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법조인 36인이 말하는 법과 오늘
김주미 지음 / 법률저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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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읽기]
법조인이 들려주는 법 이야기
탐구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대상의 면면을 스스로 관찰하는 것. 둘째, 그것과 삶을 함께한 전문가의 목소리로 재해석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첫번째 방식이 갖는 장점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두 번째 방식 역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개인의 삶 속에서 녹아든 학문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어떠한 학문이든 그것이 실현되는 곳은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의 삶' 일테니 말이다.

이야기:개인적인/사회적인/성취의/전문 영역의/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이 책 '법과 오늘'은 법에 관한 삶의 이야기다. 법의 영역에서 각자의 성취를 이룬 36인이 말하는 '법과 삶'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 법조인이 된 이유, 과정, 소신 등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로스쿨이나 법조현안 등 사회문제, 개별 전문가들의 특색있는 업무 이야기, 청년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우며 유익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따라서 '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께도 즐거운 읽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주인공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다. 등장하는 법조인은 박주선, 천정배, 강금실, 이재명, 표창원 의원등 정치와 연결된 법조인에서부터 가수로 활동했던 미국 변호사 이소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까지 다양하다. 대중들에게 유명하지 않더라도 각 영역에서 전문적인 경력과 탁월한 성취를 이뤄낸 여러 법조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현실 곳곳에 녹아들어있는 법의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법이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편으로 그들이 일뤄낸 성취의 과정을 풀어냄으로써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많은 독자들에게 의지와 영감을 전한다.

'사람'이 말하는 '법'과 '오늘'
법의 이야기는 왠지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의 이야기는 한결 친근하고 편안하다. 이 책을 통해 만나본 법조인들의 시선은, 낯설고 딱딱할것만 편견과 달리, 늘 '사람'을 향해 있었다. 인터뷰어인 김주미 기자는 법조인들로부터 "보내 온 질문지를 보고서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여러차례 들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꾸미지 않은듯한 편안한 대화속에서, '사람'이 말하는 '법'과 '오늘'의 이야기를, 호기심과 배움의 흥미와 함께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가까이 읽기]
이시윤 변호사 / 전 감사원정, 판사, 초대 헌법재판관
20 "법조인은 '사회의 의사'야. 개인 병 고치는 의사 말고, 병든 '사회'를 고치는 의사. 사회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해. '사회 설계사'이면서 '정의의 대변자'이지. ... 선비 정신을 가져야 해.

24 변호사 자격증은 어쩌면 출발점이야. 이제부터 시험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자기 공부를 해 나가야 하지. 법의 궁극적 가치를 게을리하면 자기한테도 불행이요, 사회에도 불행이야.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 때도 그랬어. 학생들 사이에 이상은 부단한 노력을 하는 노력가들이 아니라 하는 것에 비해 성적이 좋은 사람, 얼마 안 하는 것 같은데 뛰어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지. ....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노력을 얼마 한 게 없는데 성과와 결과를 바라는 것, 그건 불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인터뷰를 읽어나가며 많은 법조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런 또렷한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방대한 학문을 소화해내는 것이 쉬웠을까? 병든 사회를 고쳐주기를 기대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병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많은 요즘,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이시윤변호사의 이야기는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겸손'에 대한 이야기는 깊이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그렇다. 열심히 오랜시간 끈덕지게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짧은 시간을 투입했음에도 천재적인 기질의 힘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며 불의에 가깝다. 이번 독서를 계기로 나의 내면에 자리한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보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노력으로 목표를 이뤄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양창수 교수 / 전 대법관, 판사
56 법의 중요성은 그것이 권력의 틀을 정한다는 점에도 있지만, 그 전에 사람의 권리, 즉 기본적 인권을 말한다는 점에 있어요.
 우리나라의 법은 개인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에 비하면 사회 원리의 패러다임 대전환이죠. 국가도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거예요. 우리는 식민지 경험, 전쟁, 분단, 가난 등으로 아직 그 점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은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도 된다는 원칙 위에 서 있지요.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경우에는 분명히 책임을 지라고 말하죠. 억지로 어떤 사회적 압박에 의해 희생하는 것은 우리 법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경우와는 다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저변에서는 가족, 기업 등을 위하여 자신을 억누르라고 요구하지 않나요?
법 공부는 단지 추상적 법리를 외우는 일이어서는 안 되고, 법이 그렇게 정하는 기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법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이해한 바탕 위에 법의 적용과 문제 해결, 법 제도 간의 기능적 관계를 입체적으로 고려하는 공부를 해야지요.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법 공부가 그렇게 되고 있는지를 항상 점검해야 해요.

흔하게 쓰이는 '법대로 해!'라는 말에는 '인간'에 대한 고려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당신 이야기는 내가 들을 필요 없고, 골치아프니까 법대로 합시다."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법은 '권력의 틀'임에 앞서서 인간의 '기본적 인권' 지향한다. 규칙에도, 질서에도, 권력에도, 그 너머에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나 모르는 바가 아니겠지만, 각자의 각박한 현실속에서, 혹은 이기심이나 욕망속에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게되는 경우가 잦다. '법의 이해'가 혹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추상적 법리 너머에 법이 추구하는 가치가 존재함을 이해함으로써, '법대로 함'이 곧 '그 너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임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지혜도 함께 확장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개인'에 관한 관점도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이즈미야 간지'가 저술한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서는 일본과 서양의 대화에서 '인칭'의 차이가 발생함을 지적한다. 서양에서는 1인칭인 화자가 3인칭인 타자에게 말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0인칭인 화자가 2인칭인 타자에게 말한다. 서양에서는 나의 주장이 상대의 지위에 따라 크게 영향받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확연히 달라진다. 즉 '나'가 없고 '나의 주장'이 없다. 저자는 이러한 주체의 상실로 인해 마음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자기본위'를 획득함으로써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번 독서는 '마음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넘어서, '법 안의 개인', '국가 안의 개인'을 짚어보게 만들었다. '희생'과 '헌신'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만큼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강압되었을 때는 금액으로 보상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운 폭력이 될수도 있다. 마음의 주체로, 집단의 개인으로 자신을 지켜가야겠다고, 타인의 마음과 집단 안의 타인을 존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송기석 국회의원 / 전 판사
119 저는 공부할 당시 그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한다', '전부를 내던진다', 24시간 중 16시간을 공부 시간으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2차 마지막 날 시험장을 나오면서 '내가 이 정도로 했는데 안 되면 이 시험은 나와 맞지 않는 거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해 안 되면 그만두려 했어요. 그만큼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했다고 자신했습니다.
어떤 시험을 응시하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목적 의식과 각오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상태에서는 긴 시간 공부할 수 없어요. ...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단시간의 시험 준비가 아닌 긴 시간 대비해야 하는 방대한 시험 준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습니다. 조금씩 물을 부어서는 다 새어 나가 버려 독에 물이 차 있질 않아요. 콸콸 넘치게 부어야 밑에서 빠져 나가도 독에 물이 차 있을 수 있습니다. 시험 기간을 길게 잡지 말고 잡은 기간 내에는 자신이 쏟아 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투여해야 합니다.

법조인 하면 아무래도 사법시험을 빼놓을 수가 없다. 로스쿨이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는 사법시험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의 치열하고 생생한 노력의 과정속에서 많은 배움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송의원은 13년 동안 대학을 세 번 다녔다고 한다. 수험을 위해서 학교를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16시간을 공부에 매진하며 합격을 이뤄냈다고 한다. 그 동안의 삶에서 '해본다'의 태도로 임하며 이루지 못했든 일들을 떠올린다.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다면, 전부를 내던지며 치열하게 임했더라면 성취를 했을지 모를 것들, 적어도 실패의 과정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경험들을 떠올린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방법은 빠져 나가는 양보다 더 많은 물을 채워넣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려 한다. 세상에 나의 노력을 온전하게 담아 줄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 탓하거나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태도가 바로 그릇의 구멍을 쳐다보는 미련맞은 아쉬움이 아닐까? 물이 빠져나간다면 그보다 더 많은 물을 채우겠다는 각오로, 신념을 향한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전진하고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박준영 변호사
190 "절실함이 있었어요. 대충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 저는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잡힌 채로 일을 하는 중이니 더더욱 절박했습니다." 살인했다는 사람들 옆에 나란히 서는 것, 수사기관에 대항해 홀로 싸워야 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저는 뒤늦게라도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나타난 진범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진범이 존재하는 상화에서 진실게임은 끝난거죠. 수사기관이 저지른 악행은 입에 담기조차 어려워요. 처음에는 왜 안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들의 잘못 앞에서 당당합니다. 죄 지은 자는 엎드리게 되어 있어요. 저는 두려울 이유가 없죠. 진실을 쥐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 건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 문단의 토픽은 '절실함으로 두려움을 뛰어넘다'이다. 공권력이 진행한 수사와 판결에,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일에, 오로지 '진실을 쥐고 있다는 당당함'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될까? 더욱이 그것이 공권력에 대항하는 '진실'이라면, 손쉽게 이룰 수 있는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위대한 일들은 그 과정의 어려움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내야만 하는 '이유'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박변호사의 경우 그것이 '절실함'이었던 것 같다. 나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절실하게 하는것은 무엇일까?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나만의 신념은 무엇일까? 나 역시 박변호사처럼 진실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살아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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