고도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해내는 사람일수록 더 큰 재미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발견을 위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이 책의 구조는 '작가 소개-작품소개-작품-종합적 핵심정리'의 순서로 이루어져있다. 작가의 약력과 작품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작품의 전반적 내용을 짧게 훑어본다. 작품의 전문을 읽고, '종합적 핵심정리'를 통해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다시 '생각의 움 틔우기', '생각의 가지 뻗기', '생각의 숲 가꾸기'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세부적인 이해에서 종합적인 사고로 발전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담긴 질문에 답해보는 과정속에서 '내가 발견했던 의미'를 만나보고,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만나보며, 문학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깊은곳을 한층 진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답을 즉시 떠올릴 수 있었던 질문도 있었고,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질문도 있었다. 둘의 차이를 비교해보니 '몰입도'가 크게 달랐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내적 경험이나 사고와 맞물려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독서의 가치'를 가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장의 울림을 얻지 못한 소설이 언젠가 불현듯 떠오르며 생각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실제로 답을 하지 못했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설을 다시 읽어내려가면서 종전의 독서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번뜩임을 경험하게 되기도 했다. 재독과 삼독이 주는 의미도 다시금 짚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울림을 얻었던 작품은 이승우 작 '오래된 일기'였다. 글을 씀으로써 '해방'과 '자유'를 얻기를 기대하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의 내면에 자리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마주하게되는 성찰의 기회도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몇 부분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친다.

입시를 앞둔 학생은 학생대로,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성인은 성인대로 의미있는 독서의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123 아버지는 죽음으로 가장 튼튼하게 나와 연결되었다. 모든 것은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낸다.

124 뜻밖의 일이 불쑥 끼어들어 삶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해 버리곤 한다. 끼어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니, 애초에 삶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126 내 신경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은 소설 속의 소설가, 나아가 그 소설을 쓴 소설가가 그 지루하고 장황한 자기변명을 끈질기게 되풀이함으로써 얻어내려 하고 있는, 마침내 얻어냈을 효과였다. 확실하고 또렷하게 그 효과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소설을 왜 쓰는지 온전히 이해했다고 느꼈다.
 
128 무얼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필요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근본이 아니고, 심지어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고, 그 글을 쓰려하는 순간의 의식의 꿈틀거림? 그런 걸 정신의 핍절함이라고 하나? 암튼 그런 거 말이야, 그런 게 중요하다는 게 느껴지더라.

134 나는 그저 한 권의 일기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34 일기장이 제공하는 자유는 일기를 계속 쓰는 것을 담보로 주어진 것이었다 묶임을 조건으로 한 해방, 해방의 지속을 위한 묶임이었다.

137 자기를 이해해줄 수 없는 세계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존재방식이 부유였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깨달아졌다. 존재의 최소한의 방식,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부유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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