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대로 먹인 음식이 당신 아이의 머리를 망친다 - 개정 4판
오사와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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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음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
건강을 위해 음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어제 먹은 것을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는다. 워낙에 바꾸기 어려운 것이 습관이며 식습관은 더더욱 그렇다. 관성에 이끌리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이 대부분 '맛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변화에는 충분한 '이유'가 필요한 법인데, '맛있다'라는 강력한 동인을 대체할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뇌의 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심지어 함부로 먹은 음식이 범죄와 공격성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약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가 충분한 영향을 공급하는 것으로 호전되었다면? 장기적으로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숟가락 위에 무엇을 올려놓을지 고민해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영양이 이끄는 몸과 마음의 건강
이 책  '먹고 싶은대로 먹인 음식이 당신 아이의 머리를 망친다'는 음식(특히 영양)과 건강(특히 정신건강)에 관한 책이다. 식생활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비타민과 미네랄의 효과와 활용법을 제시하며, 정신질환과 영양요법에 대해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치매, 등교거부, 폭력 문제에 영양요법으로 효과를 본 사례를 들려준다. 즉,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일상속의 대응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건강을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상속의 식생활을 개선함으로써 당장의 문제를 개선하고 잠재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며 사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 아닐까? 오늘의 식단을 위한 작은 노력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꿔나가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유익한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양,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뇌의 연료'
19 영양부족으로 뇌의 정상적인 기능이 저하되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예측하거나 상상할 수 없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여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따금씩 한심한 행동이나 말을 해놓고는 '내가 왜그랬지?'하며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 자책을 하깁다 밥을 먹는것이 더 나은 처방일지 모른다. 연료가 부족해진 기관이 정상 작동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뇌 역시 영양분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신체기관이다. 사례에 따르면 살인범의 뇌는 전두엽의 당대사가 확연히 낮았다고 한다. 또한 분노 반응이 심하고 폭력적인 남성의 경우 혈당이 심각하게 낮았다고 한다. 영양의 부족이 폭력을 부를 수 있으며 심지어는 범죄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혈당, 뇌의 위기
36 포도당을 유일한 에너지로 하는 뇌에게 저혈당은 결정적인 위기이다. 레서 박사에 의하면 신경증 환자의 85%가 저혈당증이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정신의학자 파이퍼 박사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20%가 저혈당증을 나타낸다고 한다.
저자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저혈당'이다. 우리 몸의 혈당치는 혈액 1dl당 60~160mg이 유지되도록 되어 있는데, 50mg 이하가 되면 '저혈당증'이라고 한다. 이 때 공복감, 하품, 탈력감, 식은땀, 떨림, 울렁거림, 경련, 성격 변화, 의식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을 먹으면 되는것이 아닌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소당류의 과잉섭취는 인슐린의 과잉분비를 부르고 오히려 저혈당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적절한 영양섭취를 통해서 적당한 혈당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혈당 불균형이 유발하는 몸의 질환
혈당의 장기적 불균형은 몸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낳을수도 있다. 책에는 잘못된 진단으로 10년간 투병생활을 한 여성의 사례가 등장한다. T양은 만성 위염, 아프타성 구내염, 간기능 장애, 코 알레르기 등 30여가지의 질환을 진단받았고 베체트 병, 류머티즘, 갑상선 기능 항진증 등 7가지 질환을 의심받고 있었다. 이에 하루 최대 33종류의 약을 처방받은 날도 있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저자가 긴 투병을 이어가게 된 시작은 식사량을 대폭 줄이면서 부터다. 밥을 줄인만큼 부족해진 혈당을 설탕으로 보충하기 시작했고 이후 각종 문제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에 설탕을 줄이며 영양학적 치료를 이어간 결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혈당 불균형이 유발하는 뇌의 질환
133 혈액으로 수송되는 당은 몸의 세포가 활동 에너지를 모두 얻는 연료이다. ... 축적된 포도당과 미네랄이 고갈되면 몸의 세포는 더 이상 적정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 뇌는 체내의 모든 기관과 조직 가운데 혈액으로부터 공급되는 포도당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다. 뇌는 혈당이 떨어지면 즉시 영향을 받아 피로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감정이 치솟게 된다.
정신분열증에 관해 생화학적으로 접근한 파트 중 일부이다. 책에서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5가지 바이오 타입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별로 원인과 대응방안을 제시한다. 위의 인용문은 그 중 다섯번째 타입인 '저혈당증'에 관한 부분이다. 꼭 '정신분열증'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이해하고, 부정적 요인을 피하며 긍정적 요인을 실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뇌 건강의 최적화'를 위해서 필요한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글루텐 피하기'나 '종합비타민'섭취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혈당관리'를 비롯해 여러가지 새로운 실천방법들을 배워볼 수 있었다.

행복을 위한 영양처방
'날씬하고 멋진 몸매'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의 이상향이다. 마크 트웨인은 "담배를 끊는 것은 참 쉽다. 나는 담배를 100번도 넘게 끊어봤다."라고 말했다는데 다이어트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대가 흐르며 각종 다이어트 방법이 뜨고 또 지는 것을 보면 금연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다이어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왜 다이어트를 할까? 무수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해서 아닐까? 책에 따르면 과도한 절식과 비타민·미네랄의 결핍은 저혈당과 영양부족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또한 부족한 혈당을 설탕으로 채우려고 할 경우 몸의 균형을 무너뜨려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오늘의 식단에 애정어린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나가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구체적 영양섭취 제안이 담겨있는 실용적 도서입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를 바라는 부모님과, 스스로의 건강을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성인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인용]
82 오늘날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제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지만 그 배후에는 생물학적 차원의 문제, 그리고 그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 빅터 프랭클은 환원주의를 현대의 허무주의로 보고 있다. ... 환원주의는 본래 하나의 차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일차원으로만 판단하여 '~에 불과하다'고 단정 짓는 사상이다.

133 이 병의 원인으로는 장내 효소가 글루텐을 소화할 수 없어서 유독물질이 축적되고, 축적된 유독물질이 장기를 자극하여 만성 소화불량과 흡수 불량을 일으킨다는 이론이 있다.

168 프랭클은 정신, 마음, 몸을 인간의 세 가지 차원으로 들면서 정신질환자를 도와주는 데도 이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하나의 차원만 보는 것은 환원주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70 설탕의 대량 섭취는 고혈당⇒인슐린 과잉 분비저혈당⇒아드레날린 분비를 일으키므로 정신질환 발명의 중대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186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원인을 탐구할 때 대개는 개인의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 '역사결정론'이나 개인의 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환경결정론'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그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고 있는 요인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학교에 갈 수 없는 개인의 지금 상태는 어떤지, 그리고 심리학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수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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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수업 - 나를 돌보는 게 서툰 어른을 위한
오카다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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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통을 넘어 행복을 향하여
마음의 문제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나 역시 단단하지만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름의 번민과 배움의 시간을 거쳐오며,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무엇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탐구해왔다. 그런데 앎의 범위가 확장될수록 행복과 고통이 꼭 이분법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짙어져갔다. 황홀한 행복의 시간이 돌이킬 수 없는 추억속의 과거가 되어 집착과 후회를 낳으며, 버틸 수 없을것만 같던 고통의 시간속에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를 고양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다. 

모든것은 마음에 달렸다. 굳이 원효대사 빙의하여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직접 마셔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음과 태도의 중요성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한가지.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목이 말라 물을 갈구하는 있는 와중에 누군가 다짜고짜 '물이 반밖에 남지 않은게 아니라,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해보렴'이라고 말한다면, 반밖에 남지 않았던 짜증이 반이나 남게 되는 경험을 하게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가꿔나갈 것인가이다.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할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들'일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를 파악하고 가꿔나간다면,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행복을 향해 한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애착, 삶의 원동력
이 책 '애착수업'은 '애착'을 다루는 책이다. 애착은 삶의 원동력이며 애착을 잃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애착은 대인관계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이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탱하는 뿌리와 같은 구조라고 강조한다. 한편으로 우울, 불안, 긴장, 의존증, 섭식장애, 감정 기복,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불륜, 가정폭력, 등교 거부, 은둔형 외톨이, 발달장애 등 다양한 문제들이 '불안정한 애착'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불안정한 애착를 안정화시킴으로써 다양한 마음의 문제들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안정된 애착을 통해 삶의 원동력과 삶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애착, 회복의 열쇠
그렇다면 애착이란 무엇이고, 불안정한 애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애착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5 사전에서는 애착의 뜻을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애착은 생애 초기에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이 시기에 어머니와 애착을 잘 형성해 안정감을 느끼면, 성장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안정된 애착은 불안을 잠재우고 대인관계에서 기쁨을 느끼게 해 오래도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아동병원 정신의학과에서 20년 넘게 임상의로 근무하며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던 아이들이 극적으로 회복되는 사례들을 발견했고, 그 핵심이 '불안정한 애착'을 치료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큰 상처를 받아 애착이 불안정한 아이들, 혹은 그 상태로 자라난 성인들이 안고 있는 마음의 문제를, 애착의 치료를 통해 뒤늦게나마 풀어낼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치료법을 '애착 기반 접근법'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애착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론적 발전과정을 짚어보며, 상처받은 애착을 안정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들을 다룬다. 특히 '안전기지' 개념을 적극 활용하며, 애착이 불안정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마음의 불안을 겪는 주변인을 돕기위한 '조력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태도와 지침들을 담았다.

애착의 안정을 위한 '안전기지'
136 나만의 안전기지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 생겨도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어떤 경우에도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애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핵심은 '안전기지'를 갖는 것이다. 어린시절, 불안과 아픔에 펑펑 울다가도 누군가 다가와서 꼭 안아줬을 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던 경험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성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꼭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것만으로도 큰 위안과 용기를 얻고는 한다. 안전기지는 이처럼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줌으로써 충전의 휴식을 제공하는 누군가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부모나 가까운 사람이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지만 의사나 상담사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다. 관건은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짓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지한' 태도로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안전기지에서의 휴식은 생리학적으로 옥시토신 분비를 활성화시켜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능력을 높여줌으로써 활력이나 면역력을 강화한다. 또한 기본적인 안도감과 타인에 대한 신뢰, 스트레스 내성이나 부정적 인지를 개선해 대인관계나 사회 적응을 도울 수 있다.

너와 나, '우리'의 안전기지
저자는 애착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마인드풀니스, MBT, 멘탈라이징 등 다양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다음의 구절이었다.
267 결국 안전기지는,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이 아닌 자신의 주변이나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본인 역시 안전기지를 얻을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무수한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관계의 깊이는 점점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형태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인간관계의 주요 가치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너무나도 고마웠던 선의와 호의들을 떠올려본다.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 속에서 잡지 못했던 아쉬운 손길들을 기억해본다. 나의 삶을 함께 만들어준 소중한 사람들과, 한 번 뿐인 일상의 순간들을 함께하는 고마운 사람들과, 안전기지의 포근함을 나누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인용]
30 의학 모델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판정받는 아이는 질병의 근본 원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여러 감정을 증상으로 표현할 뿐이다. 정말 치료가 필요한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존재이거나 때로는 다정한 표정으로 환자를 보호하는 부모, 또는 주 양육자인 경우도 있다.

37 치카 씨는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태도를 보이면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 타인을 신뢰하지 않았고 관계에서 안정을 느낄 줄 몰랐으며, 모든 일을 끊임없이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했다.

41 치카 씨는 버림받는 데 지나치게 예민해진 나머지 타인의 반응에 과도하게 신경 쓰며 불안해하고, 누군가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면 불안해지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애착은 대인관계에서 안정을 느끼는 밑바탕인데 애착이 불안정하니 불안과 우울이 심해지고, 버림받는 데 예민해지고 쉽게 상처받다 보니 모든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74 아이는 위험을 느낄 떄만 어머니 품 안에서 안정을 찾고, 위험이 사라지면 어머니에게서 벗어났다. 어머니라는 안전기지가 존재하기 떄문에 아이는 '놀이'라는 탐색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87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실제로 발생한 사건과 자신의 감정 또는 추측이라는 2차 반응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니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에 휩쓸리거나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

106 증상은 몸이 도와달라는 신호인데, 이를 방치하고 체념해버리면 몸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를 무시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110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언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지 몰라 늘 불안에 떠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표정에 민감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성향을 불안형 애착이라고 한다.

194 회피형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애착을 느끼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고, 정말로 잃게 되면 상처를 받게 된다. 이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 애착불안(애착하는 대상이 자신을 받아들이는지 여부를 늘 생각하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을 경험하는 분들께
2.대인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분들께. 특히 타인의 반응에 과도하게 신경쓰며 불안을 느끼는 분들께
3.우울, 불안, 긴장, 의존증, 섭식장애, 감정 기복,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불륜, 가정폭력, 등교 거부, 은둔형 외톨이, 발달장애 등 다양한 문제들의 '숨은 원인'에 대한 견해를 만나보고자 하는 분들께
4.마음의 문제를 겪는 주변인에게 힘을 주기를 원하는 분들께.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기지'가 되어주기 위해 필요한 태도들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께
5.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로서 가져야 할 애착에 대한 배움을 기대하는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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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법조인 36인이 말하는 법과 오늘
김주미 지음 / 법률저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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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읽기]
법조인이 들려주는 법 이야기
탐구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대상의 면면을 스스로 관찰하는 것. 둘째, 그것과 삶을 함께한 전문가의 목소리로 재해석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첫번째 방식이 갖는 장점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두 번째 방식 역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개인의 삶 속에서 녹아든 학문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어떠한 학문이든 그것이 실현되는 곳은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의 삶' 일테니 말이다.

이야기:개인적인/사회적인/성취의/전문 영역의/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이 책 '법과 오늘'은 법에 관한 삶의 이야기다. 법의 영역에서 각자의 성취를 이룬 36인이 말하는 '법과 삶'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 법조인이 된 이유, 과정, 소신 등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로스쿨이나 법조현안 등 사회문제, 개별 전문가들의 특색있는 업무 이야기, 청년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우며 유익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따라서 '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께도 즐거운 읽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주인공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다. 등장하는 법조인은 박주선, 천정배, 강금실, 이재명, 표창원 의원등 정치와 연결된 법조인에서부터 가수로 활동했던 미국 변호사 이소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까지 다양하다. 대중들에게 유명하지 않더라도 각 영역에서 전문적인 경력과 탁월한 성취를 이뤄낸 여러 법조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현실 곳곳에 녹아들어있는 법의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법이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편으로 그들이 일뤄낸 성취의 과정을 풀어냄으로써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많은 독자들에게 의지와 영감을 전한다.

'사람'이 말하는 '법'과 '오늘'
법의 이야기는 왠지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의 이야기는 한결 친근하고 편안하다. 이 책을 통해 만나본 법조인들의 시선은, 낯설고 딱딱할것만 편견과 달리, 늘 '사람'을 향해 있었다. 인터뷰어인 김주미 기자는 법조인들로부터 "보내 온 질문지를 보고서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여러차례 들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꾸미지 않은듯한 편안한 대화속에서, '사람'이 말하는 '법'과 '오늘'의 이야기를, 호기심과 배움의 흥미와 함께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가까이 읽기]
이시윤 변호사 / 전 감사원정, 판사, 초대 헌법재판관
20 "법조인은 '사회의 의사'야. 개인 병 고치는 의사 말고, 병든 '사회'를 고치는 의사. 사회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해. '사회 설계사'이면서 '정의의 대변자'이지. ... 선비 정신을 가져야 해.

24 변호사 자격증은 어쩌면 출발점이야. 이제부터 시험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자기 공부를 해 나가야 하지. 법의 궁극적 가치를 게을리하면 자기한테도 불행이요, 사회에도 불행이야.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 때도 그랬어. 학생들 사이에 이상은 부단한 노력을 하는 노력가들이 아니라 하는 것에 비해 성적이 좋은 사람, 얼마 안 하는 것 같은데 뛰어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지. ....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노력을 얼마 한 게 없는데 성과와 결과를 바라는 것, 그건 불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인터뷰를 읽어나가며 많은 법조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런 또렷한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방대한 학문을 소화해내는 것이 쉬웠을까? 병든 사회를 고쳐주기를 기대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병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많은 요즘,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이시윤변호사의 이야기는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겸손'에 대한 이야기는 깊이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그렇다. 열심히 오랜시간 끈덕지게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짧은 시간을 투입했음에도 천재적인 기질의 힘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며 불의에 가깝다. 이번 독서를 계기로 나의 내면에 자리한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보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노력으로 목표를 이뤄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양창수 교수 / 전 대법관, 판사
56 법의 중요성은 그것이 권력의 틀을 정한다는 점에도 있지만, 그 전에 사람의 권리, 즉 기본적 인권을 말한다는 점에 있어요.
 우리나라의 법은 개인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에 비하면 사회 원리의 패러다임 대전환이죠. 국가도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거예요. 우리는 식민지 경험, 전쟁, 분단, 가난 등으로 아직 그 점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은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도 된다는 원칙 위에 서 있지요.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경우에는 분명히 책임을 지라고 말하죠. 억지로 어떤 사회적 압박에 의해 희생하는 것은 우리 법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경우와는 다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저변에서는 가족, 기업 등을 위하여 자신을 억누르라고 요구하지 않나요?
법 공부는 단지 추상적 법리를 외우는 일이어서는 안 되고, 법이 그렇게 정하는 기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법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이해한 바탕 위에 법의 적용과 문제 해결, 법 제도 간의 기능적 관계를 입체적으로 고려하는 공부를 해야지요.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법 공부가 그렇게 되고 있는지를 항상 점검해야 해요.

흔하게 쓰이는 '법대로 해!'라는 말에는 '인간'에 대한 고려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당신 이야기는 내가 들을 필요 없고, 골치아프니까 법대로 합시다."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법은 '권력의 틀'임에 앞서서 인간의 '기본적 인권' 지향한다. 규칙에도, 질서에도, 권력에도, 그 너머에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나 모르는 바가 아니겠지만, 각자의 각박한 현실속에서, 혹은 이기심이나 욕망속에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게되는 경우가 잦다. '법의 이해'가 혹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추상적 법리 너머에 법이 추구하는 가치가 존재함을 이해함으로써, '법대로 함'이 곧 '그 너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임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지혜도 함께 확장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개인'에 관한 관점도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이즈미야 간지'가 저술한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서는 일본과 서양의 대화에서 '인칭'의 차이가 발생함을 지적한다. 서양에서는 1인칭인 화자가 3인칭인 타자에게 말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0인칭인 화자가 2인칭인 타자에게 말한다. 서양에서는 나의 주장이 상대의 지위에 따라 크게 영향받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확연히 달라진다. 즉 '나'가 없고 '나의 주장'이 없다. 저자는 이러한 주체의 상실로 인해 마음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자기본위'를 획득함으로써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번 독서는 '마음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넘어서, '법 안의 개인', '국가 안의 개인'을 짚어보게 만들었다. '희생'과 '헌신'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만큼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강압되었을 때는 금액으로 보상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운 폭력이 될수도 있다. 마음의 주체로, 집단의 개인으로 자신을 지켜가야겠다고, 타인의 마음과 집단 안의 타인을 존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송기석 국회의원 / 전 판사
119 저는 공부할 당시 그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한다', '전부를 내던진다', 24시간 중 16시간을 공부 시간으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2차 마지막 날 시험장을 나오면서 '내가 이 정도로 했는데 안 되면 이 시험은 나와 맞지 않는 거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해 안 되면 그만두려 했어요. 그만큼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했다고 자신했습니다.
어떤 시험을 응시하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목적 의식과 각오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상태에서는 긴 시간 공부할 수 없어요. ...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단시간의 시험 준비가 아닌 긴 시간 대비해야 하는 방대한 시험 준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습니다. 조금씩 물을 부어서는 다 새어 나가 버려 독에 물이 차 있질 않아요. 콸콸 넘치게 부어야 밑에서 빠져 나가도 독에 물이 차 있을 수 있습니다. 시험 기간을 길게 잡지 말고 잡은 기간 내에는 자신이 쏟아 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투여해야 합니다.

법조인 하면 아무래도 사법시험을 빼놓을 수가 없다. 로스쿨이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는 사법시험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의 치열하고 생생한 노력의 과정속에서 많은 배움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송의원은 13년 동안 대학을 세 번 다녔다고 한다. 수험을 위해서 학교를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16시간을 공부에 매진하며 합격을 이뤄냈다고 한다. 그 동안의 삶에서 '해본다'의 태도로 임하며 이루지 못했든 일들을 떠올린다.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다면, 전부를 내던지며 치열하게 임했더라면 성취를 했을지 모를 것들, 적어도 실패의 과정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경험들을 떠올린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방법은 빠져 나가는 양보다 더 많은 물을 채워넣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려 한다. 세상에 나의 노력을 온전하게 담아 줄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 탓하거나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태도가 바로 그릇의 구멍을 쳐다보는 미련맞은 아쉬움이 아닐까? 물이 빠져나간다면 그보다 더 많은 물을 채우겠다는 각오로, 신념을 향한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전진하고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박준영 변호사
190 "절실함이 있었어요. 대충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 저는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잡힌 채로 일을 하는 중이니 더더욱 절박했습니다." 살인했다는 사람들 옆에 나란히 서는 것, 수사기관에 대항해 홀로 싸워야 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저는 뒤늦게라도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나타난 진범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진범이 존재하는 상화에서 진실게임은 끝난거죠. 수사기관이 저지른 악행은 입에 담기조차 어려워요. 처음에는 왜 안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들의 잘못 앞에서 당당합니다. 죄 지은 자는 엎드리게 되어 있어요. 저는 두려울 이유가 없죠. 진실을 쥐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 건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 문단의 토픽은 '절실함으로 두려움을 뛰어넘다'이다. 공권력이 진행한 수사와 판결에,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일에, 오로지 '진실을 쥐고 있다는 당당함'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될까? 더욱이 그것이 공권력에 대항하는 '진실'이라면, 손쉽게 이룰 수 있는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위대한 일들은 그 과정의 어려움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내야만 하는 '이유'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박변호사의 경우 그것이 '절실함'이었던 것 같다. 나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절실하게 하는것은 무엇일까?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나만의 신념은 무엇일까? 나 역시 박변호사처럼 진실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살아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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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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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읽기]
일의 읽기에서 놀이의 읽기로
정말이지 많은 변화를 경험한 한 해였다. 그 중에서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것을 꼽아보라면 고민끝에 '읽기의 변화'를 선택하겠다. 작년 이맘 때 나의 읽기 방식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어떠한 계기로 책을 손에 잡는다 - 냄새를 맡는다(나는 새 책의 종이냄새를 좋아한다) - 목차를 대강 훑어본다(서문은 가뿐히 건너뛴다) - 본문의 첫 페이지부터 정직하게 읽어나간다 - 끝페이지를 읽으면 덮는다>
반면에 요즘의 독서 순서는 이렇다.
<어떠한 계기로 책을 손에 잡는다 - 냄새를 맡는다 - 목차를 훑어본다. 글의 전개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호기심과 질문들을 떠올린다 - 서문을 읽는다. 호기심과 질문들을 떠올린다 - 서문을 바탕으로 목차를 다시 훑어본다 - 목차를 기준삼아 관심가는 곳을 빠르게 훑어본다 - 본문을 읽는다(종종 목차를 펼쳐보며 긴 흐름 속 현재 위치를 짚어본다/인상적인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 간단하게 마인드맵을 그린다>
독서 방식의 변화에 따라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재미'다. 이전의 독서가 '일'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독서는 '놀이'에 가깝다. 또 몰입도와 이해도도 한껏 높아졌다. 이에 배우고 느끼는 바도 늘어났으며, 자연스레 실생활에서 활용되는 폭도 넓어졌다. 

목차는 설계도, 서문은 암호
12 목차는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설계도다. 자기 머릿속에 넣어둔 목차와 본문을 대조해가며 읽을 때 독자는 저자가 된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제목이 압축 파일이라면 서문은 그것을 푸는 암호다. 서문은 책이 쓰여진 동기와 방법론을 설명해주며, 저자가 다루고 있는 질문의 윤곽과 주제를 명료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책의 독서를 통해 또 하나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서문의 읽기'에 무게중심을 더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목차를 거점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가지를 뻗어 세부내용을 읽어 나갔다. 그런데 이 책의 독서를 통해 '서문'역시 '목차'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저자의 세계를 오롯이 응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짧은 '서문'이 긴 '본문'보다 더 큰 세계를 담고 있을 수 있다는 반전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또렷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친절하고 고마운 암호'인 '서문'을 소중하게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서문'과 '목차'와 '본문'을 나란히 중요하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이 책을 완독한 뒤, 최근 짬짬이 재독하고 있는 '뿔을 가지고 살 권리'를 꺼내 서문을 읽어보았다. 서문의 첫 문단부터 제목이라는 압축파일을 풀어내고 있었다. 뿔이란 태생적 자질을 의미하며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는 것'의 중심에 뿔이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보통'을 넘어 '자신'이 됨으로써 '의미'와 '건강'을 획득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5페이지 짜리 서문에 담긴 세계가, 200페이지의 본문에 담긴 세계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서문은 저자의 고민과 화두를 오롯이 담고 말을 건넸다. '들어봐,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말이야...'

나의 꽃: 친근함 / 글쓰기 / 영감
이 책 '위대한 서문'은  서문들의 모음집이다. 스피노자, 조너선 스위프트, 몽테스키외, 루소, 니체, 다윈, 보들레르,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등 위대한 저자들의 위대한 서문들을 한 곳에 모았다. 각 서문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저자와 책에 관한 간략한 해설을 첨부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덕분에 본문을 읽기에 앞서서 낯설음을 줄이고 호기심을 높임으로써 한결 편안하게 위대한 서문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의 '서문'이라는 '본문'을 읽어나가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정령이 발견한 꽃'이다. (아래 '가까이 읽기'에서 해당구문을 인용하겠다)

첫째, 위대한 저자들의 원전을 향한 낯설음의 해소다. 프로이트, 니체, 스피노자, 다윈 모두 내가 좋아하는 학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저서를 직접 읽어본 경험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해석을 곁들인 주해서나 짤막한 인용문구로 배움의 기회를 얻고는 했다. 원전에 손을 뻗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낯설음', '어려울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또 한편의 이유로는 '방대한 양' 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서문을 만나보니 생각보다 난해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연구의 이유'와 '개인적 사연'과 '연구의 한계'와 '한계에 대한 해명' 같은 이야기들은 매우 인간적인 냄새를 풍겼다. 원전을 읽는것에 대한 부담감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었다. 서문이라는 '큰 세계'를 미리 만나봄으로써 분량은 방대할지라도 '같거나 작은 세계'를 나란히 담고 있는 본문을 한결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도 생겼다.

둘째, 글쓰기에 대한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책에 소개된 서문들을 읽어나가며,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조적으로 정말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와 부연과 방향성이 일목요연하고 명확했다. '좋은 글'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여기 담긴 글들은 정말이지 '좋은 글'이라고 느꼈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멋진 사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셋째, 다양한 '영감'들을 품어볼 수 있었다. 각각의 서문은 각자의 세계를 담고 있다. 위대한 사상가가 세상과 마주치며 피워낸 '질문', '호기심'. '화두'의 모음이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배움과 느낌의 범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더 넓은 영감을 피워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삶을 풍성하게 경험하며, 자신의 세계를 의미와 행복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어떤 영감을 피워내고 있는지' 짚어보며, 순간의 경계에서 더 멋지고 아름다운 영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목차, 본문, 그리고 서문
이전의 읽기가 '목차'와 '본문'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서문'이 그 옆에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제목이라는 압축파일을 서문으로 풀어내고 목차라는 설계도와 함께 본문의 세계를 탐험하는 흥미로운 여행, 앞으로의 독서 여행은 한결 편안하고 재미있어질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
 
[가까이 읽기]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인 니체의 저서다. 책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펼쳤고 역시나 빠져들어 한달음에 읽어 내렸다. 그동안은 짜라투스트라를 제외하고는 해설서 위주로 니체를 만나왔기에 원저의 서문을 읽게 된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낯설음이라는 내면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니체의 원저와 하루빨리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285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낯선 존재로 있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내면세계를 향한 니체의 탐구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세상을 감각하고 인식하지만, 자신을 감각하고 인식하게 되는 일은 '의지'를 필요로 한다. 어렵고 생경하지만 가치있는 일, '성찰'과 '알아차림'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287 우리는 어떤 일에든 개별적으로 존재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잘못을 저질러도 개별적으로 진리를 파악해도 안 된다. 오히려 나무에서 필연적으로 열매가 열리듯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가치, 우리의 긍정과 부정, 가정과 의문이 자라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유사하고 관계가 있으며, 하나의 의지, 하나의 건강, 하나의 지구, 하나의 태양을 증거하고 있다.
니체는 '관계세계'를 중요시한다. 세계와 세계, 사람과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내면세계 역시 다양한 관계로 구성되어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이지와 건강과 지구와 태양을 조각해가는 주체로서, 나는 책임과 의식을 다하고 있는지 묻는다. 한편으로 그 놀이의 유희를 즐겁게 누리고 있는지 묻는다.

289 마침내 나는 나 자신의 나라, 나 자신의 땅을 갖게 되었고, 말없이 성장하며 번성하는 전 세계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흡사 비밀스러운 정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갖게 된다는 차라투스트라의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You Should'라고 말하는 낙타의 세계를 부수고 니체가 만들어낸 자신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새로 써내려간 '도덕의 계보'는 어떤 질서를 이루고 있을까? 그는 그 체계와 질서에 확신을 갖고 있었을까? 

296 말하자면 이 명랑함, 나의 말로 하자면 즐거운 학문은 보람 있는 일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관심사는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용감하고 근면하게 남몰래 진지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보람 있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전진하라! 우리의 낡은 도덕도 희극에 속하니라!"라고 진심으로 말하게 되는 날에 우리는 '영혼의 운명'에 관한 디오니소스적인 드라마를 쓰기 위한 새로운 갈등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명랑하고 즐거운 학문이라니.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그 방대한 탐구와 저작이 가능했을까. 그가 신랄하게 부정하는 낡은 도덕에 마저도 희극의 미소를 보낼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긍정. 니체가 주는 '의미'와 '의지'의 힘을 다시금 확인한다.

297 이 저서가 누군가에게 이해되기 어렵고 귀에 거슬린다고 해서 나는 그것이 반드시 내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먼저 내 저서를 읽으면서 약간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기를 바라는 나의 전제를 감안한다면 누구의 책임인지 아주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불편한가? 나는 할 만큼 했으니 내 책임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 책임이겠는가? 그것도 아주 분명하단다. 이런 니체의 밉지않은 거만함, 순화한 표현으로 '당당함'은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동안 읽어온 해설서의 인용문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간접적으로 느껴졌지만, 서문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만나게되니 한결 반갑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꿈의 해석, 지그문트 슐로머 프로이트(1856~1939)
325 결국 나는 나 자신의 꿈과 내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꿈 가운데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신경증적 특성들이 뒤섞여 꿈속의 사건들이 예기치 않게 복잡해지기 때문에 사용하기 곤란했고, 나의 꿈을 이야기하면 내 정신적 삶의 내밀한 부분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에게 보여 주어야만 했다. 그것은 시인이 아니라 자연과학자인 저자에게는 으레 요구되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알려진바와 같이 프로이트는 꿈이 정신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의 꿈을 연구함으로써 그의 무의식 속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꿈은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치부를 실체화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서적 문제를 겪는 개인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포착하고, 억압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이 옳다면, 우리의 꿈은 함부로 꺼내어 이야기할만큼 사소한 것이 아니다. 꿈 속의 상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에게, 개인의 은밀한 내면세계가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프로이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연구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표본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만큼 유용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꺼내어 놓는다면 자신의 은밀한 내면세계가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의 고민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 과학자다'라고. 이러한 자신의 갈등을 이해해달라고. 위대한 학자가 경험한 인간적인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역사적인 저작이 태어나는 물밑에서 보이지 않는 번민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A를 선택하면 나의 저작의 신뢰도를 높이고 풍부한 부연을 곁들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내밀한 정신세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B를 선택하면 나의 내밀한 세계를 지킬 수 있지만 내 저작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 과감하게 특정한 균형점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어려운 선택이 될 것 같다.

인상과 풍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
338 항상 우리의 영혼을 세상 사물에 따라 부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른거리는 영혼의 그림자를 보고, 또 마법과도 같은 우리의 감성에 형식을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339 커튼이 올라가고 있다. 이 책의 영혼은 이제 곧 심판을 받을 것이다. 독자들의 눈은 사고에 비칠 영혼의 꽃을 찾는 두 명의 정령이 되리라. 이 책은 하나의 정원이니, 이 정원에 꽃을 심을 줄 아는 자는 복되도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장미를 꺾을 수 있는 자는 축복받을지어다...! 감성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향유를 받으면 환상의 등불이 켜지리라.
커튼이 올라가고 있다.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의 '인상과 풍경' 서문 중 일부이다. 나는 이 서문을 밑줄로 난도질 하다시피 했다. 그 만큼 마음에 울림을 주는 구절이 많았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책을 펼치며 커튼이 올라가고 두 눈의 정령이 불을 밝힌다. 넓게 펼쳐진 정원에서 소중한 씨앗을 발견하고 정성껏 심는다. 금새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를 조심스레 꺾는다. 영감의 꽃으로 고양된 영혼은 환상의 등불을 밝힌다. 이런 감수성을 지닌 작가가 쓴 책은 어떤 세계를 담고 있을까? 나는 그 곳에서 어떤 꽃을 피워내고 끝내 꺾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헤르만 헤세가 떠오르기도 하는 글이었다. 꼭 본문과 저자의 책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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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에게
기돈 크레머 지음, 홍은정.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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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의 예술철학을 담은 에세이.

[멀리서 읽기]
내가 예술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 그들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을 향한 통렬한 비판을 읽으면서 " '든든한 우리편'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이번에 '젊은 예술가에게'를 읽으며 그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든든함'보다는 '애정'에 초점에 맞춰졌다. 예술을 향한, 후배 예술가를 향한 진심어린 애정과 사랑을 읽으며, "정말이지 멋진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지만은 않다. 어쩌면 나도 예술가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흔하게 인정받는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를 '협의의 예술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극히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창작 내지는 창조해내는 사람을 '광의의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만들어간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적어도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니 나도, 우리도, 모두 나름의 예술가다.

170 '우리가 연주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면에서 이 책의 독서는 나에게 괴리된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를 담금질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삶을 채워나가는 사람으로서, 나의 과업을 조각해가는 사람으로서,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을 마음에 품게 만들었다. '내가 삶을 연주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으로서의 태도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창작자의 세계, 연주자의 세계를 만나봄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고뇌와 마주함으로써, 관객으로서 나의 세계는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귓가에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몇 개의 물음표가 떠오른다. 과연 이 곡의 작곡가는 어떤 의도로 음표를 적어내렸을까? 연주자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의도와 해석은 일치할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대화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선율을 타고온 은유의 언어로부터 어떤 영감과 해석을 피워낼 것인가? 이제부터 다가올 감상의 여행은, 예전보다 더 풍성한 물음표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보이는 작품 너머에 위치한 예술가의 세계를 향한 존중의 진지함을 함께 품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 읽기]
음악가를 위한 음악, 음악을 위한 음악가
92 무엇보다 연주자는 '작품'을 사랑해야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안 된다. 그 사랑은 작품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힘이며, 그 사랑에는 모든 것을 영원하게 만들어주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음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이 깃들어 있다. ... 피셔 디스카우는 이를 멋진 말로 표현했다. "음악가가 음악을 위해 헌신해야지, 음악이 음악가를 위해 존재해선 안 된다."

94 진정한 음악가는 자신이 한 '해석'에서 신화를 창조해서는 안 되며, 다른 더 좋은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이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153 연주자들은 악보를 충실히 받들어야 할 그들의 본분을 망각한 채 각자의 자아를 마음껏 뽐낼 온상이자 '장식의 도구'로 음악에 접근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154 사랑은 교태 표현의 총량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깊은 감정의 표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67 연주자에게 씌울 수 있는 최악의 혐의는 자신의 에고를 작품보다 윗길에 놓는 것인데, 열 종의 음반은 모두 최소한 그러한 혐의로부터는 자유로웠다.

저자는 음악을 '이용'하는 음악가들을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음악을 위해 음악가가 존재하는 것이지, 음악가를 위해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거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라는, 한편으로는 그러한 깊은 사랑 덕분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던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무엇'을 만나고 그것에 헌신한다는것이 쉬운일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나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가? 아니면 일을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전자의 대답을 하는 이가 모름지기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이 거장과 보통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한 가지 경험이 떠올랐다.

예전에 하나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쓸 때는 즐겁게 적어나갔는데, 일주일쯤 지나 다시 읽어보니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곧장 창을 닫았다가 얼마 뒤 다시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글의 목적이라는 큰 줄기를 일탈한 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맥락과 어울리지도 않고 굳이 없어도 되는 말의 덩어리였다. '내가 이걸 왜 넣었을까?'라고 생각하던 중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다. 글 자체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뽐내기 위해 덕지덕지 붙여놓은 덩어리였다. 글의 맥락에서 이어진 자연스런 흐름이 아닌, 나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억지로 이어붙인 작위적 엮음이었다. 그리고 그 덩어리를 삭제하고 편집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오롯이 글만을 위해서, 담백하고 정제된 글을 적어내렸다면 충분히 만족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의미를 주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오롯이 헌신하는 태도가, 충분한 결과물과 충만한 만족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물을 쟁취함으로써 획득하는 보상이 아닌, 그것 자체에 헌신하는 과정에서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화, 작곡가와 연주자의 대화
138 무릇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독주자와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여야 할 일이지 양자 사이의 '경쟁'이어선 곤란하다. ... 이상적인 연주는 참가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주어지는 연주다

143 훌륭한 파트너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상대가 연주한 음표가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음악데 대해 가진 '비전'이나 프레이징 방법 등을 그때그때 필요에 맞추어 조정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파트너십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145 연주의 동반자가 얼마나 열심히 진실된 대화에 매달리느냐, 그것을 내 비교 청취의 척도로 삼기로 했다


202 해석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곡가와 '대화'해나갈 권리가 있다고 했던 굴드의 말이 품은 의미는 이해하고 있다.

이 책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대화'다. 작곡가가 창작을 하면 연주자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영감을 읽어낸다. 그리고 개별 연주자는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이라는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영감의 흐름과 같다. 이제껏 하나의 작품을 보고 품었던 질문은 보통 '메세지가 뭐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최초의 영감과 작곡가 사이의 대화, 악보에 내려앉은 영감과 연주자 사이의 대화, 공연을 구성하는 개별 연주자 사이의 대화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것은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접근법이 아니다. 연극, 영화, 무용 등 다양한 범주의 예술에 적용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풍성한 호기심과 깊은 진지함으로 더 많은 작품들과 만나게 될 기회를 기대한다. 

대화, 작품과 관객의 대화
194 이전 세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놀라운 독법이 믿기 힘든 성취로서 언제나 기억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달통한 악기 연주 솜씨가 아니라 '말을 걸어오는'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다. 과거의 많은 연주자들은 그들의 소리로 뭔가 중요한 것을 '말'했다. 그들의 연주는 굉장히 가다듬은 연주 기법의 과시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이다.

예술이 마움을 두드리는 경험은 흔하게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선물이다. 소박하고 투박한 소극장에서의 공연이 예상치 못한 울림을 주는 경우가 있는 반면,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화려한 공연이 순간의 유희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이 의도한 바가 과시인가, 혹은 대화인가의 차이였을까? 하지만 한편으로 짚어봐야할 것이 있다. 나는 관객으로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들이 건넨 물음표의 굴곡을 따라 여행할 채비를 갖추었는가이다. 작곡가에서 연주자에게로 이어진 소중한 영감이 도달하는 종착지는 관객이다. 그러니 긴 영감의 여정을 완성하는 예술과정의 참여자로서, 관객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주어진다. 조금 더 진지해지자. 마음을 열고 밑줄을 긋자. 그럼으로써 신비한 공명을 통해 영감이라는 선물을 받는 소중한 경험을 기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
149 내게 도대체 무슨 권리가 있어서 다른 이들의 연주를 재단할 수 있단 말인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다른 연주에서 뭐라도 하나 배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연주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내 연주 스타일의 지평을 넓히는 상생책이 아닐까? 여러 위대한 해석을 앞에 두고 어깃장을 높을 권위가 과연 내게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나 스스로를 비평하고 비판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내게도 유익한 일일 텐데 말이다.

166 대법원 판사 행세를 하고픈 마음은 없다. 나는 일개 '수사관'에 불과하고 따라서 내 의도 역시 가장 적절한 해결책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167 어쨌거나 나는 내 주관적 의견을 내놓으면 된다. 골치 아픈 곤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의견을 법정에서 얼마나 받아들여 줄까? 검사 측에 서건 변호인 측에 서건 말이다. 결국 자명한 결론은 하나, 내 의견을 개진하고 뒷받침해야 할 의무는내게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없는 것이다.

202 단 하나의 해석을 선정해야 하는 나의 시련 역시 실패로 돌아갈 운명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부터 객관성이란 잣대는 돌풍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내가 '이거다'하고 골라낼 음반은 결국 나의 선택일 뿐이다. 나의 개성과 나의 취향이 묻어 있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4부 '루드비히를 찾아서'는 저자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담은 여러 벌의 아카이브 레코딩을 품평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업을 맡게됨으로써,
최고의 음반을 찾아가는 사색의 과정을 담고 있다. 책의 전반부를 워낙 인상깊게 읽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음악적 지식이 얕은 나임에도 빨려들어가듯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내밀한 숙고와 성찰과 번민이라는 사색의 과정이, 호기심과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비평'이라는 짐을 짊어진 저자의 고민과 번민이었다. 저자가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베토벤'의 곡을, 하나같이 일류 음악가들이 연주한 음반들을 비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저자인 기돈 크레머는 〈BBC 뮤직 매거진〉이 100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1위로 꼽힌 바 있는 명망높은 아티스트다. 충분히 평가의 자격이 있다고 자부할수도 있지만,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대해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자격을 자문하는 과정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거장이 지닌 겸허함과 열린마음도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름의 기준을 세우며 작업을 진행한다. 파트너십, 템포, 슬라이드, 페르마타, 카덴차, 내용, 개성 등을 심사 기준 삼아 까다롭게 비교하며 틀을 세워나간다. 그리고 끝내 예상치 못한 하나의 기준을 발견하며 실마리를 풀어내고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몸과 말을 사리게 되는 시대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이전까지의 모든 이력과 경력이 무너지기도 한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말을 함부로 해서 안된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 정제되지 않은 한 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수도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와 동시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말'들조차 조심스레 마굿간 한켠으로 몸을 숨기는 것 같다. 숙고하지 않은 판단과 단정이라는 막말의 향연속에서 애정어린 관심과 진심어린 조언도 '꼰대짓'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도매로 묶인다. 모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적당하게 좋은 말만 하는것이 상책이다.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좋은게 좋은거니까, 서로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적당히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위안과 지지는 필요하다. 삶의 어려움을 버텨내는데 이보다 고마운 안식처는 없다. 하지만 버팀을 넘어 거듭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냉정한 비판 역시 필요하다. 숙고와 성찰을 통한 내적 성숙을 통해,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여 경험하지 않을 지혜와 강함을 획득할 수 있다.

나만의 템포로, 슬라이드로, 페르마타로, 단호하게 내적 성찰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타인에게 진심의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타인의 비판을 반갑게 수용하는 담대함과, 고마움을 건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바래본다. 음악을 향한 기돈 크레머의 애정과 진심을 기억하며.

[인용]
106 미학과 윤리학이 서로 관련 깊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또 작곡가와 연주자가 서로 손을 잡아야 해석이 더 강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야만 악보를 채우고 있는 '모든 기호와 모든 점'이 생생히 살아날 수 있다.

143 음악이란 그저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음표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내 믿음이다.

147 각각의 시대는 저마다의 보폭과 각자의 '메트로놈'을 가지고 있다.

165 최고의 관객은 소리만큼이나 정적 또한 즐길 줄 아는 관객이다

195 '완벽을 추구하는 연주'속에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다. '더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연주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럼에도 듣는 사람의 심장을 움직이는 '울림'이 없어서야 무슨 소용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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