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삶
최준영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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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거리의 인문학자가 담백하게 적어내린 인문단상 모음집

[서평]
제목 '동사의 삶'은 저자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다. 학위도 소속대학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강의하고 있기에 스스로 동사라고 말한다. 동시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뛰어다니는 삶을 살고 있기에 동사라고 말한다. 그런 저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삶을 마주하며 어떤 사유의 꽃을 피워냈을까? 이 책 '동사의 삶'은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실천인문학센터 교수이자 인문학자인 최준영 교수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배우다', '살다', '쓰다', '느끼다'라는 4개의 주제 아래 다양한 일상의 생각들을 풀어낸다. '인문단상'이라는 해설에 걸맞게 짧고 담백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만보고 달리기 마련인 요즘의 사람들에게,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삶의 의미에 대한 호기심에 잠겨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7 모쪼록 이 짧은 글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울림이기를 바라요. 단번에 읽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이따금 삶이 공허하고, 마음이 허전할 때 아무 쪽이나 펼쳐서 천천히 읽는, 그런 책이기를 바라요.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목차 구성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배우다', '살다', '쓰다', '느끼다' 모두 흔한 일상의 구성요소다. 그렇기에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소중함을 놓치며 살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으로써, 그 소중함을 잊지않고 기억하려 애쓴다. 누군가의 삶의 4가지 단면과 만나봄으로써, 그 경계에서 피어난 사유의 조각들을 느껴봄으로써, 소중한 내 삶의 단면들 역시 더욱 풍성하게 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44 독서 역시 욕망의 한 형태지요. 고상한 척 지적 욕망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니에요. 기실 감성적 욕망의 환기이자 순환이죠. 독서는 부득불 모종의 감정을 일깨우고 소비해요. 그렇게 순환하는 감정들이 삶의 다양성을 구성하게 되는 걸 테고요.
 나은 삶이란 지고의 가치를 추숭하는 것이리가보다 각기의 욕망을 무리 없이 순환시키는 것이라 생각해요. 독서는 비교적 건전하고 효율적인 욕망의 순환고리인 거죠.  덜 소모적이며 조금 더 생산적인 것이기도 하고요. 독서는 여타의 욕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욕망인 거죠.
 바우만의 말마따나,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지 않아요. 그러니 만족은 욕망의 불행이죠. 욕망은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할 뿐이에요.

굉장히 인상적인 구절이어서 인용구가 길어졌다. 흔히 독서는 '놀이'보다는 '일'로 여겨진다. 이러한 태도는 어차피 해야할 독서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는 한다. 그러나 세상에 동인이 없는 일은 없다. 독서 역시 나름의 욕망이 이끌어낸 행위였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면화하는 과정을 지나쳤을 뿐이다. 결과를 욕망하든 과정을 욕망하든, '지금의 독서를 통해 내가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훨씬 능동적이고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욕망의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독서를 선택한 본인의 의지를 재확인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도 더해질테니 말이다. 앞으로의 독서는 더욱 능동성과 자발성을 갖고 즐겁게 읽어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62 헤밍웨이가 빙산이론을 얘기했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동일시'를 얘기하네요. 수많은 사람이 대를 이어 <데미안>에 심취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공감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 <테스>의 운명을 자신의 삶이라 상상하며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까닭, 에릭시걸의 <러브스토리>를 놓고 유치한 눈물을 흘리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프로이트는 그것을 '동일시'라고 설명하지요. 사람은 동일시의 경험을 위해 소설을 읽고 연극(영화)을 보러 간다는게 프로이트의 믿음이었어요.

62 동일시는 작가에게 집필의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 노벨문학상 수상자 솔 벨로우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자살했을 터"라고 하여, 글쓰기가 작가의 감정적인 정화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증언하지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 대리만족을 넘어 동일시에 이르게 하는 글은 역시 삶의 현장에서 길어낸 체험에 바탕한 글이어야 해요.

흔히들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은 '비문학'이라고 말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기계발서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분명 비문학은 유용하다.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기술들은 삶을 개선하고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준다. 실제로 나 역시 일상의 관리에 필요한 많은 유용한 기술들을 실용서를 통해 획득했고 알차게 활용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문학이 갖는 가치는 그만큼 회자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내밀한 곳에 단단하게 응어리진 생각과 감정의 돌무더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것, 그럼으로써 해방과 기쁨에 이를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상상세계 속의 누군가를 향해 뛰어들며 '동일시'됨으로서 내면의 자신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야겠다고, 또 언젠가는 그런 진실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

187 "언어를 죽이는 것은 바로 언어의 무의식적 사용이다." <공부하는 삶>에 나오는 폴 발레리의 말이에요. 좋은 문체는 쓸모없는 것을 모조리 배제하죠. 문체는 풍요 속의 긴축이에요. 문체는 필요한 대목에서는 소비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능숙하게 배열해 절약하며, 도 어떤 대목에서는 진리의 영광을 위해 자원을 아낌없이 쓰는 거죠. 문체의 역할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죠. 그럴 때 문체 자체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거든요.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운 것이란 모든 과잉을 제거한 것"이라고 말했고, 들라크루아는 미켈란젤로가 "배경은 크게, 볼의 선은 단순하게, 코는 대강 그렸다"고 지적했지요.

글쓰기에 관한 글들도 유용하고 유익했다. 흔하게 쓰여지는 비문들의 설명은 나의 습관들 또한 포함하고 있었고, 자기글을 교정하는 법 또한 자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위에서 인용한 '문체'에 관한 구절이었다. 이따금 글을 적어내리며 '과잉'에 이르게 될 때가 있다. 글의 서두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후반부에 갈수록 힘이 떨어지며 맥없이 마무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완급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문제점은 인식했어도 이에 대한 개선방향은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 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뚜렷한 방향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풍요 속의 긴축을 기본으로, 진리의 영광을 향하여 힘을 모아나갈 수 있는 쓰기의 노련함을 갖춰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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