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한 문학 읽기. 그 단계적 성장을 돕는 3단계 가이드.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문학읽기를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요구하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께
2.문학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발견을 이뤄낼 수 있을까' 배우고자 하는 분들께
3.이상, 루쉰, 이승우, 채만식 등 유명 작가들의 단편 소설들을 만나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분들께
4.유명 단편들을 만나봄으로써 문학의 독서를 늘려가기를 기대하는 성인 여러분께
[서평]
'싱글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나는 혼자서 잘 노는 편이었다.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도 잘 먹는다. 그래서 그 날도 별다른 이유 없이 혼자서 연극을 보러 갔다. 공연장이 집에서 멀었고, 갑작스럽게 가게 되었기 때문에 누구를 불러내기도 애매했다. 당시의 내가 꽤나 무기력한 기간을 보내고 있던 탓도 크다. 그렇게 혼자 보러간 공연을 마치고 나는 전에 없던 흥분을 느끼게 되었다. 떠오른 생각의 조각들을 누군가에게 풀어내고 싶었지만 옆에 아무도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갖고 다니던 노트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연결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을 검열없이 풀어내고 종국에 그것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과정은 전에 없던 고양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비문학만을 찾으며 '정리된 지식'만을 채워넣으며 살던 나에게 문학이 주는 울림의 힘을, 나아가 예술이 전하는 의미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게 된 짜릿한 경험이었다.
지식은 유용하다. 그러나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인간에게 다른 차원의 의미를 제공한다. 내적 동요를 통한 성찰과 성숙의 기회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혀오며 인정받은, 전문가들로부터 엄선된 '필독소설'이라면 더욱 그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책 '고교생을 위한 필독 소설선2'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을까?”라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현직 대학교수와 국어과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엄선하여 소설을 추리고 질문들을 담아냈다고 한다. 이 책이 포함된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은 '문제적 개인', '타락한 사회', '자연과 문명', '자유와 예술'이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이 책의 경우 '문제적 개인'라는 큰 주제, 그 중에서도 '내면의 성찰', '풍속과 세태'라는 소주제를 다룬다.
문학은 의미를 제공한다. 문제는 '어디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이다. 같은 문학을 읽고도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해내는 사람일수록 더 큰 재미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발견을 위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이 책의 구조는 '작가 소개-작품소개-작품-종합적 핵심정리'의 순서로 이루어져있다. 작가의 약력과 작품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작품의 전반적 내용을 짧게 훑어본다. 작품의 전문을 읽고, '종합적 핵심정리'를 통해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다시 '생각의 움 틔우기', '생각의 가지 뻗기', '생각의 숲 가꾸기'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세부적인 이해에서 종합적인 사고로 발전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담긴 질문에 답해보는 과정속에서 '내가 발견했던 의미'를 만나보고,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만나보며, 문학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깊은곳을 한층 진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답을 즉시 떠올릴 수 있었던 질문도 있었고,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질문도 있었다. 둘의 차이를 비교해보니 '몰입도'가 크게 달랐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내적 경험이나 사고와 맞물려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독서의 가치'를 가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장의 울림을 얻지 못한 소설이 언젠가 불현듯 떠오르며 생각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실제로 답을 하지 못했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설을 다시 읽어내려가면서 종전의 독서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번뜩임을 경험하게 되기도 했다. 재독과 삼독이 주는 의미도 다시금 짚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울림을 얻었던 작품은 이승우 작 '오래된 일기'였다. 글을 씀으로써 '해방'과 '자유'를 얻기를 기대하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의 내면에 자리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마주하게되는 성찰의 기회도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몇 부분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친다.
입시를 앞둔 학생은 학생대로,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성인은 성인대로 의미있는 독서의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123 아버지는 죽음으로 가장 튼튼하게 나와 연결되었다. 모든 것은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낸다.
124 뜻밖의 일이 불쑥 끼어들어 삶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해 버리곤 한다. 끼어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니, 애초에 삶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126 내 신경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은 소설 속의 소설가, 나아가 그 소설을 쓴 소설가가 그 지루하고 장황한 자기변명을 끈질기게 되풀이함으로써 얻어내려 하고 있는, 마침내 얻어냈을 효과였다. 확실하고 또렷하게 그 효과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소설을 왜 쓰는지 온전히 이해했다고 느꼈다.
128 무얼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필요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근본이 아니고, 심지어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고, 그 글을 쓰려하는 순간의 의식의 꿈틀거림? 그런 걸 정신의 핍절함이라고 하나? 암튼 그런 거 말이야, 그런 게 중요하다는 게 느껴지더라.
134 나는 그저 한 권의 일기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34 일기장이 제공하는 자유는 일기를 계속 쓰는 것을 담보로 주어진 것이었다 묶임을 조건으로 한 해방, 해방의 지속을 위한 묶임이었다.
137 자기를 이해해줄 수 없는 세계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존재방식이 부유였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깨달아졌다. 존재의 최소한의 방식,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부유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