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사기꾼 - 모세 예수 마호메트
스피노자의 정신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책은 17세기의 비밀출판물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뚜렷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타인의 신앙을 존중하며 저 또한 언제든지 기성 신앙을 믿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적 호기심'을 이유로 읽게 되었으나 글의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인용될 수 있으니, 불편함을 느낄 것 같은 분들께서는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줄평]
17세기 말 익명으로 출간된, 3대 종교를 향한 독한 비판.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17세기말 익명의 사상가는 종교를 어떤식으로 바라봤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2.3대 종교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무엇일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3.3대 종교를 비판한 어느 사상가는 그 대안으로 무엇을 제시했을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4.당대의 종교에 대한 비판은 지금의 시각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달랐을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5.당대의 사람들은 어떤 방식과 구조로 비판의 글을 작성했을지 호기심을 가진 분들께

[서평]
특정한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우주'의 존재와, '나'의 존재와, '우주와 나를 인식하고 있는 나의 의식'의 존재, 그 모든 존재를 향한 경이로움, 이것이 나의 종교라면 종교다. 특정한 종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종교를 굳이 싫어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을 향하여 혐오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특정 '종교인'들, 그리고 타인의 신실함을 악용하여 자신의 영리를 취하는 '악덕종교인'들을 싫어할 뿐이다.

이 책의 독서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호기심'때문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익명이다. 17세기의 비밀출판물로서 3대종교를 향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여왕은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으나 끝내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그 저자는 누구일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요즘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지, 그들이 제시하는 기성종교의 대안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시대상을 비판했고, 논리와 근거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담백하고 직관적인 전개는 글을 막힘없이 읽게 만들었다.  종교를 악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를 향한 비판적 시각들을 짚어봄으로써 우리에게 종교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대중의 무지를 바라는 이들
26 그들에겐 대중이 무지하다는 사실이 워낙 중요한 터라, 누군가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 누군가는 어떻게든 진실을 위장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사이비 학자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근거 중 하나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중들에게 종교를 주입한다는 견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5공화국의 3S정책을 떠올렸다. 3S자체가 나쁜것은 아니다. 그것에 휘둘려 정치권력을 틀어쥐고 대중을 입맛대로 움직이려는 권력집단의 의도가 나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자극을 얻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자유와 행복의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결국 힘 없는 대중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순수하고 신실한 마음을 악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악덕종교인들이 나쁜 것이다. 지금의 시대라고 해서 대중의 무지를 바라는 이들이 없을까? 피할 수 없는 것이 악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똑바로 뜬 채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각성'이 아닐까?

완벽함의 역설
43 '신의 목적'이니 '궁극의 원인'이니 하는 교의야말로 지금까지 신에게 부여된 완벽의 경지를 일거에 박탈하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하다. 이를 증명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만약 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어떤 목적을 두고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신이 현재로서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으로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없던 시기가 있고, 언제든 그 이유가 생기면 그때 비로소 행동에 들어간다는 얘긴데, 이는 곧 신을 매우 빈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처사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신이 어떤 행위를 했다는 것은, 원하는 바가 있었다는 듯이고, 결핍이 있었다는 의미인데, 완벽한 신에게 어떻게 결핍의 순간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재치있는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열등감에 관한 생각도 해보았다. 이따금씩 나는 나 자신이 무능하고 무력하다는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유능하지 못한,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만약 내가 완벽하며 만족으로 충만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충만한데 어떠한 동기가 발생할까? 그렇다면 움직일 이유가 있을까? 마치 하나의 돌덩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그것에 생가기 느껴지는가? 나는 그러한 삶을 원하는가? 물론 지나치게 멀리 나간 이야기다. 하지만 훗날 열등감에 허우적대고 있을 나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생각이라는 내적 움직임'을, '행동이라는 외적 움직임'을 가능케하는 의욕은, '결핍'으로부터 올 수 있어. 그 '결핍'은 너를 움직이게 만들지. 그것은 곧 생기의 원동력이야. 그러니 그만 주저앉아있고, 다가온 움직임의 기회를 기쁘게 누려보는 것은 어때?

무지와 이기심
184 요컨대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인간을 더 많이 염두에 두신다는 발상, 이런 모든 변별적인 사고는 오로지 협소한 정신력이 만들어낸 순전한 상상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무지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냈고, 이기심이 그것을 부추길 따름이다.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었다. 무지와 이기심이 특정 종교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무지와 이기심이 숱한 후회를 낳는 어리석음 의씨앗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어떤 사안에 관해서 모를 때는 지나치게 용감해지거나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지나친 용감함은 더욱 지나치게 되거나, 방금까지 존재했던 조심스러움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면에 '이기심'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말로 '탐욕'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니 무지를 벗어나 앎을 획득하는 배움이, 탐욕을 알아차리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알아차림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용]
17 (옮긴이 서문) 오늘의 종교적 관점으로 볼 때, 분명 이 책에는 기발하되 불경스러운 착상이 있는 만큼 단순하기에 과도하게 나아갈 수 있었을 논의들도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와 같은 논의와 착상들이 끊임없이 출몰해왔기에 오늘날 같은 종교의 단단한 자리매김이 가능한 것이며, 정교하게 발달된 작금의 모든 종교적 교리 역시 따지고 보면 그처럼 까탈스러운 도전들에 일일이 응전하는 가운데 하나하나 갖춰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끔찍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좋은 공부자료가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39 대중의 공포심을 중시하는 정치가들일수록 인간과 신의 계율, 즉 자기들 신분의 근간을 이루는 법이 훼손되었을 때 특별히 무서운 보복을 가하는 신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옹립했다. 끔찍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함으로써, 자기들이 다스리는 대중을 맹목적으로 굴종하게끔 만든 것이다.

40 세상 모든 인간은 사물의 근본 이치에 대해 완전히 무지상태에서 태어나며,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한테 해가 되는 것은 피하고 이롭고 편한 것은 추구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성향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49 만약에 우주가, 신의 본성이 어떤 필연적 연속을 이루며 흘러가는 현상이라면, 그 안에서 목격되는 온갖 결함과 불완전한 것들은 다 무엇인가? ... 이제는 각각의 본질과 정수에 적합한 것 이상의 완벽성을 사물들에 기대해서는 안 되거니와, 단지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유익하다거나 쓸모없다거나, 혹은 감각에 즐겁다거나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이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어떤 존재의 본질과 정수를 파악한다 해도 우린 결코 그것의 완벽성을 판단할 수 없다.

167 어차피 인간을 의무에 붙잡아두는 방법이란 단 두 가지뿐, 범죄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고대의 입법자들이 제정한 준엄한 형벌이 하나요, 신들의 분노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심이 나머지 하나다.

168 이것이야말로 약간의 탄력만 받게 되면 민중의 태도를 단번에 극단적인 지경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었다. 즉 조심스럽던 태도가 갑자기 열정으로 변하고, 그저 약간 성난 성태가 졸지에 확고한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면서, 모든 논리적인 행동이 뒤죽박죽 휩쓸리는 가운데, 자신이 섬기는 신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재산도 목숨도 조개처럼 버릴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